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천의 목소리가 주는 아날로그 감동... KBS 성우 김희승 씨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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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천의 목소리가 주는 아날로그 감동... KBS 성우 김희승 씨를 만나다
  • 취재기자 황지환
  • 승인 2023.04.1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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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공채 44기 성우 김희승 씨가 말하는 '성우의 세계'
경성대 졸업 후 아르바이트 해서 모은 돈 갖고 상경
지금은 2년 간 전속 성우 끝으로 프리랜서 활동 중
웹툰, 애니메이션, 오디오 북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한 몫'

 

몇 년 전 코레일은 40여 년간 성우 육성으로 제작했던 지하철 안내방송을 컴퓨터 음성합성 방식인 TTS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육성 녹음은 섭외부터 편집 후 차량에 이식하기까지 한 달 이상 소요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기계음으로 된 알림 방송 교체 후 다수의 승객이 디지털 특유의 차가움과 빈틈없는 목소리에 적응하지 못했다. 성우의 육성에 오랜 시간 적응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성우의 육성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문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함이 스며있다. 컴퓨터는 감히 흉내조차 내지 못할 영역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성우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성우의 목소리가 들어가지 않은 곳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그리고 휴대전화 연결음에서부터 게임, OTT 등 성우의 소리를 거치지 않은 분야를 찾기 힘들 정도다.

한 성우가 갖가지 다른 배역 또 다른 분야에서 갖가지 목소리로 연기하는 걸 볼 때는 소름이 돋을 정도다. 흔히들 성우를 일컬어 천의 목소리라고 불리는 이유다.

오늘 만난 성우 김희승(35, 서울시 은평구) 씨는 성우들 사이에서 ‘만능 재주꾼’으로 통한다. 그의 목소리 연기뿐 아니라 연극을 좋아해 학창 시절부터 자주 올랐던 연극무대를 떠올리며 그에 붙은 별칭이다. 고교 시절 동아리에서 처음 접했던 연극은 김 씨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관객들의 이목을 독차지했다. 고교 졸업 무렵, 그는 탤런트를 꿈꿨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는 대학 입학 후 외모에 대한 한계로 도저히 탤런트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외모에 신경 쓰지 않으며 연기할 수 있는 직업 그것은 성우였다. 김 씨는 이후 프로 성우가 되기 위해 외길을 걸었다.

성우 김희승 씨가 대본 연습을 하고 있다(사진: 김희승 씨 제공).
성우 김희승 씨가 대본 연습을 하고 있다(사진: 김희승 씨 제공).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김희승 씨는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곧바로 상경해 학원 다니며 정식으로 방송사 성우 공채시험에 응시하려 했다. 김 씨는 대학 다니며 번번이 떨어졌던 성우 공채 시험에 미련이 있었다. 성우가 되려면 우선 서울에 가서 제대로 준비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집에서는 반대가 심했다. 김 씨의 부모님은 그가 준비했던 성우라는 직업뿐 아니라 연기 하는 것 자체에 부정적이었다. 김 씨는 이뿐만 아니라 대학 졸업한 성인이 부모님께 더 이상 손을 벌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당장 서울의 월셋방은커녕 학원비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작정 상경할 수는 없었다.

-상경 준비는 어떻게 했나요?

"저는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하고 곧바로 ‘유가네 닭갈비’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먹는 것부터 입는 것 그리고 친구들과의 약속도 잡지 않은 채로 말이죠. 그렇게 2년이 지나고 2천만 원을 모았어요."

-왜 상경해서 성우 준비를 하려고 했나요?

"일단 지방에는 성우 전문학원이 많지 않고 규모가 서울에 비해 너무 작아요. 그래서 서울로 가서 제대로 준비하려고 했어요."

-서울에 올라간 후 생활은?

"같이 성우 공채 시험 준비하던 형들과 신대방동 달동네에 작은 방 한 칸을 얻었어요. 그리고 생활비는 청원경찰을 하며 벌었죠."

-얼마 만에 성우 시험에 붙었나요?

"성우학원 등록 후 KBS 성우 공채 시험에 합격하기까지 꼬박 4년이 걸렸어요. 제 주변을 살펴보면 그리 빨리 된 건 아니지만 또 그렇게 늦은 합격도 아니에요."

-성우는 어떤 직업인가요?

"성우는 일단 목소리 연기자예요. 많이들 혼동하시는 내레이터와는 분명 다릅니다. 내레이션을 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성우는 연기자이기 때문에 실제 배우들처럼 감정을 살려 연습하죠."

-성우가 된 후 생활은 어떤가?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제가 성우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심스럽기는 합니다만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건 정말 축복받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할 때 늘 즐기면서 하게 되거든요."

-공채 성우는 어떤 일을 하게 되나요?

공채 시험에 합격하면 방송국 전속 성우가 돼요. 2년간 KBS에 있으면서 라디오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등을 했어요."

-현재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지금은 2년간 전속 기간이 끝나서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어요.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김희승 씨가 공채 성우 시험 합격 후 자신이 다녔던 성우 학원에서 게재한 홍보 포스팅이다(사진: 성우학원 펀스쿨 제공).
김희승 씨가 공채 성우 시험 합격 후 자신이 다녔던 성우 학원에서 게재한 홍보 포스팅이다(사진: 성우학원 펀스쿨 제공).

-어떤 작품에 참여했나요?

"웹툰 ‘고래 별’,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와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에서는 홍전수와 안성대 역을 맡았어요. 그밖에 오디오 북 ‘허삼관 매혈기’, ‘사랑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등을 꼽을 수 있겠네요."

-쉬는 날엔 뭘 하며 시간을 보내나요?

"저는 위스키 모으고 시음하는 걸 좋아해서 동호회 활동도 한답니다. 요즘은 지역별로 다양한 맛집을 찾아다니는 게 취미가 됐습니다."(웃음)

-성우를 꿈꾸는 이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과거에 비해 성우 분야 일들이 계속 줄어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더빙 영화에 대한 수요도 많이 줄었고요. 그렇지만 저는 성우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대체 불가능한 영역은 분명히 있거든요.

그리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목소리와 연기를 평가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주변에서 목소리 좋은데 나 성우 해볼까? 하는 식으로 도전하지 말고, 정말 이 일을 평생 직업으로 가지면 내 삶이 행복할지에 대한 확신이 들었을 때 준비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지방에서 공부하는 지망생들에겐 웬만하면 상경해서 준비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해요. 학원, 정보, 인맥 등 환경이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김희승 씨는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자신이 맡았던 배역에 대해 설명할 때 그는 마치 자식 자랑을 하는 아버지 같아 보였다. 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쯤 성우라는 직업에 대해 꿈을 꿔보고는 한다.

기자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기자가 어렸을 적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더빙과 예능 및 다큐에 내레이션으로 등장했던 목소리가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성우는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이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 쉽게 들을 수 없는 목소리라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김희승 씨를 인터뷰하고 난 후에 나는 내가 오랫동안 갖고 있었던 성우에 대한 고정관념이 허물어졌다. 그의 육성안에는 사람 냄새가 배어 있었다. 0과 1의 펄스부호로는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아날로그 그 고유의 가치가 스며있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본 인터뷰는 김희승 씨와 전화 인터뷰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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