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칼럼]나랑 같은 시선을 가진 듯한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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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칼럼]나랑 같은 시선을 가진 듯한 동지
  • 칼럼니스트 박기철
  • 승인 2021.07.2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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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美)~여(女)~문(文)/Amenity, Feminism and Lifeway ㊴ / 칼럼니스트 박기철
남들이 관심가지지 않는 바닥을 찍는 아가씨(사진: 박기철 제공).
남들이 관심가지지 않는 바닥을 찍는 아가씨(사진: 박기철 제공).
칼럼니스트 박기철
칼럼니스트 박기철

베네치아Venezia는 영어식 발음으로 베니스다. 이태리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MUST 관광 코스 중의 하나다. 베니스는 현재 이태리에 속한 하나의 도시에 불과하지만 1797년 나폴레옹에 의해 점령되고 1866년 이태리가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기 전까지 천년이 넘게 이어진 베네치아공화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베니스는 유럽에서 가장 개방적인 도시들 중 하나였다. 일찍이 이슬람국과의 교역을 시작으로 십자군전쟁1096~1270 때 중요한 거점이었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 해상무역 지배권이 넘어가기 이전까지 15세기 르네상스 때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 세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이란 작품이 있을 정도로 베니스는 상업이 발달한 도시였다. 회계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파치올리가 복식부기를 고안하며 회계학이 시작된 곳도 베니스다. ‘4계’를 작곡한 음악가 비발디, ‘동방견문록’을 쓴 탐험가인 마르코 폴로, 회상록을 쓴 바람둥이 카사노바 등이 베니스 출신이다. 그만큼 도시 곳곳에 볼 것들이 경상도 말로 천지빼깔이다.

바닥 찍은 것을 확인하는 아가씨(사진: 박기철 제공).
바닥 찍은 것을 확인하는 아가씨(사진: 박기철 제공).

하지만 나는 여기에 관광觀光이 아니라 여행旅行하러 왔다. 내가 가며 밟는 곳을 실로 이으면 하나의 족적足跡이 될 수 있도록 생각의 실타래를 짜는 기행紀行 중이다. 과연 물의 도시인 베니스는 희한한 도시였다. 어떻게 바닷물 바로 위에 건물들을 세우고 다리들을 놓고 큰 도시를 이룰 수 있었는지 신통방통했다. 관광객들의 시선은 온통 그 쪽으로 향해 있다. 관광객이 아니라 여행자임을 자부하는 나 역시도 시선이 그리 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미 유럽의 여러 국가들을 여행하였지만 갈 때마다 유럽풍의 화려한 건축 미감은 눈길을 끌게 된다.

아가씨 시선을 따라 나도 찍은 바닥(사진: 박기철 제공).
아가씨 시선을 따라 나도 찍은 바닥(사진: 박기철 제공).

그리 미감에 감탄하며 잠시 쉬고 있는데 한 아가씨가 산마르코성당의 바닥을 유심히 찍고 있다. 그것도 매우 신중하게 오래 찍고 있다. 오래라지만 사진찍는 짧은 시간의 장면을 내가 찍을 수 있도록 허락할 수 있을 만큼 딱 적당히 여러 번 오랫동안 찍고 있었다. 사실 난 그녀가 바닥 사진을 찍기 전까지 내가 같이 발딯고 있는 이 바닥이 이리도 아름다운지 몰랐다. 그녀가 떠나고 그녀의 시선을 따라 나도 바닥을 찍으니 정말로 바닥이 아름다웠다. 확실히 인간은 어떤 시선으로 보고 어떤 시각으로 보고 어떤 입장에서 보고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짐을 느꼈다. 어떤 하나의 모형에서도 점點 차원, 선線 차원, 면面 차원, 체體 차원이냐에 따라 모형이 달리 보일 것이다. 과연 그녀의 시선, 시각, 입장, 관점을 가지니 바닥 면面의 차원이 보이고 저 바닥이 참으로 정교하며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관심가지지 않는 바닥을 찍는 저 호기심 가득한 아가씨를 우연히 만난 것은 이번 베니스 여행의 최대 영광이었다. 같은 시선과 생각일 듯한 동지同志를 만난 기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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