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희귀한 대나무들과 수많은 생명이 깃들어 있는 400년 역사의 ‘아홉산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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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희귀한 대나무들과 수많은 생명이 깃들어 있는 400년 역사의 ‘아홉산숲’
  • 취재기자 탁세민
  • 승인 2022.11.0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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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아홉산 자락 50만 ㎡ 넓이에 한 가문이 9대 걸쳐 가꾼 울창한 대나무숲
일제, 해방과 전쟁을 거치고 지금도 묵묵히 숲을 가꾸어 온 문씨 집안의 고집 살아 쉼쉬어
한반도 남부 온/난대 수종의 연구림으로 2004년 산림청으로부터 ‘아름다운 숲’ 지정
‘군도’, ‘대호’, ‘협녀, 칼의 기억’, ‘달의 연인: 보보경심’등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유명

“아홉산숲 가십니까?” 부산 184번 버스를 타고 웅천역에서 하차 벨을 누르니 기사가 묻는다. 아홉산숲이 위치한 부산 웅천리는 버스 배차 간격이 커 자칫하면 버스를 놓치거나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잦다. 기사는 그런 버스 방문객들을 위해 웅천역에 내리는 승객들을 앞으로 불러 배차 시간이 적힌 작은 명함을 나눠주었다.

방문객들이 주말을 맞아 부산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에 위치한 아홉산숲에서 산책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탁세민).
방문객들이 주말을 맞아 부산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에 위치한 아홉산숲에서 산책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탁세민).

부산 기장군 철마면 아홉산 자락에는 한 집안에서 400년 가까이 가꾸고 지켜온 뜻깊은 숲이 자리해 있다. 입장료 5000원을 내고 들어갈 수 있는 그곳은 몇백 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숲답게 산토끼, 고라니, 꿩, 딱따구리 등 수많은 생명들이 깃들어 있다. “숲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살아있는 생태 공간입니다.” 팸플릿 표지에 적힌 문구처럼 아득한 옛날부터 일제강점기, 해방과 전쟁을 거치고 또 21세기에 들어서도 묵묵히 숲을 가꾸어 온 한 집안의 고집이 오늘날 훼손되지 않은 아름다운 숲을 지켜냈다.

아홉산숲을 지금까지 관리해온 이들은 남평 문씨 집안으로 9대에 걸쳐 400년간 이 숲을 가꿔왔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 숲을 지켜낸 것 역시 놀라운데 그 크기가 무려 50만 ㎡(15만여 평)에 달한다는 사실엔 감탄만 나올 뿐이다. 그리고 그 넓은 땅에 자리한 수많은 맹종죽, 편백나무, 금강소나무 군락이 숲의 전체적인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대나무들 역시 답답해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탁 트이고 안정된 느낌을 주어 평소 도심 속에서 잘 느끼지 못하는 자연의 맑고 상쾌한 공기를 느낄 수 있다.

아홉산숲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4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숲을 끝없이 연구하고 관찰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산림청으로부터 ‘아름다운 숲’ 지정을 받은 아홉산숲은 유원지나 관광지가 아니다. 한 집안에서 긴 세월 땀 흘려 가꾼 이 숲은 한반도 남부 온/난대 수종의 연구림이기도 하다.

아홉산 대나무숲에는 특별한 대나무도 있다. 그것은 바로 구갑죽이라는 대나무다. 구갑죽은 거북이 등모양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으로 높은 몸값을 자랑하며 희귀종에 속한다. 까만 오죽, 황금죽, 자죽 등 다양한 대나무들이 이 숲을 구성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구갑죽은 희소성이 높아 이 대나무를 보러 아홉산숲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최근에는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져 다른 곳에서도 자라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유일한 자생지다. 1950년대 말 이 집안의 문동길(文東吉) 어른이 중국, 일본을 거쳐 몇 뿌리를 이식해 자리를 잡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갑죽 마당에서는 구갑죽 대나무를 비롯해 100년이 넘은 배롱나무 역시 구경할 수 있다.

금강소나무 숲 역시 수령 400년의 소나무가 잘 보존된 영남 일원에서 보기 드문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외에도 116그루의 나무가 보호수 지정을 받았다. 금강소나무 숲과 붙어있는 굿터(맹종죽숲I) 역시 100여 년 전 중국에서 들여온 맹종죽을 처음 심은 곳이다. 오랜 세월 마을의 굿터 역할을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에게 영화 촬영지로 입소문이 난 그 장소가 바로 여기 굿터다. 이곳에서 영화 ‘군도’, ‘대호’, ‘협녀, 칼의 기억’ 등이 촬영됐다. 드넓은 땅과 나무들로 우거진 대나무 사이가 사람들의 포토 스팟이다.

굿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만평대숲(맹종죽숲II) 은 아홉산숲에서 가장 큰 규모로 무려 1만 ㎡(3000여 평) 정도의 크기이다. 이곳은 1960~70년 대 동래지역의 식당 잔반을 얻어오고 분뇨차를 불러들여 이를 비료 삼아 지금의 숲에 이르게 됐다. 드라마 ‘달의 연인: 보보경심’을 촬영한 배경지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1시간 30분 정도의 긴 코스를 돈 후 입구 쪽으로 내려오면 관미헌(觀薇軒) 이라는 한옥에 도착한다. 이곳은 산주 일가의 종택으로 ‘고사리조차 귀하게 본다’는 뜻을 가진 한옥이다. 숲에 비해 비교적 짧은 60년의 세월을 자랑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한옥의 외관 역시 무시하지 못한다. 못을 전혀 쓰지 않고 순전히 뒷산의 나무로만 지어진 이 한옥은 나무 땔감을 사용하는 아궁이와 함께 지금도 실제 생활하는 공간이다. 한옥을 장식하는 마당에는 1925년에 싹을 틔운 은행나무까지 자리해 있어 더욱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주말을 맞이해 가족들과 함께 아홉산숲으로 나들이를 온 회사원 최모(35, 부산시 수영구) 씨는 “날씨도 선선해지고 아이들과 산책을 하면 좋을 것 같아 찾아봤는데 마침 이곳이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해 새롭게 보였다”고 말했다.

방문객이 주말에 아홉산숲에 방문해 가족들과 함께 돌탑을 쌓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탁세민).
방문객이 주말에 아홉산숲에 방문해 가족들과 함께 돌탑을 쌓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탁세민).

방문객들은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각자만의 힐링 시간을 보냈다. 올라가는 길목에 자리한 돌탑에서 몇몇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돌을 쌓으며 소소한 재미를 찾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홉산 숲은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의 코스 길로 중간중간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들이 많아 어렵지 않게 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

4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희귀한 대나무들과 쾌적한 공기가 가득해 많은 사람들의 힐링 명소로 손꼽히는 아홉산숲, 생생한 생명이 깃든 이곳에 방문해 도심 속의 자연을 만끽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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