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즈존, 노틴에이저존, 노시니어존 등 노(NO) 존 많아져... '차별에 관대한 사회'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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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즈존, 노틴에이저존, 노시니어존 등 노(NO) 존 많아져... '차별에 관대한 사회'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어
  • 취재기자 허시언
  • 승인 2021.12.14 16: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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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즈존, 노시니어존에 이어 노교수존까지 생기자 논란... 해당 술집 한 달 만에 노교수존 공지문 떼
유독 아이와 관련된 갑질에는 예민하게 반응... 소수의 문제지만 전체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경향 있어
일부를 위해 특정 집단의 권리를 무시하고, 배제하는 행동은 비정상적... 언젠가는 본인의 문제 될 것
노키즈존, 노틴에이저존, 노시니어존 등 노(NO) 존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노키즈존, 노틴에이저존, 노시니어존 등 노(NO) 존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노키즈존, 노틴에이저존, 노시니어존 등 우리 사회에 노(NO)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노(no) 존은 말 그대로 특정 집단의 출입을 금지하는 공간을 뜻한다. 그동안 노키즈존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것에 비해 노틴에이저존, 노시니어존에 이어 노교수존까지 생기자 논란이 일었다. 차별을 너무 당연시 여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지난달 부산의 한 대학가 앞 술집에서 ‘노교수존’을 선언하면서 교수의 출입을 금지해 논란이 생겼다. 교수가 술집에 와 갑질을 하고, 사석에서 교수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생겨난 것이었다. 하지만 노교수존은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해당 대학의 교수협의회에서 “일부의 문제를 교수 전체의 문제로 일반화시켜 명예를 실추시키지 말아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술집은 노교수존을 선언한지 한 달 만에 노교수존 공지문을 뗐다.

이는 그동안 많은 아이와 아이의 부모가 ‘노키즈존’을 반대하는 의견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묵살된 것과는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노교수존은 처음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과 언론이 주목했다. 교수협의회에서 연락을 하자마자 노교수존은 없어져버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차별받고 있으며,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많은가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차별받는 집단이 아주 소수일지라도 사회적인 권위가 있는 사람들이 차별받는 대상이 되자 조금의 항의에도 차별은 금방 없어졌다.

노키즈존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차별을 받는 대상이 아이와 아이의 엄마로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신이 차별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말할 수 없고, 아이의 엄마가 아무리 노키즈존이 부당하고 외쳐도 사람들은 듣지 않는다.

우리는 수많은 갑질을 보고, 듣고, 경험한다. 하지만 유독 아이와 관련된 갑질에는 예민하게 반응하고, 노키즈존 찬성을 외친다. 아이와 아이의 엄마가 하는 갑질과 매너 없는 행동들은 소수가 저지르는 행동일지라도 모든 아이와 부모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단 한 명의 아이가 식당에서 뛰어다니며 손님들을 불편하게 한다고 해도 그것은 모든 아이의 문제가 된다. 아이가 없는 30대가 갑질을 하면 그것은 30대 전부의 문제가 아닌 갑질을 한 사람의 문제가 된다. 그가 한 행동을 일반화 시키지 않는다. 개인의 문제로 여길 뿐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단지 ‘특정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는 경험은 불쾌할 것이다. SNS에서는 노(NO) 존에서 당한 각종 경험담을 볼 수 있다. SNS에서 “비 오는 날에 아이와 함께 매장에 들어갔는데 노키즈존이라고 쫓겨났다”, “청소년은 출입 금지라고 해서 매장에 발도 들여놓지 못했다”, “SNS에서 유명하다고 해서 아이와 함께 찾아갔는데 노키즈존이었다. 알았으면 가지 않았을 것이다” 등의 차별 경험이 쏟아졌다.

일부의 편안함을 위해 특정 집단의 권리를 무시하고, 배제하는 행동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모든 노(NO) 존이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이지만 암묵적으로 차별을 용인하고, 방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당장 본인과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했고, 늙지 않을 수 없으며, 언젠가는 아이를 가지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당장 본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차별을 지켜만 보기에는 언젠간 나의 일이 될 문제들이다.

차별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당장의 불편함 때문에 차별을 일삼는 것이 아닌, ‘불편하다고 여겨지는 집단’을 받아들이고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는 태도부터 갖춰야 한다. 언젠간 자신도 ‘불편하다고 여겨지는 집단’에 속해있는 사람이 돼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지 차별하고 배제하는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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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희 2022-03-18 23:14:26
우리 사회가 아동 같이 차별에 취약한 계층에 더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