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를 간 것은 세계최초의 대학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1088년도에 설립되었다는 학교 마크를 보니 정말로 세계최초의 대학이 맞는가 싶었다. 1088년이라면 1096년 십자군전쟁을 떠나기 전이라 아직은 안정기였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918년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1170년 무신들의 정변과 1231년 몽골군의 침입 이전었다. 그러니 국가기틀을 갖춘 고려의 안정기였다. 당시에 국립대학 격인 국자감國子監은 고려 건국 직후에 설립되었다. 그렇다면 세계최초의 대학이라는 건 저들만의 리그에서 하는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저들은 그렇게 주장하며 마크에 당당히 표시하고 모든 학문이 퍼져나간 곳ALMA MATER STUDIORUM이라는 엄청난 위용의 대학 슬로건을 쓰고 있었다. 서양 세계의 모든 학문이 그리 퍼져 나갔다면 몰라도 동양 세계의 학문과는 아무 관련이 없을 텐데도 말이다.
세계최초의 대학이 어디였는지에 관해 속속들이 그 당시 현실 속에서의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진실을 파헤치려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나는 단지 볼로냐대학에서 미감꺼리를 찾으러 취재取材차 왔다. 볼로냐대학 캠퍼스에서 내 눈에 띈 것은 이들의 커피문화였다. 사실 지난 번 포르투갈과 스페인 여행 때부터 지속적인 관심을 끈 소재였다. 이태리는 카페베네, 엔제리너스 등 한국산 커피샵을 포함하는 스타벅스류 커피들의 본산지다. 스타벅스 창업자가 이태리에서 접한 커피문화를 미국에서 적용시킨 것이 스타벅스다. 그래서 요즘 우리가 마시는 커피 용어들은 죄다 모조리 이태리어다. 영어로 Express인 에스프레소, American인 아메리카노, Milk coffee인 카페라테. 하지만 미국식 스타벅스류 커피는 이태리 본래의 커피 미감을 잃고 편리하게 경박하게 미국화된지 오래다. 커피 매장에서는 안에서 마시더라도 무조건 1회용 종이컵에 준다. 식당에서 종이 그릇에 주면 난리날 것이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전세계 소비자 교육을 무척 잘 시켜 아무 저항없이 주는 대로 마신다. 카운터에서 먼저 선불 계산하며 소비자가 날라다 마시는 교육도, 다 마시면 치울 것을 날라다 주는 소비자 교육도 아주 제대로 시켰다. 업주 측에서는 인건비가 줄어드니 좋겠지만 과거에 왕이었던 손님은 불편하다. 국가경제 차원에서도 고용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아무튼 종이컵은 요즘 쓰레기 양산의 주범이다. 하지만 나는 이태리에서 아직 스타
벅스류 커피를 접하지 못했다. 커피 자판기는 제외하고 당연히 업소에서 주는 1회용 컵도 보지 못했다. 앞으로도 부디 제발 안보기를 바란다. 학생들이 종이 컵이 아니라 진짜 컵에 커피 마시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여서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유쾌하게 재미있는 포즈를 취해 주었다. 고맙다. 나도 저들처럼 커피 한 잔을 시켜 마시려니 저 건너편에 한 남학생이 열공 중이다. 커피와 잘 어울리겠다. 같은 남자가 보더라도 이태리 남자들은 대개 잘 생겼다. 그냥 잘 생겼다기보다 분위기 있게 생겼다. 저런 멋진 남자의 모습으로 종이컵에 커피 마시는 것을 상상하면 분위기 깬다. 부디 스타벅스류 커피의 본산지인 이 곳에는 미국식 스타벅스류가 침투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무리 세상이 글로벌화 되어도 이태리 커피 만큼은 그런 글로벌 흐름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그리고 이렇게 진짜 잔에 커피를 마셔야 커피를 제대로 마시는 것이라는 사실이 글로벌하게 전파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