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 칼럼] 춘풍추상이라 적어놓고 내로남불이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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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 춘풍추상이라 적어놓고 내로남불이라고 읽는다
  • 편집국장 송문석
  • 승인 2021.06.2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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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부정부패 감시하는 자리에 부동산 투기의혹자 앉힌 청와대
'영끌 빚투' 의혹 인물이 인사검증 버젓이 통과한 것 자체가 심각
엄격한 인사검증 절차 밟고 정상적 판단 작동했다면 걸러졌을 사안
진영논리에 매몰된 집단주의가 눈을 가리고 귀를 닫게 만들고 있어

부동산 의혹에 휩싸였던 김기표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결국 사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 비서관의 사의를 수용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경질이었다. 경질이라는 표현도 적확하지가 않다. 발탁을 한 쪽이 청와대이고 임명장을 준 사람이 대통령이고 보면 인사 실패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바라본 청와대(더 팩트 제공).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바라본 청와대 전경(사진: 더 팩트 제공).

김 비서관은 재산명세를 공개한 지 사흘 만에 옷을 벗었다. 재산명세에 따르면 부동산 재산이 91억ㅍ2000만 원, 금융 채무가 56억ㅍ2000만 원이었다. 명세대로라면 은행에서 56억을 빌려 91억 상당의 부동산을 매입해 보유한 것 아니냐는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문재인 정부가 두드러기 반응을 보인 ‘영끌 빚투’(영혼까지 끌어모아 빚을 내 하는 투자)의 전형적인 행태였다. 

56억 대출에 91억 부동산 보유한다면 ‘영끌 빚투’로 의심하고 걸렀어야

2017년 매입했다는 경기도 광주의 임야도 투기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 땅은 도로가 닿지 않은 맹지(盲地)다. 그런데 이 땅과 인접한 지역이 송정지구 개발로 아파트 빌라가 신축되고 있어 투기 의혹을 샀다. 김 비서관 본인은 개발 호재와는 무관하게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지인의 매수 요청을 받아들여 취득했다고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누구나 땅을 살 때 맨 먼저 확인하는 것이 ‘맹지’ 여부다.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돈이 많길래 쓸모도 없는 땅을 아는 사람이 요청한다고 사주었단 말인가.

문제는 이런 사람을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감시하겠다며 문재인 정부 들어 신설한 자리에 보란 듯이 앉혔다는 사실이다. 청와대의 무신경과 무감각, 강심장이 놀라울 뿐이다. 이 정부 들어 청와대 비서진과 장관 등의 인사 과정에서 부적절한 처신과 전력이 드러났음에도 임명을 강행한 전력에 비춰보면 특별히 놀랄 만한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김 비서관의 부동산 논란에 대해 청와대가 보인 반응을 보면 인사검증 과정이 얼마나 허술하고 안이한지가 드러난다. 언론에 보도된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보자.

“인사검증 과정에 김 비서관의 부동산 취득 경위와 자금 조달 방식을 구체적으로 점검했다. 투기 목적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인사검증 부실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수용한다. 그러나 청와대 검증 시스템은 완전하지 않다. 인사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까지 알 수는 없다.”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도저히 믿기 힘들어

결국 부동산 취득 경위와 자금 조달 방식을 알았는데도 이에 대한 판단은 봄바람 살랑거리듯 헐렁하게 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알고도 넘어갔거나 자기들 눈에 이런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국민들에게는 부동산 투기를 차단하겠다며 세제를 강화하고 은행 대출을 틀어막으며 고강도 정책을 펴온 정부가 아니던가. 그런데 정작 청와대 내부 인사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가 주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업을 한 사람도 아니고 검사를 하다가 변호사 개업을 한 이가 금융 채무가 56억 원이 있고, 부동산이 91억 원에 이른다면 삼척동자라도 ‘빚투’를 의심해보는 건 당연하다.

대출규제로 요즘 1억 원을 빌리기가 얼마나 힘든지 은행 창구를 방문해본 사람은 안다. 그런데도 청와대의 검증라인은 “그게 뭐가 문제야” “대출받아서 상가를 샀다는데 문제가 되나” “청와대 들어오기 전 변호사 때 일 아닌가”라고 여겼을 게 틀림없다. 권부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을 뉴스로 들을 때마다 시민들은 복장이 터지고 울화가 얼마나 치미는지를 아는가.

더구나 인사 당사자인 김 비서관이 적극적으로 얘기하지 않아 알 수 없었다는 청와대의 입장에는 할 말을 잃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은 왜 있는가? 막대한 국가 예산을 낭비하면서 그 자리에 뻔뻔하게 앉아 있을 이유가 무엇인가. 무책임하고 무능한 발언이고 공직자로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태도다.

집값 잡는다며 온갖 규제 내놓고 정작 권력자들은 부동산 투기에 광분

문재인 정부는 출범할 때부터 부동산 투기에 대해 강도 높은 정책을 펼쳤다. 이제는 숫자를 헤아리는 것조차 힘들지만 30회에 육박하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집값을 잡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런데도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청년들은 월급을 평생 모아도 서울에서 내집 마련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문재인 정부 4년간 서울 아파트 평당 가격이 93% 올랐다는 게 경실련의 분석이다. 물론 국토교통부는 17% 올랐다고 주장하지만…. 국민들은 어느 쪽 주장이 맞고 틀리는지를 피부로 안다.

부동산 광풍 속에서 권력 핵심부에 앉은 사람들은 부동산 투기 실력을 날로 키워나갔다. 정부의 부동산 억제정책을 그들 스스로 믿지 않아서였을까. 은행 대출 10억 원을 받아 흑석동 재개발 지역에 25억 대 상가건물을 산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절묘한 부동산 투자실력을 인정받아 ‘흑석 선생’이라는 아호까지 얻었다. 그래놓고도 국회의원을 승계해 당당하게 국회에 입성했다. 다주택자는 1주택만 남기고 처분하라고 지시했던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정작 자신은 서울 반포 아파트와 충북 청주 아파트를 놓고 오락가락하며 저울질해 ‘결국 똘똘한 한 채냐’는 국민들의 비난을 샀다. 서울의 아파트 두 채를 보유한 김조원 전 민정수석은 집을 파는 대신 청와대에 사표를 냄으로써 ‘직(職) 대신 집을 택했다’는 비아냥을 샀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임대료 인상 폭을 5%로 제한한 ‘임대차 3법’ 시행 직전 자신의 청담동 아파트 전세 보증금을 14.1% 올려 ‘내로남불의 전형’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김기표 비서관이 임명된 때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공직자의 부동산 검증에 대한 요구가 더없이 높은 3월 말이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은 반부패비서관 자리에 그 어떤 누구보다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을 앉혀야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도 청와대의 인사검증 그물망은 숭숭 뚫려 김 비서관의 부동산 투기의혹을 걸러내지 못했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 자체가 작동하지 않았거나 우리 편이라면 무조건 감싸고 보는 순혈주의 진영주의의 맹목적 패거리즘이 눈을 가렸을 수도 있다.

자기 사람들엔 한없이 온정적인 진영주의가 오늘의 내로남불 사태 불러

청와대 비서실에는 방마다 ‘춘풍추상(春風秋霜)’이란 액자가 걸려있다고 한다. 중국 명나라 때 홍자성이 쓴 ‘채근담’에 나오는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의 준말로 ‘남에게는 봄바람같이 대하되, 나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9개월이 지난 2018년 2월 5일 신영복 선생이 쓴 ‘춘풍추상’ 휘호를 복사본 액자로 만들어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선물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액자를 선물하던 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공직자가 공직에 있는 동안 이런 자세만 지킨다면 실수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검찰, 감사원, 청와대를 거론하면서 “남들에게 추상같이 하려면 자신에게는 몇 배나 더 추상과 같이 대해야 하며 추상을 넘어서 한겨울 고드름처럼 자신을 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한겨레신문 보도).

춘풍추상이 나에게 엄격하고 남에겐 온유한 것이라면,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점에서 정반대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그렇게 바란 ‘춘풍추상’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이 정부의 트레이드 마크는 ‘내로남불’이 돼버렸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조국 사태는 그 시작이었다. 여당의 서울 부산시장 재보궐선거 참패는 국민들이 내린 싸늘한 심판이었다. 이후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체제의 제1과제가 ‘내로남불 척결’이 되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김기표 인사 파동에서 보듯 이 정부 안에서 ‘춘풍추상’이 ‘내로남불’로 여전히 이해되고 읽히는 한 제2의 김의겸, 김기표, 노영민, 김조원, 김상조는 앞으로도 계속 출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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