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범 칼럼] ‘좋은 품성’ 가진 ‘멋진 리더’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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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범 칼럼] ‘좋은 품성’ 가진 ‘멋진 리더’ 찾기
  • CIVIC뉴스 칼럼니스트 차용범
  • 승인 2022.02.28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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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눈앞이다. 세기적 대전환 흐름과 한국의 천하대란 시대를 감당할 훌륭한 리더를 뽑아야 한다. 국민은 일찍부터 당대의 시대정신을 떠올리며 최선의 정치적 선택을 별러왔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에의 굳은 신념과 국민통합에의 뛰어난 역량을 갖춘 정치인을 골라야 한다. 선인들의 정치론을 다 들 필요도 없다. “국가는 민(民)의 신뢰 없이 설 수 없다”는 공자의 말처럼, 국민의 신뢰에 호응할 ‘멋있는 영웅’을 뽑아야 한다.

눈앞의 현실은 만만찮다. 굳이 팬데믹 상황을 들지 않더라도, 사회 전반의 불안․불만 심리는 끓고 있다. 민생과 나라경제가 크게 어렵고, 사회질서도 극히 어지럽다. 정의․공정에 바탕한 통합․공존의 시대, 국민이 믿을 만한 정치는 찾기 어렵다. 권력이 오만․독선에 침몰한 사이, 코로나19 방역전선도 무너지고 있다. 대선 국면에서, ‘정권교체론’이 압도적이다(여론조사 결과). 그건 정치권력이 국민의 신뢰를 상실했다는 확실한 증표다.

국민은 새삼 국가의 존재이유를 떠올린다. 이즘 정치의 신뢰 상실이며 일상의 대란은 리더의 품성과 역량에 그 원인이 있을 터이다. 국민은 우선 묻는다. 그 권력 행사는 국가이성(理性)에 잘 부합하는가, 권력의 통치행위는 국민의 뜻과 정당한 의사결정에 기반한 것인가․․․. 이른바, ‘올바른 권력’의 필요조건이다. 내일의 국가 리더를 뽑는 국면에서, 현 정치에의 평가는 적절한 반면교사일 수 있으리.

우리에겐 선택의 기회가 있다. 이번 대선에서 국가의 비전을 뚜렷하게 제시하며 국민의 탄탄한 신뢰를 받을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그 비전의 바탕은 무엇보다, 민주주의에 내재한 ‘올바른 권력’에의 추구여야 한다. 그 신뢰의 뿌리는 ‘나라다운 나라’를 우선하는 국가이성에의 의지여야 한다. 이 긴박한 현실에서, ‘올바른 권력’의 소명을 완수할 후보는 과연 누구인가?

제20대 대통령 선거 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앞 광장의 대선 홍보 조형물 앞을 지나는 시민(사진; 더팩트 제공).
제20대 대통령 선거 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앞 광장의 대선 홍보 조형물 앞을 지나는 시민(사진; 더팩트 제공).

1. 이즘 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낮다. 이번 대선, ‘정권교체론’이 ‘정권연장론’을 압도하는 이유다. 국민은 ‘나라의 격’을 생각하며, 대통령의 책임윤리를 떠올린다. 그 국가적 혼란은 권력의 무능이며 실정(失政) 탓이 크다. 특히 권력의 무책임·부도덕은 국가적 혼란을 부추기는 외면 못 할 요인이다. 미국 정치학자 대커 켈트너가 분석했듯, 권력은 ‘권력의 패러독스’에 중독, 공감능력과 자기절제를 상실했다.

대통령은 책무 앞에 무능·무책임했다. 독선·오만에 바탕한 ‘신념’은 넘치나, 경세(經世)에의 ‘책임’은 부족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때 약속을 새겨보라. ‘과거와의 전쟁’에 매달리며 국민통합을 포기했다. ‘문로남불’ 진영논리에 탐닉하며 평등-공정-정의의 가치를 외면했다. 그의 약속,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오늘 그의 실패를 대변하는 지독한 아이러니이다.

대통령의 실패, 법치주의 파괴며 민주주의 훼손도 말해야 한다. 그는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앞세워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추구했다. 권력을 절제 없이 남용하고 ‘문로남불’식 관행을 강변했다(박성민). 집요한 권력의지 끝에 삼권분립의 작동원리를 파괴했다. 그 문제적 인물을 법무부장관에 임명, 나라를 전장의 한복판으로 내몰며 ‘이념적 내전’으로 몰고 간 과정을 보라.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했다. “군림·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던 취임 때의 약속을 외면, 국민과 불통했다. 국민들은 자주 대통령의 존재 이유를 물어도, 그는 “중요현안 앞엔 도피한다”는 세평처럼, 침묵하고 외면했다. 국민들은 그의 무능·무책임과 집요한 권력욕을 보며 충격·분노의 세월을 보낸 것이다(권경애).

우리의 신념은 확실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믿음이다. 역사적 사실을 점검할 때, 민주주의의 강건한 저력은 확실하다. 민주체제는 독재체제보다 도덕적·경제적 측면에서 두루 우월하다. '국민이 원하는바'에 바탕한 민주주의의 복원력 역시 역사가 증명하는 바다. 그 역사적 진실 속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체제나 지도자를, 오늘의 국민이 용인할 수 있겠나?


2. 결국, 우리의 앞날은 우리 손에 달렸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너 죽고 나 살기’식의 정파적 폭주, 국민의 삶을 착취하는 조직적 부정부패, 사회질서를 망가뜨리는 무법(無法)사회를 더는 용인할 순 없다. 국민의 힘으로 권력의 범위를 제한하고, 그 오․남용을 제어해야 한다. 국가이성에 충실한 리더를 골라, 우리 함께 더 나은 미래, 더 나은 국가를 열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그런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눈앞의 선거전은 차마 혼탁하다. 후보 본인의 다양한 전과(前科)와 후보․가족의 불법․비리를 둘러싼 공방, 포퓰리즘식 공약으로 선거판은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다. 여-야 양강 후보(이재명-윤석열)의 비호감도는 호감도보다 높다. 오죽하면 진보진영 학자가 “여야 후보 모두 창피하다. 국민이 이민 가겠다고 나설까 걱정”(한완상)이라고 한탄하겠나.

이번 대선에는 14명의 후보가 난립했다. 그 속에서 국민에게 꿈과 믿음을 줄 확실한 ‘멋쟁이’는 누구인가(사진; 선거 벽보, 구글 이미지).
이번 대선에는 14명의 후보가 난립했다. 그 속에서 국민에게 꿈과 믿음을 줄 확실한 ‘멋쟁이’는 누구인가(사진; 선거 벽보, 구글 이미지).

문제는 대선 이후다. 누가 대통령에 되더라도 엄청난 혼란과 후폭풍을 감당해야 한다. 여당 후보 당선, ‘정권 연장에 도취한 권력의 독선․폭주’를, 야당 후보 당선, ‘여-야 대결에 따른 국력 소모’를 걱정해야 한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어차피 정치는 현실인 것을. 정치에서 ‘자유 아니면 죽음을’ 식으로는 최악의 경우만이 남을 뿐, 최선이 아닐 경우 차선을,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


3. 오늘 우리가 다짐해야 할 바는 확실하다. 오늘이 너무 혼탁해서 정치판을 살필 여유가 없더라도, 또 후보들의 정치행각이 혐오스러워 단 한 표를 주기가 아깝더라도, 신성한 주권을 현명하게 행사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잘잘못과 취약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었을 경우 기대할 수 있는 안정과 번영, 혼란과 위기의 가능성을 꼼꼼하게 따져볼 수 있다.

새 대통령이 의지해야 할 역량은 분명하다. 위기 국면의 한국을 책임질 신뢰와 통합의 리더십이다. 그런 리더를 뽑고 이끄는 것은 자유시민의 권리요 의무다. 현실정치에서 누가 더 신뢰할 만한가, 역사 속에서 누가 더 존경을 받을 수 있는가. 그런 리더를 찾는 관점은 다양하다. 이론을 뛰어넘는 실증적 연구도 많다. 먼저, 품성(品性)론, 'Character Above All(결국에는 품성)’ 얘기부터.

미국 프랭클린 루즈벨트부터 조지 부시까지, 대통령 10명의 품성을 분석하며 그 품성과 성과의 상관관계를 살핀 책이다. 루즈벨트의 ‘강한 의지와 미소의 리더십’, 아이젠하워의 ‘뛰어난 설득력과 낙관적 리더십’, 케네디의 ‘열정적 용기와 강한 통솔력’, 닉슨의 ‘정치에 성공했으되 리더십 발휘 못 한 리더’…, 그 성공-실패의 원인과 결과, 리더십의 실체를 분석했다.

대통령의 최우선 덕목, 결국 ‘품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책 한 구절, “대통령은 영리할 필요도 없다. 영리한 사람은 구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품성은 빌릴 수 없다.” 대통령의 용기, 품위, 강력한 도덕성…, 이런 품성은 원래부터 가지고 있어야 한다, 품성 좋은 대통령이 결국에는 정치적 업적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대선 후보들은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를 자초하고 있다. 국민은 신성한 한 표로 신뢰-통합의 리더를 선택해야 한다(사진; TV토론, 더팩트 제공).
대선 후보들은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를 자초하고 있다. 국민은 신성한 한 표로 신뢰-통합의 리더를 선택해야 한다(사진; TV토론, 더팩트 제공).

신간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 독일 총리 8명의 리더십을 분석한 책이다. “괴테, 아인슈타인보다 정치인이 존경받는 나라… 그래서 난 독일이 부럽다”는 카피대로다. 공영TV ZDF의 ‘가장 위대한 독일인 100인’에 따르면, 1위 초대 총리 아데나워, 2위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 3위 빌리 브란트 총리다. 독일의 힘은 이념과 편 가르기, 포퓰리즘 대신, 실사구시와 화합, 국익을 택한 역대 총리의 뚝심 덕분이다.


결국, 정치의 신뢰를 담보할 ‘품성’이다. 국정 지식과 정책 수행의 유능함도 중요하나, 독선에 바탕한 신념, 신뢰 없는 능력만으론, 공동체의 통합-개인적 자유의 확장 같은 정치의 요체를 놓칠 우려가 크다. '이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의 생전 말씀이 있다. "여당에는 이성(理性)이 없고 야당에는 야성(野性)이 없다고들 하나,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성(人性)이다."

한 나라의 리더가 좋은 ‘품성’ 없이 임기응변의 ‘재능’만 갖고 있다면, 그건 차라리 공동체의 재앙이다. 언행의 품격에서 나오는 안정감, 따뜻한 리더십, 공정-정의를 기대할 확고한 신념에, 최고의 공직자다운 청렴성이 필요하다. 

이번 선거는 천대받아왔던 국민의 자존(自尊)을 찾을 좋은 계기다. 우리는 이제 정말 독한 마음으로 새삼 다짐해야 한다. 아무리 이런 인연에 저런 사정이 있을지라도, 그 후보가 과연 지금까지 어디서 무엇을 했으며 그동안의 품격은 어떠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으며 어떤 품격을 지닐 수 있겠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 민주주의에의 정확한 이해와 국가 운영원리에의 올바른 인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행히, 우리 국민은 하늘의 무게만큼 자라났고, 자라나고 있다. 우리는 함께 지향할 시대정신을 기억하며, 그를 위한 진실을 공유할 때다. “오늘은 다가올 날들의 오직 하루다. 다가올 날들에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는 오늘 (우리가)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삶으로 진실을 추구한 기자·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속 경구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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