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담벼락 우체통 간판은 물론 주민들도 모자 옷 양말 등 온통 보라색 일색 변신해
섬마을 고유의 자연 문화 지키며 섬 안의 꽃과 풀에서 아이디어 얻어 관광상품으로 개발
아름다운 자연과 섬이 가진 고유의 가치에 컬러 브랜딩 입혀 도시민 끌어들여 성공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 ‘최고의 여행지 어워드’ ‘한국 관광의 별’ ‘한국의 100대 관광지’......

전남 신안의 작은 섬 ‘퍼플섬(반월, 박지도)'을 부르는 다른 이름들이다. 요즘 말로 뜨는 섬이고 핫플레이스다. 그동안 신안군 주민들조차 존재를 모를 정도로 작은 두 개의 섬을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가 지난해 말 ’2021년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Best Tourism Village)’으로 선정하고,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이유가 궁금했다.
부산에서 가는 길은 멀었다. 동쪽 끝에 있는 부산에서 서쪽 끝의 도시 목포까지 숨가쁘게 가고도 다시 섬과 섬을 잇는 연륙교를 몇 개를 건너야 도착하는 섬이었다. 바다 위에1004개의 섬이 있다고 해서 ‘천사섬 신안’으로 불리는 신안군. 퍼플섬 가는 길에 만나는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길이 7.22km의 연륙교 천사대교는 날렵한 교량 디자인도 멋지거니와 바다 위를 달리는 시원함 때문에 길고도 먼 운전의 피로를 잇게 한다.

온통 보랏빛이다. 보라색을 칠할 수 있는 곳은 모두 색칠을 한 것 같다. 공중전화 쓰레기통 지붕 안내표지판 전신주 가드레일 심지어 섬 안 식당의 밥그릇과 음식, 종업원의 앞치마도 보라색이다. 일종의 컬러 마케팅이다.
신안군청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마을 현황을 보면 박지리(박지섬) 주민은 17세대 29명, 반월리(반월섬) 주민은 57세대 199명이다. 모두 합해 봐야 230명 안쪽이다. 그런데 이 섬에 주말이면 2000여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단다. 매표소가 있는 주차장은 관광버스와 승용차로 빈 곳이 없다.
강아지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에게 보라색 옷을 입히면 동반객 1명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관광객 2명 이상이 양말 스카프 안경 등을 보라색으로 깔맞췄거나, 주민등록 이름이 ‘보라’인 경우, 머리를 보라색으로 염색해도 역시 무료다. 참여형 관광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구미를 당기는 이벤트이다.
관광객들은 안좌도에서 박지도와 반월도를 연결하는 나무다리, 즉 퍼플교를 걷는다. 퍼플교 전체 거리는 1462m다. 갯벌 위에 놓친 보라색 목교를 따라 갯벌 위를 걷다가 섬에 도착해 시간이 난다면 섬을 일주할 수도 있다.

노인들만 사는 반월도와 박지도가 보라섬으로 바뀐 것은 전남도의 ‘가고 싶은 섬’ 사업에 선정되면서다. 사업비를 받아 다리를 놓고 길을 닦고 편의시설을 설치했다. 섬의 자연과 고유한 문화를 보존하되 관광객을 끌어들일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것은 컬러였다. 마침 섬에는 도라지 꿀풀이 많았다. 보라색 꽃이 특징이다. 주민들은 보라색 옷을 입고 지붕과 담벼락을 보라색으로 칠하고 내친 김에 라벤더 아스타 자목련 등 보라색 꽃을 심었다. 사계절 보라색 꽃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보라색이 가능한 것이라면 모두 물들였다.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블로그에 사진을 찍어 올리고, 사진작가와 기자들이 소식을 전했다. 방송사 카메라가 리포터를 대동하고 몰려들고, 외신기자들도 보라색으로 곳곳을 물들인 희한한 섬을 소개했다.
빨강 파랑 노랑 등 친숙한 색과는 거리가 멀고, 고귀하고 품위있는 색상이라고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차갑고 서늘하면서 으스스한 느낌마저 주는 보라색. 그런데도 이름 없는 섬을 전국적 핫플레이스로 만들고 1년 열두달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요인은 무엇일까?
관광적인 요소는 사실상 제로라고 할 정도로 그저그런 반월섬과 박지섬.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 극단적인 빈곤이 역설적으로 과감한 도전을 이끌어내고 주민들을 관광의 첨병으로 만들었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60대 이상의 노인이 대부분인 주민들부터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라돌이’로 변신하는 걸 즐긴다. 모자에서 목도리, 양말, 털신까지 보라색이다. 행정의 뒷받침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퍼플섬의 성공을 본받아 월도 선도 병풍도 도초도 등도 각자 독특한 색깔로 변신 중이다. 신안군의 컬러 마케팅 일환이다.
전국 농어촌 어디를 가나 젊은이는 없고 노인들 뿐이다. 특별한 관광자원이 없는 대부분의 농어촌에 관광객인들 올리가 없다. 사그러들어가는 짚불 마냥 마을이 날로 소멸돼 간다. 마침 이틀 후면 지방선거일이다. '반월,박지섬'의 퍼플 마케팅이 새로 뽑히는 단체장들에게 반면교사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