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84세 김성종 작가, "올해 안에 '도망간 여자' 출간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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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84세 김성종 작가, "올해 안에 '도망간 여자' 출간 계획"
  • 취재기자 황지환
  • 승인 2023.03.3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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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문학관 개관 31주년, 노장의 투혼으로 매일 독서, 작품 집필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청와대 경호실에서 '제5열' 보고 찾아오기도
매주 목요일 창작 교실 열어 추리소설 교육, 변함없는 노익장 과시

한국의 몽마르트로 불리는 해운대 달맞이길에는 추리문학관이 있다. 대한민국 유일의 장르 문학관으로 통한다. 이곳엔 한국 추리 문학의 대부 김성종 씨가 거주한다. 그는 1992년 사재를 털어 추리문학관을 세웠다. 이곳엔 소설책과 사회과학 서적, 원서 등 약 4만여 권의 책이 있다. 누구나 이곳에 들러 책을 읽고, 원한다면 대여까지 가능하다. 5층에는 김 작가의 작업실이 있다. 이곳에서 그는 책을 읽고 쓰며 하루를 보낸다. 매주 목요일 오후에는 창작 교실을 열어 추리 소설가가 되고픈 이들에게 가르침을 준다. 추리문학관은 수도권에 비해 낙후된 부산의 문화 발전을 위해 묵묵히 제 몫을 하고 있다. 일본의 추리 작가들이 이곳을 왔다가 감탄을 연발하고 돌아갔다는 일화도 있다.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문학공간인 셈이다.

추리 소설가 김성종을 대중에 각인시킨 건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필한 대하 장편소설 '여명의 눈동자'였다. 이 소설은 일간 스포츠에 연재됐다. 연재 후 출판을 위해 원고를 모아 보니 장편소설 10권이 넘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여명의 눈동자'는 드라마로 제작돼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순수 대하 장편소설이 불후의 명작이 된 것이다.

그는 추리 문학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독보적 위상을 갖게 됐을까? 왜 추리 문학에 평생을 바쳤는지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재학 시절 외무고시나 사법시험에 도전하던 동기들과 달리 그는 문학에 빠져들었다. 고교 시절부터 꿈틀거리던 문학의 피가 대학 입학 후 다시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어떨 땐 자신의 전공수업을 빼먹고 문과대학 국문과 수업을 청강하러 갔다는 그다.

인터뷰 당일 김 작가는 몸이 많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날도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목소리를 높여 질문해야 했다. 올해로 84세인 김 작가는 시빅뉴스와 인터뷰에 흔쾌히 응했다.

김성종 작가가 기자와 인터뷰 하고 있다(취재기자: 황지환).
김성종 작가가 기자와 인터뷰 하고 있다(취재기자: 황지환).

-최근 근황이 궁금합니다.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뭐 그렇죠. 나이가 있다 보니까... 귀가 잘 안 들리는 거 외에는 괜찮아요."

-선생님 등단은 순수 문학 작품으로 하셨죠?

"그렇죠. 1969년도 조선일보에 ‘경찰관’이라는 단편으로 등단했어요. 등단만 해놓고 소설 청탁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1974년도에 한국일보에서 창간 20주년 기념 장편소설 응모를 했어요. 거기에 덜컥 ‘최후의 증인’이 당선됐죠. 당시 상금이 200만 원이었는데, 서울에 집 한 채 사고 장가 비용까지 충당했으니 큰돈이었죠."

그의 출세작 최후의 증인(1974년 발간) 초고다(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그의 출세작 '최후의 증인'(1974년 발간) 초고다(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최후의 증인이 선생님의 삶을 바꿔놓은 작품이었겠네요. 이후 원고 청탁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매체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추리 소설 청탁이 들어왔어요. 독자들도 많이 기다렸던 거였죠. 이후에 일간스포츠에서 동시에 두 편의 소설을 연재했어요. 김성종 본명으로 ‘여명의 눈동자’를 그리고 추정이라는 필명으로 ‘제5열’을 연재했죠."

-한 신문에 두 개의 작품을 연재하실 정도면 어마어마하셨을 듯합니다. 연재 당시 에피소드 같은 것은 없으셨는지요.

"1979년 10월 26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셨잖아요? 김재규 총에 맞아서... 그 뒤에 몇 달 지나서 청와대 대통령실에서 남자 몇이 찾아왔었어요. '제5열'에 대통령 암살 내용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경호 자문하고 싶다며 찾아왔었죠. 첨엔 대통령 암살 장면이 나오니까, 나를 배후세력으로 알고 잡으러 왔나 했죠(웃음)."

-조언해 주셨는지요?

"정중히 고사했어요. 소설은 오로지 상상만으로 쓴 것이지 내가 조언하거나 자문할 것은 전혀 없다고 말이죠."

김성종 추리소설가의 대표작이 추리 문학관 내부에 전시돼있다(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김성종 작가의 대표작이 추리 문학관 내부에 전시돼 있다(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뭐니 뭐니 해도 선생님 소설 하면 ‘여명의 눈동자’가 최고로 꼽힙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느끼시는지요?

"아무래도 독자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죠. 그리고 '여명의 눈동자'는 드라마로 제작이 됐죠. 김종학 씨가 만들었는데... 그때 인기가 어마어마했죠. 이후에 '모래시계'로 대박 나고 '태왕사신기'까지 만들고서 김종학 씨가 세상을 버렸죠. 지나고 나서 얘기지만 '여명의 눈동자'로 대박이 나서 그리된 건 아닌지 하는 미안한 마음도 들더군요."

-선생님은 추리 소설에 평생을 바치셨습니다. 일각에서는 김내성 선생을 시조에 빗대고 김성종 작가님을 추리 문학의 중시조에 빗댑니다. 선생님은 왜 추리라는 장르에 끌리셨나요?

"어릴 적부터 특히나 스파이 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요즘에서야 인터넷도 있고 스마트 폰도 없을 때고 하물며 텔레비전도 귀할 때 아닙니까. 유일한 것이 책 읽는 것인데 그중에서도 소설을 많이 읽었죠. 존 르카레라는 작가의 ‘차가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읽고서 본격적인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추리라는 데에 이상하게 계속 끌리더라고."

-작가님께 이런 질문은 뻔하기도 할텐데요. 요즘도 책을 많이 읽으시는지요?

"허허 그렇지요. 요즘도 별일 없으면 하루 종일 책 읽고 글 쓰는 거죠. 학창 시절부터 평생을 책을 읽어왔는데, 직업이 평생 작가 팔자라 그런지 책은 질리지 않네요."

-대학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원래는 외교관이나 정치인의 꿈을 갖고 계셨나요?

"전혀 아니죠. 성적에 맞춰 들어간 건데, 동기들은 외무고시나 사법시험 준비에 혈안이 돼 있었는데, 나는 전공수업도 잘 안 들어가고 옆에 문과대 국문과 수업 몰래 들으러 갔었죠. 문학은 참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국문과 수업은 집중해서 잘 들었지 허허."

-부산에 터를 잡으신 특별한 이유는 있으신지요?

"내가 취재차 부산에 내려왔을 때 40년 전쯤 되겠네요. 여기 달맞이길이 전부 허허벌판이었어요. 그때 당시 땅값이 평당 30만 원이었어요. 그때 내가 여기 문학관 터를 구했어요. 경치가 장관이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이 일대를 다 사놓을 걸 하는 후회도 드네요. 아예 문화 타운을 조성하고 싶은 생각이었거든요."

-추리소설 하면 사실 옆 나라 일본이 추리 강국으로 불리죠. 선생님이 보시는 한국의 추리 소설가나 눈여겨 보시는 작품이 있으신지요?

"그러게요. 우리나라는 이상하게도 순수 문학이라는 걸 떠받들고 장르문학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죠. 저도 오랫동안 추리 문학만을 고집했는데, 질타도 많이 받았어요. 우리 추리작가협회가 있는데, 아직 이렇다 할 작가나 작품은 본 적이 없어요. 기자가 말한 일본 같은 경우에는 우리나라보다 출판 규모나 독자 수가 비교도 안될 만큼 많아요. 근데도 우리나라에는 추리 문학이 지나치게 대중적이라는 둥 상업적이라는 둥 많은 비난을 받는게 안타까운 현실이죠."

-2017년 '계엄령의 밤' 이후 6년 동안 작품을 내지 않고 계십니다. 현재 신작 발표 계획이 있으신지요?

"'계엄령의 밤' 이후에 소설은 계속 썼어요. 아직 출판사를 못 찾아서 출간을 못했는데, ‘도망간 여자’라는 제목의 장편을 썼어요.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여성이었으나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요. 그 여자의 모든 것들이 알고 보니 가짜였던 것이죠. 뭐 그런 얘기예요. 아마 올해 안에는 출판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선생님께서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나 다루고 싶은 작품 소재 등이 있으신지요?

"이제 딱히 무언가 반드시 써야겠다거나 이뤄야겠다는 것이 없어요. 하고 싶은 얘기를 작품에서 많이 했다고 생각해서 말이죠."

김성종 작가는 표정에 다소의 어둠과 여유로움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마치 추리문학관 내부 분위기와 흡사했다. 입구부터 쭉 둘러보며 지나칠 정도로 음산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것은 관장인 김성종 작가의 안목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가 적막을 넘어 고요 속에 휩싸여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치 추리 소설 속 주인공들의 접선 장소가 생각났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의 파도가 그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김성종 작가의 소설은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의 작품 다수가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됐다. 최근에는 국제신문에 매주 1편씩 50주 동안 두 소설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는 작가로서 대중의 사랑과 평단의 인기 두 마리 토끼를 잡지는 못했다. 한국엔 추리 소설가를 경시하기 때문에 평론가들이 작품에 대한 평가를 잘 하지 않기 때문. 그러나 김 작가는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추리라는 장르에 대한 확신과 소신이었다. 팔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는 오늘날 대한민국 최고의 추리 소설가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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