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 칼럼] 대통령의 언어, 리더의 대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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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 대통령의 언어, 리더의 대화법
  • 편집국장 송문석
  • 승인 2022.10.10 09: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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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부터 잦은 말실수에 불안정한 언행 보인 윤석열 대통령 지금도 변화된 모습 없어
1시간 중 59분을 대화 독점하고 깨알지식 자랑에 원로 조언도 내팽개친다는 폭로도 나와
대통령 언어는 정교하게 준비해 발화돼야 하며 국민을 설득하고 국민과 공감하는 힘 있어야
대통령이 입 열면 참모는 입 닫고 건설적인 정책과 의견은 나오기 힘들어 정부 실패는 필연적
대통령은 경청의 리더십 발휘해 입은 닫고 귀를 크게 열어 세상의 지혜 얻는다는 자세 가져야

당(唐)나라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은 학문을 좋아하고 논쟁에 능했다. 회의를 열기만 하면 고금의 문헌을 인용하며 신하들의 의견을 반박하고 힐난했다. 이에 신하 유계(劉洎)가 상소를 올렸다.

“성인은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덕이 있다는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노자(老子)는 ‘진짜 훌륭한 언변은 마치 어눌한 듯하다’고 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자비로운 얼굴로 마음을 비우고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더라도 감히 함부로 말을 못 할 텐데 신하들의 말을 일일이 논박하시니 신하들이 어찌 대응할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원하건대 웅변(雄辯)을 줄이시기 바랍니다.”

태종은 직접 조서를 작성해 유계의 상소에 답을 내렸다. “지금 훌륭한 말을 들으니 마음을 비워 고치도록 하겠다.”

‘정관정요’와 ‘자치통감’ 등에 나오는 태종 치세 정관 18년의 일화다. 중국 역사상 가장 부강했고 번영했다고 해서 ‘정관의 치’(627~649)라고 불리던 시대의 일이다. 그런 당 태종 이세민도 집권 말기 충신들의 충언을 듣지 않고 고구려를 침략하다 결국 안시성에서 양만춘 장군에게 대패해 스스로 수명을 단축한 것은 역사가 증언한다.

당 태종의 고사가 생각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다변가 기질이 용산 대통령실 참모들과의 회의에서도 여전히 발휘되고 있다는 전언 때문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대선 때 윤석열 캠프 대변인을 잠깐 했던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올린 글 때문이다.

이동훈
윤석열 대통령이 대화를 독점하고 타인의 조언이나 의견을 듣지 않는다는 폭로가 나왔다(사진: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SNS 캡처).

“1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합니다. 깨알 지식을 자랑합니다. 다른 사람 조언을 듣지 않습니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냐’며 화부터 냅니다. 옛일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이 전 위원은 중국 진나라 말 항우를 거론하며 “항우가 왜 실패했나. ‘스스로 공을 자랑하고 그 자신의 지혜만 믿었지 옛것을 본받지 않았다’는 사마천의 간단명료한 진단이 가슴을 때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어찌 됐나. 오년졸망기국(五年卒亡其國), 5년만에 쫄딱 망했다. 우연찮은 5라는 숫자가 한번 더 가슴을 때린다”며 “누군가의 얼굴이 바로 떠오른다. 큰일이다”고 적었다.

이 전 위원이 항우에 빗대며 ‘떠오른다는 얼굴’은 윤 대통령으로 추측된다. 항우가 5년만에 쪽딱 망했다며 가슴을 때린다는 ‘우연찮은 5년’은 대통령의 임기를 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윤 대통령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나 때문에 이긴거야. 나는 하늘이 낸 사람이야(라고 한다.)”는 말도 했다는 식으로 적어놓았다.

대통령 선거 전부터 잦은 말실수와 정제되지 않은 행동으로 평지풍파를 자주 일으킨 윤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불안하다. 대통령이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거꾸로 국민이 대통령의 언행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다. 언제 무슨 말실수가 터질지 째깍거리는 초시계를 바라보는 심정이다.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 그렇다고 하지만 6월 항쟁으로 얻은 직선제 개헌 이후 대통령이 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등은 모두 대통령을 처음 해봤다. 두세번 대통령을 한 사람들은 발췌개헌과 사사오입개헌, 3선개헌, 통일주체국민회의 체육관선거 후 7년 단임제 개헌, 쿠데타와 비상식적인 헌법유린 등을 자행해 역사적으로 불행한 말로를 자초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직을 잘 수행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노심초사 준비하느냐다. 특히 스스로 “1년여 전에 정치를 시작했다”고 할 만큼 ‘정치 초짜’라면 밤잠을 안자고 준비하고 또 노력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게 준비하고 노력하더라도 신이 아닌 한 어느 누구라도 모든 일을 다 잘 알고 다 잘 할 수는 없다. 결국 전문가들의 말을 듣고 참모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 지혜를 모으고 매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려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토론을 주도하고 회의를 독점한다는 소리는 오래 전부터 흘러나왔다. 최근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참모들과 하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 비중이 70%는 될 것이라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이 전해졌다. 그런데 이동훈 전 위원의 말은 70%가 아니라 회의시간의 98%를 윤 대통령이 독점한다는 소리다. 이렇게 되면 토론이나 회의가 아니라 대통령의 일방적인 지시나 전달사항을 받아적은 학습장이고 교시장일 뿐이다.

윤 대통령은 9수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늦은 나이에 검사 생활을 하다 보니 검찰 내에서 ‘석열이 형’으로 불린데다 특유의 친화력에다 두주불사형 애주가들의 특징대로 좌중을 휘어잡고 대화를 주도했다고 한다. 대학생 때부터 오지랖 넓어 친구들이 많이 따랐고, 서울대 법대 위아래 10년 기수 선후배가 윤석열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만큼 유명했다고 하니 그 바탕에는 사람 좋아하는 천성과 화려한 말솜씨가 기본 양념으로 버무려져 인간 윤석열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검사 윤석열의 말과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의 말은 달라야 한다. 윤 대통령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거친 말투가 검사 말버릇이 남아서 그렇다고 한다. 이준석 전 대표가 윤 대통령에 대해 “술자리에서 당 대표에 대해 이XX 저XX라고...” 했다는 폭로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 ‘이 XX들’이란 거친 비속어가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이번엔 외교적 행사가 열린 미국에서다.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치고 퇴장하는 길에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고(면) ○○○ 쪽팔려서 어떡하지”라는 발언이 취재기자 카메라에 담겼다. 여의도에서는 ‘바이든’으로 들리냐, ‘날리면’으로 들리냐를 두고 듣기평가를 하고 있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 XX들’ ‘쪽팔려서‘ 같은 표현이 대통령의 입에서 버젓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럽고 ‘쪽팔린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 관련 화면을 공개하며 발언하고 있다. /국회=이새롬 기자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 관련 화면을 공개하며 발언하고 있다(사진: 더팩트 제공).

거친 말버릇이나 비속어를 쓰는 건 일반적으로 집단 내 소속감이나 결속력을 강화하는 수단이다. 아이들 또래집단에서 욕설이 난무하거나 건달집단에 살벌한 어휘가 난무한 것도 그런 이유다. 검사나 형사들의 입이 거친 것도 비슷하다.

대통령의 말은 대통령실 내부가 아닌 국민을 향해야 한다. 대통령실 안에서 아무리 잘난 체하고 큰소리쳐봐야 이불 속의 활갯짓이고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대통령의 말은 국민을 설득하고 하나로 모으는 결집의 말이어야 한다. 따라서 거친 말이나 비속어가 아닌 설득의 언어여야 하고 감동의 말이어야 한다. 오랜 검사 생활을 하면서 온갖 사건들을 수사하고 범죄자들을 다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상만사 모든 걸 꿰뚫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검사의 세계와 정치의 세계는 다르고, 검사의 자리와 대통령의 자리는 하늘과 땅 만큼 거리가 멀다. 기본적으로 정치는 대화와 설득의 기술이 작동하는 영역이고, 대통령은 국민의 소리를 듣고 다시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자리다.

한비자는 군주(리더)가 신하들의 의견을 제대로 들으려면 얼굴 표정조차도 드러내지 말라고 했다. 한비자는 “의견을 듣는 방법은 심하게 취한 듯한 모습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면서 “신하가 입술을 열고 말문을 트도록 군주가 먼저 시작하지 않는다. 신하가 말문을 트고 입술을 열도록 군주는 더욱 흐릿한 모습으로 듣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래야 신하들이 의견을 내고 분석하게 되며, 군주는 이를 통해 신하들의 의견을 상세하고 철저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경청의 지혜는 성공한 기업가들 역시 터득하고 있다. GM의 알프레드 슬로안 전 회장은 회의 안건을 소개하기만 할 뿐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3M의 최고경영자였던 리비오 드시몬 역시 경영회의에서 자신은 입을 꾹 다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여기에다 직원들의 지혜를 듣기위해 경영회의에 참석하고 싶은 사람은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참석할 수 있도록 공개했다. GE의 회장 제프리 이멜트는 경청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했다.

“회의를 하다보면 이미 내 머릿속에는 의사 결정의 답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생각하는 답을 말하지 않고 조용히 듣는다. 회의 참석자들이 스스로 정답을 찾도록 그냥 놔두는 것이다. 때로는 내가 말하지 않고 그냥 듣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통령이 말을 하면 참모들이 입을 닫는다. 대통령이 먼저 입을 여는 순간 회의는 초장에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참모들은 대통령이 말하는 의도를 머릿속에서 굴리며 결론을 벌써 내린다. 여기에 생산적 토론이 들어설 틈이 없다. 어느 누가 대통령의 말에 토를 달고 ‘아니올시다’를 외칠 수 있겠는가? 혹여 한두 번 반기를 든 참모가 있을 수 있겠으나 대통령이 외면을 한다든가 1시간 회의중 59분을 독차지하는 정도라면 다음부터는 가만히 앉아서 수첩에 받아적는 게 자리를 보전하는 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회의에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없고 정상적인 국정 계획이 생산될 수가 없다. 설익고 어설픈 정책만이 나올 뿐이다. 실패한 정부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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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VIC뉴스 2022-10-10 12:27:10
참 날카로운 지적, 적절한 경고다, 그 검사시절 어투로 무엇을 얻고, 또 잃는지 전혀 깨우치지 못하는가, 차라리 한 1년, 참선하듯 침묵 모드로 가는건 또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