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 칼럼] “정치 얘기는 되도록 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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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칼럼] “정치 얘기는 되도록 하지 맙시다”
  • 박창희 논설주간
  • 승인 2022.03.1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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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간 가족간 정치 얘기하다 싸우는 사례 허다
70년 거대 양당 체제가 낳은 진보-보수 이분법의 폐해
화이부동의 자세로 남의 얘기 듣고 '다름' 인정해야

시골 초딩 단톡방이 있다. 늙수그레한 초로의 친구들이 모여 참새처럼 쫑알대며 수다를 떠는 이야기 둥지다. 가끔씩 들어가서 고추 친구들의 동정과 일상을 엿보거나 전해 들으면서 쏠쏠한 재미를 찾곤 한다. 친구들끼리 남몰래 쌓는 우정은 덤이다.

그런데 얼마전 초딩 단톡방에서 ‘싸~해진’ 사건이 있었다. 아주 단순한 일이 감당하지 못할 고약한 사건으로 비화되고 말았다. 20대 대선이 끝난 지난 10일, 한 친구가 당선이 확정되어 웃고 있는 국민의 힘 윤석열 당선인의 사진을 올렸다. 사진 아래에는 ‘바뀐 세상 기대된다. 친구들 오늘도 파이팅!”이란 글을 올렸다. 거기에 다른 친구는 “정치적 입장 개진 삼갑시다. 생각이 다른 친구도 있으니…”라는 댓글을 붙였다. 단톡방이 졸지에 얼어붙었다. 찬반 댓글이 몇 개 더 달리면서 단톡방은 여야 성토장 비슷하게 돼 버렸다. 이재명-윤석열 팬이 나뉘어져 대리전을 벌이는 형국. 몇몇 친구는 짜증이 났던지 단톡방을 빠져나갔다. 상황이 악화되자 누구도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그 여진은 지금도 ‘싸~하다’.

아닌게 아니라 ‘정치 얘기’가 ‘웬수’다. 앞의 초딩 단톡방 같은 사례는 주변에서 흔히 만난다. 정치 얘기가 나오면 가족끼리도 막 싸운다. 한 커뮤니티에는 ‘우리집에서는 정치가 금기어예요. 선거철이 되면 더욱 예민해져 괴롭네요’라는 글이 올라 네티즌들을 ‘웃프게’ 했다.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웬만하면 정치 얘기는 하지 말자’고 하는 말이 일반화 됐다.

양당 기득권 체제 70여년

이렇게 된 데에는 거대 기득권 양당의 책임이 크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힘이 주도하는 양당 기득권 정치 구도는 국민들의 생각을 ‘양쪽’으로 묶었다. 양당이 치열하게 맞부딪힌 20대 대선은 양당 구도의 끝판을 보여준다. 국힘 윤석열 당선인의 득표율은 48.56%,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47.83%,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2.37%였다. 거대 양당이 전체 표의 96.39%를 몰아갔다. 이 결과는 한국사회의 심각한 정치적 양분, 분열상을 말해준다. 분열은 갈등과 증오를 가져온다. 양당체제는 정치를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고 국민의 자리를 빼앗는다. 이러한 정치구도가 무려 70년간 이어지고 있다. 

양당 중심의 기득권 구조는 정치를 다루는 유튜브 tv에서 확증 편향을 부추긴다. 확증 편향은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 파워 유튜버가 운영하는 진보-보수 매체의 보도태도나 논조는 극과 극을 달린다. 우리편만 챙기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그나마 레거시 미디어의 대안으로 평가되는 뉴미디어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진보냐 보수냐, 허깨비같은 이분법

대선을 앞두고 인터넷에 ‘정치성향 테스트’가 등장했다. 중앙일보가 만든 초간단 정치성향 테스트는 복지, 노동정책, 남북관계, 부동산 문제 등에 대한 의견을 물어 정치성향을 체크할 수 있다. 제시한 설문에 대답하면 자신의 정치성향이 찐진보-진보-중도-보수-찐보수 중 어디에 근접한지를 보여준다.

중앙일보가 만든 정치성향 테스트(중앙일보 기사 캡처).
중앙일보가 만든 대선 2022 정치성향 테스트(중앙일보 홈피 캡처).

해외에서 만든 ‘정치성향 테스트-8values’는 여덟 가지 정치적 가치, 즉 경제/외교/국가/사회 네 가지 분야를 각각 두 개의 반대되는 가치로 놓고 성향을 물어 백분율로 표시해준다. 모든 문항에 중립/모르겠다를 택할 경우 4가지 가치가 모두 50%로 나온다.

정치 스타트업 ‘옥소폴리틱스’는 데이터 기반의 흥미로운 정치 커뮤니티. 18가지 정치 현안에 대한 질문을 걸어놓고 참가자의 정치 성향을 테스트한다. 결과는 호랑이, 하마, 코끼리, 공룡, 사자로 나타나며 이들 부족은 각각 진보, 중도 진보, 중도, 중도 보수, 보수를 뜻한다. 옥소폴리틱스는 회원수가 10만명에 이를 정도로 젊은층에 특히 인기다.

자신의 정치성향이 궁금한 사람은 한번쯤 테스트를 통해 자기를 돌아볼 수도 있겠다. 단 맹신하면 안 된다. 초간편 설문 하나로 복잡다단한 개인의 정치성향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한번 고착된 정치적 성향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흔히 정치적 신념은 개인의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철학으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엔 그 사람이 살아온 내력, 사회적 환경과 위상, 정보지식과 학습의 정도, 주변 지인의 영향, 그리고 개인의 도덕적 판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오도된 지식이나 편향된 정보로 인해 감정적 판단이 개입될 수도 있다. 잘못된 판단을 줄이려면 남의 얘기를 듣고 늘 공부하는 자세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한국에서의 진보-보수 논쟁은 때때로 허깨비를 잡고 싸운다할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진보 또는 리버럴과 보수 또는 자유주의자는 별반 큰 차이가 없다. 이념적 가치와 목적이 때론 뒤섞인다. 유럽의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진보는 중도 보수에 가깝고, 정작 보수를 자처하는 국민의 힘 등은 수구(守舊)에 가깝다.

지나친 감정이입은 피하자

‘정치 얘기’만 나오면 싸우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다고 정치 얘기를 안 할 수도 없다. 정치가 국민 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갈등과 분열을 가져온다고 정치 얘기를 막아버리면 사회적 소통구조가 막혀 더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정치 얘기’는 미국에서도 종종 문제를 야기하는 모양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정치토론 대처법’이란 기사가 실었다. 기사에선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말한다. 눈치없이 정치얘기를 하면? 차분하게 토론할 수 있다는 자세를 견지한다. 이때 중요한 건 많이 말하는 것보다 많이 들어주는 게 좋다.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고 맞다/틀리다는 표현은 자제한다. 상대가 도발해 오고 감정싸움이 될 상황이면? 논쟁을 멈추거나 화제를 돌리는 게 현명하다. 정치 이슈나 뉴스에 지나치게 감정 이입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정치논쟁에서 이기는 것 보다 사람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정치 때문에 소중한 관계를 망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0.7%의 득표율 차이로 희비가 갈린 20대 대선 후, 우리 사회에 던져진 최대의 과제는 통합이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2천 년전 공자는 통합을 위한 처방으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말했다.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도 같아지지는 않는 것. 이게 민주주의다. 통합을 이루려면 정치권·언론·국민 모두가 화이부동의 자세로 ‘정치 얘기’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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