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주소 도입 3년 됐으나, 아직도 "불편" 민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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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명주소 도입 3년 됐으나, 아직도 "불편" 민원 많다
  • 취재기자 천동민
  • 승인 2016.08.04 10: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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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서 셋 중 한 명이 "옛 지번 주소가 편리"...전문가들도 "한국 사정에 도로명주소 안 맞아" / 천동민 기자

경남 창원에 사는 고등학생 천모(18) 군은 도로명 주소를 보고 부산의 형 집을 찾아가다 큰 불편을 느꼈다. 그는 “부산 대연동에 형이 살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주소가 유엔로로 나와 제대로 찾아온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겨우 유엔로를 찾고 나서도 집이 일정하게 배치돼 있는 게 아니고,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건물번호로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도로명주소‘란 도로에는 도로명을 부여하고, 건물에는 도로에 따라 규칙적으로 건물번호를 부여해 도로명, 건물번호, 상세주소(동 · 층 · 호)로 표기하는 방식의 주소제도이다. 정부는 체계적으로 부여된 도로명주소를 사용하면 길 찾기가 수월해지고 화재나 범죄 등 긴급 상황에 관련 기관들이 신속히 대처할 수 있다고 홍보해 왔다. 또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도로명주소를 사용하면 관광객 유치나 물자 교류 등 국제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도로명주소가 도입된 지 2년 7개월이 지난 지금에도 도로명주소는 여전히 국민에게 불편을 주고 있다. 온라인 설문조사사이트 패널나우가 올 4월 만 14세 이상 남녀 1만 4,8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지번 주소방식이 더 편하다는 의견이 5,397건으로 조사대상자의 36.1%를 차지했다. 이처럼 국민에게 편의를 주기 위해 도입된 도로명주소를 여전히 국민들은 불편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도로명주소가 국민들에게 왜 이렇게 불편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을까? 

경성대 건설환경도시공학부 신광원 교수는 미국처럼 도로를 중심으로 시설물이 만들어진 구조가 아닌 우리나라의 도로 구조를 도로명주소 정착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았다. 그는 “우리나라는 산도 많은 데다 도로를 기준으로 건물이 세워진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도로명주소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잘 정비된 계획도시는 도로명주소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오래 전에 형성된 구불구불한 구 도시까지도 도로명주소 사용이 적합한지는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도로명주소의 취지가 쉽고 빠르게 길을 찾는다는 것인데, 구도심에서 도로명으로 빨리 주소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어불성설이고 수요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왼쪽은 산이 많고 건물이 규칙적이지 못한 부산 지도이며, 오른쪽은 바둑판처럼 정비가 잘 된 미국 워싱턴DC의 지도(사진: 인터넷 지도 화면 캡쳐)

미국 LA에 거주 중인 교포 안모(25) 씨도 도로명주소를 사용하는 미국과 한국은 도로 구조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미국은 집들이 블록 같은 도로를 중심으로 나열되어 있어 도로명주소가 체계적이다. 예를 들어 LA다저스 스타디움의 주소는 ‘1000 Vin Scully Ave, Los Angeles, CA 90012‘인데, 1000은 번지수, Vin Scully Ave는 도로명, 그 다음 시명, 주명, 우편번호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그냥 LA의 빈스컬리 도로 1000번지에 다저스 스타디움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는 애초에 ‘동‘이라는 개념도 없다. 하지만 한국은 ’부산시 남구 수영로 325번지 12 105동 1700호(대연3동 푸르지오 아파트)‘ 로 되어 있으니 수영로에서 325번지를 찾고, 그곳에서 12번 건물을 찾아야 하며, 그 다음 아파트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 괄호 안의 아파트 이름과 동이 있는데 이는 도로명주소와 과거 주소와의 혼동을 줄이기 위한 배려지만 오히려 더 복잡하고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도시공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 유모(24, 부산 진구) 씨는 도로명주소가 현재 한국의 문화에 맞지 않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그녀는 “대부분 국가에서 도로명주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도 도로명주소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처럼 건물이 밀집해있는 길 구조에 도로명주소를 사용하는 것은 불편을 가져올 뿐이다. 선진국들을 무조건 따라 해야 한다는 것은 도로명주소 사용의 적절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2014년부터 21만여 개의 도로 명판을 추가로 설치하고 건물번호판도 14만여 개를 부착해 길이 꺾여 잘 보이지 않는 곳이나 복잡한 도로와 밀집된 건물 등 도로명주소를 알아도 찾기 어려운 장소에 대한 대책도 마련 중이다. 토지정보과 관계자는 “길이 복잡한 지역은 수시로 현장 점검을 나가고, 민원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상담원 모두 메뉴얼을 숙지하는 등 도로명주소 사용이 주는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며 도로명주소 사용 혼란에 따른 대응 계획을 밝혔다.

우리에게 익숙한 지번주소와 달리 길고 복잡한 표기법도 도로명주소의 정착을 더디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남 창원에서 14년째 개인 택배 기사로 일하고 있는 이모(48) 씨는 도로명 주소 때문에 자주 불편을 겪고 있다. 그는 “지번주소를 도로명주소로 변환해주는 시스템이 있는데, 나는 지번주소를 도로명주소로 변환하는 것이 아니라 도로명주소를 지번주소로 변환해서 택배에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남구에 사는 정모(62 )씨도 도로명주소가 아닌 지번 주소를 여전히 사용한다. 그는 “요즘 공문서나 서류에 지번주소가 아닌 도로명주소를 쓰라고 하는데, 도로명주소는 너무 복잡하고 길어서 보고 써야지 안 보면 절대 못쓴다. ‘대연동 874-1’번지라고 하면 끝나는 주소가 도로명주소로 바뀌면서 ‘유엔로 157번가길 54(대연동)으로 길어졌다. 굳이 이렇게 불편하게 사용해야 하는지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고 말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도로명 주소를 찾는 화면이다. 도로명 주소는 정확한 주소를 알지 않으면 찾기가 어렵다(사진: 인터넷 화면 캡쳐).

지번주소 병행 사용기간이 끝났지만 아직 지번주소를 사용하는 곳이 많은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행정자치부가 하루 평균 방문자 1,000명 이상인 기업과 공공기관 305곳의 웹사이트를 올해 조사한 결과, 11%가 넘는 사이트가 지번주소만 사용하고 있었다. 또한 24%는 지번주소 입력창을 우선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주소를 등록할 때도 도로명주소는 가입자의 인내심을 시험하게 한다. 기존의 지번 주소는 동만 검색하면 해당하는 모든 우편번호가 떠서 사용자가 쉽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도로명주소의 경우, 도를 선택한 후 도로명주소와 건물번호까지 상세히 입력해야 한다. 띄어쓰기가 잘못되면 결과가 아예 나오지 않기도 한다. 주부 김모(48, 경남 창원시)는 “인터넷으로 인테리어 용품을 주문하는데 도로명주소가 계속 없다고 떠서 결국 아들에게 부탁했다. 알고보니 ‘성호동5길 15’로 검색해야 하는데 ‘성호동 5길 15‘라고 띄어쓰기를 잘못해서 생긴 문제였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인터넷 사이트나 온라인 쇼핑몰 관리자는 주소를 입력할 때 지번 주소를 기본설정으로 해놓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에서 여성의류쇼핑몰을 운영 중인 최모(24, 경남 창원시) 씨는 “내가 다른 사이트에 가입할 때 도로명주소 등록에 불편함을 겪은 적이 많다. 그래서 나는 우리 사이트를 이용하는 고객들도 그런 불편함을 겪을 것 같아 애초에 지번 주소를 통해 주소를 등록할 수 있도록 설정해 두었다”고 말했다.

국민들의 지번주소 사용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도로명주소 활용 여부 및 검색 편의성 등 21개 항목을 점검해 ‘도로명주소 활용 우수기업’을 선정하고 있으며, 각 지자체는 지번주소 사용하는 곳을 신고하면 다양한 해택을 주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도로명주소 관계자는 “도로명주소 구축을 위해 다양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고, 불편사항 등을 신속하게 답변해주고 있다. 지번주소를 도로명주소로 쉽게 변환도 가능하다. 도로명주소 사용을 생활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로명주소로 인해 불편함을 겪은 사람들이 자신의 SNS에 쓴 글(사진: 인터넷 화면 캡쳐).

다가구주택이나 원룸의 각 가구 대부분에 상세주소가 부여되지 않는 점도 불편사항으로 거론된다. 다가구주택이나 원룸은 한 건물 안에 여러 가구가 있어 가구주가 상세주소를 직접 신청해야 하지만 이러한 절차가 잘 알려지지도 않고 번거로워서 상세주소를 신청을 하는 가구가 드물다. 

때문에 상세주소가 부여되지 않은 건물에서 우편물이나 택배 등이 분실되거나 건물 안의 위치를 찾기 어려워 응급상황에서 곤란을 겪는 등 문제가 많았다. 경남경찰청 소속 하모 경위는 “창원에는 주택가가 밀집해있는 지역이 많고 한 건물에 여러 가구가 거주하는 건물이 많다. 도로명주소로 찾아가려고 하니 쉽게 위치를 찾을 수 없을 뿐더러 건물을 찾아도 어디로 가야할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구 지번주소를 알려달라고 한 적도 여러 번 있다. 길 찾기가 쉽다고 하는데 오히려 더 복잡해진 것 같다”고 상세주소 부여의 문제점을 말했다.

이처럼 도로명주소를 쓰기 어렵다는 국민들의 불만이 잇따르자 정부는 종합적인 대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도로명주소 안내시스템(www.juso.go.kr)을 통해 국민에게 생소한 도로명주소표기법을 알려주고 주소전환서비스를 통해 쉽게 지번 주소를 도로명주소로 바꿔주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또 주소 사용이 많은 민간기업 웹사이트에 맞춤형 기술을 지원함과 동시에 웹사이트를 제작부터 도로명주소를 정확히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적용하기로 했다.

행정자치부는 한국지역정보개발원과 함께 '도로명주소 활용지원반'도 구성할 계획이다. 안내시스템 관계자는 “처음 도로명주소 표기를 보면 복잡해 보일 수도 있다. 현 도로명주소 표기는 도로명/건물번호/상세주소/(참고항목)로 하는데 원리를 알고 나면 구 지번주소를 사용할 때보다 훨씬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세주소 정착을 위한 방안도 마련했다. 도로명주소 안내시스템(www.juso.go.kr)의 도움센터를 통해 상세주소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건물주에게 상세주소 신청에 대한 안내문 및 신청서를 발송하고  상세주소 집중 신청기간을 지정하고 있다. 상세주소 신청 시 우편함을 설치해 주는 등 해택을 줌으로써 상세주소 등록을 유도하고 있다. 상세 주소를 직권으로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부산광역시청 토지정보과 관계자는 “지번 주소가 오랫동안 사용되어 아직 우리에게 익숙한 건 사실이지만, 도로명주소를 알고 보면 구 지번주소보다 길을 찾기도 쉽고 편리하게 구성이 되어있다. 계속 사용하다 보면 지번 주소처럼 익숙해질 테니까 머리 속에 각인될 때까지 많이 사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부는 도로명주소 정착을 위해 포스터제작이나 서포터즈를 모집해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사진 : 도로명주소 안내시스템 홈페이지).

그러나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로명주소가 완전히 정착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도로명주소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될 수 있도록 불편사항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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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거 2017-02-24 21:20:10
기사 정말 공감가네요
지번 주소 제도가 큰 불편도 없었는데..전시행정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