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곳 문전성시 이루던 보수동 책방골목... 책구매 패턴 변화에 코로나19 덮쳐 쓸쓸한 풍경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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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곳 문전성시 이루던 보수동 책방골목... 책구매 패턴 변화에 코로나19 덮쳐 쓸쓸한 풍경만 남아
  • 취재기자 김연우
  • 승인 2021.11.05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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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 활기, 새책 선호 등 시대상 변화
한산한 책방골목, 손님 기다리고 있는 상인들
책방골목 역사는 피난민의 헌책 노점에서 시작
독립서점과 진로 탐색 기업, 골목 살리기 도전
보수동 책방골목, ‘보존’과 함께 '부흥' 고민해야

독서의 계절 가을이다.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의 도서 구매 방식 또한 변해가고 있다. 동네 서점보다는 인터넷 서점을, 종이책보다는 전자책을. 헌책방이라는 말도 어쩌면 요즘 사람들에게는 생소할지도 모른다. 최근 대기업 중고서점과 넷상 중고거래가 활성화되면서 헌책방이라는 곳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그렇다면, 부산 유일무이한 ‘보수동 책방골목’의 가을은 어떨까?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어린이들이 흥미로운 듯 서점 안을 살피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연우).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어린이들이 흥미로운 듯 서점 안을 살피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연우).

책방골목은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정도다. 사람 4명이 지나가면 충분할 정도의 폭이랄까. 주말이라 그런지 더러 지나다니는 손님들도 보인다. 책방 주인들은 책을 이리저리 바삐 옮기기도 하고 지나가는 손님에게 대화를 시도해보기도 한다. 조용한 골목이지만 책방 주인들만큼은 활발해 보인다.

그마저도 손님이 지나가야 가능한 일. 손님이 뜸한 시간대가 되면 주인들은 애꿎은 책만 만지작거리다 이내 서점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의자에 앉아 TV에서 방영되는 트로트 프로그램을 시청하기도 하고 라디오를 듣거나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그러다 손님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벌떡 일어나 말을 건다.

책방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어렸을 적 읽었던 책을 찾는 손님들도 꽤 있다. 책의 재고를 묻는 말이 끝나기도 전, 신난 주인은 구석에서 보존이 잘된 책을 꺼내온다. 헌 책을 옆구리에 끼고 서점 문을 나서는 손님 등 뒤에서 주인은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또 다른 손님이 찾아오지는 않는지 책방 골목 끝을 바라본다.

보수동 책방골목을 찾은 한 대학생이 책더미에서 오래된 책을 발견하고는 흥미롭게 읽어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연우).
보수동 책방골목을 찾은 한 대학생이 책더미에서 오래된 책을 발견하고는 흥미롭게 읽어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연우).

책방엔 출판된 지 몇십 년은 족히 돼 보이는 소설류부터 참고서, 문제집, 만화, 잡지, 각종 자격증 대비 책 등이 보인다. 이곳 보수동 책방골목은 중고서적은 40~70%까지 싸게 살 수 있다. 새 책 또한 아주 저렴한 가격에 만나볼 수 있다. 일반 서점에서는 접할 수 없는 추억의 만화책과 고서를 발견하는 것 또한 쏠쏠한 재미다. 서점을 찾은 이현지(21) 학생은 “윤동주 시인의 시집 초판본과 재판 판결문 초판을 발견했을 땐, 정말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어요”라고 말했다.

한산한 책방 골목엔 점포를 임대한다는 문구도 더러 보인다. 한때 100여 곳에 달하던 책방골목은 이제 30여 곳만이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번에 들렀던 서점이 사라져 이제는 찾아볼 수 없고, 인터넷에서 보고 찾아간 서점이 온데간데 없는 것은 부지기수의 일이다. 책방골목 번영회장이자 대영서점 주인 허양군 씨는 “코로나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시대적으로 안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시 차원에서 젊은 세대들이 들어올 수 있게 지원을 해줘야지”라고 답했다.

젊은 세대가 이끄는 책방골목의 과거와 현재

지금 책방골목에 필요한 것은 젊은 세대다. 골목을 거닐며 지켜봤지만, 젊은 세대들보다는 부모님 세대의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많은 책을 판매해 동네를 살리겠다는 것은 이제 어불성설이다. 허 씨는 “장기적으로 보존해야 되는 유산으로서 구청의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젊은 세대들이 뿌리를 내리고 꿈을 펼칠 수 있는 영구적인 지원책이 마련해줘야 한다”고 대답했다.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 어둠이 내리자 헌 책방에서 간간이 새 나오는 불빛이 좁은 골목길을 간신히 비추고 있다.(사진: 김연우 취재기자).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 어둠이 내리자 헌 책방에서 간간이 새 나오는 불빛이 좁은 골목길을 간신히 비추고 있다.(사진: 김연우 취재기자).

사실 오래전 책방골목의 부흥을 이끈 세대는 학생들이었다. 책방골목은 부산의 명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민족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보수동 책방골목의 역사는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골목에는 한국전쟁 발발 후 이북에서 피난 온 손정린 씨 부부의 헌책 노점으로 시작되어 1960~70년대 약 7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섰다.

책방골목의 시작을 알린 손정린 씨 부부의 헌책 노점

6.25 전쟁 당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이북에서 피난 온 손정린 씨 부부가 만든 ‘보문서점’이 책방골목의 시작이다. 함경북도에서 피난온 부부는 골목에서 최초로 헌 잡지 등을 팔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기에, 노점 속 물건들은 대부분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 잡지, 만화책 등이었다. 부부의 헌책 노점을 시작으로 1960~70년대는 약 7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섰다.

당시 많은 학생들이 보수동 인근의 임시천막이나 임시학교를 설치하여 수업했는데 이 골목은 학생들의 통학로였다. 6.25 전쟁 이후 부산으로 피난 온 많은 학생은 공부는 물론 제대로 된 책조차 구할 수 없었고, 헌책이라도 구하면 감지덕지한 상황이었다. 손정린 씨 부부의 노점을 시작으로 이후 여러 피난민들은 점차 하나둘 노점과 가건물을 만들어 책방골목을 형성하게 됐다.

이렇게 한때는 학생들의 전부였던 책방골목이 점차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경성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복수전공 중인 국어국문학과 정채은 학생은 “새롭게 책방을 열 젊은 세대들이 필요한 것 같다. 젊은 방문객들을 많이 유치하려면 책방 주인 연령층도 다양해지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골목에 들어온 이색적인 독립서점, 손님들 시선 집중

책방골목은 젊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책방 끝 골목 쪽에는 독립서점 ‘마이 유니버스’가 있다. 일명 ‘인스타 감성’이라고 불리는 서점답게 외관부터 세련됐다. SNS 1983 팔로워를 지닌 유명 서점이기도 하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지만 다들 잘 찾아가는 모양이다. 거대 자본을 가진 회사가 내놓는 큰 서점과 달리 독립서점은 주인의 취향대로 꾸며진 작은 서점이다. 일반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작가의 책들이 한데 모여있다. 한 손에 쏙 들어올 것 같은 미니 산문집, 그림책, 여행 에세이 등.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 안에 있는 독립서점 ‘마이 유니버스’ 내부에는 독립작가들의 책이 전시돼 있다(사진: 마이 유니버스 인스타그램 캡처).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 안에 있는 독립서점 ‘마이 유니버스’ 내부에는 독립작가들의 책이 전시돼 있다(사진: 마이 유니버스 인스타그램 캡처).

하지만 독립서점 또한 책방골목의 불황을 피해 갈 순 없었다. 코로나로 가장 상황이 안 좋았을 때는 무려 70%까지 수입이 떨어졌다. ‘마이 유니버스’ 서점 김지은 대표는 “요즘 드는 고민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가게의 수입적인 부분이 가장 크다. 일반 상업서점도 아닌 독립서점은 더 어렵다”라고 한탄했다.

감성을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들은 일부러 이곳에 찾아와 사진을 남기고 간다. 다만, 책을 구매하지 않고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경우가 있어 주인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김지은 대표는 “자영업자들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라 사진만 찍어가는 손님들을 보면 (예전보다) 마음이 안 좋은 게 사실이죠”라고 말했다.

내 이야기로 에세이가 완성? 진로 탐색 기업 ‘북테온’ 이색사업

북테온 직원 이해민 씨가 취재기자와 인터뷰를 진행 중이다(사진: 독자 이현지 씨 제공).
북테온 직원 이해민 씨가 취재기자와 인터뷰를 진행 중이다(사진: 독자 이현지 씨 제공).

골목 초입에 보이는 갤러리에는 ‘나를 찾아서’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보인다. 진로 탐색 기업 ‘북테온’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개인의 이야기를 담은 설문지를 작성 후 이를 에세이로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실질적으로 에세이를 만드는 과정은 추가금액이 발생하지만, 개인 설문지 작성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설문지를 작성하면 무료로 도서 한 권을 골라 갈 수도 있다. 손님들에게 선물하는 도서는 모두 책방골목의 책들이다. 북테온 실장 이해민 씨는 “저희가 책을 구매함으로써 책방 사장님들께도 도움이 되고 무료로 나눠주니까 저희 프로그램 홍보도 돼서 일석이조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보수동 책방골목, 개발 중심이 아닌 보존 중심으로

책방골목 상인들의 노력과는 별개로 구청의 실질적인 지원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부산광역시 중구청 문화관광과 주무관 이주현 씨는 “자체적으로 책방골목 살리기 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다. 골목 문화관에서 상인들과 상생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 새로운 서점을 유치하기 위해 힘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상인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골목에 위치한 독립서점 ‘마이 유니버스’ 김지은 대표는 “여러 관공서에서 골목을 살린다고 설문지를 돌리러 왔었다. 그런데 바뀐 게 하나 없다.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계속해서 책방골목의 부흥을 꿈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부흥’이 아닌 ‘보존’이다. 점차 사라져가는 헌 책방골목을 부산의 유산으로 국내 유일무이한 흔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색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 사라지지 않게 끝까지 골목을 지켜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

sns 공간 활용한 마켓팅, 포토존 마련과 소비쿠폰 발행은 어떨까

SNS라는 공간을 잘 활용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일정 수량의 책을 구매하고 인증샷을 남기면 중구에서 쓸 수 있는 소비쿠폰을 발행해준다거나 화폐로 반환을 해주는 것을 제안해본다. 구청의 지원이 있다면 충분히 골목은 유지가 가능해질 것이다. 좁은 골목의 특성을 이용해 아기자기한 포토존을 꾸며놓는 것 또한 좋은 SNS 마켓팅이다. 요즘은 모든 일상이 한 줄의 ‘해시태그’로 완성된다. 이런 특별한 골목에 방문하게 된다면 젊은 사람들은 분명 휴대폰을 꺼내 들 것이다.

젊음과 역사가 동시에 공존하는 곳으로 발전되어 책방골목을 오래오래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화려하고 거창하진 않아도 늘 사람들 마음속 한켠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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