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시대가 한창인 요즘도 라디오는 아직 살아 있다. TV시청이 불법인 운전자들에게 라디오는 아직 친구 그 이상이다. 라디오만이 주는 따스함이 좋아 TV 시대에도 인터넷 방송에서 라디오 같은 느낌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하고 있는 BJ(Broadcasting Jockey)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박현서(29) 씨. 그는 목소리만 나오는 기존 라디오 방송의 한계를 넘어, 즉석에서 청취자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긴밀하게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아프리카TV에 <박현서 라디오>라는 타이틀의 1인방송 채널을 만들었다. 라디오의 다정한 소리와 인터넷방송의 친밀한 화면을 합쳐 보자는 취지에서 그녀는 자신의 채널인 <박현서 라디오>를 '보이는 라디오'라고 남들에게 소개한다. 이렇게 아프리카TV에서 BJ를 해온 지 어느덧 9년차. 그녀도 어느새 '1인 미디어'의 간판 1세대가 됐다.
어떻게 해서 BJ가 됐느냐는 질문에 그녀의 얼굴에서 엷은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중학생 시절 전설적인 메신저 '세이클럽'을 통해 인터넷 라디오를 즐겨 들었다. 인터넷 라디오는 공중파 라디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친밀감을 청취자들에게 선사했다는 점이 좋았다. 박 씨는 “인터넷 라디오는 공중파와 달리 BJ와 청취자가 굉장히 가까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모두를 위한 방송이 아닌 청취자 하나하나만을 위한 방송을 해주는 느낌이 각자의 청취자들에게 들었지요”라고 했다. 그녀는 즐겨 듣던 라디오의 BJ에게 호감이 생기고 ‘저 BJ랑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세이클럽 BJ 오디션을 지원하기에 이른다. 그는 당당히 BJ에 합격해 중학교 2학년이란 어린 나이에 선망하던 유명 BJ와 스튜디오에 나란히 앉아 첫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2008년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가 개국되자, 그는 본격적으로 인터넷 방송 진행에 나섰다. 기존의 인터넷 라디오는 귀로만 듣는 것이었다. 그런 아쉬움이 인터넷 방송의 <박현서 라디오>를 진행한 계기가 됐다.
"애청자들 앞에 내 얼굴을 보이고 직접 얘기를 듣자, 비록 난 그들을 볼 수 없어도 그들이 나를 보며 위안을 얻는 방송을 만들자 하는 마음이 컸지요. 다행히 시작과 동시에 대박행진을 이어가게 된 것이 큰 힘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방송 컨셉은 토크 위주로 진행하면서 손님들이 보내온 고민을 상담해 주는 한편, 자신이 읽은 책, 영화 등 다양한 문화 정보를 리뷰해 주는 것. 아프리카 TV의 다른 BJ들은 자신을 알리려고 선정적, 자극적인 방송을 다투어 했지만, 그는 진심어린 마음으로 시청자들의 고민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전해주는 소통의 자세로 방송을 계속했다. 그것이 바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나가게 한 힘이었다고 그녀는 자평했다.
<박현서 라디오>의 성공에 힘입어, 그는 2013년 아프리카TV 방송대상을 수상했다. “그때 왜 제가 대상을 수상했는지 스스로도 의아스러웠지요. 제 프로그램은 애청자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방송입니다. 제겐 특출한 재능이나 끼가 없습니다. 제 방송을 즐겨 들어준 애청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앞으로도 애청자들에게 위안과 즐거움을 주는 방송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심야시간대에 흘러나오는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과장을 좀 보태자면, 달팽이관이 녹아내릴 만큼 부드럽다. 목소리가 좋다는 말에 그는 수줍게 웃으며 “사실 원래 목소리는 하이톤입니다. 심야시간대에 맞는 낮고 부드러운 발성을 하다 보니 시청자들에게서 목소리가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칭찬이었는데 애청자들의 반응에서 내 재능을 발견했지요. 목소리 재능을 알게 해 준 애청자들을 위해서 지금도 좋은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일주일에 6회에 걸쳐 방송을 진행한다. BJ의 특성상 방송에 필요한 자료 모두를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데, 매일 3시간의 방송 분량을 채우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방송이 힘들지 않느냐고 믈어보았다.
“물론 매일 방송을 준비하는 것은 힘들죠. 오랜 시간을 진행하다 보니 컨텐츠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서 가끔 스튜디오에 들어서기 싫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하지요. 그러나 막상 방송을 마치고 나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개운함을 느껴요. 애청자들의 사연을 읽고 고민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풀리죠. 오히려 제가 힐링 받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시청자에 대한 정보는 그들의 닉네임과 저에게 보내 준 사연 뿐입니다. 그러나 사연마다 사람 냄새가 나고 고민을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이 들게 됩니다. 사실 이제는 제가 힐링 받고 싶어 방송을 한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그는 방송 이외 시간에는 독서나 미술 작업을 한다. 대학 시절 그의 전공은 조소. 학창시절부터 미술을 좋아해 지금도 작업을 하고 있다. 만약 방송을 하지 않게 된다면, 조소 공방을 차리는 게 또다른 꿈이라고 했다. '1인 미디어'의 1세대로서 인터넷 방송을 준비하는 예비 BJ들의 멘토 역할을 하는 것도 빠트릴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은 없지만 저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전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해주고 싶어요”라고 했다. 오는 11월에는 자유학기제를 맞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특강도 준비하고 있다고.
좋아서 하게 된 라디오 방송이 지금은 그의 전부가 되었다. 그녀는 오랜 시간을 방송 진행을 맡으면서 산전수전을 겪었다. 방송 중간에 대학 편입시험을 위해 쉬었다 방송에 복귀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워낙 빠르게 변화는 세상이라 잠깐 쉬었다 오니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어요.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첫 방송할 때의 달콤한 기억 때문에 그만둘 수 없었죠. 내 방송을 변함없이 함께 해준 애청자들이 있어 지금의 내가 있는 거겠지요. 포기하지 않는 나를 만들어준 애청자들이 너무 고마워요”라고 그는 말했다.
1인 미디어가 성행하는 이유에 대한 그의 진단은 ‘외로움’이다. “매체는 다양하게 발달했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외로움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그는 인터뷰 내내 현대인이 겪는 외로움을 자신의 방송에서 나누고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모든 사람의 모든 고민을 그가 일일이 해결해 줄 수야 없겠지만, 심야에 책을 읽어주는 그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하루를 살아내느라 지친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커피 한 잔과 같은 게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