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 칼럼] 지방이 소멸하면 중앙도 살아남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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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 지방이 소멸하면 중앙도 살아남을 수 없다
  • 편집국장 송문석
  • 승인 2021.11.0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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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서·영도구 등 전국 89개 지자체 인구 줄어 소멸위기 지역 선정돼
서울 경기 등 수도권은 날로 커져 이제는 충청도 북부까지 확장돼 대조적
모든 정부 지역 살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수도권 집중도는 갈수록 심화돼
지역 소멸하고 동반성장 않으면 수도권도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 가져야

부산 동구 서구 영도구, 경남 거창군 고성군 남해군 밀양시 산청군 의령군 창녕군 하동군 함안군 함양군 합천군, 경북 고령군 군위군....

인구가 날로 줄어들어 소멸위기에 놓인 ‘인구감소지역’들이다. 올해 정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은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39%인 89곳이다. 지역별로 보면 전남과 경북이 16곳으로 가장 많고, 강원 12곳, 경남 11곳, 전북 10곳이다. 충남 9곳, 충북 6곳, 경기 2곳도 들어있다. 광역시라고 인구소멸을 피해가지 못한다. 부산이 3곳, 대구 2곳, 인천 2곳도 지정됐다.

인구감소지역
인구가 줄어들어 소멸할 것으로 예측되는 '인구감소지역'을 나타내는 지도. '인구감소지역'에서 제외된 서울 경기 등 수도권이 충남과 충북 북부지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자료: 행정안전부 제공)

‘인구감소지역’은 연평균 인구증감률, 인구밀도, 청년 순이동률, 주간인구, 고령화 비율, 유소년 비율, 조출생률, 재정자립도 등 8개 지표를 종합한 인구감소지수를 산출해 선정한다. 아기 울음소리가 끊기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을씨년스러운 지역을 상상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터다.

부산은 ‘제2의 도시’라는 그럴듯한 감투를 쓰고 있지만 속빈 강정이라는 사실이 재확인됐다. 부산 동구 서구 영도구 등 구도심 3개 기초지자체가 ‘인구감소지역’이라고 하지만 부산 전체가 ‘활력을 잃은 도시’ ‘늙어가는 도시’ ‘청년들이 사라지는 도시’라는 건 시민 모두가 안다. 도시철도 객차 안을 둘러보면 많을때는 승객 100명 중 70~80명이 노인이다. 부산은 전국 대도시 가운데 처음으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지난 10월에 진입했다. 전국에서 ‘가장 늙은 대도시’인 셈이다.

부산이 이렇게 된 것은 ‘벌어 먹고 살 것이 없기’ 때문이다. 1991년까지 직전 5년간 연평균 8.6%였던 부산의 성장률은 지난해 2%대에 머물렀다. 2020년 전국 1000대 기업 중 부산 기업은 29개 불과하다. 이러니 변변한 일자리가 있을 턱이 없다. 부산의 청년 1만 명이 매년 서울로 떠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년들은 “부산은 청년들에게 희망이 없다” “공무원들만 먹고 사는데 애로사항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공항
제주공항 활주로에서 항공기들이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24시간 이착륙이 불가능한 김해공항을 대체하기 위해 가덕 신공항이 추진중에 있으나 수도권의 반발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송문석).

‘인구감소지역’을 지도에 표시해보면 특징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과 경기도, 즉 수도권만 ‘인구감소지역’의 무풍지대라는 점이다. 그리고 수도권의 세력은 세종시와 대전 쪽으로 확장되면서 충남북 북부지역까지 넓혀가고 있다. ‘사람이 살만한 곳’이며 ‘일할 직장이 몰린 곳’이고, 그래서 ‘돈과 젊음이 넘치는 곳’은 바로 이곳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2019년에 이미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인구는 2592만5799명으로 당시 대한민국 전체 인구 5184만9861명의 절반을 넘었다. 2020년 현재 지역내총생산(GRDP)에서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도 52.1%다. 대한민국 전체 국토 면적의 12.1%에 불과한 수도권이 인구도, 경제력도 절반을 차지하는 기형적 구조를 갖게 된 것이다.

수도권은 대한민국을 집어삼킬 만큼 비대해졌는데도 히딩크 감독의 말처럼 여전히 배가 고프다. ‘판교라인’ ‘기흥라인’이라는 신조어가 있을 만큼 고스펙 취업준비생들이 판교와 기흥 아래로는 근무를 기피한다는 말이 떠돌던 때가 엊그제다. 일종의 ‘취업남방한계선’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수도권이 팽창하면서 회사들이 충청도 북부까지 내려오면서 ‘수청권(수도권+충청권)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서울을 핵으로 한 수도권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면서 세력을 충청권까지 뻗치고 있는 것이다. 지방에서는 일자리가 씨가 말랐는데 ‘수청권’에는 고급 일자리가 넘쳐난다.

정부는 걸핏하면 지방을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업들의 수도권 집중은 오히려 심화됐다. 노무현 정부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혁신도시 건설을 추진했으나 수도권정비계획법 시행령을 풀어 기업들의 공장 건설을 허용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역시 수도권 공장 신증설 규제를 해제해 기업들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문재인 정부라고 다를 것이 없다. 용인반도체클러스터 건설을 위한 규제완화, 수도권 GTX 신규노선 건설, 수도권 3기 신도시 건설 등 ‘수도권 중심 성장개발정책’은 이 정부의 작품이다.

지역에서 대형 국책사업이 필요하다고 하면 경제성이 있네 없네 따지고, 환경훼손과 기후위기, 탄소배출까지 들먹인다.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서 이런 말이 나온 적이 있는가. 지방은 그저 자연을 보존해 수도권 사람들에게 휴가지를 제공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해야 하는 곳이고,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열심히 가동해 전자파 피해가 있거나 말거나 논밭과 마을 위로 고압 송전탑 전선을 늘어뜨려 서울 사람들에게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는 호구에 불과하다. 그래서 지역에서 뭐라도 하려고 하면 서울사람들은 “서울 올라오면 되지 그게 왜 지방에 필요하냐”는 투다. 한마디로 그들 눈에 지방 사람들은 사람도 아니다.

웃기는 것은 고관대작도, 국회의원도, 재벌 대기업 소유주도, 강남에 건물을 가진 건물주도 아닌 평범한 서울시민들의 허위의식이다. 서울시민 상당수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서 태어나 70, 80년대 상경한 출신성분을 갖고 있고, 서울에 땅 한 평 가진 것 없는 처지이면서 이제는 서울시민이랍시고 ‘수도권 수호’에 핏대를 세우는 것을 보면 가관이다. 수도권이라는 지역적 배경을 공유하면서 심리적 공동체를 형성한 '특별시도민' 2500여만 명의 눈에 전 국토의 88%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그들의 부모, 형제, 친구들은 그저 '촌놈들'이고 '지방민'일 뿐이다. 전 국토의 12% 땅 안에 몰려 살면서 선민의식으로 뭉친 그들이 나머지 절반의 국민을 각개 격파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세계 어디를 봐도 대한민국처럼 수도권 집중이 심각한 나라는 없다. 지방이 소멸하는데 중앙이 온전할 리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적어도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균형적인 발전이 이뤄져야 인근 소도시, 농촌지역이 동반성장할 수가 있다. 대한민국이 ‘수도권 공화국’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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