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대학생이 1인 굿즈샵 ‘마플샵’ 셀러, 유기묘 굿즈 제작자?...끊임없는 부캐활동 “개성있는 제 그림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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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대학생이 1인 굿즈샵 ‘마플샵’ 셀러, 유기묘 굿즈 제작자?...끊임없는 부캐활동 “개성있는 제 그림을 소개합니다”
  • 취재기자 김연우
  • 승인 2021.11.1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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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굿즈 마플샵 ’모다피 상점‘ 셀러 활동하는 경성대 미컴과 이현지 씨
동료 학생과 함께 학교 프로젝트 유기묘 굿즈 제작, 수익금은 전액 기부
초등 때부터 그림 좋아해...고등학교 동아리 활동, 의상 그리기에 영감이 돼
영화 ‘코렐라인’ 속 캐릭터가 그림 아이디어가 되기까지 끊임없는 노력
최종 목표는 다큐멘터리 피디를 넘어 일러스트레이터, 애니메이션 제작자

불빛이 하나 없는 어두운 방, 그녀는 오늘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조금은 기묘한 동화 속 작가가 되어본다. 동화의 주인공은 마을에서 가장 우아한 할머니. 아름다운 인품을 가진 할머니다. 그러나 사실 할머니는 고상한 연쇄살인마다. 인육을 넣어서 쿠키를 만들고 마을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할머니가 연쇄살인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결국 할머니는 자살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잔혹동화는 그림을 사랑하는 21세 대학생 이현지 씨의 상상에서 나온 이야기다.

이현지 씨가 직접 그린 그림. 상상 속 할머니가 본인의 팔을 잘라 쿠키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사진: 이현지 씨 제공).
이현지 씨가 직접 그린 그림. 상상 속 할머니가 본인의 팔을 잘라 쿠키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사진: 이현지 씨 제공).

경성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 재학 중인 이현지(21) 씨는 최근 유행하는 1인 굿즈샵 ‘마플샵’ 의 셀러이다. ‘마플샵’은 상품 제작부터 배송까지 다 알아서 해주는 세상 모든 크리에이터, 아티스트를 위한 굿즈 커머스다. 누구든 아이디어만 있다면 셀러 신청을 넣을 수 있고, 내가 올린 상품이 누군가의 선택을 받게 되면 제작과 배송은 해당 앱에서 이뤄지는 시스템이다. 또 크리에이티브 셀러는 만 14세 이상이면 누구나 국적, 직업 등에 상관없이 지원할 수 있으며, 계약 기간은 별도로 없고 자의로 언제든 샵 운영을 종료할 수 있다.

그녀의 샵 이름은 ‘모다피(modappy) 상점’ 이다. 처음 마플샵을 만나게 된 건 인스타그램 광고였다. “셀러가 되어보시겠어요?”라는 적극적인 멘트에 반했던 것. 작년 10월 3일 그녀는 그동안 그렸던 그림과 팔려고 하는 품목을 정해 셀러 신청을 했고, 승인 후 지금까지 샵을 운영하고 있다. 이현지 씨는 주로 직접 그린 그림이 들어간 노트랑 엽서, 스티커 등을 제작한다.

이현지 씨가 운영하는 ‘마플샵’ 모다피 상점 첫 홈 화면이다(사진: 이현지 씨 제공).
이현지 씨가 운영하는 ‘마플샵’ 모다피 상점 첫 홈 화면이다(사진: 이현지 씨 제공).

이현지 씨가 처음 제작한 굿즈는 마법사 그림이 들어간 엽서였다. 흡족하게 그려진 그림을 바라보다 굿즈로 팔아보라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판매를 시작하게 됐다. 그녀는 본인이 만든 굿즈를 다른 사람이 소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신기하고 뿌듯해 지금까지 셀링을 계속하고 있다.

수익을 목적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라지만 그녀에게 가끔 ‘현자타임(현실 자각 타임)’이 찾아오기도 한다. 마플샵 같은 경우 제작을 업체 측에서 도맡아서 진행한다는 점은 편하지만, 그만큼의 수수료를 떼어간다. 디자이너 본인이 가져갈 수 있는 디자인 값을 직접 작성해서 제출하면 거기에 본인들이 가져가는 수수료를 더 합산하여 소비자 가격으로 내놓는 것. 예를 들어 이 씨가 올린 그림엽서의 디자인 값을 5000원으로 측정하면 업체 측에서는 1만 원이라는 수수료를 붙인다. 그러면 결국 소비자는 1만 5000원이라는 비싼 가격에 엽서를 구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는 이런 장사치가 싫어서 늘 최소한의 디자인 값으로 설정을 해놓는다고 한다. 그 가격은 1000원. 그녀의 디자인 가치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지만 소비자들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는 게 이 씨의 마음이다. 하지만 내 작품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우울함은 떨치기 어렵다.

유기묘 굿즈 제작자로 거듭난 21세 대학생 종횡무진 활약 중

지난 학기에는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찾은 두 명의 학생들과 함께 유기묘 굿즈 판매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경성대학교 드림하이 진로 멘토링의 일부인 진로부캐(부 캐릭터)활동으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사익보다 공익을 추구하는 유기견 굿즈 스토어 ‘세성현의 유기견, 유기묘 굿즈’. 그들은 유기견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 넓은 세상에 다가갈 수 있게 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현지 씨를 포함한 세명의 학생이 함께한 유기묘 굿즈제작 프로젝트 ‘세성현의 유기견, 유기묘 굿즈’ 계정이다(사진: 이현지 씨 제공).
이현지 씨를 포함한 세명의 학생이 함께한 유기묘 굿즈제작 프로젝트 ‘세성현의 유기견, 유기묘 굿즈’ 계정이다(사진: 이현지 씨 제공).

이현지 씨가 맡은 역할은 굿즈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는 일. 수영복을 입은 동물, 과제를 하는 동물 등 무거운 주제를 귀여움이 가득한 동물들로 재탄생시켰다. 프로젝트 동안 10~20개 남짓의 스티커와 엽서를 팔았지만 아쉽게도 학교 활동으로 상을 받지는 못했다. 이 씨를 포함한 세 학생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프로젝트를 통해 얻게 된 수익금 10만 원은 유기견 단체에 기부하며 마무리 지었다.

유년기와 학창 시절 속 그림 보면 부끄럽지만 그게 지금의 나를 키운 것들

그녀가 그림을 처음 그렸던 곳은 5세 때 다녔던 미술학원이었다. 오감을 이용하여 미술을 접하는 활동을 하면서 처음 그림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미술학원을 그만두고 나서도 그녀의 열정은 식을 줄을 몰랐다. 초등학교 6학년 땐 집 벽지에 그림을 마구 그려놓는 천진난만한 소녀이기도 했다. “지금 그 그림을 보면 너무 못 그려서 부끄러워요. 아직도 본가에 가면 벽 한 부분에 남아있는데 흑역사죠.”

고등학교 때는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짧은 만화를 연재했다. 비록 가족 휴가를 핑계로 휴재를 내렸던 만화를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그녀에게 그 만화는 소중하다. 일명 ‘현자툰’. 직접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 연재했던 만화는 공부하기 싫을 때 그녀의 도피처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땐 미술동아리를, 2학년 땐 패션동아리를 하며 줄곧 예술에 대한 사랑을 나타냈다. 특히 2학년 때 한 패션동아리에서 재활용 패션쇼를 열었던 게 지금의 본인에게 영감을 많이 줬다고 말했다. “못 입는 옷들을 조합해서 만들었던 특이한 의상들이 제가 지금 그리는 특이한 옷에 많은 영향을 미친 거 같아요.”

이현지 씨가 고등학교 3학년때 운영한 인스타그램 웹툰 계정에 5개의 게시물이 올라가 있다(사진: 이현지 씨 제공).
이현지 씨가 고등학교 3학년때 운영한 인스타그램 웹툰 계정에 5개의 게시물이 올라가 있다(사진: 이현지 씨 제공).

크레파스를 쥐고 손 그림만 그리던 아이가 이제는 아이패드를 이용해 디지털 그림을 그린다. 그녀의 최애 장비는 아이패드 7. 그녀의 최애 애플리케이션은 ‘프로 크리에이트’와 ‘스케치북’ 이다. 모두 아이패드에서만 호환되는 애플 애플리케이션이다.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여 손만 움직이고 있는 그녀에게 디지털 그림의 매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자 고개를 들어 살포시 미소를 짓는다. 그녀가 생각하는 디지털 그림의 매력은 색감이다. “크로키 같은 손 그림은 일일이 색을 칠해야 하고 한번 망치면 돌아가기가 힘들어요. 그렇지만 디지털은 다양한 색감을 구현할 수 있고 수정이 가능하죠. 굉장히 동화적이지 않나요?” 한껏 신이 난 목소리로 그녀가 대답했다.

학교 인근 카페에서 인물 그림 작업에 몰두한 이현지 씨가 집중한 눈으로 아이패드를 바라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연우).
학교 인근 카페에서 인물 그림 작업에 몰두한 이현지 씨가 집중한 눈으로 아이패드를 바라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연우).

이현지 씨의 주 작업은 디지털 그림이지만, 크로키 연습도 빼먹지 않는다. 디지털 그림으로 묘사가 잘 안 되는 부분은 크로키로 먼저 연습을 한다. 요즘은 손을 묘사하는 것이 잘 안 돼 온라인 시각 도구인 ‘핀터레스트’ 에 올라와 있는 크로키 자료집을 보고 따라 그린다. 가끔 디지털 그림이 마음처럼 잘 안 될 때면 아예 펜슬을 내려놓고 크로키에만 열중하기도 한다. 일종의 마음 비우기 행동이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작업환경은 어두운 곳이다. 불을 꺼놓고 책상 전등에만 의지한 채 음악을 들으며 작업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최애 작업 곡은 DANIEL의 은방울이다. “가사와 멜로디가 잔잔해서 작업에 집중하기 딱 좋은 곡이랍니다.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곡이에요.”

학과 공부와 작업을 병행하기 어렵지는 않냐는 질문에 그녀는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공부가 하기 싫을 때 강의를 틀어놓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 하지만 그림 작업도 공부와 약간 유사한 부분이 있다. “평균적으로 한 그림당 보통 3~4시간의 작업 시간이 걸리는데, 그림을 한번 그리고 나면 한참 쉬어야 하긴 해요. 공부 오래 하고 나면 지치는 것처럼 그림도 그래요.”

그림의 영감은 바로 여기서부터, 영화 ‘코렐라인’과 카메라

“영화 코렐라인 아세요? 저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림 아이디어를 주로 어디서 얻느냐는 물음에 눈을 반짝이며 최애 영화에 대해 소개한다. 그녀의 기묘하고 독특한 그림체가 바로 영화 ‘코렐라인’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녀는 개봉 당시 영화를 보고 무언가 오싹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재밌게 봤다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하나하나로 구성된 등장인물의 움직임에 반했다는 것이다. 캐릭터들이 입고 나오는 옷이 너무 특이하여 후에 인물 옷을 그리는데에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림 영감을 얻는 영화 ‘코렐라인’에서 주인공이 다른 세계의 엄마가 준비한 옷을 선물받는 장면이다(사진: 핀터레스트 제공).
그림 영감을 얻는 영화 ‘코렐라인’에서 주인공이 다른 세계의 엄마가 준비한 옷을 선물받는 장면이다(사진: 핀터레스트 제공).

남들과 조금 다른 기묘한 그림을 그리는 이현지 씨에게 주변 관찰은 꼭 필요하다. 미디어 계열 중에서도 영상을 전공하는 그녀에게 카메라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아이템이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은 그림의 영감이 된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 가서 사람 구경을 하며 다음번에 그릴 인물 스케치를 구상하기도 한다. 그녀는 개성 있는 옷차림을 한 사람들을 눈으로 쫓느라고 일상이 늘 바쁘다. 남들과는 조금 색다른 게 좋다고 한다. 이 씨가 그림 칭찬을 받을 때도 잘 그린다는 이야기보다 개성 있다는 말을 더 좋아하는 이유다.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펌킨파이’ 그림을 들고 카페에서 그림 작업 중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연우).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펌킨파이’ 그림을 들고 카페에서 그림 작업 중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연우).

“직업을 한 개만 갖는 시대는 아니잖아요. 많은 걸 해보고 싶어요.”

그녀의 최종 꿈은 다큐멘터리 영화 피디가 되는 것이지만, 부업으로는 일러스트레이터 혹은 영상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되는 것이다. 직업을 하나만 가지는 시대가 아니듯 그녀의 욕심 또한 그렇다. 여러 이유로 입시 미술을 도전해보지 못한 게 후회스럽지만, 그녀는 대학에 와 미디어 전공을 하면서 미술에만 갇혀있던 식견을 조금 더 넓힐 수 있었다. 덕분에 더 개방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도 있다.

그림을 이어붙인 형태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찰나의 순간을 하나하나 그려서 마치 원본이 영상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레 그림이 움직이는 걸 표현해보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버킷리스트다. 다양한 분야의 그림과 영상을 연관 지어 연출해 보는 것은 그녀의 오랜 꿈이기도 하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내년엔 연극영화학과나 영상애니과의 연출 분야로 복수전공을 계획 중에 있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의 그림을 구매해주고 아껴준 독자들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남겼다. “제 그림의 가치를 보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 정말 뿌듯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5살짜리 아이가 21살의 대학생이 되기까지 그 세월 속엔 늘 그림이 있었다. 10년 뒤 그녀가 잡고 있을 펜슬과 장비가 괜히 궁금해지는 밤이다. 모든 게 획일화되어가고 있는 세상에서 이현지 씨의 그림만은 늘 그대로이길. 어딘가 오싹해지는 그녀의 그림 세계는 계속되길 기대하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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