[송문석 칼럼] 국가 최고 지도자의 위험천만한 말과 생각은 재앙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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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 국가 최고 지도자의 위험천만한 말과 생각은 재앙을 부른다
  • 편집국장 송문석
  • 승인 2024.05.27 13: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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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총리 체임벌린의 히틀러에 대한 터무니없는 믿음...2차 세계대전의 재앙 불러
체임벌린, “한번 약속하면 믿을 수 있는 사나이 인상 받아” 히틀러에 대해 우호 평가
루스벨트, 소련과 스탈린에 대해 관용적 태도 견지하다 자유진영 최대 위협국 키워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북한과 김정은의 핵에 대한 나이브한 생각, 지도자 태도론 부적절

“나는 그에게서 한번 약속을 하면 믿을 수 있는 사나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1938년 9월 30일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 아서 네빌 체임벌린(1869~1940) 총리는 열광하는 군중 앞에서 ‘명예로운 평화(peace with honour)’ ‘우리 시대의 평화(peace for our time)’을 얻어냈다고 자랑했다.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유럽을 집어삼키려는 이빨을 드러내자 전쟁의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 몰라 유럽인 모두가 두려움에 떨 때다. 체임벌린은 독일 뮌헨까지 찾아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sudetenland) 지역을 히틀러에 넘겨주는 대가로 ‘유럽 평화 확보에 기여할 것을 결의한다’는 그의 서명이 적힌 종이쪽지를 받아와서는 군중 앞에 흔들며 ‘명예로운 평화’를 얻어냈다고 의기양양하게 보고했다.

체임벌린
아서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가 1938년 9월 30일 런던에서 히틀러로부터 '명예로운 평화'를 얻어냈다며 문서를 들어보이고 있다(사진: 위키 캡처).

“나의 선량한 동포 여러분! 독일로부터의 명예로운 평화를 다우닝가(街)에 가져오게 된 것은 우리나라 역사상 이것이 두 번째 일입니다. 나는 우리 시대가 평화로울 것을 믿어 마지않습니다.”

전쟁이 곧 터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던 터에 체임벌린이 히틀러와 ‘뮌헨조약’으로 타협을 이뤄내자 불안에 떨던 런던 시민들은 열렬하게 환영했다. 영국 의회의 보수당 동료들 대부분도 체임벌린을 지지했다. 몇몇 의원만이 체임벌린의 낙관적 기대를 미심쩍어하며 우려를 나타냈다. 대표적인 인물은 윈스턴 처칠(1874~1965)이었다.

체임벌린은 히틀러가 야심가라는 걸 알면서도 그가 진실한 사람이라고 나이브 하게도 정말로 믿었던 듯하다.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요컨대 내가 목표로 삼은 일정 수준의 신뢰를 확립했고, 내가 보기에 냉정하고 비정한 면도 있었지만, 여기 있는 이 남자는 일단 약속을 하면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그의 얼굴에서 확인했다고 생각했다.”

체임벌린이 런던에서 ‘명예로운 평화’를 얻었다며 종이를 군중 앞에서 흔들고 있을 바로 그때 히틀러는 뮌헨에서 체코 침공 작전에 동원될 부대를 편성하고 지휘관들을 선임하고 있었다. 체임벌린이 뮌헨에서 헤어지면서 “다시 회담할 때까지 군사행동을 취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요구하자 흔쾌히 약속했던 히틀러였다. 히틀러는 이미 체코를 10월 1일 침공한다는 계획을 세워둔 상태였다. 휴지 조각이 될 서명 따위는 수백 번이라도 체임벌린에게 해줄 히틀러였다. 그런데도 체임벌린은 “나는 그에게서 한번 약속을 하면 믿을 수 있는 사나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기억했다. 히틀러는 체임벌린을 장기판의 졸때기처럼 가지고 놀았다.

순진하달까 아니면 한심하기까지 한 체임벌린의 정세판단력은 1년도 지나지 않아 파탄을 맞는다. 히틀러는 주데텐란트만 먹겠다는 약속 -- 히틀러는 처음부터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니 유럽 전체를 집어 먹겠다며 전쟁준비를 오래전부터 착실히 하고 있었다 -- 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1939년 3월 체코 나머지 지역을 모두 집어삼켜 버렸다. 이듬해인 9월 1일에는 폴란드에 대한 공격에 나서 제2차 세계대전이 결국 터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체임벌린은 독일에 대한 전쟁선포를 미루면서 최후의 협상을 시도하려 했다. 다음 해인 1940년엔 덴마크와 노르웨이가 히틀러의 수중에 떨어졌다. ‘잘못된 유화정책’을 편 체임벌린은 1940년 5월 10일 퇴임할 수밖에 없었다. 뒤를 이어 총리를 맡은 사람이 2차 세계대전에서 영웅적 리더십을 발휘한 처칠이다.

역대 총리 중에서 가장 무능력하고 형편없는 총리로 영국 사람들은 네빌 체임벌린을 꼽는다. 그렇지만 그는 국내 정치에선 꽤 괜찮은 능력의 소유자였다. 가문부터가 대단했다. 아버지 조지프 체임벌린은 식민지장관 등을 역임한 거물 정치인이었다. 이복형인 조지프 오스틴 체임벌린은 외무장관 등을 지냈으며 로카르노 조약을 성사시킨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네빌 체임벌린 역시 체신장관 보건장관 재무장관 등을 지냈으며, 보건장관으로 있을 때 국민건강보험법을 제정하는 등 영국 복지제도 발전에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재무장관 때는 관세개혁도 완수했다.

나무랄 데 없는 정치적 경력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독일 팽창주의에 대한 잘못된 판단과 히틀러에 대한 터무니없는 믿음으로 ‘명예로운 평화’만을 노래 부르다 영국 역사상 최악의 총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론 체임벌린은 어떻게 해서라도 전쟁만은 막아보려 유화적인 자세로 대화와 협상을 했겠지만 그의 상대는 정상적인 사고의 소유자가 아닌 히틀러였다. 말이 통하지 않는 전쟁광이었다.

비슷한 시기, 국가 지도자의 오판은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일어났다. 미국 역사상 유일한 4선 대통령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1882~1945)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과 스탈린을 잘못 평가하고 오판했다.

그는 소련이 미국과 다른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지만 미 합중국 안보를 위협할 위험한 존재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볼셰비키 혁명과정에서 전체주의를 추구했지만 결국은 자유주의 체제에 수렴될 것이라며 소련의 변화 가능성을 기대했다. 세 번째로 2차 세계대전을 조기 종식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군사협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역사는 루스벨트의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소련은 팽창정책으로 동유럽을 공산화해 붉게 물들였고, 지금까지도 자유주의 진영의 최대 위협국가로 자리했다. 루스벨트 오판의 결과는 한반도에도 재앙을 가져왔다. 소련이 국제정세 하에서 김일성을 사주해 6.25전쟁을 일으킨 것은 오늘까지도 한민족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루스벨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사람은 해리 S. 트루먼(1884~1972)이다. 부통령이 된 지 82일 만에 미국 제33대 대통령이 됐다. 그는 취임 후 루스벨트의 관용적 소련관을 폐기하고 소련을 악의 축으로 보고 강경 대응했다.

재임 기간 그는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과 일본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또 6.25전쟁 때 이승만(1875~1965) 대통령보다 먼저 북한의 남침 사실을 존 무초 주한미대사-에치슨 국무장관 라인을 거쳐 보고 받았다. 당일 저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개최를 요구하고 이튿날 북한의 무력공격을 침략행위로 규정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채택되도록 했다. 트루먼은 27일 미국의 참전을 발표하고 유엔군의 한국 지원 결정을 주도한다. 이 모든 것이 6.25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전광석화처럼 이뤄진 일이다. 루스벨트와 트루먼으로 이어지는 미국 최고지도자 두 사람의 상이한 말과 생각에 따라서 한반도의 운명도 극과 극을 달리며 요동쳤다.

“잊혀지고 싶다”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현실 정치판에 끊임없이 들락날락하더니 결국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를 출판했다. 책은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이 묻고 문 전 대통령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기술돼 감성적 의견과 소회가 많이 섞여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문 전 대통령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국가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의 말과 행동에 따라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의 내용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도보다리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오후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대화하고 있다(사진: 청와대 제공).

“김 위원장이 그런 표현을 누누이 썼어요. 핵은 철저하게 자기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사용할 생각 전혀 없다, 우리가 핵 없이도 살 수 있다면 뭣 때문에 많은 제재를 받으면서 힘들게 핵을 머리에 이고 살겠는가, 자기에게도 딸이 있는데 딸 세대까지 핵을 머리에 이고 살게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비핵화 의지를 나름대로 절실하게 설명했어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자신들의 비핵화 의지를 불신하는 것에 대해 매우 답답한 심정을 거듭 토로했고요.”

문 전 대통령이 정치 군사 외교 등 다방면에서 북한이 왜 그런 말과 행위를 하는지를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상황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갖는 것을 꼭 비판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남북 협상의 파트너로서 상대 의중을 정확하게 알아야 이쪽에서도 그에 맞는 대응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의 인식은 핵문제에 대한 전체적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기보다는 김정은의 주장과 입장에 감성적으로 넘어가 버린 듯하다. 김정은의 말을 전달하는 것 같지만 뉘앙스나 문맥을 보면 어느정도 공감하고 동조하는 것 같다.

문맥을 보면 김정은이 딸까지 동원해 가면서 신파조로 칭얼대며 뾰루퉁한 표정으로 억울해하는 말에 문 전 대통령이 쏙 빠져들어 간 느낌이다. 결국 “우리가 핵을 갖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미국이 우리를 죽이려 하니까 할 수 없이 그런 것이다” “우리는 핵을 남한에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 “국제사회는 왜 우리의 비핵화 의지를 못 믿느냐. 답답하다”는 말에 속아 넘어간 느낌이 든다. 마치 1980년대, 대학에 막 입학한 20대 열혈청년 운동권 학생이 민족주의와 민주화 열망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입만 열면 녹음기처럼 되풀이하는 레토릭이다. 유치찬란한 논리이고 말이다.

김정은의 이 말이 성립하려면 북한이 실제로 비핵화에 대한 의지와 함께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적인 행동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북한은 분단 이후 김일성 집권기부터 핵보유 정책을 국가적 차원에서 일관되게 추진해왔다. 이후 김정일-김정은을 거치는 과정에서도 한 번도 이를 포기한 적이 없고 오히려 고도화했다. 단지, 미국과 국제사회가 강하게 치고 나오면 슬쩍 후퇴하면서 포기하는 듯한 제스처만 취해왔을 뿐이다. 초지일관 변하지 않는 것은 북한이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때론 선의로, 때론 악의적으로 깨춤을 춘 것은 남한이었다. 북한으로서 남한은 협상테이블에서 주물럭거리기 손 쉬운 상대였다.

김정은은 최근 “유사시 핵 무력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은 한반도 2국가론을 내세우면서 남한 역시 외국이기 때문에 핵공격 대상이라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2022년에 이미 핵무력 법제화를 비롯해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했다. 핵무력을 완성한 이제는 거리낄 게 없어졌다.

북한의 선의를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미국과 남한의 호전적인 보수세력이 북한과 김정은을 궁지로 몰아붙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북한이 저런 것이라고 우호적으로 분석한다. 이른바 내재적 접근법이다. 역시 이런 논리가 성립하려면 북한이 핵 개발을 실제로 중단하거나 포기한 적이 있어야 가능하지만 김 씨 일가는 대를 이어가면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북한 인민 수백만 명이 굶어 죽어가는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북한은 핵개발의 행군을 멈추지 않았다. 지하에서, 동굴에서 그들은 서방의 눈을 피해가며 핵무력 완성을 위해 일로매진했다. 

핵확산방지조약(NPT)이 인정하는 핵 보유국인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을 제외하고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한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처럼 북한도 이제는 이들 나라와 같은 반열에 올랐다. 북한은 이제 드러내놓고 핵보유국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동안 비핵화를 한다느니, 핵 재처리시설을 봉쇄했다느니 등 쇼를 하면서 미국과 남한을 상대로 협상을 벌여왔지만 이제는 그럴 일이 없다. 이 모두가 남북 분단 이후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할 기술과 자본이 없다”며 핵개발 능력을 부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차츰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것은 미국 탓이다” “같은 민족인데 우리에게 핵폭탄을 쏘겠느냐” 심지어 “북한의 핵무기는 통일되면 우리 것이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선의를 믿으며 속아 넘어간 남한의 어리석음이 키운 결과다.

한반도를 둘러싼 관련국들의 이해와 입장, 상황을 바라보는 균형적 사고와 냉철한 판단을 의심케 하는 아전인수식 대목도 있다. 문 전 대통령은 남.북.미 간에 벌어진 줄다리기와 협상 과정에서 자신과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책에서 적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항상 내게 주도적 역할을 당부했고, 치프 니고시에이터(수석 협상대표)가 돼 달라고 부탁했다."

한민족의 운명과 미래가 걸려 있는 마당이어서 문 전 대통령 주장이 맞다면 좋겠지만 회담 과정에 직접 참여한 당사자들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문 전 대통령이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김정은을 만날 때 문 전 대통령의 동행을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 사이에 벌어진 일을 두고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이었던 존 볼턴은 자신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 이렇게 썼다. "트럼프는 문재인이 근처에 다가오는 것조차 질색했다."

문 전 대통령은 미국의 이런 거부 반응을 의식한 듯 슬그머니 한 발 빼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북한에서는 우리가 (판문점 북.미 회동에) 함께 가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고, 오히려 더 좋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미국 측에서는 내가 가는 걸 꺼리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미국과는 달리 북한은 거부감이 없었다는 문 전 대통령의 판단도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보낸 친서를 보면 사실과 다르다.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2018년 9월21일자로 보낸 친서에서 이렇게 적었다.

"저는 향후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각하와 직접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길 희망하며, 지금 문 대통령이 우리의 문제에 대해 표출하고 있는 과도한 관심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 전 대통령의 언행을 바라보고 있으면 지극히 협소한 세계관과 어떠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자기중심적이고 편향적이다. 실용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보다는 어떤 이념과 틀, 특정한 방향과 집단의 이익에 따라 움직였다. 문재인과 그의 정부는 국익을 위한 실용적인 사고와 용기는 없고 자기만의 아집과 당파적 이익을 위한 편벽, 그리고 노동 교육 인구 연금 행정개혁 등 국가적 당면과제인데도 인기 없는 정책은 외면하고 포퓰리즘적인 정치행위에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뛰어났다. 한 집안의 가장이든 어떤 회사의 사장이든 돈 펑펑 풀어서 인심 쓰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것을 못해서거나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 지도자가 나이브한 것은 위험하다. 자신도 위험하지만 공동체에 재앙이다. 평화보다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가능하다는 역설 역시 성립한다.

처칠은 ‘제2차세계대전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외국이 도전해 온다면 반드시 맞받아쳐야 한다는 사람들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겸허한 자세와 인내와 성실로 평화적 타협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틀린 것도 아니다. 아니, 대개의 경우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도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했다고 할 것이다. 인내와 꾸준한 선량함 덕분에 이제껏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이 몇 번일까! 종교와 도덕은 개인들끼리만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온화함과 겸허함을 종용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의 안전, 동포의 생명과 자유가 걸린 문제에서 최후의 수단을 쓰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면, 그런 확신이 있는 한 무력 사용을 피하면 안 된다. 그것은 정당하고 절실한 문제다. 싸우지 않을 수 없을 때에는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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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VIC뉴스 2024-05-27 16:22:03
이 시대 한국 의 안보 상황과 미래 전망에 대단한 통찰력을 주는 글이다. 문제는 이같은 통찰력 을 외면하며 자기 신념을 고집하는 정치인이 세를 얻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