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 칼럼] 경이로운 한라산, 말라버린 백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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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칼럼] 경이로운 한라산, 말라버린 백록담
  • 박창희 논설주간
  • 승인 2022.07.1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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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가 가져온 백록담의 고갈 현상, 생태계 변화 실감
구상나무 계속 감소... 일부 몰지각 등산객 쓰레기 마구 버려
기후위기 행동으로 한라산의 자유 평화 치유의 힘 다시 생각

#첫 한라산 트레킹

마른장마가 이어진 지난 6월 말, 한라산을 올라 백록담을 봤다. 감개무량도 잠시, 백록담에 물이 없어 급실망했다. 갈증이 겹쳐왔다. 백두산 천지를 연상하고 약 5시간을 죽을 힘을 다해 오른 백록담에 물이 없다니! 하늘의 심술인가, 자연의 반격인가? 한라(漢拏)의 백록(白鹿). 하늘의 물을 먹으러 찾아온다는 흰사슴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놀랍고 쓸쓸한 풍경. 아, 한라산이여!

난생처럼 올라본 한라산 정상이다. 내심 감격했다. 부실한 무릎 관절을 달래며 한 발 두 발 오를 때만 해도 머릿속엔 백록담 물이 찰랑찰랑 했다. 그런데 막상 마른 백록담을 마주하자 생각이 복잡해졌다. 자연의 순환 고리가 헝클어진 모습이기 때문이다. 

얘길 들어보니 마른 백록담이 아주 낯선 풍경은 아니다. 최근 들어 백록담은 만수위는 별로 없고 자주 바닥을 드러낸다고 한다. 한라산의 상징이자 명물인 구상나무가 급감했다는 보고도 나왔었다. 뭔가 심상찮은 변화 조짐들이다. 

한라산 최고봉인 백록담의 여름 풍경. 물이 없어 바닥이 훤히 보인다(사진: 취재기자 박창희).
한라산 최고봉인 백록담의 여름 풍경. 물이 없어 바닥이 훤히 보인다(사진: 취재기자 박창희).

이게 다 기후위기 때문이란다. 하고 보니 요즘 기상예측도 빗나가기 일쑤다. 실제로 한라산을 오른 날 일기예보는 한 두 차례 게릴라성 소나기가 온다고 했으나, 하늘은 구름만 일렁거렸을 뿐 말짱했다. 그 바람에 챙겨간 우산과 우의는 짐이 됐다.

한라산의 변화 징후를 두고 제주 사람들은 “설문대할망이 노한 것 같다”고도 말한다. 설문대할망은 신통력으로 제주도를 빚었다는 전설 속의 여신. 백록담은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에 걸터앉기 불편해 꼭대기를 뜯어 던진 것이고, 그 파편이 산방산이란 이야기도 전해진다. 설문대할망이 노해 생태계를 뒤흔든다?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앞으로도 큰 비가 오지 않으면 마른 백록담은 일상적 풍경이 될지 모른다. 끔찍한 일이다. 

#까마귀와 등산객

오전 6시께 성판악에서 출발했다. 초입부 4~5㎞는 거의 평탄한 숲길. 콧노래가 나왔다. 서서히 오르막이 나타났고 돌길이 이어졌다. 출발한지 2시간 반만에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했다. 에너지 보충을 위해 간식을 풀자 어디선가 까마귀 몇 마리가 날아와 데크 울타리에 오도카니 앉아 먹이감을 노려본다. 대피소 입구에 ‘까마귀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은 걸 봤다. 겁이 덜컥 났다. 에너지바를 감춘 채 먹는다. 까마귀 눈치보는 치사한 인간. 야생을 잘못 길들인 대가를 치르고 있다.

한라산의 정상 부근의 구상나무 군락지. 갈수록 줄어든다는 보고가 나왔다(사진: 취재기자 박창희).
한라산의 정상 부근의 구상나무 군락지. 기괴한 모습이지만 아름답다. 죽어가는 구상나무가 많다고 한다(사진: 취재기자 박창희).

정상에 근접할수록 길이 더욱 가팔라진다. 해발 1,700m 부근. 한라산의 희귀종 구상나무 군락지를 만난다. 초록 나무들 사이로 죽어서도 꼿꼿함을 잃지않는 고사목들이 즐비하다. 마치 쥬라기공원에 온듯한 기괴한 풍경. 고사목들이 놀라운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구상나무의 고사 및 생장쇠퇴 현상이 심각한 모양이다.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의 조사를 보니, 2017년 한라산국립공원 내 구상나무의 개체수는 30만 7,388그루. 그후 4년 사이 1만 3,000여 그루가 고사했다. 이 역시 원인은 가뭄과 태풍의 증가 등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한다.  

#마른 백록담의 전언

드디어 한라산 정상, 백록담(1,947m)이다. 출발한지 약 5시간 만이다. 오, 일망무제(一望無際)! 등산로 아래에 뭉게구름이 넘실거린다. 절대경관이다. 모든 게 한라산 휘하다. 이토록 시원한 눈맛을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져 하늘을 날 것 같다. 왜 사람들이 “한라산, 한라산”이라 외는지 이제 알겠다.

백록담의 대분화구는 생각보다 작았지만 볼수록 경이로웠다. 물고기가 살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이곳의 자연생태계는 특급 연구 대상이다. 국가적으로 명승 제90호, 천연기념물 제182호(한라산)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이유다.  

백록담이 마른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거론된다. 백두산 천지의 물이 지하수가 유입된 것이라면, 백록담의 물은 빗물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가뭄이 길면 지하수로 유출되어 곧잘 마른다고 한다. 토사가 무너져 내려 하상이 높아진 것도 이유로 꼽힌다. 물그릇이 작아졌다는 얘기다. 한때 백록담 유지를 위해 지하암반을 콘크리트로 보강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그건 안될 말이다. 자연보호를 위해 자연 원형을 훼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백록담이 마르는 포괄적인 원인은 바로 기후변화다. 이는 전문가들의 거의 일치된 진단이다. 결국 인간이 문제다. 기후위기를 뻔히 보면서도 우리 인간은 반성과 성찰이 없다. 코로나 19의 기세가 한풀 꺾이면서 한라산을 찾은 사람이 올 상반기에만 43만 여명이다. 이들이 버린 쓰레기는 산더미를 이룬다. 최근 한라산 관리사무소는 백록담 일대에서 하룻동안 5톤 가량의 쓰레기를 수거했다. 일부 몰지각한 등산객은 출입금지구역인 백록담으로 몰래 들어가 약초를 캐거나 사진을 찍기도 한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주의, 편의주의 앞에 세계자연유산이 신음하는 모습이다. 

이제 기후위기는 제주를 빚어낸 설문대할망도 어쩌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물 없는 백록담은 쓸쓸하다. 시인 정지용은 이런 사태를 일찍이 예측한 것일까.

‘가재도 기지 않는 백록담 푸른 물에 하늘이 돈다. 불구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쫓겨온 실구름 일말에도 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굴에 한나절 포긴 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조차 잊었더니라.’(정지용의 시 ‘백록담’ 부분, 1941년)

한라산 등산객들은 백록담 표지석에서 흔히 인증샷을 찍는다(사진: 취재기자 박창희).
한라산 등산객들은 백록담 표지석에서 흔히 인증샷을 찍는다(사진: 취재기자 박창희).

#치유의 힘 찾기

정상에서 약 1시간 정도 머물렀다. 발길을 돌려야 했다. 말라버린 분화구가 ‘물 좀 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한라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갈 때가 더 힘들다고 한다. 올라본 사람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하산 길은 관음사 코스를 택했다. 하산 풍광이 좋다는 정보에 기댄 판단이었으나, 내려오면서 이내 후회했다. 수려한 풍광은 잠시, 길고 긴 내리막과 가파른 데크 계단, 그리고 무지막지한 너덜길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급기야 무릎 관절에서 이상신호가 왔다. 악전고투는 이후 3~4시간 계속되었다.

관음사 탐방로 안내센터에 도착하니 오후 4시. 한라산 등산을 시작한지 약 10시간 만이었다. 놀라운 것은 하산을 끝내고도 거뜬히 걷고 있다는 사실. 무너져 쓰러질 것 같았던 육신이 나도 모르게 되살아나 있다. 숫제 한라산의 기운이 작용한 때문이리라. 백록담의 물이 마르긴 했어도 한라산의 기운은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음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지구의 기후가 더 나빠지기 전에 무슨 수라도 써야 한다. 백록담에 헬기를 동원해 물을 채워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한라산은 우리 국토의 생태적 결절점이자 생명 자유 평화 치유의 원천이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작은 행동에 나설 때다. 한라산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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