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 할미탈 쓰고 열연"... 동래야류 지키는 국악인 손심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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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 할미탈 쓰고 열연"... 동래야류 지키는 국악인 손심심 씨
  • 취재기자 황지환
  • 승인 2023.03.28 2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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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야류 보존회장 재선... 문장원 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도 맡아
동래야류 개념과 용어 정리 주력... 아이들 교육에도 심혈
"전통 예술, 온고지신 정신으로 나만의 것 새롭게 창조해야"

국악인 손심심 씨와 배우 김수미 씨는 닮은 데가 있다. 김수미 씨는 각종 TV 드라마에서 화통한 입담과 돌직구로 유명하다. 그런 그녀를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시킨 건 MBC 드라마 ‘전원일기’였다. 김 씨는 최근 tvN 인기예능 ‘회장님네 사람들’에서 자신이 29세 나이로 시골 노파인 ‘일용엄니’역에 캐스팅된 것에 대해 “아직도 그 꽃다운 젊은 나이에 왜 그 노인 역을 맡겼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카랑카랑한 할머니 목소리로 70대 할머니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아름다운 20대에 할머니 역으로 21년을 산다는 것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오늘 만난 사람은 배우 김수미 씨보다 훨씬 어린, 고교 시절부터 노역을 맡아 40여 년이 지났다. 스승 문장원의 가르침은 그녀를 청출어람(靑出於藍)의 경지에 올렸다. 스승은 그녀에게 “할미역은 나보다 네가 더 잘하니 앞으로 할미 역은 네가 도맡아 하거라”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녀는 비록 김수미 씨처럼 분장하고 걸걸한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할미탈 속에 숨겨야만 했다. 어쩌면 여성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나이에 그녀는 주름진 할미가 되어야 했다. 자기 자신을 버린다는 것. 그리고 내가 아닌 타인으로 오랜시간을 살아야한다는 것. 그것도 나와 가장 거리가 먼 타인으로서 산다는 것. 무엇이 십대 소녀를 할미 탈 속에 빠져들게 했던 것일까. 그녀의 모험적 시도 덕분일까? 그녀는 현재 국악계에서 독보적 존재로 우뚝 서 있다. 아무도 그녀를 대체할 수도,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다. 그녀는 바로 동래야류보존회장이자 동래야류 전승 교육사로 활동 중인 국악인 손심심 씨다.

손심심 씨가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손심심 씨가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지난 2월, 손심심 씨는 ‘동래야류 보존회장’에 만장일치로 추대됐다. 재선이었다. 3년 전 초임 회장에 당선돼 불철주야 동래야류 한번 알려보겠다고 발 벗고 뛰어다닌 시간들이 회원들에게 진심으로 전해진 것 같다.

-동래야류는 어떤 것인가요?

"동래야류는 우리나라에 지금 현존하는 탈춤 종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죠. 지역마다 불리는 이름이 다른데요. 서울·경기에서는 ‘산대놀이’라고 하고 황해도 지역은 ‘탈춤’ 그리고 경상도 지역에는 오광대놀음 부산에서는 야류라고 하고 있습니다. 옛 어른들은 ‘들에서 한바탕 논다’는 뜻에서 ‘들놀음’이라고 말씀하기도 하셨죠. 동래야류 내용도 보면 양반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담고 있어요. 진정한 민초의 즉 백성들의 문화이지요."

-손심심 선생님하면 동래야류에서 할미역으로 많이들 알고 계시는데요. 할미역을 오랫동안 맡아 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동래야류에는 4과장이 있습니다. ‘문둥이 과장’, ‘양반 과장’, ‘영노 과장’, ‘할미 과장’이 그것이죠. 그중에 저는 할미역을 맡아 지난 40여 년을 무대에 섰어요. 요즘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종종 무대에 설 때가 있는데요. 할미역은 뭐랄까 꼬장꼬장한 탈 속에 그 숨겨진 부드러움? 제 성격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저를 방송에서나 언론 인터뷰만 보고서 ‘드세다’, ‘차갑다’, ‘무섭다’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고들 해요. 그런데 저는 전혀 안 그렇거든요(웃음). 할미역에는 탈 속에 감춰진 그 야들야들하고 액기스처럼 농축된 진가가 녹아 있어요. 저랑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올 2월 동래야류 보존회의 회장으로 다시 추대 되셨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어떻게 되시나요?

"지난 3년간 보존회장으로 일했습니다. 잘했는지 못했는지 저 자신을 평가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우리 회원들 눈에 일을 잘하는 것처럼 비쳤나 봅니다. 저는 일단 동래야류가 틀에 갇혀서 옛것을 그대로 녹음기 틀 듯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선조들로부터 이어져 오던 동래야류에 동래 토속 무용인 ‘덧배기 춤을’ 더해 시대에 맞게 승화시켜 관객들에 선보이려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구전으로, 어깨 너머로 전통예술을 배우던 시절은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동래야류도 정확한 개념과 용어 정리 그리고 후대에 올바르게 전수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일 예정입니다. 제가 회장으로 있는 동안 꼭 하고 싶고 또 해야 할 의무라고 봐요."

동래야류 중 손심심 씨가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사진: 손심심 씨 제공).
동래야류 중 손심심(오른쪽) 씨가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사진: 손심심 씨 제공).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동래야류 전승 교육사로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현재 동래야류 전수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요?

"1967년도에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 받았어요.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동래야류는 다른 전통예술에 비해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국악이 대중에 큰 사랑을 받지는 못해 늘 아쉬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훗날에 내가 선생님들께 받은 것을 후대에 전할 때 좀 더 옛것은 살리고 새로운 것도 받아들이는, 즉 온고지신의 정신을 새기며 전수 하리라 생각했어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그나마 있던 전수자들에게 전수하는 것도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저는 보존회장이 되기 이전인 이수자, 전승 교육사 시절부터 아이들이 우리 국악의 ‘보배’이고 ‘빛’이면서 ‘꽃’이라 생각했어요. 어떨 때는 오랜 기간 수련한 전공자보다 더 뛰어난 표현력을 가진 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더라고요. 최근에는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 ‘동래야류’를 가르쳐 왔습니다. 아무리 바쁜 일정이라도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전수하는 시간만큼은 늘 확보하려 노력했어요. 그 아이들이 국악의 미래이기 때문이죠. 올해는 부산 양동초등학교를 비롯해 부산시 10여 개 학교에 직접 찾아가 하나하나 가르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현 부산시 교육감이신 하윤수 교육감께서도 저희 동래야류 팀에 대해 아주 긍정적으로 봐주시고 지원도 아끼시지 않아 든든하답니다."

-혹시 전수 과정에서 어려움이나 힘든 점은 없으셨는지요?

"아무래도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나이 지긋한 분들 가르칠 때와는 언어와 표정 하나에도 신경 쓰는 편이에요. 아이들이 쉽게 상처받지 않게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차근차근 알려줍니다. 요즘에는 자기 엄마보다 제가 좋다고 집에 안 가려 하는 애들도 있죠(웃음). 그리고 동래야류 중에 음담패설, 욕설, 성적인 내용 등이 좀 담겨있죠.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는 그런 부분을 걸러내 지도하고 있습니다. 또 저희 동래 야류 뿐만 아니라 모든 전통예술 전수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원형을 어떻게 후대에 전해줄 것이냐 하는 거예요. 아무리 제가 춤을 멋들어지게 춘다고 할지라도 윗대 선생님들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정말 원류, 오리지널 전통은 그대로 이어받되 온고지신의 성격으로 옛것을 보전하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무형문화재는 전수 과정에서 변형되는 경우가 상당한 것 같아요. 전수하는 입장에 있는 이들이 유의해야 할 부분이죠."

손심심 씨가 할미탈을 쓰고 동래야류 한 바탕을 선보이고 있다(사진: 손심심 씨 제공).
손심심 씨가 할미탈을 쓰고 동래야류 한 바탕을 선보이고 있다(사진: 손심심 씨 제공).

-동래야류 보존회장 말고도 선생님께서는 여러 직함을 갖고 계시는데요.

"제가 속해있는 기관이 좀 많아요. 부산 의경 어머니회 회장, 그리고 문장원 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등 몇 개 더 있는데요. 문장원 기념사업회는 제 스승이신 문장원 선생님을 기리고 그 예술정신을 이어가자는 의미에서 설립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뛰어난들 선생님을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늘 선생님의 예술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며 무대에 서려고 합니다. 그리고 부산 의경 어머니회 회장을 맡게 된 것은 제가 자식이 없어요. 여러 매체에서 다 공개된 사실이라 새삼 꺼내는 것도 쑥스럽지만 제 자식은 없어도 대한민국 자랑스러운 아들들 응원하려고 제가 맡았어요. 곧 의경이 폐지된다는 소식을 듣고 마지막에 우리 동래야류 팀들이 가서 피날레 공연을 해주고픈 마음입니다."

손심심 씨는 차가움과 따뜻함을 동시에 지닌 사람이었다. 때로는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자의 눈빛 하나 손짓 하나에도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녀의 스승 문장원 명인도 손심심 씨의 세밀함을 알아보고서 십대 소녀에게 할미 역을 맡기지 않았을까. 손 씨는 스승의 선택을 무모한 도전으로 만들지 않았다. 다시 동래야류 보존회장을 맡은 그녀의 새로운 도전과 활동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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