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 칼럼] 순천만 전봇대 282개를 뽑아낸 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순천의 창조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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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 순천만 전봇대 282개를 뽑아낸 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순천의 창조와 변화
  • 편집국장 송문석
  • 승인 2023.05.2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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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한 하늘을 이고 있는 땅, 순천(順天). 인구 27만 명 남짓 되는 지방 소도시인 이곳에 주말과 휴일이면 북새통이 벌어진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구경하러 국내외에서 몰려드는 관광객 때문이다.

북새통은 숫자로 확인된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지난 4월 1일 개막한 지 40일만인 지난 10일 관람객 3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오는 10월 31일까지 7개월간 대장정에 들어갔는데 목표 관람객 800만 명의 37.5%를 한달 남짓 만에 넘어섰으니 이런 속도라면 2000만 명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순천국가정원박람회(사진: 취재기자 송문석).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에서 관광객들이 탐방로를 걸으며 추억을 쌓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송문석).

정원박람회장 주차장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대형버스와 승용차들로 가득 차 있다. 마을 노인회, 경로당, 부녀회에서 관광온 듯싶은 울긋불긋한 옷차림의 노인들은 꽃사태가 벌어진 정원박람회장에서 깊게 팬 얼굴 주름 사이에 모처럼 시름을 잊은 듯 환하게 웃음꽃이 피어난다. 병아리같은 어린이집 꼬맹이들의 재잘거리는 웃음소리는 꽃봉오리와 어울려 무엇이 꽃이고 아이인지 구별이 힘들다.

누가 지어냈는지는 몰라도 ‘여수 가서 돈 자랑 하지 말고, 순천 가서 인물 자랑 하지 말라’로 그나마 자존심을 내세워 온 순천이 최근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순천만 습지와 갈대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 ‘이렇다할 평야가 있는 것도 아닌’ ‘그럭저럭’한 도시이고, ‘수심이 얕아 바다를 몇백 리나 밖으로 나가야만 비로소 수평선이 보이는 진짜 바다다운 바다가 나오는 곳’이 소설 속 ‘무진’으로 묘사된 순천이다. 그래서 순천만 갈대 습지가 펼쳐지고 ‘밤 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삥 둘러싸고 있는’ 자연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다.

순천이 정원이라는 테마로 도시 브랜드를 창출한 것은 2009년으로 올라간다. 당시 노관규(62) 순천시장은 순천만 농경지 곳곳에 박혀 있는 전봇대와 전선이 이곳을 찾아오는 흑두루미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선이라는 보고를 듣는다. 그는 과감하게 농경지 주변 전봇대 282개를 뽑아냈다. 또 300억 원을 들여 생태형 탐방로를 설치하고 주차장을 생태공원으로 바꾸었다. 철새와 갯벌 보호를 위해 전봇대를 뽑고 주차장을 없앤다는 뉴스는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반대가 없을 리 없었다.

그러나 변화된 환경은 흑두루미가 먼저 알아차렸다. 1999년 80마리가 월동하더니 전봇대가 사라진 2014년엔 1005마리까지 늘어났다. 2020년엔 3132마리로 불어났고 지난해에는 9851마리로 급증했다. 전 세계 흑두루미 1만8000여 마리 가운데 60% 이상이 매년 순천만을 찾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파악하고 있다.

2013년 국내 최초로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릴 때만 해도 “정원도 박람회를 하나”라는 반신반의에다 실제로 “꽃과 나무만 있어서 단조롭다”는 평가도 나왔다. 심지어 “정원박람회를 하면 순천이 망한다”는 극언도 퍼부었다. 그러나 2015년 순천만의 생태적 가치와 정원을 활용한 부가가치 창출을 인정받아 국내 제1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되면서 순천은 전국 명승지 중 꼭 한번은 가봐야 할 곳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순천국가정원박람회(사진: 취재기자 송문석).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에 조성된 순천호수정원. 바닥이 파란색으로 칠해진 나무데크는 순천을 흐르는 동천을, 6개 언덕은 순천을 둘러싼 산을 형상화했다. 21세기 최고의 건축이론가이자 지형디자이너, 조경가로 평가받는 찰스 젱스의 디자인이다(사진: 취재기자 송문석).

올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자연생태탐방지인 순천만습지 △2013년 정원박람회가 열린 순천만국가정원(박람회장) △순천도심권(도심정원) 등 크게 3권역에서 치러지고 있다. 전체 규모만 5454㎡(165만 평)에 달한다. 박람회장만도 193만㎡(58만5000평)에 달해 다리 힘이 짱짱하지 않으면 전체를 모두 돌아보는 것은 힘겹다.

천혜의 자연자원을 보호하면서 인간과 공존하는 길을 찾은 순천의 성공사례는 롤모델이 될만하다. 순천만국가정원에 이어 울산 태화강 지방공원이 2019년 제2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게 대표적이다.

올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주제는 ‘정원에 삽니다’ 이다. 도시 전체를 정원으로 만드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집과 집 사이, 골목과 거리, 사무실과 학교, 베란다와 창문 등 곳곳에 작은 정원을 만드는 ‘정원도시 순천’을 꿈꾸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큰 낙동강이 흐르고, 시원한 바다가 도시를 에워싸고, 금정산 백양산 장산 등 높은 산이 울을 삼고 있는 도시, 부산. 무엇보다 동양최대 철새도래지인 을숙도는 1966년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될 만큼 생태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곳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이곳을 분뇨처리장으로 활용하고, 생활쓰레기 매립장을 만들어 무려 500여만 t의 쓰레기를 묻었다. 환경을 해치는 전봇대를 뽑는 대신 개발과 활용에만 눈독을 들였던 셈이다.

자연환경은 도시브랜드를 바꿀 만큼 소중한 자산이다. 부산시가 이제야 눈을 뜨는 것 같다. 낙동강 하구인 을숙도 일원 304만㎡와 맥도생태공원 258만㎡ 등 610만㎡를 국토교통부에 제1호 국가도시공원으로 지정 신청할 것이라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을숙도 철새를 보호하자고 하면 개발론자들은 “철새가 밥 먹여주나”라고 비난했던 때가 있었다. 순천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을 다시 들여다 보자. 철새와 갈대, 그리고 꽃과 나무가 지금 순천을 먹여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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