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철 칼럼] 디지털 디톡스 시대③: 소셜미디어를 떠나라, 책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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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철 칼럼] 디지털 디톡스 시대③: 소셜미디어를 떠나라, 책을 읽어라
  • 칼럼니스트 정태철
  • 승인 2024.04.2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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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회로는 후천적...종이책 읽어야 깊은 사색과 타인 공감력 커져
슬기로운 디지털 생활, 책읽기와 디지털 기기 ‘양손잡이 읽기’로

*편집자주-‘디지털 디톡스 시대①: 우리는 소셜미디어와 휴대폰의 노예인가?(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644)’와 ‘디지털 디톡스 시대②: 소셜미디어 영업방식은 전형적 감시 자본주의(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645)’에서 이어집니다.

인간 정신, 행동, 인간관계에 위협적인 소셜미디어와 휴대폰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요한 하리는 그의 저서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휴대폰을 켜놓고 일하면 작업 능률이 20∼30% 감소하며, 이런 방식의 멀티태스킹은 실수가 잦고, 창의력을 감소시키며, 기억력을 위축한다는 관련 학자들의 각종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하리는 이를 근거로 현대인에게 1)소셜미디어 끊어라, 2)TV 시청을 중단하라, 3)신문을 구독하라, 4)독서하라는 대응책을 그의 저서에서 강추했다. 이는 TV/휴대폰/PC 등 스크린, 즉 모니터를 가진 디지털 미디어를 가급적 멀리하고 신문과 책 등 아날로그 미디어를 많이 접하라는 권고로 해석된다.

페이스북에서 자기 과시적인 자랑과 세상에 대한 일방적인 불만을 토로하는 친구와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리도 페이스북 친구와의 우정은 ‘가짜 우정’에 불과하다고 했다. 드디어, 한국에서도 사람들이 각종 소셜미디어의 가짜 우정, 가짜뉴스, 광고, 저질 콘텐츠 범람에 싫증을 느껴서 소셜미디어와 이별을 고하고 있다. 플랫폼이 쓰레기로 가득 차는 저질화 현상을 ‘엔쉬티피케이션(enshittification)’이라고 한다. 이 단어는 소셜미디어가 배설물을 뜻하는 ‘shit’로 변해간다는 의미이며, 우리말로는 열등화(劣等化) 또는 열화(劣化)라고 한다.

소셜미디어의 엔쉬티피케이션으로 인해서 2024년 들어 한국의 페이스북 월간 활성 사용자(MAU, Montly Activity User)가 100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2023년 1월 페이스북의 MAU는 1155만 2420명이었는데, 그게 1년 뒤인 올 1월에 991만 3855명으로 164만 명이 활동을 중지했으며, 2020년 페이스북 MAU인 1478만 명에 비하면 ⅔ 수준으로 축소된 것이다. 또한 페이스북의 MAU는 유튜브의 MAU가 4500만 명 이상인 것에 비해 매우 적은 편이다.

페이스북에 ‘나는 이렇게 산다’는 식의 글을 올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행위에 대해,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이게 뭐하는 짓이지?’라는 회의가 치밀어 미련 없이 단칼에 페이스북과 손절했다. 그게 한 5, 6년 전의 일이다. 인스타그램은 연구와 강의 자료용으로 계정만 개설했을 뿐, 단 한 장의 사진을 올린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올릴 생각이 전혀 없다. 나의 이런 반(反) 소셜미디어적 행동은 소셜미디어 기업의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반감(이 점은 솔직히 하리의 책을 읽은 최근에야 알게 됐다)이라기보다는 소셜미디어에 글과 이미지를 올려 남에게 자랑하는 행위가 도무지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 유튜브를 열심히 시청한 적이 있었다. 화장실이나 지하철 등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데는 유튜브 만한 게 없었다. 연구나 강의 차원에서 도움을 얻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먹방 유튜브나 극성 정치 유튜브가 생기면서, 이들이 자극적인 썸네일과 콘텐츠로 구독자들을 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나마 점잖고 학구적인 유튜버들의 콘텐츠마저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가 없어지고 통찰력이 약해지면서 유튜브 자체에 회의가 생겼다. 최근 어떤 언론은 수십만 구독자와 조회수를 유지하려면 유튜버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기획, 각본, 촬영, 편집에 투자한다고 보도했다. 먹방 유튜버로 유명한 어느 농구 감독이 자신이 맡고 있는 고등학교 농구팀 부실 교육 여부로 조사 대상이 됐다는 뉴스도 떴다. 그렇게들 바쁘니, 아무리 중량감 있는 유튜버라 해도 독서할 시간도 없을 테고, 따라서 그 내용이 얄팍해지면서, 세상을 보는 안목이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보는 행위는 이미 그만둔 지 수 년이 됐다.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유튜브를 찾아 본 뒤 그냥 미련 없이 나간다.

요새 네이버에서 음식점이든 물품이든 검색하면 돈 많이 낸 업소나 회사가 상단에 올라온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사람들이 네이버 검색을 점차 꺼리고 좀 더 광고에 물들지 않은 검색 결과를 제시하는 대안을 찾아 이동하고 있다. 그래서 네이버 검색 점유율이 70∼80%를 유지하다가 2023년부터는 60% 미만으로 추락 중이라고 한다. IT 기업 전략에 휘둘릴 아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기기 중독 현상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한국에서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디지털 단식’, ‘디지털 디톡스(해독)’ 등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휴대폰 갖고 못 들어가는 카페가 있는가 하면, 카운터에 휴대폰을 맡기고 업소를 나가기 전까지 절대로 이용할 수 없는 찜질방도 등장했다는 뉴스도 떴다. ‘금욕상자’라는 상품도 출시됐다. 이 상자에 시간을 설정하고 휴대폰을 넣으면, 그 누구도 설정 시간 전에는 열 수 없게 되어 있는 상품이라고 한다. 휴대폰 화면을 흑백 모드로 전환해서 화려한 영상의 재미를 줄여보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인 '스몸비' 방지 앱도 등장했다. '스크린 타임(아이폰 용)'이나 디지털 웰빙(안드로이드 용)' 등의 기본 앱도 있고, '터닝'이란 유료 앱도 있다. 이런 앱들은 사전에 설정한 사용 시간이 지나면 인스타그램 등 중독성 강한 앱을 강제 종료시키고, 다시 사용하려면 "이 앱(특정 앱 사용 억제용 앱)을 깔게 된 동기를 잊지 마세요" 등의 문장을 받아 쓰거나, 일정 시간이 지나야만 다시 사용이 가능하게 한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형태로 틱톡 등 특정 앱 사용을 강제로 제한하는 앱인 '포레스트' 등도 출시됐다. 아예 전화 통화나 문자 메시지 수신 등 최소한의 기능만 갖춘 저사양 덤폰(dumb phone)인 피처폰이나 라이트폰 등을 찾는 사람도 늘었다고 한다. 아직도 소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요즘 지하철에서 휴대폰 대신 책을 읽는 사람들이 과거보다는 더 자주 눈에 뜨인다. 배달기사 등 업무상 휴대폰 알림에 즉각 응답해야 하는 직업군은 어쩔 수 없지만, 디지털 디톡스 시대에 휴대폰 이용을 화소화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는 건 고무적인 현상이다.

사람들을 휴대폰으로부터 해방하려면 주변에 진짜 친구, 진짜 음식점, 진짜 자연이 있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독일에서는 초등학생들에게 숲에서 야외 학습을 하는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있다고 한다. 숲이라는 자연 속에서 교사가 각종 현장 과제를 내는데, 학생들은 과제 해결 과정에서 휴대폰을 보지 않는 대신에 식물을 만지고 흙냄새를 맡게 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디지털 디톡스의 최종, 최대, 최적 대책은 역시 독서다.

미국 평론가이며 저술가인 데이비드 덴비는 디지털 미디어의 범람이 인류 정신을 불안하게 흔들고 있다고 파악하고 그 대안으로 고전 인문서 읽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덴비는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 시리즈를 출간해서 한국에도 널리 소개되어 있다. 그는 전 세계 모두가 디지털 미디어 때문에 독서 부족 상태에 빠졌고, 생각이 짧아 편견이 득세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결국 미디어 홍수가 독서의 적이라고 했다.

독서 방법 중 요새는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리는 전자책도 결국은 휴대폰이나 PC ‘스크린’을 보는 것이므로 몰입 정도, 기억 정도, 공감력, 생각의 깊이가 역시 종이책보다 열등하다고 했다. 하리는 스크린 읽기에서는 장문의 글을 깊게 사색하며 읽을 수 있는 ‘인지적 지구력’, ‘인지적 참을성’을 갖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종이책 깊이 읽기는 우리 인간의 뇌 회로를 깊은 사색과 타인에 대한 공감력을 높인다(사진: pixabay.com, 무료 이미지).
종이책 깊이 읽기는 우리 인간의 뇌 회로를 깊은 사색과 타인에 대한 공감력을 높인다(사진: pixabay.com, 무료 이미지).

그래서 인류는 다시 종이책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문해력 연구자인 매리언 울프다. 그녀는 ‘다시, 책으로(Reader, Come Home)’란 책을 내고 종이책을 다시 읽자고 외친다.

울프는 하리처럼 스크린으로 글을 읽는 것을 ‘훑어 읽기’, ‘지그재그 방식 읽기’라고 했다. 그래서 울프는 책은 종이책으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프는 사람의 뇌는 기본적인 기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지만, 전두엽, 측두엽, 후두엽, 소뇌, 대뇌 등 복잡한 뇌의 신경 세포들이 어떻게 작동하고 활성화되는지는 사용자의 사용 방식에 따라서 ‘후천적’으로 발전한다고 했다. 이를 학자들은 신경 세포의 가소성(可塑性, 뇌세포가 사용 방법에 따라서 다양하게 형성되고 한번 형성되면 변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생후 TV, 휴대폰, 컴퓨터 스크린으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뇌 회로가 빠른 속도로 정보를 받아들여 선별하는 방식으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크린 읽기로 형성된 뇌 회로는 지식의 파편화, 구체성 결여, 낮은 이해도, 시공간적 연결성 부족 등으로 특화된다고 한다. 특히, 스크린은 계속해서 움직이는 영상과 웅웅거리는 소리를 제공해서, 아이들의 감각이 공격과 도피에 필요한 호르몬에 과다 노출된다고 울프는 지적했다.

반면에, 생후부터 책 읽기에 익숙한 어린이는 생각, 기억, 성찰에 적합한 방향으로 뇌 신경회로가 후천적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울프는 책 읽기가 비판적 사고, 반성, 공감, 이해, 성찰을 극대화하고, ‘깊이 읽기’가 가능해서 아이의 뇌 회로는 사색과 관조에 적합한 상태로 발전한다고 했다. 특히, 울프는 2~5세 사이에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 부모와 아이와의 유대감이 깊어지고, 시선의 일치감이 생기며, 아이들은 호기심을 키우고, ‘뇌 읽기 회로’가 형성된다고 했다.

또한, 울프는 디지털 기기로 좁아진 아이들 삶의 경계를 책을 읽게 해서 넓혀주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아이들이 책 속의 이야기에서 평생의 교훈을 배우고, 그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생각과 행동을 보면서, 타인의 관점으로부터 자신의 가치, 선악, 도덕, 정의, 공감력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한 작은 시골 마을에는 어린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서점과, 그 옆에 당나귀와 염소 등을 기르는 농장이 같이 붙어 있다고 한다. 설립자는 그 지역 회사 경영자로 디지털 기기에 아이들이 나쁜 영향을 받을까 우려해서 오감으로 자연과 책을 같이 체험하도록 회사 부지에 이런 서점과 동물원이 하나가 되는 시설을 설립했다는 것이다. 이는 책으로 얻은 지식이 곧바로 자연에서 체험되어 지혜가 되는 최상의 교육 환경이 될 듯하다.

울프는 어린이들로부터 디지털 기기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고 했다. 다만, 독서를 먼저 가르치고, 디지털 기기는 그다음에 가르쳐서,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책과 디지털 기기를 서서히 모두 이해하게 하라고 했다. 울프는 이를 아날로그 종이책과 디지털 컴퓨터와 휴대폰을 모두 사용, 가능하게 하는 ‘양손잡이 읽기’라고 표현했다. 울프는 이를 마치 2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독서로 먼저 깊이 읽기의 뇌 회로를 활성화한 다음, 휴대폰과 컴퓨터의 디지털 정보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게 학습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디지털 세계를 슬기롭게 살게 될 것이다.

일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휴대폰을 금욕상자에 넣는 등 디지털 해독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은 건 다행이다. 그런데 가뜩이나 독서를 잘 안 하는 한국인들이 휴대폰을 멀리하고 종이책을 가까이할 날이 올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1970년대에는 일부 졸부들이 서점에 가서 서가를 가리키며 자기 집 응접실의 장식용으로 쓰기 위해 "여기부터 여기까지 책을 사겠다"고 했다는 실화가 전설처럼 나돌았다. 요새는 겉만 책 모양인 '모형 책'이 집안 인터리어 소품으로 잘 팔린다고 하니, 책에 대한 '지적(知的) 과시성 로망'은 아직도 한국인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국민 독서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년에 1권이라도 종이책을 읽은 한국 성인 비율은 2019년에 52.1%였다가 2021년에는 40.7%로, 2023년에는 처참하게도 32.3%로 하락했다. 지하철에서 졸지 않는 승객 99%가 휴대폰을 보는 나라에서 단지 승객 1%만이라도 책을 읽는 변화를 목격할 기적의 순간이 올까? 휴대폰/유튜브/TV/영화 애호가가 많고 책 읽는 사람이 적은 현상이 십수 년간 한국에서 지속되면, 정치적 편견, 물질주의, 정신적 산만함 등 아무래도 부정적인 일들이 더 많이 생길 듯하다. 

최근 경찰청은 작년 9월부터 올 3월 사이에 청소년 대상 사이버 도박 사범 2925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이중 1/3이 19세 미만 청소년이고, 12명의 중고생은 직접 도박사이트를 운영했으며, 9세 초등학생도 도박 혐의로 붙잡혔다고 한다. 한 중학생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기 반 남학생 14명 중 13명이 스마트폰으로 도박을 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바카라, 파워볼, 슬롯머신, 카지노 등의 경악스런 도박 종목은 다들 스마트폰 앱에서 아이들을 유혹하고 있다고 한다. 이 모든 끔찍스런 일들이 청소년들도 스마트폰으로 아주 손쉽게 도박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벌어졌다.

스마트폰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K문화, K반도체, K전성기의 한국이 정점에 다다라 하강하는 일만 남았다는 외신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국인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고갈되어 간다는 말이다. 한국의 석학 이어령 교수는 디지털 기기는 정보는 많으나, 지식은 적고, 따라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지 못하지만, 책은 정보는 적으나(디지털 기기에 비해), 지식은 알차고, 따라서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준다고 했다. 바로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얻은 정보와 지식과 지혜의 한계가 한국에 어른거린다는 말이다. 이제 국가적 차원에서 스마트폰을 '가급적' 멀리하고 독서를 권장할 시점이 다가왔다. '디지털 디톡스 캠페인'과 더불어 '국민 독서 운동'이 필요하다. 언젠가 국가 차원, 혹은 대형 언론사 차원에서 국민 독서 운동이 벌어지지 않으면, 책도 안 읽으면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 독서와 담쌓고 아이 키우는 부모, 책 만진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는 정치인, 책에서 지혜를 구하지 못하는 기업인들이 한국을 망하게 할 것 같다.

국민 독서 운동에 국가적 정책으로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고, 얄팍한 수 싸움을 반성하고 국가의 수준 높은 미래 청사진을 위해 정치인이 솔선하고, 국민교육 차원에서  초중고등학교와 대학이 앞장서고, 범국민 캠페인 일환으로 언론이 주도하고, K경쟁력 혁신을 위해 기업이 참여해야 한다. 독서 빈곤국이란 '세계적 조롱'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민 독서 운동을 벌이고 책을 읽자.

1616년 4월 23일, 같은 해 같은 날에 셰익스피어와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데스가 서거했다. 유네스코는 두 문호의 동일 서거를 기리기 위해 4월 23일을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로 정했다. 그런 의미가 서린 책의 날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휴대폰으로 온라인 주문하지 말고 서점에 들러 매대를 돌면서 독서욕을 돋울 책이 눈에 뜨이는지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어느 날 친구에게서 나에게 전화가 왔다. 그랬더니 친구는 “너는 내 친구 중에서 가장 빨리 전화 받고 가장 빨리 카톡에 응답하는 친구”라고 말해주었다. 그런가? 친구의 이 말에 놀랐지만, 가만히 돌이켜 보니, 나는 전화벨이나 카톡 메시지가 울리면 순간적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빠르게 응답하는 게 친구든 제자든 나에게 연락한 사람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하리의 책 ‘도둑 맞은 집중력’, 넷플릭스의 다큐 ‘소셜 딜레마’, 울프의 ‘다시, 책으로’를 읽고, 나는 과감하게 몇 가지 미디어 이용 패턴을 혁명적으로 바꿨다.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 이메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등의 알림 설정을 모조리 껐다. 카톡은 가족이나 내가 애착을 갖는 한두 모임만 빼고 모든 단톡방 알림 기능을 과감하게 끊었다. 인스타그램의 알림 기능을 삭제하는 과업은 대단히 복잡하고 고난도 과정임을 이번에야 깨달았다. 그 기업의 비윤리적 마케팅 방식의 집요함을 다시금 실감했다.

그랬더니, 책을 읽든 컴퓨터 작업을 하든 옆에 휴대폰을 두기는 과거와 마찬가지지만, 이제 일체의 알림 소리가 다 사라졌다. 전화벨 소리는 그대로 놔두었는데, 어차피 은퇴 교수의 휴대폰은 하루 한 번도 안 울리는 날이 허다하니 별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1~2시간 간격으로 쉴 때에야 휴대폰 문자 메시지, 카톡 등을 체크한다. 나는 내 지인 중 가장 빠르게 휴대폰에 응답하는 친구가 더 이상 되고 싶지 않다. 친구야, 연락에 늦게 응답해도, 별일 있는 게 아니니 걱정 말거라.

이 칼럼 1편(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644)의 서두에 소개한 어느 외국 카툰의 조크에 의하면, 요즘 참새들은 황금 들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가 휴대폰을 안 보면, 사람이 아니고 진짜 허수아비로 확신하고, 맘놓고 논에 들어와 벼나락을 포식한다고 한다. 요즘 사람 치고 허구한 날 휴대폰을 안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어느 날, 휴대폰 대신 책을 읽으며 동네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내 어깨 위에 참새가 날아 올지도 모르겠다. 참새가 나를 허수아비로 알고 말이다. 그때 내가 참새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한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참새야, 한국이 바뀌었단다. 이제 한국에서는 휴대폰이 아니라 책을 봐야 허수아비가 아니고 진짜 사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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