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에서 발견하면 즉각 도망가야 하는 그림들’...위장형 몰래카메라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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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에서 발견하면 즉각 도망가야 하는 그림들’...위장형 몰래카메라 우려
  • 취재기자 성민주
  • 승인 2021.06.23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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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커뮤니티 게시글 화제... 모텔의 액자형 몰래카메라 악용 우려
곳곳에 초소형 몰래카메라... 판매 금지 요구하는 국민 청원도 등장

“진짜보다 더 진짜 같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위장형 몰래카메라가 예상치 못한 물건에 스며들어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곰인형, 액자, 시계, 안경 등에 들어간 몰래카메라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 범죄 악용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사진: 커뮤니티 더쿠 화면 캡처).
'모텔에서 보이면 바로 방을 나와야 한다'는 게시글에서 소개된 액자 사진이다(사진: 커뮤니티 더쿠 화면 캡처).
(사진: 커뮤니티 더쿠 화면 캡처).
게시글 작성자는 유화의 울퉁불퉁한 질감을 활용해 몰래카메라를 숨겨 뒀다고 주장했다(사진: 커뮤니티 더쿠 화면 캡처).

최근 커뮤니티 더쿠에 ‘모텔에서 발견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야 하는 그림들’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게시글에 따르면, 유화의 울퉁불퉁한 질감을 활용해 카메라 렌즈를 숨겨 둔다며 시중에서 쉽게 판매되고 있는 불법 촬영을 위한 초소형 몰래카메라가 내장된 액자 사진들을 함께 올렸다. 게시글 작성자는 “인쇄형보단 유화 질감이 살아있는 그림은 티가 나지 않아 더 조심해야 한다”며 “이미 (판매자들이) 그림 여러 개를 바꿔가면서 판매 중인데, 특히 마지막 그림은 정말 흔하고 활발하게 팔리고 있는 제품이니까 꼭 알아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게시글을 본 네티즌들은 “앞으로 모텔 못 갈 것 같다. 이 시대에 한 번 잘못 걸리면 죽고 나서도 인터넷상에 떠도는 거잖아”, “이런 걸 왜 팔게 놔두냐?”, “저런 게 성범죄 말고도 쓰이는 데가 있나? 그게 아니면 왜 규제를 안 하는지 모르겠다”, “난 지갑에 몰카 탐지하는 빨간 셀로판지 같은 거 넣고 다닌다”, “액자란 액자는 앞에 꼭 옷을 걸어서 전부 막아 놓아야겠다”, “대체 뭐 하러 찍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시중에서 위장형 몰래카메라는 쉽게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사진: 한 인터넷 거래 사이트 화면 캡처).
시중에서 위장형 몰래카메라는 쉽게 판매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사진: 한 인터넷 거래 사이트 화면 캡처).

기자가 시중에 초소형 몰래카메라를 판매하는 곳을 찾아보니 실제로 액자형 카메라 등이 존재했다. 국내 한 인터넷 거래 사이트를 보면, 액자형 초소형 몰래카메라뿐만 아니라 각종 여러 위장형 카메라를 판매하고 있었다. 곰인형 카메라, 액자 카메라, 안경 캠, 경보기 카메라, 벽시계 카메라 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녹화본은 휴대전화나 노트북으로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주로 어떤 용도로 사용되느냐'는 질문에 이 사이트 관계자는 “용도는 다양한데 증거 녹화, 세미나 녹화, 강의 녹화 등이 있다”며 “눈에 띄지 않고 원격 실시간으로 보면서 녹화가 가능한 제품이 가장 인기가 있는데, 시계, 안경, 단추, 차 키 모양 등도 다양하게 있다”고 말했다.

몰래카메라를 제조·판매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딱히 없다. 대부분의 몰래카메라 판매 업체들도 제품의 합법성과 성능을 내세우는 상황이다. 불법 촬영이 아닌 증거 확보, 강의 녹화 등 용도로 사용하면 문제가 없다는 것. 경찰은 “인터넷 등 사이트에서 몰래카메라를 제조해 판매한다고 당장 해당 판매자를 처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여러 가지 법 조항 등 법리를 검토해 불법적으로 촬영해 사용됐는지 또는 불법용으로 판매되고 있는지에 대해 조사한 후 그에 해당됐을 시에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정부가 사전에 변형 카메라의 제조‧수입‧유통에 이르는 전 단계를 살펴보는 '변형 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지난 3월 발의한 바 있다. 변형 카메라(몰래카메라)는 범죄 및 사생활 침해에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큰 물건임에도 사후 처벌만 가해지고 있어 사전 관리가 미흡하다는 점을 꼬집은 것. 그러나 이 법안은 아직 위원회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실제로 위장된 초소형 몰래카메라로 피해를 본 사례는 없지 않다. 국제 인권 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는 '내 인생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라는 보고서를 통해 국내 불법 촬영 범죄 피해 사례를 소개했다. 보고서에 인용된 일부 사례 중 직장 상사가 선물로 준 시계가 몰래카메라였고 한 달 반 동안 A 씨의 방을 촬영해 스트리밍하고 있었다는 사례도 있었다. A 씨는 “그 일이 내 방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때로는 아무 일 없는데도 갑자기 너무 무서울 때가 있다”고 휴먼라이츠워치가 전했다.

HRW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람들의 우려가 대부분 초소형 카메라(몰래카메라)를 이용해 화장실, 탈의실, 모텔 등에서 비밀리에 촬영하는 행위에 집중됐다”며 “가해자들은 때로 그러한 촬영물을 팔아 돈을 벌었다”고 우려했다.

법무부가 발간한 ‘2020 성범죄백서’에 따르면,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불법촬영범죄)’는 2013년 412건에서 2018년 2388건으로 5년 사이 5.8배나 증가했다. 동종범죄로 재등록되는 비율도 75%로 높았다.

국제 인권 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의 보고서에서도 한국에서 발생한 성범죄 사건 중 불법 촬영 관련 사건은 2008년에는 4% 미만(585건)이었으나, 2017년에는 11배 증가한 6615건으로 전체 성범죄 사건의 20%를 차지했다.

인터넷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초소형 몰래카메라 범죄 악용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 청원에 초소형 카메라 판매를 금지 해달라는 게시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청원인은 “일명 몰카라고 불리는 초소형 카메라를 이용해 화장실, 숙박시설, 지하철, 집 등 어디서나 불법 촬영을 하는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며 “안경, 볼펜, 액자, 시계, 생수통, 화재경보기 등 위장된 모습으로 우리 옆에 존재해 누구나 찍힐 수 있는데, 마땅한 규제도 없이 일반인에게 버젓이 팔리고 있어 유통을 제발 금지해 달라”고 적었다.

해당 청원글은 23일 오후 3시 기준 10만 9146명의 동의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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