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라'의 황윤 감독 "새만금의 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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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라'의 황윤 감독 "새만금의 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 취재기자 김아란
  • 승인 2023.04.23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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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대미술관 이색 전시...'극장 을숙'에서 독립영화 상영
상영 후 대담... "살아남은 것 없을 거란 생각 부끄러웠다"
새만금 상황과 낙동강 하구 다르지 않아... "난개발 안돼"

낙동강 하구에 위치한 작은 섬 을숙도.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 중 하나이자 난개발로 고통받는 곳. 이곳에 한 독립영화 감독이 새만금의 이야기를 전하러 왔다.

지난 16일, 을숙도의 부산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영화의 기후: 섬, 행성, 포스트콘택트 존’에 다녀왔다. 이번 주제는 인류와 환경에 관한 이야기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전달했다. 전시 기획 중 하나인 ‘극장 을숙’은 전시실의 일부를 실제 영화관을 옮겨놓은 듯한 공간으로 만들어 매일 다른 독립영화들을 상영한다. 영화 <수라>는 16일 편성되어 상영 후 감독인 황윤 씨의 특별 대담이 이어졌다.

<수라>는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인해 파괴되어 가는 갯벌과 죽어가는 생물들을 목도한 황윤 감독이 그들을 지키려는 시민생태조사단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다. 2006년 3월, 시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새만금 간척사업 허가 판결을 내리자, 황 감독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갯벌의 모습을 취재하러 나섰다.

그러나 가장 앞서서 시위를 벌이고 황 감독에게 숙식을 제공해주던 어민 류기화 씨가 새만금 방조제 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는 황 감독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아 다큐멘터리 제작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KNN 진재운 감독(기자)와의 대담에서 황 감독은 “새만금은 갯벌을 지키려던 사람들에게 트라우마 같은 것이다. 나도 완전히 잊어버리려고 애썼다”며 그때 당시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우연인지 필연인지 황 감독은 또 다시 군산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끝난 후 말라버린 갯벌은 모래바람만 뿌옇게 흩날려 꼭 죽은 것처럼 보였다. 아들의 비염은 점점 심해지고 어민들은 일자리를 잃어 도로 갓길의 잡초 베는 일을 하고 있었다. 바닷물을 기다리다 못해 뻘 위로 나온 수천 마리의 조개들은 입을 벌린 채 말라죽어 무덤을 이뤘고, 먹이를 찾지 못해 굶어죽은 도요새의 사체가 굴러다녔다. ‘나는 어느새 목격자에서 피해 당사자가 되어 있었다.’ 덤덤히 흘러나온 황 감독의 나레이션에서는 절망이 느껴졌다.

황 감독의 절망은 한 사람과의 만남으로 희석되기 시작한다. 모두가 끝나버렸다 생각한 새만금을 다시 되살려내기 위해 활동 중인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장 오동필 씨 덕분이었다. 그는 20대 후반부터 시민생태조사단의 일원으로 20여 년간 활동하며 새만금 갯벌과 철새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해 두었다.

'물새들을 관찰하러 가겠느냐'는 오 단장의 물음에 그녀는 ‘이미 말라버린 갯벌에 살아있는 생물이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생각은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인 저어새 150여 마리가 수라 갯벌에 무리지어 사는 것을 보고 완전 바뀌게 된다. 황윤 감독은 “충격이었다. 한 편으로는 반가웠고, 한 편으로는 아무것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렇게 오동필 단장의 활동을 따라다니며 과거에 포기했던 영화를 다시 만들기 시작한다. 물새의 알을 찾고, 오래전 보았던 검은머리 갈매기를 다시 마주하며 기쁨을 느낀다. 멸종위기 1급인 흰발농게를 찾아 나서고, 오동필 씨가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도요새의 군무를 함께 목격한다. 황 감독은 오 단장이 경험했던 매혹이 전이되는 것을 느낀다.

‘아름다운 것을 본 것이 죄라면, 이제 나도 죄인이 된 것일까.’ 남들은 보지 못한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한 사람의 죄책감이자 책임감이 느껴지는 나레이션으로 매혹은 다시 관객들에게 흘러 넘겨진다. 관객들 또한 아름다움을 목격한 죗값을 치르게 될 것인가?

영화는 관객을 울리려 하지 않는다. 억지스런 신파나 과장된 연출 없이 다큐멘터리의 특성에 충실하며 새만금의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상영 내내 관 안에서는 훌쩍이는 울음소리와 눈물을 닦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신명숙(52) 씨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내가 그 일을 겪은 당사자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영화 '수라' 상영 후 황윤 감독(왼쪽)이 대담을 진행 중이다(사진: 취재기자 김아란).
영화 '수라' 상영 후 황윤 감독(왼쪽)이 진재운 KNN 감독과 대담을 진행 중이다(사진: 취재기자 김아란).

이후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된 토크에서 황윤 감독은 좌절하되 포기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그녀는 “처음 오 단장이 ‘갯벌은 바닷물만 들어오면 2년이면 회복될 수 있다’고 했을 때 희망을 주려는 거짓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기나긴 노력 끝에 해수유통이 확대되어, 하루에 두 번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갯벌이 눈에 띄게 회복하는 것을 보고 믿을 수밖에 없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20년 동안 어떤 학자가 돈도 안 받고 끊임없이 저항할 수 있었겠나. 수라 갯벌은 조사단이 만든 기적”이라고 시민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처음 영화를 만든 계기는 무엇이었냐는 관객의 질문에는 잠시간 생각에 잠겼다. 황 감독은 고민 끝에 동물원에 갇힌 호랑이들의 삶에 관한 영화 〈작별〉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새끼 호랑이 ‘크레인’이 태어난지 보름됐을 때 만나 4개월 동안 지켜보았다. 엄마나 형제없이 어두컴컴한 전시장에서 하루 종일 갇혀 아무도 없고 아무 할 일도 없는 크레인을 찍으며, 평생 야생을 박탈당한 채 감금되어 살아가는 저들의 심정은 어떤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황 감독은 “동물원이 폐장되고 더 이상 외부인을 받지 않을 때 자원봉사자 누나가 떠나던 날 크레인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목이 매여 한참 말을 고르던 그녀는 “약속을 많이 했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평생 동안, 세상에 존재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너희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통역사로 살겠다고 약속했다. 크레인 덕분에 <수라>까지 올 수 있었다”며 이야기를 마쳤다.

황윤 감독의 이야기를 듣던 사회자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진재운 씨 또한 입을 열었다. 진 감독은 “부산시 토목직 공무원 수와 도시계획 공무원 수의 비율이 100:1이다. 뭔가를 부수고 깔고 하는 공무원의 수는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도시의 미래를 계획하는 공무원의 수는 턱없이 적다”며 “이게 대한민국의 현주소이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새만금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새만금 신공항 건설 문제로 인해 마지막으로 남은 수라 갯벌마저 매립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황 감독은 이날 나눠준 템플릿 뒤에 인쇄된 QR코드를 보여주며 “이미 공항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공항을 짓겠다는 건 미래를 부수는 일이다. 많음 분들의 관심과 서명이 필요하다”고 서명운동을 부탁했다.

환경단체 ‘습지와 새들의 친구’ 회원들과 황윤 감독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김아란).
'낙동강 하구를 지키자'고 목소리를 높인 환경단체 ‘습지와 새들의 친구’ 회원들(사진: 취재기자 김아란).

부산 환경단체 ‘습지와 새들의 친구’ 박중록 운영위원장은 “부산의 수라는 낙동강 하구이다. 문제는 이 낙동강 하구지역도 난개발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3000마리씩 찾아오던 백조들이 이제는 반절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큰 고니가 살 수 있는 교량 간격이 유지되는 곳, 2군데 만이라도 지키는 활동을 하고 있다”며 직접 찍은 새 사진을 관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낙동강하구 철새도래지 문화재보호구역도 계속 난개발에 시달리고 있다. 보호구역 내에서 16개의 대교가 계획돼 있고, 가덕신공항 사업도 추진 중이다. 영화 속 오동필 씨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와 보면 달라질 걸요. 직접 봐야 돼요. 직접 보면 달라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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