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 되기를”...한 배리어 프리 활동가가 바라는 꿈과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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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 되기를”...한 배리어 프리 활동가가 바라는 꿈과 소망
  • 취재기자 하미래
  • 승인 2021.11.16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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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위한 배리어 프리 콘텐츠 제작 감수하는 김예지 씨
‘셰어마인드’ 운영하며 장애인이 편한 일상생활 가능하도록 힘써
화면해설, 그림 해설, 영화 모니터링으로 장애인의 문화생활 도와
영화비평 교육으로 장애인이 능동적 주체로 성장할 기회 제공도
시청자미디어센터 교육 통해 배리어 프리 활동에 관심 갖게 돼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모두가 ‘동참’할 때 좋은 세상 만들어져

대한민국은 모든 구성원이 살기 좋은 나라일까?

휠체어가 드나들기에 턱이 높은 가게 입구, 자막이나 수어 통역이 없는 방송, 식당의 키오스크 사용으로 누군가는 음식 주문조차 어려워 보인다.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는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이다. 배리어 프리 활동가 김예지(37) 씨는 부산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예지 씨가 카페에서 인터뷰에 응하며 미소 짓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하미래).
김예지 씨가 카페에서 인터뷰에 응하며 미소 짓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하미래).

배리어 프리 콘텐츠 제작·감수팀 ‘셰어마인드’의 수장

김예지 씨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 프리 콘텐츠를 제작하고 감수하는 단체인 ‘셰어마인드’를 운영하고 있다. 배리어 프리 콘텐츠는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제작된 영상물에 화면해설과 자막을 추가해 장애인이 감상할 수 있도록 제작하는 것이다. 배리어 프리 콘텐츠는 영상, 영화, 그림책, 공연, 콘서트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김 씨는 이런 배리어 프리 콘텐츠가 제작될 때 반드시 장애인의 목소리가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감수 과정에서 장애인이 참여해 의견을 나눠야 배리어 프리 콘텐츠를 장애인 맞춤형으로 제작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김예지 씨는 “비장애인만이 배리어 프리 콘텐츠를 평가하지 않는다”며 “장애인의 참여로 더 높은 질의 배리어 프리 콘텐츠가 탄생한다”고 말했다.

김예지 씨는 셰어마인드의 총괄팀장으로서 배리어 프리 문화조성을 위한 ‘웰컴 가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웰컴 가게 프로젝트의 목표는 장애인을 환영하는 가게를 만드는 것. 김 씨는 “장애인이 외부활동을 할 때 겪는 불편함을 해소해 주고 싶었다”고 프로젝트 진행 이유를 밝혔다.

웰컴 가게 프로젝트는 부산시민운동지원센터의 지원을 받고 있다. 김 씨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대안학교 아이들에게 장애 공감 교육을 하고 점자 교구재를 지원했다. 김예지 씨는 “프로젝트를 희망하는 카페에는 점자 메뉴판을 제작해줬고, 한 교육 센터에는 휠체어 경사로가 설치되도록 도왔다”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웰컴 가게는 최근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활동 중 하나예요.” 김예지 씨는 웰컴 가게 프로젝트에 애정을 드러냈다. 김 씨는 웰컴 가게 프로젝트가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치는지 설명했다. 취재와 컨설팅을 거쳐 어느 정도 프로젝트가 진척된 후에는 여러 번의 모니터링을 거쳐야 비로소 하나의 ‘웰컴 가게 프로젝트’가 완성된다고 김 씨가 말했다.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에 있는 셰어마인드 사무실 안에 명패가 붙어있다(사진: 취재기자 하미래).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에 있는 셰어마인드 사무실 안에 명패가 붙어있다(사진: 취재기자 하미래).

그림 해설 오디오북 만들어 시각장애인 아이들에게 선물

김예지 씨가 속한 셰어마인드는 올해 시각장애인 아이들을 위해 그림 해설 오디오북을 만들었다. 활동의 목적은 시각장애인 아이들이 그림책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하는 것.

시각장애인 아이들이 그림책을 보기 위해서는 누군가 옆에서 책을 읽어주거나 시중에 나온 오디오북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이해 없이 책의 대사만 듣게 된다면 아이들이 그림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림 해설 활동은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됐다. 김 씨는 “시각장애인 아이들을 위해 맞춤형 그림 해설을 진행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림 해설이 진행되는 과정은 복잡하다. 먼저 비영리 목적으로 그림책을 배리어 프리 버전으로 제작하고 싶다고 출판사에 연락한다. 김 씨는 “이미 출판된 그림책을 이용하는 것이기에 저작권 확인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사용 허락을 받은 책을 셰어마인드에서 그림 해설에 알맞게 재조정해 대본을 작성한다. 그림 해설 대본이 완성되면 섭외된 성우가 녹음을 진행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여러 번의 감수가 이뤄진다. 김예지 씨는 “그림 해설을 진행하는 5개월의 시간 동안 열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며 “그림 해설은 음원 형태로 제작된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그림 해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손길이 안 닿는 데가 없기 때문에 결과물을 보면 참 애틋하다”고 말했다.

완성된 결과물은 전국의 맹학교 아이들과 시각장애인 복지관에 전달된다. 김 씨는 “신청자도 받아 이들에게 무료 배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예지 씨가 그림 해설 오디오북 제작을 위해 녹음실에서 디렉팅을 보고 있다. 왼쪽이 김예지 씨다(사진: 김예지 씨 제공).
김예지 씨가 그림 해설 오디오북 제작을 위해 녹음실에서 디렉팅을 보고 있다. 왼쪽이 김예지 씨다(사진: 김예지 씨 제공).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해 더욱 빛나는 모니터링단

김예지 씨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화면해설은 영상 콘텐츠의 장면을 글로 해설하고 음성으로 전달해 시각장애인의 이해를 돕는다. 김 씨는 부산국제영화제, 부산가치봄영화제와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화면해설을 작업했다.

김 씨는 화면해설 작가로 활동하면서 셰어마인드에서 화면해설 글을 시각장애인이 감수할 수 있도록 연계하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 셰어마인드는 화면해설이 된 글과 영화를 시각장애인이 함께 감수할 수 있도록 한다.

셰어마인드와 김예지 씨가 추구하는 가치는 ‘함께’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 그 과정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의 참여가 필요하다.

셰어마인드의 방향성은 배리어 프리 영화 모니터링단 활동에서 두드러진다. 셰어마인드는 모니터링을 할 때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영화를 감상하고 불편한 점이나 개선사항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김 씨는 “영화뿐만 아니라 관련 행사 자체에 모니터링을 진행한다”며 “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렵진 않은지, 특별하게 불편한 점은 없는지 등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모니터링단’이라는 책임감을 지니고 활동하며, 장애인들의 목소리가 ‘셰어마인드’라는 단체를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한다.

영화비평 교육으로 새로운 기회의 장 열어

“한계를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김예지 씨가 한 말이다. 김 씨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싶다.

사람들은 화면해설이나 자막을 통해 장애인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생각은 거기서 그친다. 장애인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예지 씨는 “장애인은 콘텐츠를 받아 누리는 수요자뿐만 아니라 능동적인 주체로 활동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셰어마인드는 올해 처음으로 장애인을 대상으로 영화비평 교육을 진행했다. 영화에 관심 있는 시각장애인 교육생을 모집해 그들에게 화면해설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영화 감수 방법에 대한 교육을 추진했다. 그 후 직접 영화감독과 만남을 통해 영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영화비평 교육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에게 글쓰기 교육을 병행해 그들이 비평문을 작성할 수 있도록 도왔다.

영화란 무엇인지, 영화를 어떻게 감수할 것인지, 비평문을 쓰기 위해 글은 어떻게 작성하는 것인지. 셰어마인드는 시각장애인에게 어디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마치 패키지처럼 제공했다.

영화비평 교육을 기획했던 이유는 즐거움에 있다. 비장애인이 영화를 보고 다양한 재미를 느끼는 만큼, 장애인도 이런 즐거움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교육이 시작됐다고 김 씨가 설명했다. 김예지 씨는 “자막이나 화면해설 영화가 있다면 장애인도 영화비평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며 “이와 같은 수업이 계속된다면 장애인도 영화비평가로도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영화비평 수업은 끝났지만, 현재 시각장애인이 쓴 비평문을 수정, 교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고 이후에 문집으로 발간한다고 얘기했다.

글쓰기 수업으로 이어진 인연이 ‘셰어마인드’의 시작

김예지 씨가 처음부터 배리어 프리에 뜻을 뒀던 건 아니었다. 김 씨는 글쓰기 수업을 듣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개설한 배리어 프리 작가 교육 과정을 신청했다.

배리어 프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김 씨는 수업을 듣고 나서야 화면해설 작가 양성 수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예지 씨는 “처음에는 잘 알지 못했는데, 수업 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화면해설 작가로 활동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김 씨는 그곳에서 초기 셰어마인드 팀원들을 만났다. 배리어 프리 감수 수업과 작가 수업을 듣던 사람들과 배운 것을 연습하고 활용하기 위해 스터디그룹처럼 결성한 것이 셰어마인드의 시작이었다. 작게 결성한 그룹의 활동 범위가 점점 넓어지면서 2019년 말 셰어마인드를 정식 단체로 등록해 활동을 이어갔다.

초기에 함께했던 팀원들은 개인 사정으로 지금은 같이 활동하지 않지만, 김 씨는 현재 배리어 프리 콘텐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셰어마인드를 운영하고 있다.

김예지 씨는 배리어 프리란 사회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나가는 하나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와 같은 장벽을 허물어가면서 모두가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움직임.

김 씨는 장애인이 편하면 비장애인이 편한 세상이 되고, 장애인이 불편한 환경이면 비장애인도 불편한 환경이 될 수 있다고 얘기했다. 김 씨는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면 어떤 상황이 닥쳐도 모든 사회구성원이 편안함을 누리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김예지 씨는 배리어 프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참’이라고 얘기했다. 김 씨는 배리어 프리를 타인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예지 씨는 “배리어 프리가 세상에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한다”며 “이 활동이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발걸음이라는 인식이 생겼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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