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풍경 고스란히 남아있는 대구 도심의 작은 선교사 마을 ‘청라언덕’...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언덕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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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풍경 고스란히 남아있는 대구 도심의 작은 선교사 마을 ‘청라언덕’...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언덕에 서다
  • 취재기자 김민우
  • 승인 2023.12.1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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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의 역사가 담긴 대구 중구 청라언덕
선교사들의 발길로 시작된 대구의 서양화 흔적
대한민국 최초의 가곡 ‘동무생각’이 탄생한 장소
선교사들이 대구에서 서양 사과나무 심고 키워
최근 뉴진스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유행

대구시 중구 한 마을에 과거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이 있다. 바로 청라언덕이다. 대구 중구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대구의 중심지였다. 동성로 일대는 오래전부터 대구를 대표하고 있다. 청라언덕은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내에 자리 잡고 있는데, 한국에 선교지부 개설을 추진하려 했던 선교사 아담스와 존슨이 1899년 달성 서씨 문중으로부터 동산을 매입하여 병원, 교회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이 거주하는 주택들을 지어 한 마을이 되었다.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들은 1890년대 말 선교를 위해 한국으로 들어왔다. 1891년 베어드 선교사가 부산으로 입국해 경상도 북부지역을 둘러보다 대구를 선교 기지로 삼았다. 당시 대구는 인구도 많고, 교통이 편리하며, 경상감영이 위치한 행정의 중심지였다. 또, 외국인들이 땅을 구매하는데 제약이 없는 곳이기도 했다. 그는 대구가 중요한 지역임을 알았기에 손아래 처남인 아담스 선교사에게 대구 선교를 맡기게 된다.

이후 다양한 선교사들이 대구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그 중 존슨 선교사는 대구에 최초의 서양식 병원을 지어 의료 사업을 시작하고자 했다. 의료 사업을 하기 위해 미국에서 의료 기기를 사들였는데, 태평양을 건너 일본과 부산을 지나, 낙동강을 타고 올라와 대구 서쪽의 사문진나루터를 통해 의료기기를 가져왔다. 의료기기를 가져오는 데만 1년이 걸렸다.

1899년, 드디어 현 동산의료원 전신인 대구의 최초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이 지어졌다. 제중원엔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렸다. 1910년 건강이 나빠진 존슨 선교사를 대신해 대구 의료사업 발전에 헌신하던 선교사 플레처를 2대 원장으로 부임해 제중원을 ‘동산기독병원’으로 바꾼 뒤 대구·경북의 환자들을 돌보는 데 힘을 쏟았다.

동산의료원 구관 현관과 연탄가스 중독환자를 치료했던 고압산소탱크가 청라언덕에 전시돼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우).
동산의료원 구관 현관과 연탄가스 중독환자를 치료했던 고압산소탱크가 청라언덕에 전시돼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우).

2010년 대구 도시철도 3호선 공사로 인해 동산병원의 입구를 허물어야 했는데, 현관을 보존하기 위해 현관을 청라언덕으로 이전하였다. 입구 안에는 최초로 국내에서 생산된 고압산소탱크가 전시되어 있다. 1950년 대구 시민들은 연탄으로 겨울을 지내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 중반 대구의 한 공장에서 만들어져 동산병원에서 사용된 고압산소탱크는 당시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많은 환자를 살려냈다. 이후 수명이 다 된 최초의 고압산소치료기는 동산병원 입구와 함께 전시되어 있다. 대구의 건축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대구동산병원 구관은 대구 등록문화제 제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라언덕 위쪽에서 바라본 제일교회(왼쪽)와 계산성당(오른쪽)의 모습이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우).
청라언덕 위쪽에서 바라본 제일교회(왼쪽)와 계산성당(오른쪽)의 모습이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우).

청라언덕의 위쪽으로 올라가면 대구·경북 최초의 기독교 교회인 제일교회와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 번째로 세워진 서양식 건물인 계산성당을 내려다볼 수 있다. 청라언덕의 서쪽은 선교사들이 동산을 매입하기 전, 처음으로 선교기지를 잡으려고 했던 곳으로 교육 선교와 사업을 통해 지역 사회에 기여해 왔다. 이후 교세가 커지면서 지금의 청라언덕으로 위치를 이동한 것.

대구시 중구 청라언덕에 있는 선교사 스윗스 주택의 모습이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우).
대구시 중구 청라언덕에 있는 선교사 스윗스 주택의 모습이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우).

청라언덕에는 선교사 주택 세 채만이 남아있다. 그곳에서 살던 선교사들의 이름을 붙여 ‘스윗스주택’, ‘블레어주택’, ‘잼니스주택’으로 불린다. 대구에 자리 잡은 선교사들은 선교뿐만 아니라 근대 의료 기술과 교육을 전파했다. 현재는 각각 선교박물관, 의료박물관 교육·역사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낡아 복원공사를 하느라 내부 구경은 할 수 없는 상태이다.

당시 한국은 붉은 벽돌을 굽는 기술이 없었다. 그러나 이 주택을 짓기 위해 일본 선교사들이 중국의 벽돌 기술자들을 데리고 와서 벽돌을 구워 교회를 짓고, 학교를 짓고, 성당을 지었다. 당시 이곳 주변에는 성벽이 세워져 있었는데, 출입 왕래가 자유롭지 못해 성벽을 허물었다. 그래서 건물을 지을 때 성벽의 잔해를 사용하기도 했다.

청라언덕에 대한민국 최초의 가곡 ‘동무생각’의 탄생 과정이 비석에 담겨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우).
청라언덕에 대한민국 최초의 가곡 ‘동무생각’의 탄생 과정이 비석에 담겨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우).

대한민국 최초의 가곡 박태준의 ‘동무생각’

근대음악의 선구자 박태준 선생이 마산 창신학교에 교사로 있던 시절, 학창 시절 신명여고의 한 여학생을 짝사랑한 자신의 연애사를 시인 이은상 선생에게 들려줬다. 그 얘기를 듣고 이은상 선생은 시를 한 편 써내렸는데, 그 가사가 동무생각 가사이다. 노랫말처럼 바로 이곳이 푸른 담쟁이넝쿨이 휘감고 있던 청라언덕이다. 백합은 자신이 짝사랑했던 그 여학생을 빗댄 것이다.

1919년도 3월 1일에 3·1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을 때, 대구는 일제의 감시가 심해 3월 8일 대구의 젊은 사람들과 계성학교, 신명학교 학생들을 주축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청라언덕의 길을 따라 만세운동을 펼쳤던 곳을 90계단으로 불리는데, 이곳의 소나무와 담쟁이넝쿨이 울창하여 일본 경찰들의 감시를 피하기 좋은 곳이었다. 청라언덕을 따라 시내로 들어가며 대구 시민들이 만세운동을 했으며, 대구시는 이곳을 ‘대구 3·1운동길’로 지정하여 계단 곳곳에 당시 모습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대구시 중구 청라언덕에 서양나무 3세목 3그루가 심어져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우).
대구시 중구 청라언덕에 서양나무 3세목 3그루가 심어져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우).

선교사들이 대구 최초의 서양나무를 키워내다

존슨 선교사는 대구 사람들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작물이나 과일나무들을 보급하기 위해 미국에서 사과나무 72그루를 들여와 키우기 시작했다. 그는 대구 최초의 서양 사과 나무를 이 자리에서 키워내 주변으로 보급했다. 덕분에 대구는 한때 ‘사과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했다. 2세목은 원조 사과나무의 씨앗이 발아해 자란 것으로 수명이 80여 년이며, 관리되어 오다 고사하여 그루터기만 남아있다. 현재는 3세목을 심어 대구 사과의 옛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청라언덕 은혜정원에 14명의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안장되어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우)
청라언덕 은혜정원에 14명의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안장되어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우)

혼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한 선교사들, 은혜정원에 잠들다

언덕 끝자락에는 묘지들이 안장돼 있다. 대구·경북 지역에 살다가 돌아간 선교사나 그 가족들이 안장되어 있다. 20대에 순교한 선교사뿐만 아니라 태어난 지 열흘 만에 숨을 거둔 선교사 딸의 무덤도 이곳에 잠들어 있다. 초대 병원장인 마펫 선교사는 임기를 마친 뒤 미국에 돌아갔지만, 자신이 죽은 뒤 동산병원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겨 유해의 일부를 가져와 이곳에 안장되어 있다. 은혜정원 앞 비석에 이런 말이 적혀있다. “우리가 어둡고 가난할 때 태평양 건너 머나먼 이국에 와서 배척과 박해를 무릅쓰고 혼신의 힘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인술을 베풀다가 삶을 마감한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여기에 고이 잠들어 있다.”

유튜브 뉴진스 ‘Ditto’ 뮤직비디오에 올라온 영상으로 청라언덕을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다(사진: 유튜브 HYBE LABELS 캡처).
유튜브 뉴진스 ‘Ditto’ 뮤직비디오에 올라온 영상으로 청라언덕을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다(사진: 유튜브 HYBE LABELS 캡처).

걸그룹 뉴진스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화제

청라언덕은 최근 걸그룹 뉴진스 뮤직비디오 ‘Ditto’의 촬영지로 소개되며 주목받기도 했다. 청라언덕에 방문한 관광객 김도근(23, 대구시 수성구) 씨는 “인터넷에서 뉴진스가 촬영한 곳이라고 해서 유명해서 와봤다”면서 “동성로는 자주 오는데 바로 옆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청라언덕은 선교사주택을 비롯해 대구 최초로 서양 의술을 펼친 제중원, 사과나무, 교회 등 대구 근대골목의 여행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대구의 기독교가 지역사회에 뿌리내려 정착하고, 지금의 동산의료원이 사회에 봉사하면서 성장한 중심지이기도 하다. 대구에 들른다면 옛 전경이 가득 담긴 청라언덕으로 가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서 만세운동의 드높은 함성을 따라 다시 한 번 민족정신을 가슴에 되새겨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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