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 칼럼] 유쾌한 '녹색 백만장자'의 어떤 칠순
상태바
[박창희 칼럼] 유쾌한 '녹색 백만장자'의 어떤 칠순
  • 칼럼니스트 박창희
  • 승인 2022.05.18 10: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정현 서봉리사이클링 회장에 기념문집 헌정
지인들이 준비모임 꾸려 요산문학관에서 행사
'사람답게' 살아온 지역어른 챙기는 계기 '흐뭇'

두 그루의 회화나무가 마주보고 뚝뚝 초록 나뭇잎을 흩날리고 있었다. 노시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5월의 뜨락에 파문처럼 퍼졌다.

‘어느 별에서 왔을까 눈 속에 더 푸른/저 소나무 흙에 발붙이고 씨앗발아부터/갑년을 건너 칠순에 닿도록 한결같이/구가한 노래는 사람이 사람답기를… 땅을 살리고 강을 살리는 순수무구 고집으로/향기로운 꽃인양하면 사람일 수밖에 없는/내 말보다 남 말을 잘 들어주고/세간사 마파람 높새바람 맞서는 사람/내가 기억하는 문 정 현/이런 의로운 사람 또 없습니다’.(박정애 축시 ‘백단향나무 목리문을 읽다’ 부분)

지난 16일 부산 남산동 요산문학관에서 열린 문정현 선생 칠순 행사 모습(사진: 진영섭 공예작가 제공).
지난 16일 부산 남산동 요산문학관에서 열린 문정현 선생 칠순 행사 모습(사진: 진영섭 공예작가 제공).

지난 16일 오후 부산 금정구 남산동 요산문학관 마당에서 독특한 행사가 있었다. 문정현 선생 칠순기념 문집 헌정(獻呈) 마당이었다. 문정현 ㈜서봉리사이클링 회장의 주변 지인들이 칠순행사 준비모임을 꾸려 시를 짓고, 약전(略傳)을 쓰고, 걸개를 만들어 걸고, 추억의 글 한 편씩을 추렴해 책자를 만들어 헌정하는 자리였다. 음식을 마련하고 소리꾼 양일동 선생을 불러 비나리를 뽑게 하니 아주 그럴듯한 문화행사가 연출됐다. 요산문학관 요산 생가의 대청마루와 축담이 무대였고 마당의 잔디밭이 객석이었다. 행사 경비는 준비위원들과 참가자들이 십시일반 모았다.

독특한 칠순 행사

칠순행사는 대개 칠순을 맞은 본인이나 가족 친지가 주관하여 여는 게 보통이다.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 요즘은 칠순행사도 잘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족 중심으로 식사를 하는 식으로 단촐하게 한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판이 커진 데는 부산문학계의 맏언니로 통하는 박정애 시인과 한평생 낙동강 살리기에 투신해온 김상화 낙동강공동체 대표, 100만평 공원 만들기에 전력해 온 김승환 동아대 명예교수 등 시민환경단체의 몇몇 ‘어른들’이 “문정현 칠순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고 집요하게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예우 차원이 아닌 연대의 끈이 묶어진 셈이다. 불과 한 달 전의 일이다.

요산문학관의 칠순행사장에서 인사말을 하는 문정현 선생 부부(사진: 박창희 기자).
요산문학관의 칠순 행사장에서 인사말을 하는 문정현 선생 부부(사진: 박창희 기자).

사실, 서봉리사이클링 문정현 회장의 ‘덕행(德行)’은 아는 사람만 안다. 도움이 필요한 곳엔 흔쾌히 돈을 썼고, 돈을 쓰고도 좀처럼 푯대를 내지 않았다. 그가 운영하는 서봉리사이클링은 연 매출 100억대 안팎의 중소기업이다. 그는 1994년부터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을 해오면서 환경과 문화, 지역공동체를 알뜰살뜰 챙겨왔다. 2007년부터 사하구 다대동 공장터와 건물 1천여 평에 ‘아트팩토리’를 만들어 대안예술 활동을 지원했다. 오늘날 세계적 도시재생 사례가 된 감천문화마을도 아트팩토리 예술가들의 공공프로젝트가 발단이 되어 틀이 갖춰졌다. 그 뒤에 문정현 선생의 소리없는 후원이 있었다.

요산문학관에 '요산뜰' 기부 

2008년 아트팩토리 재개장 때 노무현의 멘토로 불린 송기인 신부가 와서 축사를 했다고 한다. “문 회장은 참 특이한 사람이다. 사업을 해서 돈 벌 궁리를 하지 않고 이런 엉뚱한 일을 벌인단 말이지….” 좌중에 웃음이 퍼졌지만 날카로운 메시지가 실린 축사였다.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을 문정현 선생은 하고 있었다. 칠순 행사 장소인 요산문학관에도 그는 2억 6천만 원을 기부해 '요산뜰'을 만들도록 했다.

‘문정현 약전’을 쓰며 짚어보니, 그가 살아온 칠십 평생은 나눔과 봉사, 공의로움으로 점철돼 있었다. 김해농고를 졸업한 문정현은 70년대 말부터 함석헌, 장일순 선생의 강연과 책을 읽고 사사하며 사회의식에 눈을 떴다. 80년 전후 부산양서조합사건과 부림사건 등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고, 87년 민중항쟁 때는 거리시위에 나서 ‘독재타도’를 외쳤다. 한동안 그는 시민환경단체의 ‘물주’로 통했고, 민주화 운동의 둘도없는 후원자였다. 그 자신 민주화 운동의 이력은 감춘채 말이다.

그의 나눔 인자는 학창시절부터 배양된 것 같았다. 상대적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주변의 가난한 친구들을 챙기며 사람다움과 공의(公義)로움을 배웠고 이를 실천하려 애썼다. 80년 초 쌀가게와 돼지국밥집을 하면서 민주화운동 인사들의 끼니를 챙긴 일도 감동이다. 

문정현 선생 칠순 행사장에서 시낭송을 하는 박정애 시인(사진: 박창희 기자).
문정현 선생 칠순 행사장에서 시낭송을 하는 박정애 시인(사진: 박창희 기자).

녹색 심장을 가진 '진인'

김좌관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문정현 선생을 “녹색 심장을 가진 진인(眞人·참다운 인간), 장자를 닮은 사람”이라고 했고, 김승환 명예교수는 ‘유쾌한 녹색 백만장자’라 칭했다. 녹색 백만장자는 마음이 부자이고 건강하며 생태적인 삶을 영위하고, 나아가 지구 살리기에 이바지하고 환경 문화활동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사람이다. 문정현 선생이 여기에 딱 어울리는 분이라는 거다. 김상화 낙동강공동체 대표는 “지역공동체가 사람을 챙기고 사람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행사는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인사말에서 문정현 선생은 “되돌아보니 칠십 평생이 한 줌밖에 안 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요산 선생이 말한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문구다. 남은 삶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행사 내내 그는 쑥스럽고 무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행사가 무르익으면서 어둡살이 밀려왔다. 생가 앞의 회화나무가 어둠을 뚫고 곧게 서 있다. 회화나무는 학자수(學者樹)라 하여 선비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흥취가 일자 통기타 반주에 맞춰 김해창 경성대 교수가 ‘강변에서’를 부르고 박정애 시인이 즉석에서 ‘부용산’을 불렀다. 마음과 마음이 통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무대였다. 

주거니 받거니 나누는 어떤 칠순 행사를 청동 흉상으로 화한 요산 김정한 선생이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