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아저씨 항시 대기’... 카페 문달레가 꿈꾸는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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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아저씨 항시 대기’... 카페 문달레가 꿈꾸는 유토피아
  • 취재기자 장유진
  • 승인 2023.01.0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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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가에 위치한 ‘문달레 cafe & bar’ 이색 공지
‘30대 아저씨 항시 대기’라는 문구로 손님들 흥미 유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간 만들고, 지켜나가는 게 꿈"

해가 서쪽으로 떨어지고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쯤이 되어서야 대학가 골목엔 오픈 준비를 하는 가게가 하나 있다. 문을 활짝 열고, 전날 깨끗하게 씻어둔 유리잔을 닦고, 가게 안에 있는 조명들을 켠다. 오늘은 어떤 메뉴가 많이 팔리려나, 하고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느샌가 1층 가게 입구에서부터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온다.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 청아하게 울리는 종소리. 손님을 맞이한다. 부산 금정구 부산대 대학가에 위치한 ‘문달레 cafe & bar’의 밤은 달 손님들과 함께 시작된다.

‘문달레 cafe & bar’의 사장님, 문달레(가명) 씨의 가게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가게 입구에 붙어 있는 ‘공지’들이다. 지금은 없어진 ‘No Professor Zone’이나,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30대 아저씨 항시 대기’라는 문구는 방문할 마음이 없었던 손님들을 불러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 어째서 문달레 사장님은 희안하고 독특한 문구를 가게의 얼굴인 입구에 붙여 두었을까? 이 공지의 시작을 회상하기 위해서는 꽤 옛날로 거슬러가야 한다.

“아가씨 있나요?” 문달레 사장님이 들었던 질문이다. 남자인 사장님과 직원들이 단란하게 운영하는 대학가 카페이자 바에서 듣기엔 생소한 질문. 이 손님은 어째서 ‘아가씨’의 유무를 물었던 것인지 의문을 갖자, 사장님은 우리나라의 여러 형태의 바(Bar)에 대해 설명했다. 바텐더가 병이나 쉐이커를 현란하게 돌리거나 공중으로 던져 아슬아슬하게 받아내는, 마치 묘기를 부리는 것처럼 칵테일을 만드는 곳이 ‘플레어 바(Flair Bar)’이다. 그리고 문달레 사장님처럼 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가게, 즉 싱글몰트 위스키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은 ‘몰트 바(Malt Bar)’.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성들이 접객을 하는 ‘모던 바(Modern Bar)’까지.

한국에서 술에 관심이 특별히 없는 사람들에게 ‘바’의 이미지는 보통 여성들이 함께하는 ‘모던 바’의 형식이다. 그런 착각은 문달레 사장님도 피해갈 수 없었다. 50~60대 남성 손님들은 가게 입구에 붙은 Bar라는 단어 하나만을 보고 ‘모던 바’의 모습을 기대하고 올라오는 것이다. 가게를 운영하며 ‘아가씨’를 찾는 손님이 도통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문달레 사장님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아가씨’가 아닌 ‘30대 아저씨’가 있다고, 그것도 항시 대기 중이라는 문구를 적은 공지. 이것이 바로 사장님이 내린 조치였던 것이다.

부산대 대학로에 위치한 카페 ‘문달레 Cafe & Bar’의 모습(사진 : ‘문달레 Cafe & Bar’ 제공).
부산대 대학로에 위치한 카페 ‘문달레 Cafe & Bar’의 모습(사진 : ‘문달레 Cafe & Bar’ 제공).

자극적이고 어떻게 보면 유머스러운 그 공지를 가게 입구에 붙인 이후로 그런 손님들이 줄어들었는가, 묻자 문달레 사장님은 “오히려 그 문구를 오독하고 올라오시는 손님들이 늘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문달레 사장님은 아가씨에 대한 질문을 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이 문구를 붙인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은 20대 바텐더들이 훨씬 더 많아요. 그래서 손님들도 ‘바텐더’라고 하면 ‘젊은 사람’을 가장 먼저 떠올리시죠. 그런 이 상황에서 가게 앞에 ‘30대’의 바텐더가 있다고 적은 건 더 전문성을 기대하고자 했기 때문이에요” 라고 말하며 30대에 바텐더를 꿈꾸고 있고, 현직 바텐더인 이들의 존재를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그리고 사장님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손님들이 많이 하시는 질문 중 하나가 나이를 묻는 질문이라 적어뒀던 거예요”라며 소소한 이유를 뒤이어 말했다.

‘30대 아저씨’인 사장님은 부산대에 가게를 처음 열면서 아일랜드의 ‘퍼블릭 하우스(일명 ’펍(Pud)’)의 모습을 기대했다. 마을 주민들이 약속 없이 모여 식사를 하고 차와 술을 마시며 작은 텔레비전으로 다 함께 축구를 보는 그런 곳. 그리고 그런 곳에서 사장님과 손님들이 함께 늙어가는 것을 보며 사장님은 그곳과 같은 가게를 만들기를 희망했다. “가족 공동체가 흐릿해져 가고, 1인 가구가 늘어가는 상황에서의 ‘고독’은 심각한 문제예요.” 자신의 공간과 나만의 것이 중요해진 21세기 현대사회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을 이은 사장님의 얼굴에선 씁쓸함이 감돌았다. 사장님이 바랐던 ‘퍼블릭 하우스’의 모습은 이기적으로 변해버린 21세기 현대사회의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거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그 절망 속에서 사장님은 부산대 펍 문화에서 지역 기반으로 비슷한 취향을 가진, 그리고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사장님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도 함께할 수 있는 곳으로 확대하고 싶어요”라며 가게 이름에 굳이 ‘Cafe’가 붙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답변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은 너무나도 많았다. 청년들의 고용 상황이 좋지 않았고, 낮은 임금에 높아져만 가는 물가는 청년들에게 퇴근 후 맥주 한두 잔이 ‘일상’이 아닌 ‘사치’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 안타까운 현실 속에 고통받고 있는 것은 청년들뿐 아니라 문달레 사장님도 마찬가지였다. “맥주 한두 잔이 사치가 되어버린 이 상황에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해 여러 어려움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저만의 ‘도착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버티고 버틸 겁니다.” 사장님이 말한 자신만의 도착점은 무엇일까? “제가 만든 공간과 음식을 매개로 취향과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늙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지켜나가는 것.”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지켜나가는 것. 사장님의 목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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