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범 칼럼] ‘붉은 지구’의 복수; 인류의 종말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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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범 칼럼] ‘붉은 지구’의 복수; 인류의 종말을 향하여
  • CIVIC뉴스 칼럼니스트 차용범
  • 승인 2022.09.1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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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지구’에서 ‘붉은 지구’까지

지구는 어떤 색깔일까? 인간이 우주에서 본 지구의 첫 모습, ‘지구돋이(Earthrise)'의 지구는 푸르다. 1968년 12월 24일, 인류 최초의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아폴로 8호’에서 찍은 사진 속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으로 표현할 만큼 연약했다. 울퉁불퉁한 달 표면 위로 아름다운 지구가 떠오르는 광경은 인류에게 극적인 조망 효과를 줬다. ’타임’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 중 하나로, 항공우주사(史)의 중요한 상징이다.

1972년 12월, 아폴로 17호 승조원이 달로 가다 되돌아본 지구 역시 캄캄한 우주를 배경으로 떠 있는 푸르고 연약한 모습이다. 그 ‘블루마블’(푸른 구슬)은 너무 아름다워서 ‘가장 아름다운 지구 사진’ 베스트 3에 올라 있다. 이 우주사진들이 주는 의미는 컸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地動說) 이래 500년 만에, 인류가 지구의 연약한 모습을 눈으로 보기에 이른 것이다.

인간이 우주에서 본 지구의 첫 모습 ‘지구돋이’(사진 아래)와 ‘블루마블’(사진 위). 그 지구는 푸르고 연약한 모습이다(구글이미지).
인간이 우주에서 본 지구의 첫 모습 ‘지구돋이’(사진 아래)와 ‘블루마블’(사진 위). 그 지구는 푸르고 연약한 모습이다(구글이미지).

인류가 푸르고 아름다운 ‘블루마블’을 본지 50년-. 그 지구는 검붉게 끓고 있는 ‘붉은 지구’로 변모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지구관측시스템이 공개한 그 충격적 영상, 보는 것만으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세계 전역에서 극심한 폭염과 대형 산불, 강력한 태풍과 기록적 폭우가 겹치는 것은 이미 지구적 일상이다. NASA는 여러 위성이 파악한 전 지구 모델 자료를 통해 인류가 직면한 기후재앙의 실상을 제시했다.

그 지구, 색이 붉을수록 기온은 높다. 가장 검붉은 영역은 섭씨 40도 이상을 나타낸다. 영상에 나타나듯 지구 곳곳에서 기록적 폭염이 한창이다. 미국 대평원 지역에선 최고기온 46도에 이르는 폭염이 이어졌다. 유럽-북아프리카에서 중동-동아시아까지, 최고기온 52도를 기록하는 폭염으로 펄펄 끓고 있다. 인간활동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그에 따른 극심한 날씨 변화의 직접적 영향을 확인할 명백한 지표다.

NASA 지구관측시스템이 분석한 최근 지구의 검붉게 끓는 모습(사진; NASA 홈페이지).
NASA 지구관측시스템이 분석한 최근 지구의 검붉게 끓는 모습(사진; NASA 홈페이지).

기상재앙의 일상화 시대

폭염, 가뭄, 산불, 태풍, 홍수…, 벌써 기상재앙의 일상화 시대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올여름 서울의 최고기온은 35.1도, 경북 의성은 37.2도를 기록했다. 폭염과 가뭄, 폭우와 홍수는 한국에서도 일상이다. 최근 서울 동작구엔 시간당 최고 136.5㎜의 비가 내렸다. 1942년 이래 80년 만의 기록 경신이다. 온대 기후의 서울에서 아열대 기후의 스콜(squall) 같은 비가 잦아지고 있다.

'나사 지구관측소'(NASA Earth Observatory)는 최근 '오늘의 사진'으로 우주에서 촬영한 제11호 태풍 힌남노 사진을 꼽았다. 대만 인근에서 북상 중인 힌남노 모습과 그 한가운데 선명한 '태풍의 눈'(사진; NASA 지구관측소 홈페이지).
'나사 지구관측소'(NASA Earth Observatory)는 최근 '오늘의 사진'으로 우주에서 촬영한 제11호 태풍 힌남노 사진을 꼽았다. 대만 인근에서 북상 중인 힌남노 모습과 그 한가운데 선명한 '태풍의 눈'(사진; NASA 지구관측소 홈페이지).

유럽은 사상 최악의 폭염과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여러 나라가 벌써 물 사용을 제한하는 강도 높은 조치를 도입하고 있다. 영국 런던은 1659년 날씨 기록 이래 초유의 기록을 썼고, 프랑스에서는 송수관이 말라 식수 공급이 끊겼다. 독일에선 라인강의 수위가 낮아져 화물 수송에 타격을 입고 전력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사진 위)극심한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는 프랑스에서 파리 콩코르드 광장 분수대가 물 부족으로 운영이 중단되자 당초 물이 나와야 할 곳에 3일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다(AP)  (사진 아래)유럽 사상 최악의 폭염과 가뭄에 스페인ㆍ프랑스 등엔 산불이 크게 번졌다(사진: 지난 7월 프랑스 오스탕에서 발생한 산불(로이터).
(사진 위)프랑스 파리 콩코르드 광장 분수대. 물이 나와야 할 곳에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다(AP).  (아래)유럽 사상 최악의 폭염과 가뭄에 스페인ㆍ프랑스 등엔 산불이 크게 번졌다(프랑스 오스탕 산불(로이터).

한반도에 태풍 ‘힌남노’가 몰아닥쳤을 때, 미국 동남부에서는 200년 만의 물난리가 나고 서부는 기록적 폭염에 시달렸다. 동남부 조지아주에선 330㎜의 집중폭우가 쏟아졌다. 서부 캘리포니아주는 협곡지대 센트럴밸리의 기온이 섭씨 46.1도까지 치솟았다. 데스밸리 국립공원에선 폭우 뒤의 홍수가 발생, 관광객이 고립당하는 소동을 빚었다. 데스밸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덥고 메마른 땅’이다. 이 지역에 하루 371mm에 달하는 기록적 폭우가 쏟아졌다.

그랜드캐년의 물을 모은 미드호(湖)의 수위가 낮아지고 바닥이 메말라 쩍쩍 갈라졌다. 미국 서부 4,000만 명에 식수를 공급하는 거대한 호수에서의 일이다. 파키스탄은 지난 6월부터 석 달간 계속된 ‘몬순(우기) 대홍수’로 1,100명이 사망했고 가옥 100만여 채가 부서졌다. 폭우 피해 영역은 국토의 3분의 1에 이른다.

유럽 알프스에서 눈을 보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알프스(Alps)의 어원은 라틴어 ‘알버스(albus)’, ‘흰색’이란 뜻이다. 만년설로 덮인 하얀 산맥, 그 알프스의 눈과 빙하가 날로 녹으면서 하얀 옷을 벗고 있다. 알프스산맥 일부 지역 기온이 섭씨 30도에 육박하며, 빙점 고도(눈이 어는 높이)가 5184m까지 상승했다.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 만년설도 버틸 수 없다. 남·북극의 얼음도 예측보다 훨씬 빨리 녹고 있다.

(사진 위)스위스 알프스산맥에 있는 마터호른산의 올여름 모습. 눈이 많이 녹아서 알프스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아래)스위스 융프라우의 지난해 여름 모습(사진; 스위스기상청 트위터 캡처).
(사진 위)스위스 알프스산맥에 있는 마터호른산의 올여름 모습. 눈이 많이 녹아서 알프스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아래)스위스 융프라우의 지난해 여름 모습(사진; 스위스기상청 트위터 캡처).

기후 위기, 선 넘었다

‘브레이킹 바운드리스(Breaking Boundless)-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담대한 과학'. 지구 과학 및 지속 가능성을 연구한 두 과학자의 최근 역저다. ‘기후 위기, 선 넘었다…뜨거운 지구에 보내는 섬뜩한 경고’-책의 카피처럼, 기후위기의 섬뜩한 실상을 경고하며 지구를 살려갈 방법을 모색한다. 저자들은 강조한다. 전 지구적․지질학적 규모로 급변하는 지구 환경 속에서, 이데올로기에 치우친 환경 근본주의적 주장이 아닌, 인류생존의 전제며 지속가능한 발전의 한계를 살필 과학적 방법을 찾아가야 하리라고.

저자들은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의 책임이 인간에게 있음을 되새긴다. 인류에 의한 지구 온난화로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지구의 악순환 경로가 만들어졌다, 핵심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증가다. 그 증가량은 2021년, 지구의 위험 한계선(티핑 포인트)을 넘어섰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려면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은 ‘불가능’이 아니라 ‘불가피’해야 한다, 인류의 안전한 생존은 앞으로 10년이 결정적이다. 지구와 인류를 지킬 담대한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급변하는 지구 환경 속 생태계를 지킬 담대한 전환을 촉구한 역저 ‘브레이킹 바운드리스’ 표지).
급변하는 지구 환경 속 생태계를 지킬 담대한 전환을 촉구한 역저 ‘브레이킹 바운드리스’ 표지).

‘지구 평균온도 1.5℃ 내 유지를 위한 마지막 희망’-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 2021)에 걸었던 기대다. 세계 정상들은 7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지구 온도 1.5℃ 내 제한’(목표연도 2050년)에 합의했다. 지난 해 회의의 핵심의제 역시 ‘탄소배출 제로(Net Zero)’ 확보다. 그러나, 성과는 회의적이다. 목적을 향한 노력은 부족하고, 실행 가능성은 적다.

지구 온난화는 이미 1.2도를 넘어섰다. 우리가 돌아올 수 없는 위험지대, 즉 ‘티핑 포인트’까지, 단 0.3°C가 남아있다. 이 지점을 넘어서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 지점 너머는‘ 찜통 지구(Hothouse earth)’, 인류 문명은 물론 인류 자체가 멸종할 수 있다. 앞으로 10년 내, 지금의 한계 안에서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 지구-인류-생태계가 직면한 진실에 더 가까이 접근하며, 함께 해야 할 일을 찾아가야 한다….


기후재앙 날로 악화, 어디로?

‘지구상에 안전한 사람은 없다’(NYT), ‘불타는 산, 불타는 지구’(에마뉘엘 마크롱), '인류가 깊은 구렁텅이에 빠졌다'(안토니우 구흐테스)․․․. 세계적 폭염과 대홍수․대화재를 본 저명 언론과 유명 인사의 경고다. 우리의 삶터, ’하나뿐인 지구‘가 온난화⇨기후변화⇨기후위기⇨기상재앙의 파멸적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그 파멸을 피할 노력은, 실패할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의 노력은, 분명 실패할 것 같다(차용범).

그렇다. 글쓴이가 한창 환경 칼럼을 쓰던 30년 전만 해도, 문제의 초점은 그저 ‘환경오염’ 정도였다. ‘후손들의 미래’를 무시한 채 ‘눈앞의 배부름’만을 생각하는 세대, ‘사회적 환경’을 외면한 채 ‘물질적 확장’만을 고집하는 시대였다. 우리는 파렴치한 착취의 궁극적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채 하나의 ‘말세(末世)’를 재촉하는 현대문명 속의 눈먼 세대임을 한탄했다. 그동안, 우리는 절실한 대전환은커녕, 지구의 종말을 걱정하는 단계에 이른 것 같다.

우선, 지난 정부의 노력은 실패했다. 국가․국민의 오늘-내일을 걱정하기보단, ‘탈원전’ 같은 미망(迷妄)의 이념적 투사로 행동한 결과다. 대통령의 글래스고우 COP26 약속부터 그렇다. 우리의 '탄소배출 제로화‘ 계획은 구체적 실행계획 없이, 공격적․선언적 목표에 의지했다. 그 계획을 다룰 2050탄소중립위는 지난해 26차례 회의를 열고도 회의록은 단 한 건 작성하지 않았다. 선언적 목표를 제시하며 사회적 의견수렴은 외면한 그 무책임, 그저 허망하다.

“전문가가 꼽은 차기 정부 최우선 과제는 ‘기후․에너지’”-지난 대선 전 국내 행정․정책 전문가들이 꼽은 핵심과제다. 전 정부의 기후위기 정책이 목표만 있을 뿐 수단이 없는 점을 지적했다. 현 정부 정책은? ‘탈원전 폐기’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코로나19보다 기후변화 해결이 더 어렵다"고 경고한(빌 게이츠) 국면에서 원전의 중요성에 주목했긴 했지만,  전 지구적 기상재앙 앞에서 그 '기상재앙'을 제대로 경계하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인류 생존의 시험기, 우리의 선택은?

‘기후재앙 눈앞에 보다’-‘중앙일보’ 창간 55주년 특별기획 영상은 전 세계 기후재앙의 현장을 360도 VR 영상으로 담고 있다. 사라지는 그린란드 빙하와 죽어가는 호주 그레이트배리어리프 산호초, 한라산 구상나무의 멸종, 망가져 가는 제주 바다부터, ‘사라지는 빙하의 습격…10년 뒤 인천공항 완전히 집어삼킬 판’까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등에서는 최근, 전 세계적 사회 붕괴나 인류 멸종 시나리오까지 포함하는 연구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후재앙 눈앞에 보다’ 기록영상 표지(중앙일보).
‘기후재앙 눈앞에 보다’ 기록영상 표지(중앙일보).

전 세계적 사회 붕괴나 인류 멸종은 결코 허황한 시나리오는 아닌 것 같다. 오죽하면, 기상재앙을 연구하는 국가-조직-전문가 사이에서 개인별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할당하자는 논의까지 나오겠나. 실제 스웨덴의 KTH 왕립 기술연구소와 영국 옥스퍼드대 환경변화연구소 등은 '네이처 지속가능성' 저널에 개인 탄소 허용량(PCA)을 정하면 온실가스 감축에 도움이 되리라는 논문을 싣기도 했다. 그 가능성?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기술적 성공은 가능하다.

우리에게, 당장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악화일로의 기상재앙을 보는 진실에의 인식이 낮고 취해야 할 행동에의 절박성이 부족하다 일상적으로 기상재앙을 겪으면서도 지구 종말에의 경고를 방치하며 불가피한 대응을 외면하는 것이다. 미래학에서 말하는 ‘블랙 엘리펀트’, 실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위기에 대응하지 않아 재난을 키워가는 현상이다. 특히,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지수는 조사대상 61개국 중 58위~53위, 최하위권이다. 전 세계가 나서야 할 전쟁에서,  한국 사회는 아직 무관심하다는 반증이다. 언론 역시, 시나브로 '개인의 노력'을 깨우칠 뿐 정부 차원의 정책적 대처를 촉구하기에 미약하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의 유명한 묘비명이다. ‘알고도 못 한 일’에 대한 한탄, 그 후회를 무덤까지 가져가는 허무하고 해학적인 표현이다. 생각해 보라. 생각도 못 한 천재지변을 당하면 황망스러울 지라도 후회할 건 없으리. 하지만 뻔히 알고도 방치하다 스스로 키운 재앙과 맞닥뜨리는 일만큼 뼈아픈 일도 없을 터이다(박형수). 우리, 인류와 지구의 종말을 다투는 위기 앞에서, 이념과 안일에 쫒기며 ‘우물쭈물’의 후회를 키우는 건 아닐까?

우리는 생존을 건 시험대에 올랐다. 인류와 지구의 종말 앞에서, 그저 정부 차원의 대책을 믿으며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순 없다(이택광). 그럴수록 불확실한 가정과 이념보다는 사실과 과학에 기반한 선택을 서둘러야 한다. 정견․이념을 초월한 인류 생존의 문제 앞에서, 우선 ‘탈정치화’가 필요하다. 전 지구가 탈탄소와 에너지 안보를 함께 걱정하는 시대다. 개인-국가 차원의 대응에 서로를 설득하며 함께 나서야 할 때다. 우리, 꼭 죽어봐야 죽는 줄 아는, 그런 무지몽매한 세대로 살아갈 순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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