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 칼럼] 구포나루에서 만난 블랙홀과 화이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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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칼럼] 구포나루에서 만난 블랙홀과 화이트홀
  • 논설주간 박창희
  • 승인 2021.10.18 0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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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역 감동진갤러리 '황경호 설치미술전' 눈길
코로나 시대 블랙홀, 화이트홀 의미 되새겨
금빛노을브릿지가 새로운 연결통로 되었으면

#구포역 전망대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떠올린 건, 부산도시철도 3호선 구포역 전망대에서다. 전망대는 작고 볼품이 없지만, 거기서 보는 풍광은 웅장했다. ‘물길 따라 바람 따라 실려 온 이야기’. 전망대 안내 문구가 인상적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실려 온 이야기는 바람뿐이다.

대합실 아래로 덜컹덜컹 도시철도가 지나간다. 보아하니 길이 여러 가지다. 강길(낙동강)이 있고, 강변도로와 도시철도가 있다. 그 틈새에 자전거길과 갈맷길(탐방로)가 나 있다. 그리고 낙동대로가 있고, 경부선 철도가 보인다. 하늘길도 있을 터이니 한 곳에 길이 8개나 된다. 

도시철도 구포역 일대의 여러 가지 길들(사진: 취재기자 박창희).
도시철도 구포역 일대의 여러 가지 길들. 이곳에 강길, 강변도로, 지하철, 자전거길, 갈맷길, 낙동대로, 경부선 등 8개 길이 있다(사진: 취재기자 박창희).

눈앞에 낙동강이 아득히 펼쳐져 있다. 강원도 태백에서 1300리를 달려온 강. 대하의 풍모다. 대하드라마를 쓰고도 남을 스토리를 안고 흐르는 강. 아니다. 강물은 흐르지 않는다. 멈춰 있다. 갈피를 못잡고 헤맨다. 강변을 뭉텅뭉텅 잘라먹은 강변도로에 차들이 쏜살같이 달린다. 늦게 가면 누가 잡으러 올 것처럼.

낙동강 위에 다리가 여럿 지나간다. 코앞에 도시철도와 구포대교가 보이고, 그 위로는 낙동대교(남해고속도로), 화명대교가 그림처럼 걸려 있다. 가고 오고, 오고 가고, 떠나고 돌아오고, 흘러가고 떠내려오고, 만나고 헤어져 섞이는 곳. 그래서 역(驛)인가보다. 

구포나루터는 어디 갔나? 도시철도 구포역 아래 강변도로에 파묻혀버렸다고 역무원이 일러준다. 구포에 구포나루가 없다?

도시철도 구포역 2층 대합실에 ‘감동진 갤러리’가 들어서 있다. 토건주의 부산시가 여기에 어떻게 갤러리를 넣을 생각을 했는지 신통하다. 이름이 감동진 갤러리다. 감동! 구포나루의 조선시대 이름이 감동진(甘東津)이다.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본다. 설치미술가 황경호의 ‘화이트홀(white hole)’ 특별전시(10월 4일~12월 17일)가 열리고 있다. 섬유, 금속관, 한지 그리고 조명과 기계장치를 활용한 작가의 작품이 꾸며져 있다. 센서를 통해 관객의 움직임을 감지하여 움직이고 소리 내는 인터랙티브(interactive)형 설치미술 작품도 있다. 팸플릿 속의 안내글이 꽤 인상적이다.

‘블랙홀의 시간적 지평선은 오로지 빨라들이기만 하지만, 화이트홀은 침입하는 어떠한 상황들도 결코 해체되거나 가로지르지 못한다. 모든 상황과 현실은 화이트홀이 죽을 때 비로소 분산되고 재방사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화이트홀의 이미지는 정체된 아픔이 내 자아가 되지 않도록 바라는 현시대의 바람과 치유를 꿈꾸게 한다.’

구포역 내 감동진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황경호의 '화이트홀' 전(사진: 취재기자 박창희).
구포역 내 감동진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황경호의 '화이트홀' 전(사진: 취재기자 박창희).

‘화이트홀’이란 말이 눈에 콱 박힌다. 화이트홀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에 반하여, 모든 것을 내놓기만 하는 천체를 뜻한다. 아직까지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개념이다. 화이트홀이 등장한 것은 웜홀(worm hole) 때문이다. 웜홀은 우주 내의 통로로서 영화 ‘인터스텔라’에도 나온다. 어쨌든, 우주의 통로라 하더라도 한쪽으로 들어가서 다른 쪽으로 나와야 한다. 이때 입구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그 출구는 화이트홀이 된다는 게 물리학자들의 연구다.

지금 우리 주변엔 곳곳이 블랙홀이다. 코로나19가 빼앗아간 일상이 그렇고, 종잡을 수 없는 부동산 사태가 그렇다. 대선 정국에서 불거진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과 성남시 대장동 택지개발사건은 뉴스의 블랙홀이다. 코로나19는 대면을 막고, 소통을 줄이며, 녹색 저탄소 생활을 요구한다. 

이 암담하고 삭막한 시대에 사람들은 문제 해결의 화이트홀을 갈망한다. 만나고 싶고, 돌아가고 싶고, 회복하고 싶다. 대선 정국이 소모적 퇴행적 정쟁이 아니라,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이길 바란다.

작가는 조용히 기억의 창고를 두드린다. 어릴적 놀던 고무줄놀이를 추억하고, 부서진 가야금 소리를 복원해 사물의 쓸모를 찾는다. 여기서 코로나 팬데믹에서 탈출하는 길도 찾을 수 있으리라.

황경호의 '화이트홀'전에 전시된 '사물기억-가야금'(사진: 취재기자 박창희).
황경호의 '화이트홀'전에 전시된 '사물기억-가야금'(사진: 취재기자 박창희).

화이트홀을 주제로 설치미술전을 연 작가의 기획력이 돋보인다.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화이트홀은 블랙홀의 시간적 반전을 의미한다. 감동진 갤러리에 무심코 찾아갔다가 우주의 신비인 화이트홀의 의미를 배우고 희망의 싹을 만났다.

도시철도 구포역에서 나와 차량 소음 가득한 갈맷길을 따라 화명생태공원으로 걸었다. 구포어촌계 선착장 인근에 금빛노을브릿지(보행전용교)가 세워지고 있었다. 지하철과 도로로 인해 단절된 강과 도시가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구포역 인근에 건설되고 있는 보행전용교 '금빛노을브릿지'(사진: 취재기자 박창희).
구포역 인근에 건설되고 있는 보행전용교 '금빛노을브릿지'(사진: 취재기자 박창희).

해양도시 부산이 있기 전, 강의 도시 부산이 있었다. 강의 중심은 단연 구포였다. 낙동강 수운시대, 소금배와 황포돛배가 강을 오르내리던 때 구포는 지역의 희망이었다. 그 희망을 다시 띄우는 프로젝트 중 하나가 금빛노을브릿지다.

구포가 살아야 북구가 산다. 북구 개명 작업은 변화의 단초가 될 것이다. 후보군들이 올라있다. 가람구, 낙동구, 구포구, 감동진구.... 어느 것을 선택해도 북구보다는 낫다. 건설중인 금빛노을브릿지 너머로 낙조가 드리워진다. 낙조는 떨어지는 해가 아닌, 떠오르는 금빛 노을, 새로운 소통의 문을 여는 화이트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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