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 칼럼] '이대남' '이대녀'에 가려진 진짜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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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칼럼] '이대남' '이대녀'에 가려진 진짜 청년들
  • 박창희 논설주간
  • 승인 2022.02.06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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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의 6.7%인 20대 남자가 대선의 캐스팅보트 부각
포퓰리즘 지적속 '성차별' '페미니즘' 등 사회적 의제 혼란
2030 전체 목소리 경청해 통합의 선거 축제 만들어야

'이대남'들에게 물어보니

제20대 대통령 선거전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 수준 떨어지는 대선이란 핀잔 속에서도 맹위를 떨치는 단어가 있다. 이대남·이대녀라는 말이다. 특히 이대남(20대 남성)은 대선 정국의 태풍의 눈이다. 최근 나타나는 후보별 지지율을 보면 이대남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이대남은 생물학적인 20대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10대 후반에서 대략 30대 중반까지 아우르는 청년세대다. MZ세대로도 불린다. 젊은 남녀 세대를 아우르는 이들 가운데서 남성만의 부분집합이 이대남이지만 층위가 단순하진 않다. 전체 유권자의 6.7%에 불과하지만 대선 판세를 좌지우지하는 이대남!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우리 ‘시빅뉴스’ 인턴기자들은 모두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다. 이들에게 이번 대선의 핫이슈인 20대 현상, 이른바 이대남·이대녀에 대한 견해를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대체로 이러했다.

“그게 뭔가요?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요.”

“들어는 봤는데 뭔지 모르겠어요. 저희들끼리 한번도 그걸 화제로 얘기한 적이 없어요.”

“언론이 만든 프레임 같아요. 청년들의 불만과 답답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술책같기도 해요. 그렇지만 실체가 아리송해요. 20대들의 진짜 고민은 그게 아닌데….”

“들어서 어느 정도 알아요. 이대남의 특징이 보수화, 반페미니즘, 불공정에 대한 분노 같은 건데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죠. 그런데 기성세대는 소통 노력이나 해결책을 말하기보다 갈등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 같네요.”

20대 남성들, 실제 이대남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지만 대체로 냉랭했다. 젊은이들의 진짜 고민, 청춘의 갈증을 풀어주는 이슈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권과 언론에선 왜 이대남을 두고 생난리를 피울까. 스윙보터인 이들의 표가 판세를 좌우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보수언론들은 이들의 보수화에 초점을 맞추고 캐스팅보트임을 부각시킨다. 덩달아 유력 대선 후보들은 이대남을 위한 맞춤형 공약을 내놓기에 여념이 없다. ‘남혐 vs 여혐’ 논란 속에 페미니즘 논쟁조차 정치화되는 양상이다.

2030 여성 유권자들의 모임인 ‘2022 여성혐오 대선 규탄시위 샤우트아웃(SHOUT OUT)’이 지난달 12일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 샤우트아웃).
2030 여성 유권자들의 모임인 ‘2022 여성혐오 대선 규탄시위 샤우트아웃(SHOUT OUT)’이 지난달 12일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 샤우트아웃).

급진의 20대, 간단치 않은 정체성 

이대남 현상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때맞춰 궁금증을 풀어주는 신간 두 권이 나왔다. ‘급진의 20대’(김내훈)와 ‘허락되지 않은 내일’(이한솔)이 그것. 저자는 2030 젊은 작가들로, 이대남 현상의 가려진 이면을 파고든다.

문화연구자 김내훈은 한국사회의 20대 현상을 ‘포퓰리즘 현상’으로 본다. 온갖 부정적 이미지들이 덧씌운 편견과 달리, 포퓰리즘은 사회의 지배체제-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지리멸렬할 때 자연스럽게 분출하는 대중의 요구다. 한국의 민주화 세력과 미국의 리버럴 세력과 마찬가지로 근본적 대안 마련에 실패한 채 그들의 정체성(민주화와 정치적 올바름 등의 가치)만 내세우며 정치적 상상력(능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 결과가 ‘부모보다 가난할 세대’의 출현이며, 위선을 혐오하고 불공정에 분노하는 20대의 등장이다. 진보적 가치관에 반대하는 듯한 이런 태도는 ‘20대 보수화’론의 근거가 된다.

이대남의 반페미니즘 문제는 페미니즘을 ‘불공정’이자 ‘내로남불’로 인식해 분노하는 20대 남성과 그렇지 않은 20대 여성 간의 국지적 갈등으로 보인다. 이는 젠더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선 이를 표몰이에 이용한다. 국민의 힘에서 불쑥 내놓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갈등의 틈새를 파고든 교묘한 선거 전략이다. 

이대남 현상은 이대남 바깥의 문제를 보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 우리 주변에는 소리는 내지르지만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너무나 많다. 애꿎은 청년 나이대 정치인의 말만 듣고 청년이 어떠니 저떠니 분석하기보다, 일상 여기저기에 존재하는 청년 공동체로부터 진짜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대남 현상에 가려진 현실 

‘허락되지 않은 내일’의 저자 이한솔은 이대남 현상의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도 주목해 달라고 호소한다.

“앞뒤 맥락 다 자르고 ‘LH 투기 의혹’을 끌어오고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청년’과 ‘공정’이라는 말로 몽땅 묶어버리는 혹자들의 분석은, 과한 것은 물론 그들만의 세상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메이저 대학 입시경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청년, 정규직의 노동구조와 가깝지 않았던 청년,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이 있다. 자신의 삶과 현재 벌어지는 공정 이슈를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청년들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 경기에 뛰기라도 해야 규칙이 공정한지를 논의할 텐데, 지금으로서는 선수에 등록되지도 않은 사람이 절대 다수이다.”(p.63)

사태는 명확하다. 2019년 ‘조국 사태’를 규탄했던 20대의 다수는 불과 3년 전 박근혜 퇴진 요구가 울려 퍼진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다. 변한 것은 20대가 아니라 한층 지리멸렬해진 세상이다. 20대의 애타는 목소리를 품지 못하고 이들에게 살길을 열어주지 못한 기성세대가 이대남 현상의 원인제공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사태도 20대들의 삶을 암담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대학은 2년 넘게 ‘비대면’으로 돌아가고, 미래는 화면에 갇힌 채 커서로만 명멸하고 있으니 무슨 신바람이 나겠는가.

정치적 상상력 넓혀야 

이대남 현상이 보여주듯, 한국의 협소한 정치적 상상력이 더 큰 문제다. 한국은 ‘자유주의에서 극우까지’라는 이념의 박스권에 갇힌 사회다. 이 기형적 구조에서는 자유주의에서 한발만 왼쪽으로 나아가도 극좌파로 취급받는다. 툭하면 ‘우리’와 ‘그들’을 구분해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는 정치를 안고 미래로 나아갈 수는 없다. 

우리는 지금 대전환의 시기, 선진국 문턱의 기로에 서 있다. 국가 지도자의 역할과 실력, 비전이 그 어느때보다 막중한 때이다. 이대남·이대녀라는 편가르기식 퇴행적인 용어 대신, 20대 청년 모두의 문제를 드러내고 통합의 모토와 비전을 찾는 큰 정치가 보고 싶다. 그러한 통합을 이루는 축제가 바로 선거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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