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 칼럼] 너희가 효의 깊이를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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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칼럼] 너희가 효의 깊이를 아느냐
  • 논설주간 박창희
  • 승인 2021.08.23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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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군 효행문화 연구....효 사상의 가치 일깨워
'효도계약서'로는 부모 부양, 공양문제 해결 못해
효는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정신문화 유산

#전통 마을공동체의 5색 인물

‘동네마다 후레자식이 하나’라는 속담이 있다. 후레자식도 정자나무나 공동우물처럼 일정한 기능을 하는 동네의 구색이다. 우리나라 전통 마을에는 대체로 다섯 가지(5색) 인물이 있다. 그것은 ➀존경받는 동네어른 ➁버릇없는 후레자식 ➂입이 잰 여자 ➃우스갯소리 잘 하는 익살꾼 ➄좀 모자란 반편(장애인)이 그것이다. 이들이 한데 뒤섞여 울고 웃으며 마을공동체가 굴러간다.

여기에 등장하는 후레자식은 말썽을 부리거나 패륜행위로 지탄을 받는 존재인데, 그 지탄은 젊은이들에게 본받지 말라는 교육의 기회가 된다. 다시 말해, 후레자식은 효자를 돋보이게 하는 캐릭터다. 동네어른은 후레자식을 야단치고 효자를 칭찬하는 존재다. 허연 수염에 곰방대를 들고 그저 “어험~”하고 기침소리만 내더라도 동네의 기초 질서가 잡혔다. 작가 송기숙의 ‘마을, 그 아름다운 공화국’(화남)에 나오는 이야기다.

#기장은 효자고을?

올여름 ‘기장군 효행문화’에 대한 현장 답사를 하면서 효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농경·어로사회의 전통이 남아 있는 기장군에는 우리가 잘 몰랐던, 알고도 외면했던 효행 관련 유적과 이야기가 의외로 많았다. 

부산 기장군 정관읍 임곡리에 있는 수묵재. 자자손손 4명의 효자를 모신 사당이다(사진: 박창희 기자).
부산 기장군 정관읍 임곡리에 있는 수묵재. 자자손손 4명의 효자를 모신 사당이다(사진: 박창희 기자).

옥종손(玉從孫), 옥팔오(玉八五), 서홍인(徐弘仁), 김련(金鍊)과 그의 아들 김봉의(金鳳儀), 손자 김상제(金商濟), 그리고 진주강씨(晉州姜氏), 월성김씨(月城金氏)…. 이들은 기장지역 효행의 표상이 되는 인물들이다. 이들을 모시고 기리는 수묵재, 경모재, 삼세사효묘 같은 문중의 재실과 사당도 이야깃거리였다. 이 가운데 나라에서 인정해 정려(旌閭)를 받은 효자가 세 분(옥종손, 옥팔오, 서홍인)이었다. 기장군 정관읍과 철마면의 옛길에는 이들을 기리는 정려각, 정려비가 서 있다. '정려'는 국가에서 미풍양속을 권장하기 위하여 행실에 모범이 되는 사람이 살던 마을 입구나 집 앞에 정문(旌門)이나 정려각을 세워 그들의 행실을 알리고 기념하는 일이다.

각기 사연이 다채롭고 감동적인 데가 있었다. 효자 옥종손(철마면 고촌리)은 중병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손가락에 피를 내어 약을 타 드려 낫게 했고, 옥팔오(정관읍 월평리)는 집안을 급습한 호랑이를 때려잡고 위기의 아버지를 구했다고 한다. 효자 서홍인(철마면 연구리)은 부산진의 군졸로서 기장 철마에서 부산진까지 매일 60리 길을 오가며 군역을 수행하면서 지극정성으로 노부모 봉양했다고 한다. 철마 개좌고개에는 산불 속에 잠든 주인(서홍인)을 깨워 목숨을 구하고 죽은 충성스런 개의 전설비가 세워져 있다.

장안읍 하근마을의 경모재(景慕齋)는 전주이씨 점동문중의 재실인데, 이 집안의 효행에 감동한 지역 유림에서 써준 소지(所志, 효행 추천장) 19장이 보존되어 있었다. 비록 정려는 받지 못했지만, 정려보다 더 값진 효행 기록물이었다.

정관읍 임곡리 수묵재(守黙齋)는 의령옥씨 감사공파의 문중 재실. 이곳에는 옥석견-옥종손-옥팔오-옥영태 등 자자손손 4명의 효자를 배향하고 있다. 수묵재 입구에는 200년 된 배롱나무 두 그루가 서 있어 이들 효행의 향기를 후세에 전하고 있다.

기장 장안읍의 경모재(景慕齋)에 보관되어 있는 소지(所志). 지역 유림에서 이 집안의 효행에 감동하여 암행어사 등 관리에게 올린 효행 추천장이다(사진: 박창희 기자).
기장 장안읍의 경모재(景慕齋)에 보관되어 있는 소지(所志). 지역 유림에서 이 집안의 효행에 감동하여 암행어사 등 관리에게 올린 효행 추천장이다(사진: 박창희 기자).

조선 후기의 문인 심노숭은 약 5년간의 기장 유배생활 중 기장의 풍물과 인심을 살펴 ‘남천일록(南遷日錄)’이란 일기를 썼다. 이 속에 철마면 임기리의 ‘삼세사효묘’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심노숭은 이 가문의 효행에 대하여 “맹종의 왕대 죽순이 아름다운 이야기로 다시 만들어지고, 손가락 피 흘리고 인분을 맛봄에 실행하기가 실로 어렵다네(孟魚王筍 便成例談 血指嘗糞 難究實行)”라고 읊었다. 중국 오나라 맹종이 겨울에 죽순을 구하고, 왕상이 얼음을 깨고서 잉어를 잡아 부모의 병을 낫게 했다는 고사를 인용한 글이다. 중국 고전에 등장하는 효자 못지 않은 효자가 기장에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만하면 기장을 ‘효자고을’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글쎄다. 효자고을은 맞는 것 같은데, 그렇게 부르기엔 우리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어떤 정려비는 잡초 우거진 길목에 숨어 있고, 어떤 효행자료는 문중 창고에서 잠자고 있었다. 전해 내려오는 효만 있고 효에 대한 이해나 교육은 없는 상황. 실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효 문화 답사였다. 답사 내내 '이런 의미있는 유적이 왜 파묻혀 있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이는 비단, 기장군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나마 기장은 효행 기초연구라도 시작했지만, 여타 수많은 지자체들은 문제의식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효도계약서, 그게 필요해?

얼마전 지인 모임에서 ‘효도계약서’ 얘기가 나와 한바탕 논란이 벌어졌다. “그런 게 있어?” “자식 못믿는 세상이니 필요하지” “그런 것까지 써서 효도받고 싶지 않다”는 등 다양한 의견이 부딪혔다. 효도계약서 때문에 이혼한 가정도 봤다는 이야기도 소개됐다.

‘구글’에 효도계약서란 단어를 치자 관련문서가 10만4,000개나 뜬다. 낯설고 씁쓸한 용어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얘기다. 효도계약서는 정식 법률용어는 아니다. 정확히는 ‘부담부(負擔附) 증여’, 즉 조건을 붙여 증여하되 이행하지 않을 경우 원상복구시킬 수 있는 계약이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효도계약서를 쓰면 법적 효력을 갖는다는 얘기다. 

2015년말 대법원이 효도계약을 어긴 아들에게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돌려주라고 판결한 적 있다. 그후 효도계약서를 쓰는 집안이 늘었다고 한다. 이제 ‘부모공양·부양’은 개별 가정사를 넘어 국가사회적 문제다. 부모를 직접 모시지 않는 게 상례처럼 돼 버렸다. 늙고 힘 못쓰는 부모를 요양원에 업고 가는 일도 전혀 낯선 풍경이 아니다.

동방예의지국, 교육선진국이라는 우리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효는 우러나오는 자발심이라 했거늘 어찌 계약을 통해 강요하고 압박해야 하는지! 자탄, 통탄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우리가 전통 효 사상과 유산을 가볍게 생각하고 외면하는 사이 벌어진 일들이다. 

#효 사상의 참 가치와 교육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미래에 한국이 인류에 기여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효(孝)사상일 것이다. 전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효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덤덤하게 여기는 것을 외국에선 감동적으로 받아들인다.

부모 부양·공양 문제는 효도계약서가 해결하진 못한다. 계약서는 계약조건과 계약기간에만 유효할 뿐, 자자손손 효도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턱도 없다. 자식교육을 잘못 시킨 거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땐 근본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효는 백행의 근본(百行之根本)”(효경)이란 말을 깊이 되새겨볼 때다. 일찍이 한국은 효 선진국이었다. 토인비가 인정했듯이, 한국의 효는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정신문화 자산이다. 효 자산을 잘 키우면 우리가 세계 정신문화의 선도국이 될 수 있다. 오늘날 가정, 노인, 마을, 교육문제의 핵심도 효라는 키워드로 풀어갈 수 있다. 그 효는 과거지향이 아니라, 시대정신에 맞는, 미래가치를 만드는 지렛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기장의 효행문화 연구를 계기로, 부산은 물론 부울경 지역의 효행 사례를 찾고 귀감을 만드는 효 문화 혁신운동이 전개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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