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정신과 노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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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정신과 노는 문화
  • 경성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우병동
  • 승인 2013.01.16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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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생활은 일하는 것과 노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동(work)이 삶의 중요한 기둥이지만 유희(play) 또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이다. 죽도록 일만 해 젊은 나이에 높은 자리에 올랐어도 한순간에 목숨을 잃는 이가 있는가 하면 놀기만 좋아하다가 평생을 허송세월하고 쓸모없이 죽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사람은 적당히 쉬어가면서 일을 해야 건강과 함께 적절한 성취를 이루게 된다.

과거 우리에게는 열심히 일하던 시대가 있었다. '새벽종'을 들으면서 일어나 하루 종일 일하고, 그것도 모자라 2교대 3교대로 밤을 새우면서까지 일에 매달렸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숨 막히는 열사의 사막에서 목숨과 젊음을 내걸고 죽을둥 살둥 일한 대가로 돈을 벌어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 젊은 사람들의 목표는 남보다 열심히 일해서 하루빨리 승진하는 것이었고, 나라의 목표는 가난에서 벗어나 성장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의 코드는 근면과 발전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20여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어서는 초고속 성장을 일구었다. 하지만 이는 국민 개개인의 인권과 행복을 무시한 집단의 성취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고 어려움이 있어도 불평하지 못하는 힘든 상황이었다. 성장의 열매는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아 있는 사람은 더 많이 갖고 서민들은 상대적 빈곤감에 사로잡혔다. 개인의 생활은 여유가 없었고 누려야 할 인간적 가치와 문화의 혜택은 유보되는 힘든 세월이었다. 이러한 억압과 통제의 누적은 당연히 반발과 반작용을 불러와 우리 사회는 민주화의 열풍에 휩싸였고 자연스럽게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자유분방한 사회가 만들어졌다.

이제 우리는 누구도 전체의 목표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 않으려 한다. 개인은 자신의 권리를 추구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여유와 놀이를 찾는 데 더 열중하는 사회다. 사람들은 이제 일이든 놀이든 재미가 없으면 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아마도 놀이라는 말일 것이다. '산수야 놀자' '영어 놀이 동산' 등 아이들 공부에서부터 시작해서 넘쳐나는 매스컴의 유흥(entertainment) 콘텐츠, 거기에 더해 어른들의 사행성 놀이 게임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전체가 놀이 문화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권리와 요구는 이제 도를 넘어 성실하게 일하기보다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행성 욕구가 팽배하다. 젊은이들은 땀 흘리지 않고 앉아서 편안히 일하거나 그럴듯해 보이는 일자리, 재미있는 일거리를 찾는다. 근로자들도 일해서 기업을 키우기보다는 벌어들인 돈을 더 많이 배분받는 데 더욱 관심이 많다. 이러니 기업가가 투자를 하지 않게 되고 기업을 의욕적으로 키우기 앞서 돈을 쌓아놓고 눈치만 보는 상황이다.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복권이나 경마 경륜 등 각종 도박과 '바다이야기'라는 한심한 사행성 게임이 이런 현상을 너무나 잘 반영한다.

70~80년대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었던 홍콩과 대만, 싱가포르가 4~5년 만에 국민소득 2만달러를 훌쩍 넘어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음에도 우리는 10여년 동안 여전히 1만달러대에서 맴도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들이 열심히 일할 때 우리는 자기의 몫을 찾는 데 열중하고 일하기보다는 노는 데 열심이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게 아닌가.

우리가 과거 어려움에 대한 반작용으로 여유와 놀이를 찾는 것은 이해가 된다. 새 시대의 경제가 육체노동이 아니라 정신노동과 서비스산업을 중심으로 발전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IT산업에 이어 BT, CT 등 기술과 문화가 미래의 성장동력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자칫 그러한 분위기가 우리의 정신을 근면과 성실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외양과 여유를 찾는 것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우리 경제가 성장하기도 전에 늙어버렸다는 여러 연구기관의 진단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아직 우리는 그렇게 노는 데만 열중할 때가 아니다. 열심히 일해서 파이를 더 키워놓고 그 다음에 제 몫을 찾고 재미있게 즐겨야 정말로 행복해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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