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022부산비엔날레, 보고 듣고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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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2022부산비엔날레, 보고 듣고 새기다
  • 취재기자 황지환
  • 승인 2022.11.0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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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 위 우리’ - 부산비엔날레 주제로 역사·인간·정보·문명의 이동과 움직임을 작품화
오는 6일까지 부산현대미술관, 부산항 제 1부두, 영도, 초량등 4곳에서 열리고 있어
이주, 노동과 여성, 도시 생태계, 기후변화와 공간성 등 4개 테마로 국내외 작가 작품 전시
부산 근·현대사의 굴곡 살아 숨쉬는 부산항 제 1부두가 전시공간으로 선정된 것 자체가 의미

‘2022부산비엔날레-물결 위 우리’ 전시장 중 한 곳인 부산항 제1부두를 다녀왔다.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전시장 입구에는 관람객들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긴 줄을 이뤘다. 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도 눈에 보인다. 부산 비엔날레 전시회가 가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부산항 제 1부두 전시장은 폐쇄됐던 창고부지를 이용해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창고부지 면적은 약 4093㎡ 다.

2022부산비엔날레 전시회는 부산 현대 미술관, 부산항 제 1부두, 영도, 초량 등 네 곳에서 오는 6일까지 열린다. 매주 월요일은 전시장 네 곳 모두 휴관이다. 비엔날레(Biennale)란 ‘2년마다’ 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다. 현재는 전 세계 각지에서 2년마다 진행되는 대규모 미술 전시회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이번 부산항 전시관이 위치한 부산항 제1부두는 1912년 준공 이후 1937년까지 항만과 무역 및 여객부두로 기능했다. 한국전쟁 중에는 전쟁물자 조달, 피란민 수송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부산항 제1부두는 ‘한반도 제2의 도시’라 불리는 부산의 근·현대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북항 재개발공사가 한창인 이곳 부산항 일대에서 유일하게 비엔날레가 열리는 제1부두 창고부지만 재개발에서 제외된 것은 여러모로 의미깊다. 지난 2006년 부산신항이 건설됨에 따라 부산항 물류 기능이 분산되기 전까지만 해도, 부산항이 맡고 있던 부산 항만기능은 한반도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다.

2022 부산 비엔날레 물결 위 우리 포스터다(사진: 2022 부산 비엔날레 공식 웹사이트 캡처).
2022부산비엔날레 '물결 위 우리' 포스터다(사진: 2022부산비엔날레 공식 웹사이트 캡처).

2022부산비엔날레 전시회의 주제는 ‘물결 위 우리 (we, on the rising wave)’다. 물결은 단순히 바닷물이 일렁이는 시각적 의미보다 역사와 사람들의 이동 및 정보, 문명의 움직임 등 폭넓은 뜻을 갖는다. 이번 비엔날레 전시테마는 ‘이주’, ‘노동과 여성’, ‘도시 생태계’, ‘기술변화와 공간성’이다.

메간코프 작가의 ‘킹인야라 구윈얀바’. 나뭇가지를 엮고 경남 진해에서 채취한 굴 껍데기를 붙여놓았다. 작가는 자신의 고향 퀸다무카 처럼 한국 또한 과거 식민지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자는 뜻을 작품에 표현했다(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메간코프 작가의 ‘킹인야라 구윈얀바’. 나뭇가지를 엮고 경남 진해에서 채취한 굴 껍데기를 붙여놓았다. 작가는 자신의 고향 퀸다무카 처럼 한국 또한 과거 식민지의 아픔을 함께 공감한다는 뜻을 작품에 표현했다(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전시장 입구에서 맞은 첫 작품은 호주 퀸다무카 원주민 출신의 작가 ‘메간코프’의 작품 ‘킹인야라 구윈얀바’다. 그는 호주 원주민들의 굴 양식장을 그대로 옮겨오듯 44개의 뾰족한 나무를 천장에 매달아 걸고 거기에 굴 껍데기를 이어 붙였다. 굴 껍데기는 경남 진해에서 채집한 걸 그대로 이용했다. 경남 진해는 국내 굴 생산량의 85%를 차지하는 곳이다. 작가는 한국과 퀸다무카의 과거 식민지 시절의 아픔에 공감한다는 뜻을 작품에 표현했다고 한다. 굴은 퀸다무카의 식민지 시절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주식이었다.

제1부두 전시장은, 보통의 실내 미술관처럼 전시 공간의 경계가 나뉘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발 닿는 대로 눈길이 가는 대로 관람할 수 있다. 미술관 특유의 엄숙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유로운 분위기다. 그러나 소란스럽지 않다.

김주영 작가의 ‘길-심연’, 대형 광목이 천장에 매달려있고, 밑에 거울 타일이 깔려있다(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김주영 작가의 ‘제1부두의 고고학: 물결은 빛이 되다. 바람이 되다. 길이 되다. 역사가 되다’. 대형 광목이 천장에 매달려있고, 밑에 거울 타일이 깔려있다(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김주영 작가의‘길-심연’. 작업실에서 채집한 곤충과 새의 사체를 박제해 놓았다(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김주영 작가의 ‘제1부두의 고고학: 물결은 빛이 되다. 바람이 되다. 길이 되다. 역사가 되다’. 작업실에서 채집한 곤충과 새의 사체를 박제해 놓았다(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두 번째로 살펴본 작품은 국내 원로작가 김주영의 ‘제1부두의 고고학: 물결은 빛이 되다. 바람이 되다. 길이 되다. 역사가 되다’이다. 철거된 절터에서 가져온 목재와 대형 광목을 천장에 걸고, 밑에 거울 타일을 깔아놓았다. 작품 정중앙엔 자신을 상징하는 약 2m 길이의 나무관을 설치했다. 나무관 위에는 석고로 만든 작가 자신의 얼굴과 전시장 주변의 곤충 사체들, 작가의 작업실에서 채집한 새와 곤충의 사체를 박제해 전시했다. 작가 김주영은 작품을 통해 바다를 향해 영혼제를 지내는 것을 표현하려 했다. 작품 감상 중 어깨에 소름이 돋으며, 공동묘지에 와 있는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박제된 생물의 영혼이 고스란히 작품 속에 살아 움직이는듯했다.

화면 속 더 큰 세상

부산항 제1부두 전시장에는 유독 영상 작품이 많다. 곳곳에 놓인 작은 영화관을 연상시키는 대형 텔레비전과 빔 스크린 앞에는 작은 의자들을 설치했다. 일부 관람객은 작품이 아니라 잠시 앉아 쉬는 곳인가 생각하고 건너뛰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부산 비엔날레 전시팀 이지언 씨는 “화면을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을 시청하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스크린에서 나오는 영상도 전시 작품의 일부인 것이다.

오웬 라이언의 작품 ‘개소리’. 관람객들이 통 안에 들어가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오웬 라이언의 작품 ‘개소리’. 관람객들이 통 안에 들어가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영상 작품으로는 소설가 귄터 그라스의 작품 ‘양철북’을 모티브로 한 오웬 라이언의 ‘개소리’라는 작품이 있다. 작품명 ‘개소리’는 중세 영어 ‘Doggerel’에서 따왔다고 한다. 작가는 오스카의 눈을 통해 본 20세기 전반 유럽의 현황과 21세기 초반의 상황을 연결 지으며 3채널에 담아냈다. 산업혁명과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 세계는 빠르게 변화했다. 작가는 영상 속 내용뿐 아니라 영상의 속도 또한 급속도로 전개하며 작품의 몰입도를 높였다.

프랑스 작가 다비타 르제르의 작품 ‘밀물과 썰물 저 아래’(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프랑스 작가 타비타 르제르의 작품 ‘밀물과 썰물 저 아래’(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바로 옆에는 프랑스 출신 타비타 르제르의 작품 '밀물과 썰물 저 아래'가 있다. 작가는 심해 속에 설치된 수만 갈래의 광케이블을 통해 어마어마한 데이터가 오가는 것을 두고, 신(新) 전자 식민지가 이뤄지고 있다고 봤다. 결국 우리가 사는 현시대 또한 과거 제국 열강들이 약소국들을 식민지화하며 자원을 수탈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꼬집었다. 영상 속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 속에는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작가는 영상 속에 담아냈다.

김익현 작가의 작품‘빛 속으로’. 부산과 만주 봉천을 연결하던 열차 ‘히카리호’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강태훈 작가의 작품 ‘그들은 어디로 가나이까’(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한국 출신 작가 강태훈은 작품 ‘그들은 어디로 가나이까’에서 부산의 역사, 산업 형태의 변화와 건축물, 사건과 사람, 이주노동자들의 신체 등의 이미지를 컨테이너 형태의 구조물에 영사하며 시공간적으로 다른 장소와 사건을 중첩시킨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강태훈 작가는 전세계 도시를 가로지르면서 연결하는 컨테이너를 통해 부산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세계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되어 있는지를 살피면서 그 안에서 밀려난 몫 없는 자들의 삶을 드러내고 있다. 

대학생 김동현(25, 부산시 동구) 씨는 “학교 과제물인 전시회 감상 보고서 작성을 위해 비엔날레 전시장을 오게 됐는데, 처음에는 작품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며 “하지만 전시장을 몇 바퀴 돌고 나니 이제 좀 감이 잡혔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손에는 까만 글씨로 빼곡한 스프링 노트가 들려있었다.

전시장 한 바퀴를 다 돌아봤다는 생각이 들 때쯤, 거대한 작품하나가 눈에 띄었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작가 현남의 작품 ‘연환계’중 공중 전시 부분이다 (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국내에서 활동 중인 작가 현남의 작품 ‘연환계’ 중 공중 전시 부분이다 (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현남 작가의 ‘연환계’작품 중 지상에 전시된 배 닻과 사슬이다(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현남 작가의 ‘연환계’ 작품 중 지상에 전시된 배 닻과 사슬이다(사진: 취재기자 황지환).

현남 작가의 ‘연환계’는 작품명에서 알 수 있듯 중국의 고전소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계책 연환계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곳 부산항 제1부두 전시장(창고 부지)에 남아있던 오래된 배 닻을 활용했다. 또한 사슬에 묶인 대형 조각들은 바닷속 수십 킬로미터 아래에 뻗어있는 해저 케이블을 통해 비록 국가와 국가 간 경계를 나눠 살아가지만, 전 세계는 결국 이어져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 연환계는 제1부두 전시장 작품 중 가장 큰 면적을 차지했다.

이번 2022부산비엔날레 전시회에서 관람객에게 호평받은 것이 있다. 바로 2022비엔날레 공식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게재된 자세한 전시 정보 및 작가 소개란이다. 미술에 전혀 문외한인 이들도 아무런 준비 없이 관람을 위해 전시장에 방문했을 때, 특별한 어려움 없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준비돼있다. 전시장 입구에서 QR코드가 인쇄된 용지를 한 장씩 배부해 주는데,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어 들어가게 되면, 관련 작품 및 작가의 상세한 정보가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전시장 입구에서 배부하는 QR인쇄 용지를 꼭 챙겨 관람에 이용해보면 좋을듯하다.

부산항 제1부두와 부산 현대미술관 전시는 유료 관람인데, ‘초량’과 ‘영도’ 전시장은 무료다. 전시팀 이지언 씨는“ ‘현대미술관’과 ‘부산항 제1부두’의 경우 실내 공간에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영도 전시장은 야외에서 전시하는 작품이 대다수이고, 초량 전시관의 경우 단 하나의 작품만 전시하고 있어,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고 밝히며 “입장권 한 장을 예매하면, 부산항 제1부두 전시장과 현대미술관 두 곳을 모두 관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지언 씨는 코로나 이전의 전시와 코로나 발생 이후의 전시장 운영 방식에 관해 “비엔날레 전시회는 2년마다 열리기 때문에 햇수로 끝자리가 짝수일 때만 개최한다”며 “타 문화·예술 분야의 공연 및 전시회와 달리 비엔날레 전시회는 코로나 이후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이어 “이곳 부산항 제 1부두가 오랜만에 시민에게 개방되는 만큼 작품뿐 아니라 전시장 주변 부두의 풍경들도 눈에 담아가면 훨씬 풍성한 관람이 될 것”이라는 조언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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