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만 있으면 된다?...날로 높아지는 미디어 폭력성, 브레이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 높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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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만 있으면 된다?...날로 높아지는 미디어 폭력성, 브레이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 높아져
  • 취재기자 김나희
  • 승인 2021.12.13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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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지옥’ 등 최근 인기 드라마는 대부분 ‘청불’
폭력적인 콘텐츠의 무분별한 이용에 영향받는 어린아이들
수익성, 화제성 좇아 직업윤리는 뒷전인 콘텐츠 제작자들
미디어 콘텐츠 소비자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 함양 필요

술래를 맡은 아이가 뒤돌아 눈을 감고 구호를 외치기 시작한다. 그러자 멀리 서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 술래를 향해 움직인다. 구호를 다 외친 술래가 홱 뒤돌자 아이들이 제자리에 멈춘다. 아이들을 이리저리 살피던 술래가 별안간 총 모양으로 바꾼 손을 들고 한 아이를 가리키며 “탕!” 입소리를 낸다. 그 아이는 총에 맞아 죽은 시늉을 하며 놀이에서 ‘탈락’한다. 술래에게 걸리지 않고 술래가 있는 곳까지 도착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놀이. 바로 요즘 아이들이 아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다.

최근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이 한국 콘텐츠의 주류가 됐다. 이로 인해 아이들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속 장면을 알고 따라 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오징어 게임’이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라는 점이다.

오징어 게임의 인기가 불러온 ‘패러디’ 열풍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서 압도적인 글로벌 랭킹 포인트 1위를 기록 중이다(사진: 플릭스패트롤 웹사이트 캡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서 압도적인 글로벌 랭킹 포인트 1위를 기록 중이다(사진: 플릭스패트롤 웹사이트 캡처).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역대 시리즈를 통틀어 최장기 1위를 유지하고, 한국 드라마 최초로 미국 ‘고담 어워즈’의 수상작이 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한국 드라마의 위력을 세계에 알렸다.

그 인기를 증명하듯 ‘오징어 게임’의 2차 콘텐츠가 쏟아졌다. 유튜브나 틱톡 등에는 ‘오징어 게임’의 장면을 잘라 업로드한 2차 창작물 영상이 넘쳐난다. 오픈 플랫폼에서는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콘텐츠에는 미성년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대학생 노주영(21) 씨는 “친구가 얼마 전 4~6세 사촌 동생들이 모여서 휴대폰으로 오징어 게임을 보는 모습을 보고 충격받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에서는 ‘아는 오징어 게임’,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에서는 ‘주꾸미 게임 레이스’라는 이름으로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한 코너를 진행했다. 시청 등급이 15세 이상인 두 프로그램이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인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하는 것은 모순이다.

길거리의 한 소품샵에서 오징어 게임 등장인물을 캐릭터화한 소품을 팔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나희).
길거리의 한 소품샵에서 오징어 게임 등장인물을 캐릭터화한 소품을 팔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나희).

‘오징어 게임’은 일상 속에도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롯데리아에서는 지난 10월 블랙오징어버거 세트를 구매하면 상품 당첨 여부를 알 수 있는 명함 스크래치를 나눠 줬다. 이벤트 포스터의 로고와 상품 내용 모두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한 것이었다. 대학생 정휘원(21) 씨는 “길거리에 소품이나 액세서리를 파는 가게에서 오징어 게임 캐릭터 인형을 파는 것을 봤다”며 “그런 인형은 보통 어린 아이들을 겨냥한 물건인데 그런 식으로 폭력적인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미성년자의 ‘오징어 게임’ 시청과 모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생겨났다. 부산교육청은 지난 10월 25일 관내 초·중·고교에 ‘특정 매체를 모방한 학교폭력 사례 발생 우려 관련 미디어 시청 및 놀이 금지 지도 요청’ 공문을 보냈고, 미국과 유럽 학교에서는 핼러윈 데이에 앞서 학생들에게 ‘오징어 게임’ 코스프레 금지령을 내렸다. 대학생 박수영(21) 씨는 “폭력적인 콘텐츠들이 폭력을 너무 멋지게 포장하니 그것을 따라 하는 사람도 많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극적일수록 좋다?...논란과 인기는 ‘정비례’ 관계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얻은 한국 시리즈는 ‘오징어 게임’뿐만이 아니다. ‘킹덤’, ’스위트홈‘, ‘인간 수업’, ‘마이 네임’ 그리고 ‘오징어 게임’의 바통을 넘겨받은 ‘지옥’까지. 모두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이 폭력적인 나라라는 인식이 생길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대학생 조현지(21) 씨는 “오징어 게임에서 잔인하게 묘사되는 게임들은 원래 순수하게 즐기는 어린 시절의 놀이”라며 “한국이 세계에 알려지는 것은 좋지만 그렇게 폭력적으로 잘못 묘사된 것을 통해 알려지는 건 싫다”고 말했다.

OTT 서비스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한국에서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은 늘 논란이 됐으나 이번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흥행으로 그 기조가 수면 위로 완전히 드러난 것뿐이다.

트로피를 두고 싸우던 ‘펜트하우스’의 주인공 두 명이 대기실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사진: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장면 캡처).
트로피를 두고 싸우던 ‘펜트하우스’의 주인공 두 명이 대기실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사진: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장면 캡처).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15세 이상 시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상품화와 폭력성이 짙은 연출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위)로부터 행정지도 ‘권고’를 받았다. SBS 드라마 ‘펜트 하우스’는 과도한 폭력 묘사 등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다가 결국 방통위로부터 ‘법정 제재’를 받았다. 두 드라마는 끊이지 않는 논란 속에서도 높은 시청률로 화제성과 인기를 끌었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극적인 콘텐츠는 가장 빠르고, 가장 쉽게 돈을 버는 소재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은 사람들의 관심을 쉽게 끈다. 그렇게 모인 조회 수는 높은 수익을 내는 발판이 된다. 오래 남을 작품성보다는 순간적인 클릭을 위해 자극적인 소재를 택하는 것이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생산되면 될수록 사람들의 폭력 감수성이 무뎌진다. 그러면 더 높은 폭력성의 콘텐츠를 찾게 되고, 결국 미디어가 생산하는 콘텐츠의 폭력 강도도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갈수록 거세질 수밖에 없다. 부산일보 김건수 논설위원은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을 모른 체하는 것도,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무뎌지는 것도 폭력에 가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폭력적인 콘텐츠는 폭력적인 현실을 향한 비판이 목적인 경우도 있다. 여러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을 고발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폭력성이 높아지더라도 그 현실을 그대로 재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위원은 “영상 예술의 설득력이 이런 자극적인 방식밖에 없는 거라면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한 남자가 넷플릭스의 수많은 콘텐츠 중 무엇을 볼지 고민하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한 남자가 넷플릭스의 수많은 콘텐츠 중 무엇을 볼지 고민하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미디어 시대, 현명한 콘텐츠 소비자 되기는 필수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그만큼 우리는 아이들의 미디어 이용을 무조건 제한하기보다, 좋은 것만을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SBS 일요특선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시청자미디어재단 김아미 정책연구팀장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도 있고 양질의 콘텐츠도 있다”며 “많이 찾아보고 어떤 것을 추천해 주면 좋을지 생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디어 콘텐츠 소비자는 자극적인 콘텐츠만을 찾아 소비하며 자극적인 콘텐츠의 생산을 부추기고 있지 않은지 늘 점검해야 한다. 경실련 한상희 팀장은 “수용자는 미디어에 나타난 고정관념 및 폭력성과 선정성에 대해 비판적 감시의 끈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갖춰야 한다. 미디어에서 표현하는 것들을 무작정 모방하지 않고, 한 발짝 물러나 폭력적이고 선정적이지 않은지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에 출연한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유현재 교수는 “미디어는 미디어일 뿐 따라하진 말자”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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