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족의 ‘극단적 선택’은 아이 입장에선 '피살'...이제는 '동반자살' 용어 대신 부모의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이라고 불러야 마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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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족의 ‘극단적 선택’은 아이 입장에선 '피살'...이제는 '동반자살' 용어 대신 부모의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이라고 불러야 마땅
  • 취재기자 김나희
  • 승인 2022.06.3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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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 바다에 잠긴 승용차 속에서 발견된 일가족 시신
경제난에 시달리던 부모, 극단적 선택 결정한 정황 드러나
자녀의 생명은 부모의 것이 아니다...아이의 의지 없는 선택

한 가족의 시신이 바다에 잠긴 차량 속에서 발견됐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딸. 이들은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났다.

아이의 생명을 부모의 것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아이의 생명을 부모의 것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실종된 조유나 양 일가족의 비극적 결말

지난 29일 전남 완도군 송곡선착장 인근 바닷속에서 승용차가 발견됐다. 인양된 차량 내부에서는 부패가 진행된 시신 3구가 발견됐다. 경찰은 지문 감식을 통해 해당 시신이 실종 신고된 조유나 양의 가족임을 밝혀냈다.

조 양은 지난달, 학교 홈페이지에 5월 19일부터 6월 15일까지 ‘제주도 한 달 살기’ 체험학습 신청서를 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남 완도의 한 펜션에 5월 24일부터 묵었다. 30일 오후 11시에 승용차로 어딘가를 향하는 모습이 CCTV에 찍혔고, 같은 날 약 3km 떨어진 송곡항 인근 버스정류장을 지나간 게 마지막 행적이었다. 조 양 가족의 휴대전화 신호는 31일 새벽 송곡항 인근을 끝으로 꺼졌다.

조 양이 다니던 학교의 담임 선생님은 체험학습 기간이 끝난 6월 16일 이후에도 부모의 연락이 없고 조 양이 등교하지 않자, 지난 22일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은 신고 7일 만에 바닷속에서 조 양 가족의 차량을 발견했다.

부모의 극단적 선택에 아이의 의지는 존재하지 않아

이 사건에 대해 사람들은 ‘살인’이라며 입을 모았다. 부모가 행한 극단적 선택에 아이의 의지는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묵었던 펜션을 나오는 조 양 가족의 마지막 모습에서 조 양은 깊은 잠에 빠진 듯 축 늘어져 어머니의 등에 업혀 있었다.

경찰은 조 양의 부모가 억대 채무와 가상화폐 투자 손실 등으로 인한 생활고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는 가능성을 높게 보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조 양 부모의 인터넷 검색 내역에서 ‘수면제’, ‘극단적 선택’, ‘완도 방파제 수심’, ‘방파제 차량 추락’, ‘익사 고통’ 등의 단어가 나타났다. 이들이 향한 마지막 동선도 차량이 발견된 바닷가였고, 차량 변속기는 주행이 아닌 주차 상태였다.

각종 정황이 조 양 부모의 극단적 선택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조 양의 의지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과거부터 이와 비슷한 비극적인 사건은 꾸준히 일어났다. 그때마다 ‘동반’이라는 말 아래 아이의 죽음이 얼버무려졌다. 이제는 ‘살해 후 극단적 선택’, ‘비속살해’라는 말이 그 자리를 대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모가 행한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 학대 범죄’

지난 2019년에도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아이와 극단적 선택을 행한 부모가 있었다. 그러나 해당 사건에서 아이는 숨지고, 부모만 살아남아 재판을 받았다. 해당 재판을 맡았던 박주영 판사는 판결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살해된 아이들의 진술을 들을 수 없다. ‘동반자살’은 가해 부모의 언어다. 아이의 언어로 말한다면 이는 피살이다. 법의 언어로 말하더라도 이는 명백한 살인이다. ‘동반자살’이라는 단어에 숨겨진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 참담한 심정으로 애통하게 숨져 간 아이의 이름을 다시 불러본다. 이 이름이 동반자살이라는 명목으로 숨져 간 마지막 이름이기를 희망한다.”

해당 사건들은 법원에서 ‘murder-suicide(살해 후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박 판사는 이에 대해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 학대 범죄”라고 단언했다.

어린 자녀들은 그 죽음의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부모에게 이끌려 극단적 선택을 맞는다. 이는 자녀의 생명을 부모의 소유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비극이다. 홀로 남겨질 자식을 핑계 삼아 본인이 선택한 죽음을 강요하는 비겁한 행위일 뿐이다.

네티즌들은 해당 사건에 대해 분노하고 슬퍼했다. 한 네티즌은 “그 아이는 사는 게 더 간절했을 수도 있다”며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잘못된 인식으로 충격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당 사건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 부모를 옹호하는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는 살인을 방조하는 행위가 되거나, 다른 아이들에게 ‘부모가 힘들어지면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송영훈 변호사는 SNS에 조 양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걱정된다며 글을 올렸다. 송 변호사는 “부모가 자녀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음을 보고 듣는 것은 아홉 살, 열 살 아이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일”이라며 “학교와 전문가들의 특별한 관심과 노력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예방 위한 국가의 대책 마련 필요해

전문가들은 위기 가정을 찾아내고 아동 살해 조짐이 보이면 상담 등 선행적인 대처를 할 수 있는 정부의 복지 시스템 확충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부모의 ‘머더 수어사이드’를 아동 학대로 규정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비속살해는 경제적 원인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경제난 속에서 사회적 약자나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제도의 강화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동을 단지 돌봄의 대상이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보고 지원할 수 있는 제도의 변화도 필요하다.

아이들이 제 의지로 선택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와 국민의 노력과 변화가 간절히 필요한 시점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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