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조선왕조와 함께 피고 진 궁중채화... ‘한국궁중꽃박물관’에서 다시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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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조선왕조와 함께 피고 진 궁중채화... ‘한국궁중꽃박물관’에서 다시 피다
  • 취재기자 장광일
  • 승인 2022.11.0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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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궁궐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주변을 꾸며주던 조화 ‘궁중채화’
일제강점기 때 잃어버렸다가 복원 후 한국궁중꽃박물관에서 전시

대한민국 국민들은 과거에 있던 아픔을 잊지 않고 있다. 일제의 강점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다. 이때 사라진 우리 민족의 흔적 역시 많다. 조선의 큰 행사 때마다 궁궐을 꾸며주던 ‘채화’ 역시 그중 하나이다. 하지만 궁중채화장 황수로(88) 장인의 노력으로 궁중채화들은 완벽하게 복원 제작되었다. 현재 채화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 경남 양산시에 위치한 ‘한국궁중꽃박물관’이다.

한국궁중꽃박물관 현판(사진 : 취재기자 장광일).
한국궁중꽃박물관 담장에 내걸린 현판(사진 : 취재기자 장광일).

‘궁중채화’는 전문적인 장인이 궁중의 연희나 의례 목적에 맞게 비단, 모시 등으로 제작한 꽃이다. 궁중에서 존중의 뜻을 표현하거나 평화·장수·건강 등의 상징으로 꽃을 이용한 궁중 문화의 특징을 담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소멸되었다가 황수로 장인이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의궤’ 등의 여러 고문헌을 연구해 복원했다.

목조 건물 양식으로 지어진 매표소를 지나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흔히 생각하는 박물관의 모습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앞에 놓여진 길을 따라 큰 한옥이 하나 보이고, 주변에는 넓은 잔디밭과 나무들이 보인다. 한국궁중꽃박물관 측에 따르면 양산 매곡리의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한국궁중꽃박물관은 10여 년간의 건축공사를 거쳐서 한국전통 궁궐한옥으로 정성스럽게 지어졌다.

조선왕조 궁중의례와 한국궁중채화 제작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수로재(사진 : 취재기자 장광일).
조선왕조 궁중의례와 한국궁중채화 제작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수로재(사진 : 취재기자 장광일).

수로재는 매표소를 지나면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건물이다. 한국궁중꽃박물관 측에 따르면 국가무형문화재들과 한국 최고의 장인들이 철저한 고증을 통해 복원한 한옥과 현대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조선왕조 궁중의례를 재현한 전시실과 채화 제작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수로재의 ‘수로’는 박물관 설립자인 화장 황수로의 호를 따 만들었다고 한다. ‘재’는 주로 왕족이나 기타 궁궐 내 거주하는 사람들이 활동하는 주거공간을 뜻하는 건물을 말한다. 이 건물 바로 옆에는 다른 궁궐처럼 방화수를 담아놓은 ‘드므’ 역시 비치되어 있다.

수로재에 가까이 다가가면 방 안에 여러 음식들이 식탁에 차려져있고, 꽃들이 그 주위를 꾸미고 있다. 옆에 안내판은 이곳이 제1전시실임을 설명하고 있고, 그곳에는 ‘고종정해진찬의’를 전시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는 1887년 1월(고종 24년) 대왕대비인 신정왕후의 팔순을 기념하는 잔치상을 재현한 것이다.

건물 뒤로 돌아가면 제2·3·4 전시실이 붙어있다. 정면은 한옥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후면은 현대 건축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왼쪽에는 카페와 아트샵, 오른쪽에는 전시실이 있다.

제2전시실에는 ‘납매’라는 작품과 이를 만들 때 사용되었던 도구나 재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벽에는 흰 눈이 내리는 눈밭의 영상이 나오고, 굵고 길게 뻗은 매화나무의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홀로 지팡이를 짚고 눈길에 매화를 찾아 떠난다는 방랑시인 김시습의 ‘탐매시’를 바탕으로 창작되었다.

제3전시실에는 원래 여러 글과 그림을 뜻하는 ‘서화’들이 전시되어야 하지만, 현재는 프랑스의 유리 공예가 ‘에밀 갈레(1846~1904)’의 작품들이 전시 중이다. 색이 다른 유리나 금속을 깎고 녹여 붙인 작품들로 마치 붓으로 그림을 그린 듯한 유리병들이 전시되어 있다. 제4전시실은 채화를 제작할 때 사용되는 소재를 전시하고 있다.

궁중채화의 전승과 발전을 위해 지은 비해당. 비해당은 세종대왕이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에게 내린 당호이다 (사진 : 취재기자 장광일).
궁중채화의 전승과 발전을 위해 지은 비해당. 비해당은 세종대왕이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에게 내린 당호이다 (사진 : 취재기자 장광일).

수로재의 제1전시실을 관람하고, 그다음 전시실로 가기 위해서는 비해당을 지나가야 한다. 겉보기에는 매우 작은 건물로 1층은 의자와 테이블 몇 개가 비치되어있고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하로 내려간다면 1층보다 훨씬 큰 전시실이 있다.

총 3개의 전시실 밖에 없지만 하나하나가 수로재의 제1전시실과 맞먹는 크기이다. 비해당의 제1전시실은 순정효황후의 장지마을 내실을 재현했다. 황후는 6.25 전쟁으로 인해 해운대 장지마을로 피난을 갔다. 당시 거처하던 방인 ‘내실’을 재현한 전시실이다. 아쉽게도 나머지 2개의 전시실은 여러 채화들로 채워져 있지만 설명이 되어있지는 않다.

궁중채화박물관 밖에 조성된 폭포 정원(사진 : 취재기자 장광일).
궁중채화박물관 밖에 조성된 폭포 정원(사진 : 취재기자 장광일).

수로재의 뒷문, 카페와 제2·3·4 전시실을 가기 위한 문 바로 앞에 폭포 정원이 있다. 넓은 잔디밭과 시원한 폭포소리는 가을을 더 시원하게 느끼게 해준다. 다른 전시실에서 훑어보기만 하던 관람객들도 이곳에서는 멈춰 서서 사진을 꼭 찍고 간다. 가족사진을 찍던 임하림(12, 부산 금정구) 양은 “박물관이라서 재미없을 줄 알았는데, 다른 박물관이랑은 다르게 예쁜 거 같아요”라고 전했다.

보통의 박물관과는 다르게 자연 풍경을 즐기며 나들이 대신 온 관람객들이 많이 보인다. 또한 카페에서는 관람이 끝난 후 입장권을 제시하면 무료로 음료를 제공하고 있다. 카페 역시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지만 목조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고, 무형문화재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기에 작품이나 건물에 손상을 입힐 수 있는 행위는 주의해야 한다. 또한 박물관이 지정한 곳 외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한편 해당 박물관은 매주 월·화요일은 휴관일이며, 입장을 위해서는 예매가 필요하다. 현재는 에밀 갈레의 특별 전시로 인해 원래 1만 원이던 입장료를 할인하고 있다. 특별 전시는 올해 12월 3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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