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빅뉴스 기사공모전 당선작- “저는 자유가 뭔지 알지도 못해요”... 철창 속 사육곰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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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빅뉴스 기사공모전 당선작- “저는 자유가 뭔지 알지도 못해요”... 철창 속 사육곰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 취재기자 허시언
  • 승인 2021.12.1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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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사육곰 수 368마리... 철창 안에서 살아가는 사육곰들이 처한 현실은 상상이상으로 열악해
뜬장 안에서 음식물 쓰레기로 연명... 머리 흔드는 등 정형행동 보이며 정신건강에 문제 일으켜
사육곰을 평생 우리 속에 가둬 살아가게 하는 일이 얼마나 비인도적인 일인지를 깨달아야 할 때

전국 368마리의 사육곰들이 철창 안에 갇혀 고통받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사육곰이 비좁은 철창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곰들은 사방이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훼손된 환경 속에서 곰으로써의 본능과 마땅히 누려야할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한 채 고통받는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저는 태어날 때부터 철창 안에 갇혀있었어요. 저는 아무 이유 없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것과 다름이 없어요. 억울해요. 저는 평생 거친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녹슨 철창을 사이에 두고 세상을 마주했어요. 축축한 흙바닥을 거닐고 거친 나뭇등걸에 몸을 비비는 기분은 어떨까요? 푸른 산기슭을 뛰어다니고 흐르는 강물에 발을 찰팍이며 밥을 먹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요. 저는 자유가 뭔지 알지도 못해요. 저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건가요?”

평생을 사육장 안에서 갇혀 산 곰의 이야기다. ‘사육곰’이라는 낙인이 찍힌 곰들은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평생을 철창 안에 갇혀 곰으로써의 본능과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한 채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나간다. 우리나라 어딘가에서 키워지고 있는 368마리의 사육곰들은 지금도 괴로워하고 있다.

지난 7월, 경기도 용인의 한 곰농장에서 곰 한 마리가 탈출해 사살됐다. 지난 22일에 같은 곰농장에서 곰 다섯 마리가 또다시 탈출했다. 어린 곰 두 마리는 바깥이 무서워 다시 철창으로 돌아갔고, 탈출한 세 마리 중 한 마리는 생포, 한 마리는 사살, 한 마리는 추적 중이다. 평생 단 한 번의 자유를 누리다가 생을 마감하거나, 자유가 무엇인지조차 몰라 스스로 철창 안에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육곰들의 삶이다.

사육곰 산업 뒤에는 고통받는 곰들만 남았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초 사육곰 수입을 장려했다. 곰을 수입해 키운 뒤, 웅담을 채취해 해외에 수출하겠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해외에 웅담을 수출했다는 기록은 없고 국내에서만 곰의 웅담을 소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농가들이 사육곰 사업을 위해 곰을 수입했고 좁은 철창 안에 가둬 사육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곰은 1973년에 채택된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이미 세계적인 멸종 위기 야생동물로 보호받고 있었다. 이에 따라 수입과 수출 등이 금지돼 있었고, 뒤늦게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한 정부는 1985년 곰의 수입과 수출을 금지했다. 1993년에는 한국도 CITES에 정식 가입하며 곰의 재수출까지 금지시켰다.

하지만 이미 국내에는 일본과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수입한 곰들이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정부는 이미 수입된 곰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더 이상 한국에 사육곰이 수입되지 않았지만 기존에 들여온 곰들에게 자식을 낳게 해 인공번식을 시작했다. 2021년 현재 철창 속에 갇혀있는 사육곰들은 1980년대에 수입된 사육곰의 자손이다. 정부는 2005년에서야 야생동물식물보호법 시행으로 사육곰 처리 기준을 마련하면서 사육곰 관리를 각 지자체에서 환경청으로 이관했다. 그리고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증식 금지를 위해 사육곰 중성화 사업을 진행하고 인공번식을 법적으로 규제했다. 정부의 뒤늦은 대처로 사육곰 번식이 일어났고 또다시 고통 받는 곰들이 생겨났다. 자식에게 철창 안의 삶을 물려주고 떠난 부모 세대 곰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가늠도 가지 않는다.

정부는 사육곰이 처한 환경을 개선해 주거나, 야생동물 수용시설을 만드는 등의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사육곰의 수입과 수출을 금지하고 중성화만 한 뒤 곰을 다시 철창 안에 가둬버렸다. 곰의 삶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안일한 대처와 방관이었다.

철창 안에서 살아가는 사육곰의 삶

먹이를 다 먹고 난 뒤 나른해진 곰이 잠들 준비를 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먹이를 다 먹고 난 뒤 나른해진 곰이 잠들 준비를 하고 있다. 야생 속에서의 곰은 하루 종일 먹이를 찾고, 주변을 경계하고, 영역을 점검하며 바쁘게 살지만 사육곰은 그렇게 살 수 없기 때문에 밥을 먹고 누워있다가 잠드는 것을 반복한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철창 안에서 살아가는 사육곰들이 처한 현실은 상상이상으로 열악하다. 시멘트 바닥에서 철창을 사이에 두고 세상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훼손된 환경에서 평생 개사료만 먹는다. 이조차도 사육곰들 사이에서는 잘 지내는 편에 속한다. 큰 규모의 농장에서 키워지는 곰들은 배설물이 쉽게 빠지게 하기 위해 바닥에 구멍이 숭숭 뚫린 뜬장에서 살아간다. 뜬장은 시멘트장보다 훨씬 좁고 환경도 열악하다. 뜬장에 사는 곰들에게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이는 경우도 많다. 좁은 사육장 안에서 행동 욕구가 좌절되고 그것이 스트레스로 이어져 정신건강에 문제를 일으킨다. 곰들은 똑같은 방향으로 빙빙 돌거나, 머리를 이리저리 흔드는 등의 정형행동을 보인다.

곰들은 굉장히 단조로운 삶을 산다. 먹고 자고의 반복이다. 무료함을 견디다 못해 할 일을 스스로 찾기도 한다. 사육장 안에 조그만 구멍이 나면 그곳을 열심히 파보고, 철창의 용접이 떨어지면 열심히 흔들어본다. 원래 곰들은 야생에서 하루 종일 먹이를 찾아다니고, 자기 영역을 점검하며, 다른 개체를 경계하면서 쉬지 않고 머리와 몸을 쓰면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사육곰들은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무력하게 누워 있다가 잠드는 것이 반복된다. 평생을 억압되며 살다가 자연 속에 발 한번 딛지 못한 채 죽어서야 철창 밖을 나갈 수 있다.

대부분의 사육곰은 반달가슴곰으로 멸종 위기종에 해당한다. “그럼 지리산에 풀어주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육곰은 한반도의 반달가슴곰과는 다른 아종이기 때문에 자연으로 돌려보낼 경우 생태계 교란을 일으킬 수 있다. 또, 사육곰은 평생을 갇혀서 살았기 때문에 자생능력이 없다. 혼자 먹이를 구할 수도, 야생에 적응할 수도 없다. 사육곰들은 사람의 보살핌 없이는 살 수 없다. 사람의 이기심으로 고통받았던 곰들이기 때문에 사람이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옳은 일이다.

곰들이 자연과 비슷한 환경에서 살면서 사람의 보살핌도 받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방안은 ‘생츄어리(sanctuary)’를 건립하는 것이다. 생츄어리란 여러 이유로 인해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물을 구조해 평생 보호하는 시설을 말한다. 동물을 이용해서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물원과 다르고, 개인이나 단체에 입양 보내지 않고 자연 서식지와 최대한 유사한 환경에서 평생 보호한다는 점에서 동물 보호소와 구별된다. 동물 보호와 복지가 최우선인 것. 살아서는 철창 밖을 나갈 수 없을 것만 같던 사육곰들을 위해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와 ‘동물 행동권 카라’가 생츄어리를 건립하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강원도 화천에는 사육곰 13마리가 있다

강원도 화천의 곰 농장 앞에 붙어 있는 ‘곰 주의’ 경고판(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강원도 화천의 곰 농장 앞에 붙어 있는 ‘곰 주의’ 경고판. 화천의 농장주가 몸이 아파 곰들을 더 이상 돌볼 수 없게 돼, 생츄어리 건립 전까지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들이 매주 방문해 곰들을 돌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지난 5월, 화천의 농장주가 “아파서 곰을 키우지 못하게 됐는데, 죽이기는 싫고 잘 키울 수 있는 곳에 곰을 보내고 싶다”는 연락을 했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최태규 대표는 생츄어리가 만들어질 때까지 화천의 농장에서 곰들을 보살피기로 결정했다. 최 대표는 “1년 동안 생츄어리를 건립해 내년에 곰들을 생츄어리로 이동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곰들의 기호식품과 건강 상태에 맞춰 먹이를 조금씩 다르게 배급한다. 사진의 먹이통은 U8 ‘우투리’의 것이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곰도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이 있다. 활동가들은 곰들의 기호식품과 건강 상태에 맞춰 먹이를 조금씩 다르게 배급한다. 사진 속의 먹이통은 U8 ‘우투리’의 것이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화천의 곰 농장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먹이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단호박, 사과, 땅콩, 밤, 고구마, 사료가 차례로 양동이에 나눠진다.

곰들을 한 마리씩 면밀하게 관찰하는 이형관 활동가. 일지에 곰들의 건강 상태를 기록한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건강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곰들을 한 마리씩 면밀하게 관찰하는 이형관 활동가. 곰들을 한 마리씩 자세히 관찰하는 것을 ‘개체 관찰’이라고 한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본격적인 식사 시간 전에 사육장 안에 먼저 땅콩을 가득 뿌려준다. 밥을 먹기 전이라 흥분한 곰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다. 땅콩을 까먹는 곰들의 건강 상태를 이형관 활동가가 면밀하게 관찰한다. 곰들을 한 마리씩 자세히 관찰하는 것을 ‘개체 관찰’이라고 한다. 개체 관찰을 통해 곰들이 어떤 음식을 남기는지 살핀다. 곰이 밥을 먹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분변 상태도 확인한다. 분변이 묽은지, 피가 섞여 있지 않은지 등을 관찰한다. 농장의 곰들은 나이가 많기 때문에 관절 쪽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절뚝거리면서 걷는지도 봐야 한다. 이 활동가는 “곰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곰들이 땅콩을 얼추 다 먹으면 사육장 청소가 시작된다. 곰을 잠시 내실 안에 넣어놓고 분변과 음식 찌꺼기, 밖에서 날아 들어온 낙엽 등을 열심히 물청소한다. 청소는 부지런하고 빠르게 이루어진다.

곰이 철창 사이에 끼워진 사과를 빼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활동가들이 곰들의 행동풍부화를 위해 철창 사이에 사과를 끼워둔 것. 곰들은 사과를 먹기 위해 손과 입을 쓰며 고군분투한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곰이 철창 사이에 끼워진 사과를 빼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활동가들이 곰들의 행동풍부화를 위해 철창 사이에 사과를 끼워둔 것. 곰들은 사과를 먹기 위해 손과 입을 쓰며 고군분투한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청소로 깨끗해진 바닥에 먹이를 부어준다. 사과와 단호박을 철창 사이에 끼워두기도 하고, 물통 위에 띄워두기도 한다. 행동 풍부화를 위해서다. 먹이를 좀 더 먹기 어렵게 함으로써 곰이 머리와 손을 쓰며 새로운 자극을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 곰들은 좋아하는 사과를 먹기 위해 철창 사이로 손을 뻗어 사과를 가져가려고 고군분투한다. 도지예 활동가는 “음식물 쓰레기나 사료만을 먹던 곰들이 정상적으로 잘 먹게 된 후 음식을 천천히 먹게 됐다”며 기뻐했다.

곰들은 시멘트 바닥 위에서 산다. 시멘트 바닥은 물이 마르지 않기 때문에 곰의 발도 늘 축축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발이 늘 쓸리고 터진다. 타이어와 소방호스로 만든 침대는 발바닥이 아픈 곰이 푹신한 곳에서 쉬라고 만든 것이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곰들은 물이 잘 마르지 않는 시멘트 바닥 위에서 산다. 물에 젖어 늘 축축한 발바닥은 거친 시멘트 바닥을 걸어 다니며 늘 쓸리고 터지는 것을 반복한다. 활동가들은 발바닥이 아픈 곰을 위해 타이어와 소방호스를 엮어 푹신한 침대를 만들어 줬다(사진: 취재기자 허시언).

밥을 다 먹은 곰들은 소방 호스로 만든 해먹 위를 살피며 뭔가 더 먹을 것이 없나 뒤져보기 시작한다. 타이어와 소방 호스를 엮어 만든 침대에 올라앉아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나른한지 눈을 끔뻑이며 잠들 준비를 하기도 하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곰도 있다. 해먹과 침대는 행동 풍부화를 위해 직접 제작한 것이다. 방상우 활동가는 “곰들이 만들어준 물품을 잘 사용할 때마다 뿌듯하다”고 말했다.

‘소비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

우리가 사육곰에 대해 끔찍해하고 분노하는 이유는 ‘곰의 웅담을 꺼내 먹기 위해’ 곰을 키운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사실 곰에게는 웅담을 빼간다는 사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곰은 ‘내가 죽어서 웅담을 빼먹힐거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곰에게는 자신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삶이 어떤 경험과 감정으로 이루어지느냐가 곰의 행복을 정하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곰이 죽은 후에 어떤 목적으로 ‘쓰이고’ 있느냐에 대해서 분노할 것이 아닌, 곰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면서 끔찍하게 생각해야 한다. 곰을 평생 사육장 속에 갇혀 살아가게 하는 일이 얼마나 비인도적인 일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최태규 대표는 사육곰을 비롯한 많은 야생동물을 위해 우리가 갖춰야 할 태도를 ‘소비하지 않는 것’으로 꼽았다. 최 대표는 귀엽다는 이유로 야생동물 카페를 차려 구경거리가 되게 한다던가, 몸에 좋다는 이유로 곰의 웅담을 꺼내 파는 것을 예로 들었다. 동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하면 동물이 사는 환경이 안 좋아지기 때문에 동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법으로 제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으로 강력하게 규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동물 산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동물은 돈이 되지 않는다’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동물을 이용한 사업을 소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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