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의 옷을 내 마음대로 입힌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키보드, ‘커스텀 키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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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의 옷을 내 마음대로 입힌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키보드, ‘커스텀 키보드’
  • 취재기자 최동현
  • 승인 2024.05.2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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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에 맞춰 부품을 구성해 만드는 커스텀 키보드
어려운 조립과정과 부품 공급 과정이 가장 큰 난관
완제품 판매하는 회사들 덕에 낮아진 진입장벽
커스텀 키보드, 주류 문화로 발돋움할 준비 갖춰

키보드를 두드린다. 키보드에서 조약돌이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키보드에서는 도각도각 초콜릿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또 다른 키보드에선 찰칵거리는 옛날 타자기 소리가 들린다. 나만의 패션 스타일을 만드는 것처럼, 키보드로도 나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다. 내 마음대로 만드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키보드, ‘커스텀 키보드’다.

커스텀 키보드(Custom Keyboard)는 내가 원하는 대로 개조한 키보드를 말한다. 커스텀 키보드에 대해 들어본 사람은 이를 되게 고급진 키보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커스텀 키보드는 그리 거창하지 않다. 내가 키보드의 모든 부품을 직접 준비해 스스로 제작하는 것만이 커스텀 키보드가 아니다. 기업이나 개인이 준비한 키보드의 부품 중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내가 원하는 대로 교체하거나 수정하면 커스텀 키보드가 된다.

키보드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키보드의 조상이라 불리는 타자기부터 알아보자. 자판을 눌러 입력하는 타자기를 발명한 사람은 미국의 크리스토퍼 L. 숄즈다. 숄즈가 만든 타자기는 1874년에 세계 최초로 상업적인 목적으로 판매됐다. 이때 숄즈가 만든 최초의 타자기가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쿼티(QWERTY) 자판 배열을 사용했다. 이후 쿼티 배열보다 효율적인 드보락(DVORAK) 자판 배열이 등장했지만, 사람들은 너무나도 익숙해진 쿼티 배열을 선호했기 때문에 드보락 배열은 비주류가 됐다.

크리스토퍼 L. 숄즈가 발명한 자판을 눌러 입력하는 최초의 타자기(사진: The Buffalo History Museum 웹사이트 캡처).
크리스토퍼 L. 숄즈가 발명한 자판을 눌러 입력하는 최초의 타자기(사진: The Buffalo History Museum 웹사이트 캡처).

이후 발명된 전신타자기는 컴퓨터 키보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자판을 통해 입력한 모스 신호를 원거리에 보내고, 모스 신호를 받아 텍스트로 출력하는 전신타자기는 원거리 통신에 활용됐다. 이 통신을 컴퓨터에 전달할 신호를 입력하기 위해 오늘날의 키보드가 태어났다.

1981년 IBM이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선보였을 때, 이 컴퓨터를 위한 키보드는 83 키였다. 이후 1984년에 개발된 키보드는 키를 101개로 늘리고, 키를 6열로 배치해 편의성을 높였다.

1984년 개발된 IBM 모델 M 키보드이다. 101개의 키와 6열 배치는 오늘날 키보드 배열의 표준이 됐다(사진: IT World 코리아 웹사이트 캡처).
1984년 개발된 IBM 모델 M 키보드이다. 101개의 키와 6열 배치는 오늘날 키보드 배열의 표준이 됐다(사진: IT World 코리아 웹사이트 캡처).

커스텀 키보드의 시초는 한국이다. 현재 커스텀 키보드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재료인 알루미늄을 이용해 키보드를 처음으로 제작한 사람은 한국의 키보드 커뮤니티 ‘키보드 매니아’의 한 유저다. 원하는 키보드의 대략적인 설계를 마치면 커뮤니티에서 다른 유저들이 설계에 대해 조언하며 발전해나가는 형식이었다. 이후 설계자가 최종 설계를 마치면 생산 의뢰를 한다. 설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구매자를 모아 대금을 받은 후 생산에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현재는 커스텀 키보드 시장이 커져 개인이 부품 하나하나를 구하기가 쉬워졌다. 조립만 할 줄 알면 나만의 키보드를 만들 수 있다.

커스텀 키보드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순히 개인 만족이다. 컴퓨터를 자주 사용하는 직업이나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본인의 만족을 위해 커스텀 키보드를 마련한다. 키보드 사용자들에게 만족을 주는 요소는 타건음(키보드의 소리)과 타건감(자판을 누르는 느낌)이다. 커스텀 키보드의 타건음과 타건감은 일반 회사의 키보드보다 월등히 좋다. 부품을 직접 선택하기 때문에 본인 취향에 맞춘 타건음과 타건감을 만들 수 있다. 이 점이 키보드 사용자들을 커스텀 키보드의 세계로 이끈다.

커스텀 키보드를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키보드의 필수구성품을 구해야 한다. 필수구성품으로는 스위치, 키보드 기판, 하우징, 키캡, 스테빌라이저가 있다.

우선 스위치는 키보드의 타건음과 타건감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다. 어떤 스위치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타건음과 타건감이 달라진다. 기판은 스위치를 납땜하여 고정하는 부분으로, 키보드의 성능이 결정되는 부품이다. 현재는 납땜 필요 없이 탈부착으로 스위치를 바꿀 수 있는 ‘핫스왑(Hot Swap)' 방식이 인기다.

하우징은 키보드의 몸체다. 하우징이 키보드의 본질이기 때문에 디자인적으로나 타건감으로나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가장 인기가 많은 소재는 알루미늄이다. 키캡은 스위치 위에 부착되는 플라스틱 부품이다. 사용자의 손가락이 맞닿는 부분이자 키보드의 전체적인 디자인을 결정한다. 사용자들은 하우징 디자인에 맞춘 키캡을 많이 쓴다. 마지막으로 스테빌라이저는 길이가 긴 스페이스바나 엔터, 백스페이스 같은 키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사용되는 지지대다. 스위치만으로는 수평을 잡기 어려운 일이라 스테빌 라이저가 사용된다. 스테빌라이저는 철심이기 때문에 텅텅거리는 소리가 심한데, 이 소리를 잘 잡아야 완벽한 타건음과 타건감이 완성된다.

커스텀 키보드 조립에 필요한 부품을 보기 좋게 정리한 사진. 빨간색 원이 하우징, 검은색 원이 보강판, 초록색 원이 키캡, 파란색 원이 기판, 보라색 원이 스위치, 노란색 원이 스테빌라이저다(사진: Quasar Zone 웹사이트 캡처).
커스텀 키보드 조립에 필요한 부품을 보기 좋게 정리한 사진. 빨간색 원이 하우징, 검은색 원이 보강판, 초록색 원이 키캡, 파란색 원이 기판, 보라색 원이 스위치, 노란색 원이 스테빌라이저다(사진: Quasar Zone 웹사이트 캡처).

커스텀 키보드를 조립하는 과정은 단순하다. 하우징 위에 기판을 올리고 스위치를 끼운 뒤 키캡을 부착하면 끝이다. 초보자들이 고생하는 점은 하우징과 기판 사이에 깔끔한 타건음을 위해 흡음재를 하우징 크기에 맞춰 자른 후 넣는다든지, 또 그 위에 보강판을 올려 타건감을 단단하게 잡아준다든지, 스위치의 원활한 입력을 위해 윤활유를 작은 붓에 발라 스위치에 한땀한땀 발라준다든지, 스테빌라이저의 텅텅거리는 소리를 잡기 위해 철심의 수평을 맞추고 마찬가지로 윤활을 하는 등의 조립 중 디테일이다. 또, 부품의 대부분을 국내가 아닌 외국에서 해외직구로 구해야 한다는 점도 복잡한 일이다.

2020년에 들어 많은 중국 회사가 커스텀 키보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현재는 최고급 퀄리티의 부품들을 자랑하는 중국 브랜드가 흔하다. 또, 조립을 귀찮아하거나 그 과정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회사에서 부품들을 모아 조립해 완제품을 팔기 시작했다. 그 덕에 커스텀 키보드의 진입장벽이 낮아지게 됐다. IT 유튜브 채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커스텀 키보드 완제품이다.

조립 과정 중 기판을 부숴버려서 커스텀 키보드 조립을 포기했다. 일반 회사의 게이밍 키보드를 사용하다가 커스텀 키보드 완제품을 하나 구매하게 됐다. 커스텀 키보드를 사용한 지 어느덧 8개월이 넘었다. 도각도각거리는 소리를 뽐내는 키보드다. 듣고 있는 소리가 질리면 핫스왑 기판을 이용해 스위치를 바꿔 끼워 다른 소리를 즐길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타건감과 타건음을 바꿀 수 있는 키보드다.

커스텀 키보드를 8개월 동안 사용하며 느낀 장점은 지루함이 없다는 것이다. 키보드를 치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키보드를 사용하는 그 어떤 작업도 재밌게 할 수 있다. 보기만 해도 예쁘다. 또, 커스텀 키보드 브랜드가 많아지게 되면서 저렴한 가격에도 뛰어난 성능의 키보드를 구매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단점은 완전한 나만의 커스텀 키보드를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이다. 말로는 단순한 조립 과정이지만 초보자들에겐 어렵고, 디테일한 부분도 시간과 집중을 많이 필요로 한다. 게다가 부품도 해외직구로 구해야 한다.

엔터키 자판 키캡을 흰색에서 파란색 키캡으로 교체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최동현).
엔터키 자판 키캡을 흰색에서 파란색 키캡으로 교체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최동현).

알리 익스프레스 같은 중국 직구 사이트에서 커스텀 키보드의 부품들이나 완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한정적이긴 하나 한국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완제품이나 부품을 구할 수 있다. 다양한 키보드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수집한 뒤 본인의 취향에 맞게 구매해 조립하거나 사용하면 된다.

커스텀 키보드를 애용하는 이주영(부산시 중구, 23) 씨는 여러 개의 일반 게이밍 키보드와 하나의 커스텀 키보드를 가지고 있다. 이주영 씨는 “이제야 커스텀 키보드를 알게 돼 아쉽다. 일찍 알았다면 돈을 아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일반 게이밍 키보드에 많은 돈을 쓴 걸 후회했다. 이 씨는 “알루미늄 하우징은 비싸면 몇십 만 원이나 한다. 무게도 3kg이나 돼 되게 무겁다”며 “오직 타건감과 타건음만 바라보고 알루미늄 하우징을 구매했다. 전혀 아깝지 않고 단점을 장점이 다 덮어버린다”고 말했다. 이 씨는 “앞으로 각각 다른 매력을 가진 여러 개의 커스텀 키보드를 마련하고 싶다”며 소소한 목표를 밝혔다.

일반 키보드 회사의 제품들도 좋지만, 저렴한 가격에 확실히 다른 타건감과 타건음을 느끼고 싶다면 커스텀 키보드를 알아보는 것도 좋다. 유튜브나 여러 키보드 커뮤니티에 조립 방법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여러 정보를 수집해 내 취향에 딱 맞춘,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키보드를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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