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 칼럼] 이타미 준, 안도 타다오, 프랭크 게리를 부산에서는 만날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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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 이타미 준, 안도 타다오, 프랭크 게리를 부산에서는 만날 수 없나
  • 편집국장 송문석
  • 승인 2021.08.0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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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교회 포도호텔 유민미술관 글라스하우스 보기 위해 제주 관광객 먼길 마다하지 않아
드라마 촬영지로 소개되면서 원주 뮤지엄산은 최근들어 더욱 관광객 발길 분주히 이어져
조선 화학 철강 등 전통산업 붕괴로 피폐해진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부흥 계기
청년인구 줄어들고 노령화에 갈수록 도시규모 축소해지는 부산, 문화로 재생의 활로 찾아야

산이 깊어도 개의치 않는다. 험한 곳도 마다치 않았다. 대중교통이라곤 아예 없다. 자기 차가 없다면 천상 택시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되돌아 나올 때는 하염없이 빈택시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바다 건너, 산을 넘어 사람들이 몰려든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탐미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은 오늘도 이어진다. 

경계를 허물며 공존과 화해를 추구한 이타미 준-한국인 유동룡

잔잔한 물 위에 떠 있는 교회. 사방으로 물이 에워싸고 있어 외부로부터 들어올지도 모를 우환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물 위에 교회가 있는 것인지, 교회가 물을 울타리 삼은 것인지 모호하다.

방주교회. 제주도 남서쪽, 서귀포시 안덕면 중산간 지대 둔덕에 노아의 방주가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伊丹潤 Itami Jun, 1937~2011)이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한 교회 건축물이다.

방주교회
이타미 준이 설계한 제주의 방주교회. 성서의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설계한 작품으로 사면에 물을 채워놓았다(사진: 취재기자 송문석).

이타미 준은 일본에서 태어났으나 한국인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숨을 거둘 때까지 ‘유동룡’이라는 본명으로 한국 국적을 유지했다. 그러나 성씨인 ‘유(庾)’가 일본에는 없는 한자여서 이름을 표기할 수가 없었다. 그는 건축가로서 활동하는데 제약을 받자 한국을 오갈 때 이용한 오사카 공항의 별칭인 ‘이타미 공항’, 절친인 작곡가 길옥윤의 예명 ‘요시야 준’을 합쳐 ‘이타미 준’이라는 자신만의 예명을 지었다.

일본에서는 조선징으로, 한국에서는 일본인으로 불리며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이름조차 글자가 없어 제대로 표기할 수 없었던 유동룡. 새로 지은 자신의 예명조차도 일본의 공항과 한국인 친구 예명을 섞어 지은 이타미 준. 그는 그렇게 변경인 혹은 경계인으로 살았지만 일생을 통해 그 경계를 넘어서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 화해와 합일을 모색했다.

방주교회는 단순성의 극치, 포도호텔은 한없이 겸손한 모습으로 대지에 순응

자그마한 교회는 마치 호수의 섬처럼 고요하다. 십자가는 교회 입구의 기둥 뼈대를 약간 드러내 있는 듯 없는 듯하다. 건물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나무와 물, 돌, 제주의 바람만이 있을 뿐이다. 비늘을 붙인 고래 같기도 한 지붕은 돛을 세운 채 파란 하늘을 가로질러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갈 것처럼 반짝인다.

교회 안도 마찬가지다. 한옥을 보듯 노출된 서까래와 벽을 지탱하는 기둥이 단정하게 줄을 맞춰 도열했다. 교회당은 정면에 설치된 십자가 위 오각형 꼭지점에 뚫려있는 창문의 밝은 빛을 따라 항해하려는 듯하다.

방주교회 내부
이타미 준이 설계한 제주의 방주교회 내부. 장식을 일체 배제하고 목재를 가지런하게 배치해 단순하면서도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한다(사진: 취재기자 송문석).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과 일치하며, 그래서 더욱 겸손하게 자연 속으로 숨어들고자 한 이타미 준의 걸작품은 방주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핀크스(The Pinx)의 ‘포도호텔’이다. 제주의 오름을 닮은 모양의 건축물은 땅으로 스며들었다. 이타미 준의 성품을 닮아 한없이 겸손하다. 비오토피아의 수풍석(水風石) 뮤지엄도 제주의 물과 바람, 돌이 인간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제주 산과 바다, 바람을 유민미술관과 글라스하우스 본태박물관에 담은 안도 타다오

이타미 준과 동시대에 살면서 활동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安藤 忠雄 Ando Tadao, 1941~)의 작품을 방주교회 바로 옆에서 만날 수 있는 것도 행복이다. 본래의 형태(本態), 즉 인류의 본연의 아름다움을 탐구한다는 목적으로 지어진 본태박물관은 안도 타다오의 건축 특징인 노출 콘크리트에 물과 빛을 안으로 끌어들여 자연과의 통합을 추구하는 그만의 철학을 보여준다. 경사진 대지를 따라 건물을 따라가면 회랑을 지나기도 하고, 골목을 연상하는 복도나 물길을 걷기도 한다.

글라스하우스 유민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제주 섭지코지의 유민미술관(사진 왼쪽)과 글라스하우스(오른쪽). 유민미술관은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반면 글라스하우스는 날아갈 듯 바다로 몸을 내밀고 있다. 바다 건너 성산 일출봉을 닮았다(사진: 취재기자 송문석).

안도 타다오는 제주 섭지코지의 유민미술관과 글라스하우스에도 관람객들의 발길을 이끈다. 유민미술관은 화산활동으로 붉은 송이가 부스러진 섭지코지 땅에 바짝 엎드려 있다. 지하로 스며들었다. 이에비해 섭지코지 해안가에 자리잡은 글라스하우스는 바다를 향해 날개를 펴고 있다. 마치 비상을 하려는 듯하다. 유민미술관이 ‘음’의 건축물이라면 글라스하우스는 ‘양’의 건축물이다.

글라스하우스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제주 섭지코지의 글라스하우스. 바다를 향해 팔을 벌린 모양이다(사진: 취재기자 송문석).

안도 타다오는 섭지코지의 거친 바람과 화산암, 풀과 나무, 완만한 지형, 바다 건너 성산 일출봉, 그리고 제주 바다 안에 유민미술관과 글라스하우스를 자연의 일부처럼 포함시키고 싶었나 보다. 성산 앞바다의 수평선과 유민미술관의 지붕, 일출봉 정상의 지평선과 글라스하우스의 지붕선은 절묘하게 일치한다.

뮤지엄 산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강원도 원주의 뮤지엄 산. 해발 275m의 산 정상에 현지의 건축재료를 활용하고 빛과 물을 끌어들여 명상과 침묵의 공간을 만들었다(사진: 취재기자 송문석).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었다. 강원도 원주의 첩첩산중 골프장 능선 위 해발 275m에 자리잡은 ‘뮤지엄 산’은 평일에도 전국에서 모여든 관람객들로 북적인다. 최근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관광객은 부쩍 늘어났다. 깊은 산 속에 있으나 고립돼 있지 않고 소통을 추구하면서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고 공간과 예술을 한 곳으로 수렴해 안온한 휴식을 제공한다. 안도 타다오는 현지의 돌과 물 등을 적절하게 배치해 물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자연의 빛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여 자연의 일부로 만들어 놓았다.

쇠락한 도시를 세계적 관광지로 탈바꿈시킨 구겐하임 미술관과 '빌바오 효과'

한국의 건축 기행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스페인 북부 도시 빌바오를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만든 것은 도시 중심을 흐르는 네르비온 강가에 건축된 구겐하임 미술관 덕이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줄었겠지만 예년의 경우 이 도시 인구의 3배 가까운 100만 명의 관광객이 매년 구겐하임 미술관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도시의 랜드마크 건물인 구겐하임 미술관이 빌바오의 경쟁력을 끌어올린 이른바 ‘빌바오 효과’이다.

20세기 초까지 철강 화학 조선산업 등으로 번창했으나 1980년대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 주도권을 빼앗기면서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고 실업률은 35%까지 치솟았다. 네르비온 강은 오염됐으며 흉물이 된 항구와 증가하는 범죄로 도시는 죽어갔다.

빌바오 시는‘문화관광산업’에 중점을 둔 도시재생사업으로 활로를 모색했다. 핵심은 도시의 상징적인 건축물을 짓는 것이었다. 그것도 고만고만한 건축물이 아니라 세계적인 작가의 건축물과 조형물이 필요했다. 주민들의 반대는 격렬했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이 지역 바스크 시민들은 문화종속과 예산낭비라며 시의 정책을 비판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 1929~)가 설계한 구겐하임 미술관이 탄생했다. ‘기둥과 보가 없는 특이한 건축물’에다 미술관 외관을 무게 60t에 달하는 0.3mm 두께의 타타늄 판 3만3000개를 이어붙였다. 물고기 비늘처럼 빛나고, 누군가의 눈에는 거대한 선박을 떠올리게 하는 걸작품이 강가에 들어선 것이다.

구겐하임미술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전위 예술가 제프 쿤스의 거대한 '꽃 강아지(Puppy)'가 미술관 바로 옆에 설치돼 있다(사진: 취재기자 송문석).

구겐하임 미술관 앞에는 미국의 전위 예술가 제프 쿤스의 거대한 ‘꽃 강아지(Puppy)’ ‘튤립’이, 네르비온 강 쪽으로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 ‘마망(Maman)’이 관람객을 끌어모은다. 미술관 안에는 리차드 세라의 설치 작품 ‘시간의 문제’가 관람객을 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물론 빌바오 효과‘가 구겐하임 미술관 하나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중세시대 도시의 오래된 풍경에다 곳곳에 설치된 현대적인 건축물과 다리, 예술품이 만들어낸 효과다.

천편일률적인 공공건축과 무미건조한 사설건축이 남발되는 부산의 건축물들

부산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무엇일까?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한국의 아름다운 건축물 가이드북‘을 통해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전국의 56개 건축물을 선정해 영어 일어 중국어 등 4개 국어로 발간했다. 여기에 부산은 ‘영화의 전당’ ‘누리마루 APEC하우스’ 그리고 특이하게도 카페건물인 ‘웨이브온’ 등 3개가 실렸다. 전국 분포를 보면 서울 24개, 강원 5개, 경기 제주 각 4개, 대구 인천 충남 전남 경북 각 2개, 광주 대전 울산 충북 전북 경남 각 1개 등이다.

2013년 동아일보가 건축전문잡지 SPACE가 공동으로 건축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해방 이후 한국 현대건축물 중 최고 건축물과 최악의 건축물을 선정한 적이 있다. 최고의 건축물은 김수근의 작품 ‘공간 사옥’, 2위는 김중업의 ‘주한 프랑스대사관’, 3위는 조성룡 정영선의 ‘선유도 공원’ 등이 차지했다. 명작 30선을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23개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제주가 ‘다음 제주 사옥-스페이스닷원’(조민석 박기수), ‘포도호텔’(이타미 준), ‘방주교회’(이타미 준) 등 3곳, 경기도는 ‘미메시스 미술관’(알바로 시자, 김준성), 광주는 ‘의재미술관’(조성룡 김종교)이 꼽혔으며 이밖에 인천공항, 기적의 도서관 시리즈 등이 선정됐다. 조사 주체와 건축계 인맥을 고려할 때 작품 선정에 있어서 편향성과 서울 중심이 지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산의 건축물이 단 하나도 포함되지 않은 것은 씁쓸하다.

한국관광공사나 특정 건축잡지가 선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부산에 아름다운 건축물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건축가의 작품만이 훌륭한 건축물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이들도 태작, 혹은 최악의 건축물을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이유로 위안을 삼기에는 제2의 도시 위상으로 봤을 때 자괴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천편일률적인 공공 건축물과 상자를 쌓아 놓은 듯한 사설 건축물의 무미건조함은 도시를 생기 없게 만드는 한 요인이다.

해양박물관
부산 영도구에 있는 국립해양박물관. 바다를 매립한 지형적 조건에다 해양박물관이라는 시설 특성에 맞게 바다를 향해 사방으로 열린 구조를 지향하고 있으며 물방울 모양을 형상화했다(사진: 취재기자 송문석).

산과 바다, 강이 있는 삼포지향(三抱之鄕)의 도시 부산. 어느 곳보다 멋진 건축물이 들어설 조건을 갖추고 있는 도시가 부산이다. 인구가 줄어들고 노령화되어 가고 있으며, 조선 신발 등 전통산업이 퇴조하고 있는 부산은 마치 스페인의 빌바오를 닮았다. ‘빌바오 효과’를 벤치마킹한 ‘부산효과’를 꿈꿀 때다. 문화와 예술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박형준 부산시장의 안목이 부산 건축을 바꾸는 빛을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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