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위에 지어진 마을,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에 가다
상태바
무덤 위에 지어진 마을,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에 가다
  • 취재기자 김재영
  • 승인 2023.12.29 10: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 듯 보기에는 평범한 달동네 같아 보이지만 부산시 서구 아미동 비석마을은 각종 괴담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많이 알려진 괴담으로는 묘지에 사용된 비석을 뽑아 다듬이질에 사용했더니 ‘이타이’(아프다) 라는 일본어가 돌에서 들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새 공사가 들어갈 때면 유독 비석마을에서만 인부가 귀신을 보았다는 말이 들리는 것이다. 유카타를 입은 일본인 여자 귀신의 목격담이나 밤중에 나막신 소리가 들린다는 소문도 그 중 하나다. 부산 서구 아미동 2가 231-178번지로 가면 공동묘지 위에 지어진 마을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부산항이 개항되며 부산의 서구, 중구에 정착했다. 1905년 부산 내에서 사망한 일본인의 무덤을 전관거류지 외곽지역인 아미산으로 이전하였다. 일본인들은 위령제를 지낸 후 제물을 올리는 풍습이 있었고 이곳 아미산 화장터에 음식물 찌꺼기를 먹기 위해 까치 떼가 울어 붙여진 이름이 까치고개이다.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광복절을 맞이한 후 일본인들은 서둘러 자신의 고향 일본으로 돌아갔다. 살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갔으니 남은 것은 수습하지 못하여 방치된 무덤뿐이었다. 그로부터 5년 후,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전쟁에 갈 곳 잃은 피난민들은 부산으로 향했다. 더 이상 집을 지을 공간이 부족해지자 공무원들은 아미동 19번지가 적힌 종이와 천막을 건네주었고 그들의 발걸음은 무덤가로 향했다.

건축자재 값이 비쌌기 때문에 천막만 얹고 집을 지을 만한 고물 자재들을 발견하면 덧대어 건축하였다. 일본에는 돌을 많이 사용한 장례 풍습이 있기에 공동묘지터에는 돌이 남아돌았다. 피난민들은 공동묘지의 비석을 뽑아 집의 옹벽이나 주춧돌로 사용하였다. 그것이 비석마을이라는 이름의 유래이다.

버스정류장 옆에 마을 안내 지도가 붙은 담벼락이 있다. 자칫 이 안내판을 보지 못하면 마을을 제대로 탐방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집과 집 사이 길이 많아 어느 위치에 비석이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선조의 비석을 찾아오는 일본인 유가족들을 배려하여 비석의 위치를 표기한 안내판이지만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사람 하나가 지나가기에도 비좁은 골목길과 가파른 계단, 그 양옆으로 주택이 빽빽하게 붙어있다. 산비탈 길이다 보니 화재가 발생하면 화재진압이 어렵기 때문에 마을 곳곳에 소화기가 비치되어 있다. 2~3평 크기의 묘석 위에 지어진 집이기에 내부에 화장실이 없어 주민들은 여전히 재래식 화장실이나 간이화장실을 이용한다. 어느 집은 비석을 빨간 고무대야의 받침대로 사용한다. 또 어떤 집은 담장으로 사용했던 비석 위에 그 자취를 숨기려 페인트칠을 해두었다.

부산 서구 아미동 비석마을 ‘묘지위 집’ 마당에 일본인 묘지에 사용된 비석이 놓여있다 (사진 : 취재기자 김재영)
부산 서구 아미동 비석마을 ‘묘지위 집’ 마당에 일본인 묘지에 사용된 비석이 놓여있다 (사진 : 취재기자 김재영).

마을 어귀에 있는 피란생활 박물관은 현재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2021년 9월 부산시 서구청이 당시 피란민들의 삶이 어떠하였는지 알리고자 집 아홉 채를 박물관으로 건립한 것이다. 아홉 채의 집 마다 비석마을의 시작, 고등학생의 방, 봉제 공간, 구멍가게, 이발소 등 각자의 주제가 있다.

마을 어귀에 있는 피란생활 박물관은 현재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2021년 9월 부산시 서구청이 당시 피란민들의 삶이 어떠하였는지 알리고자 집 아홉 채를 박물관으로 건립한 것이다. 아홉 채의 집 마다 비석마을의 시작, 고등학생의 방, 봉제 공간, 구멍가게, 이발소  등 각자의 주제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의 식사공간을 주제로 한 피란생활 박물관 내부 모습이다 (사진: 취재기자 김재영).

마을 인근에 위치한 아미산 대성사에는 추모공간이 있다. 매년 음력 7월 15일 타국 땅에서 귀국하지 못하는 일본인들을 위해 위령제를 지낸다. 주민들도 그들을 위해 추모를 했다. 마을주민 김희순(78) 할머니는 “(비석을) 계속 지나갈 때 밟아야 하니깐 제사까지는 아니어도 명절에 밥이라도 떠다놓지”라고 말했다.

1959년 당감동 화장장이 완공되며 아미동 화장장은 폐쇄되었고 1980년 도로확장공사 및 상가 건축으로 주거환경은 이전에 비하여 개선되었다. 2012년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을 실시하였으나 그럼에도 아미동의 인구는 감소하였고 날이 갈수록 쇠퇴하였다.

피란생활 박물관 중 비석마을의 역사 속 사진을 전시해둔 비석사진관의 외관 (사진: 취재기자 김재영)
피란생활 박물관 중 비석마을의 역사 속 사진을 전시해둔 비석사진관의 외관 (사진: 취재기자 김재영).

2019년 아미동 일대의 비석 전수조사를 마치고 2022년 1월 5일에 사전심의와 등록예고를 거쳐 첫 번째 부산시 등록문화재로 등재하였다. 아미동 비석마을이 첫 번째 문화 한국전쟁 당시의 모습이 보존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비석마을은 현재 역사보존형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보존과 관리가 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려면 먼저 문화재청 잠정목록 등재가 필요한데, 종합보존관리계획 수립이 조건이기 때문이다. 2022년 7월 부산 서구는 재개발로 인한 유산 훼손을 막고자 아미동2가 지구단위계획 수립 용역 착수보고회를 열었다. 아미동2가 32필지(1만7573㎡)를 대상으로 시비 1억9941만원을 투입해 2023년 3월 완료되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