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재운 칼럼] 존재를 위대하게 하는 '감동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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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운 칼럼] 존재를 위대하게 하는 '감동의 힘'
  • 진재운 KNN 대기자
  • 승인 2022.01.30 2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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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은 창의적 파장 불러오는 상상력의 원천
생활속 감동 코드를 발견하면 일상 새로워져

“작아지는 것은 거대해 지는 것이다.”

걸리버 여행기가 아닙니다. ‘감동’할 때 나타나는 인식의 변화입니다. 감동할 때 자신은 작아지고 감동의 대상은 무한히 커지면서 동시에 작아진 자신도 감동의 크기만큼 커져가는 것입니다.

<자주 감동하는 사람들의 비밀>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밀림의 원숭이는 소름 돋는 전율을 느끼기 위해 가장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아침노을을 기다린다.’

사라 함마르크란스 등이 쓴 '자주 감동받는 사람들의 비밀' 표지.
사라 함마르크란스 등이 쓴 '자주 감동받는 사람들의 비밀' 표지.

전 지역 공중파 TV에서 일하고 있지만 정작 TV는 다큐멘터리 장르만 보는 지독한 편식형의 시청자입니다. 하지만 최근 한 방송사의 가수들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노래 실력들을 보고 듣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나를 사로잡은 것은 ‘이해리’라는 가수의 리액션입니다. 심사위원 석에 앉아 있는 그녀는 노래가 흘러나올 때 마다 독특한 표정으로 노래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녀의 표정은 숨김없는 감동의 다양한 표현입니다.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벌린 채 멍한 표정으로 감동을 받고 있는 그녀의 표정을 보노라면 나도 감동에 물들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녀의 숨김없는 표정 하나하나가 감동으로 전염시키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주 눈물을 보입니다.

사람은 전율을 느낄 경우 소름이 돋고, 입은 벌어 진채 눈에는 눈물을 흘립니다. 감동의 순간 그 감동의 감정이 거대해져서 감동을 느끼는 자신은 한없이 작아지고, 시간은 멈추고 공간은 텅 비어 버립니다.

“그런 경험 있으신가요?”

지난 2014년, 일본 후쿠오카에 나무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러 갔을 때 일입니다. ‘녹나무’는 부산경남 해안가 마을에는 당산나무로 보호받는 수종입니다. 수령이 길게는 4~5백년을 간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일본에 2천년이 넘은 녹나무가 있다 해서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어느 한적한 시골에 도착해 신사를 지나 하늘 높이 치솟은 대나무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 도착했을 때입니다. 갑자기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앞을 가로막습니다. 그 크기에 순간 앞도당해 버렸습니다. 전율이었습니다. 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갑자기 나타나 나를 가로막았습니다. 2천 년 전 아주 작은 씨앗 하나에서 발아한 나무는 대략 2만여 개의 크고 작은 태풍을 견뎌냈습니다. 필리핀 해역에서 바람에 실려 온 수증기를 머금고 내뿜은 정화된 공기가 내 허파로 들어와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그 나무와 나는 원래 연결돼 있었던 것입니다. 작은 나는 더 작아지고, 녹나무는 더 거대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거대한 녹나무만큼이나 커져 있었습니다. 그 순간 일상의 욕심들이 사소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휘둘리던 내 감정소비도 의미를 잃었습니다. 녹나무가 된 내 감동은 그냥 나를 나답게 바라보게 해주는 힘이었습니다.

녹나무는 예상을 뛰어 넘는 새로운 것을 본 것이지만, 감동은 늘 대하는 것에서도 나옵니다. 바로 사물이나 사람이나 현상들을 늘 새롭게 보는 것입니다. 내가 저 사람을 저 모습을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앎이 몰려옵니다. 그 앎은 감동이 됩니다.

하지만 “이미 봤다.”, “이미 해봤다” 같은 방식은 감동을 원천적으로 막는 방법입니다. 똑 같은 현상을 두고, 매일 보는 것에도, 누구는 감동을 받고 누구는 심드렁하게 지나칩니다. 매일 그 사람을 마주친다고 해서 그 사람은 어제의 그가 아닙니다. 늘 변합니다. 변하는 그 모습을 알아채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동이 될 수 있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까요? 진짜 무엇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안다고 생각하는 그것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앎이 몰려온다고 생각합니다.

늘 입문자의 마음으로, 처음 보는 것처럼, ‘분명 모르는 게 있을 꺼다’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은 지금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흘릴 때가 있습니다. 이때 나오는 눈물 속에는 배출되어야 하는 독소들이 함께 나옵니다. 감동을 해서 눈물을 쏟으면 몸 속도 정화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몸이 정화를 위해 감정을 감동으로 내모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내 몰림은 언제든 내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를 한 단어로 요약해보면 ‘허용’이 됩니다. 감동을 통해 존재를 느끼는 것, 부처님은 아마 이를 존재의 제 1원인이라고 했을듯합니다. 우리는 원래 존재하는 것임을 감동을 통해 알려 주는 것입니다.

거대하게 밀려오는 감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작아지는 느낌, 그 감동의 힘은 엄청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삶의 문제들을 무찌르는 힘입니다. 그래서 감동이 필요합니다. 감동은 존재를 느끼게 해주는 힘이자 존재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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