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호 이병주의 문학과 법, 삶... 형법학자의 눈으로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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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호 이병주의 문학과 법, 삶... 형법학자의 눈으로 다시 읽기
  • CIVIC뉴스 칼럼니스트 차용범
  • 승인 2022.04.1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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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 하태영 교수, 신간 '밤이 깔렸다' 펴내
법과 인문학의 만남 측면에서 대문호 재조명

부제 그대로, 형법학자가 ‘천재적 대문호’ 이병주의 걸작소설을, 법사상 측면에서 조명하며 재해석한 책이다. 문·사·철을 아우르는 박학다식·박람강기와 화려한 문체, 탄탄한 구성으로 독자를 사로잡은 걸출한 작가 나림 이병주의 작품 10편을, 작가의 법의식과 삶을 바탕으로 풀어쓴 작품 해제서 및 독자 안내서다.

정통 형법학자 하태영 박사(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나림의 소설 속에 나타난 법리를 분석, 해설-줄거리-어록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법과 인문학의 만남을 꾀하고 있다. 역사의 문학화 또는 문학의 역사화에 크게 기여한 나림 이병주 소설의 법사상적 재발견이라 할만하다. 제목 ‘밤이 깔렸다’는 나림의 등단작 <소설․알렉산드리아>(1965)의 첫 문장이다.

형법학자 하태영의 이병주 소설 재발견 시리즈 『밤이 깔렸다』 표지(사진; 저자)
형법학자 하태영의 이병주 소설 재발견 시리즈 '밤이 깔렸다' 표지(사진; 저자).

소설가 이병주(李炳注)(1921~1992). 그는 “나폴레옹 앞엔 알프스가 있고, 내 앞엔 발자크가 있다”는 자기 다짐처럼, 마흔네 살 늦깎이로 소설가의 길에 들어 80여 편의 작품을 남긴 ‘천재적 대문호’다.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소설 '산하(山河)'의 아포리즘처럼, 역사의 문학화 또는 문학의 역사화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일본 유학을 경험한 지식청년으로, 대학재학 중 강제징집 당해 중국 생활을 거친 ‘학병 세대’의 대표적 인물이다. 해방 이후 귀국, 경남 지역에서 불어와 철학을 강의하다, 부산 국제신보 논설위원으로 입사, 편집국장 겸 주필로 활약했다. 당시 부산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 황용주와 함께, 4․19, 5․16 같은 현대사의 격동기마다, 진실을 밝히는 기개와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용기로 사관(史官)․언관(言官)의 역할에 당당했다.

5․16이 일어난 지 엿새 만에, '조국은 없고 산하만 있다' 등의 논설을 기화로 2년 7개월을 복역했다. 출감 후, 늦깎이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1992년 지병으로 타계할 때까지 한 달 평균 200자 원고지 1,000여 매 분량을 써내는 초인적 집필로 80여 권의 작품을 남겼다. 작가의 장년기적 체험의 산물인가. 나림의 작품 곳곳에는 그의 법사상과 법리가 녹아 있다. 등단작 <소설․알렉산드리아>는 그의 ‘형’ 황용주를 주인공으로 한 사상소설이며, 그의 감옥 체험이 담긴 법정소설이다.

나림은 수형생활 내내, ‘형무소에 있는 지식인․일상에 만족하며 피리 부는 나․법을 남용하는 권력자’를 묵상했다.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가 어떻게 함께 그 시대를 살아갔는지 떠올렸다. 결국 모두가 ‘패자가 되는 삶’이었다…. 단편 <철학적 살인>(1976)은 간통죄의 존재 이유부터, 과실치사와 고의살인, 양형(작량감경) 문제를 다루며, 일본 고베 재판소의 판례까지 인용하고 있다. 법-철학-도덕-범죄-재판-형사철학이 어우러진 걸작이다.

저자는 형사법 전공학자의 바탕에서, 나림이 남긴 그 시대의 목소리를 찾아나섰다. 나림의 작품을 법률가의 눈으로 읽은 것이다. 해설-줄거리-어록을 요약하며, 깜짝 놀랄만한 문장을 정리했다. 저자는 평한다. 그의 사상은 밤이 깔린 시대의 절박함에서 나왔다고, 그의 작품은 유언이었고, 그의 문장은 행동이었다고. 글쓴이는 감히 추앙한다, 나림은 우리나라 제1의 정통 법률소설가라고.

지난해는 그의 탄생 100주년, 올해는 그의 타계 30주년이다. 이 책에선 <소설ㆍ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예낭 풍물지>, <패자의 관>, <겨울밤-어느 황제의 회상>, <그 테러리스트를 위한 만사>, <운명의 덫> 등을 다시 읽고 정리했다. ‘해제-나림 이병주의 법사상’과 ‘후기 나림 이병주 탄생 101년(1921) · 타계 30년(1992)’도 함께 붙였다. “나림 선생은 여러 작품에서 법학·정치·역사·철학·문화 사상이 농축된 자신만의 법사상을 펼쳐 보인다”, 저자의 결론이다.

필자는 법의 대중화에 힘써오며 『의료법』, 『생명윤리법』, 『연명의료결정법』, 『장기이식법』, 『공수처법』 등 ‘법은 읽기 쉬워야 한다’는 취지의 법률문장론 시리즈를 꾸준히 펴내고 있는 형사법학자다. 연구서로 『형법조문강화』와 『형사철학과 형사정책』(2008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등이 있다. 그는 학창 시절 ‘이병주’에 푹 빠져 산 작가 지망생이었다.

그 문장 길고 난삽하기로 정평을 얻고 있는 법률문장 세계에서, ‘법은 읽기 쉬워야 한다’는 생각을 실험하고 실천해 온 경륜의 힘인가. 이 책에 나타나는 그의 문장 역시 ‘언론인 출신’ 나림의 간결한 문체 마냥 경쾌하다. 짧은 문장의 강력한 힘이다. “밤이 깔렸다.” <소설 알렉산드리아>의 첫 문장이다. 강렬하다. 위대하고 거대한 여정을 알리는 독백이다…, 이런 표현을 보면, 그는 열정적인 법률가이며 빼어난 문장가다.

이 책은 구성․편집면에서도 독특하다. 소설 한 편을, 뚜렷한 목적의식 위에, 해설-줄거리-어록 순으로 정리한 체계며, 나림의 삶을 회고-운명-작가-작품 체계로, 나림의 법사상을 법률-수사-재판-형벌-교도소-재소자-재소자 가족 등 주제별로 정리한 것이다. 나림의 거대한 작품세계의 공통 주제를 한눈에 읽어낸 열정과 역량이 돋보인다.

필자는 이 책을 ‘나림 이병주를 조명하는 시리즈의 첫 번째’로 소개한다. 앞으로, 나림의 명작들을 계속 읽으며 소설의 현재성을 추적하고, 소설 속의 명문장과 삶의 통찰․지혜가 담긴 나림의 육성을 전할 각오다. 그런 작업을 통해, 글쓰기 공부와 함께 인문학의 향연을 추구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는 지금, 나림의 ‘친정’ 국제신문에 “이병주 타계 30주년; 작품 속 시대정신과 법‘ 시리즈도 연재중이다.l

저자 하태영의 국제신문 연재 ‘이병주 타계 30주년; 작품 속 시대정신과 법’ 게재 지면(국제신문).
저자 하태영의 국제신문 연재 ‘이병주 타계 30주년; 작품 속 시대정신과 법’ 게재 지면(국제신문).

저자는 책의 끝에서 새삼 강조한다. 나림 이병주는 다시 나오기 힘든 작가다, 지식-구성-문장이 모두 탁월하다, 그의 소설 속 법사상에는 강력한 현재성이 있다. 나림 이병주를 다시 만나야 한다고. 저자는 기대한다, “나림의 사색과 성찰이 깨우침과 실천으로 이어져 많은 이의 삶이 풍성하게 열리기를-.”

도서출판 함향, 2022-4,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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