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칼럼]쥴리엣 테라스보다 미감있던 흑인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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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칼럼]쥴리엣 테라스보다 미감있던 흑인 교회
  • 칼럼니스트 박기철
  • 승인 2021.06.2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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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美)~여(女)~문(文)/Amenity, Feminism and Lifeway ㊳ / 칼럼니스트 박기철
칼럼니스트 박기철
칼럼니스트 박기철

<로미오와 쥴리엣>의 배경은 내가 지금 발 딯고 있는 베로나Verona라고 한다. 영국인인 세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는 왜 저 멀리 떨어진 이태리의 베로나에서 이야기의 소재를 찾았을까? 아무래도 지금의 이태리 땅은 광대한 로마제국의 중심이었으며, 중세에 카톨릭의 본산이기도 하면서 르네상스 시대를 이끈 지역이기에 이야기꺼리가 많아서 그랬을 것같다. 그래서 세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쥴리엣 말고도 이태리 지역의 역사와 신화, 전설, 민담 등을 가지고 오셀로, 베로나의 두 신사, 베니스의 상인 등 여러 편의 희곡을 썼겠다.

십자가 하나가 전부인 교회(사진: 박기철 제공).
십자가 하나가 전부인 교회(사진: 박기철 제공).

내가 밀라노에서 베로나로 간 이유는 로미오와 쥴리엣의 고장이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가서 보니 쥴리엣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집은 유명 관광지였다. 베로나를 오면 꼭 들러야 하는 필수 코스였다. 정말로 쥴리엣이 그 집의 2층 방에서 테라스로 나와 로미오가 간절히 들려주는 세레나데를 들었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냥 세익스피어가 픽션으로 그럴 듯하게 지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 스토리 현장에 오니 정말로 그렇게 했을 것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비가 오는 밤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쥴리엣의 테라스 아래로 모여 들었다.

하지만 나한테 베로나에서 쥴리엣 테라스보다 더 인상깊은 곳은 따로 있었다. 넓은 골목길을 걷는데 웬 노래 소리가 나는 집이 있었다. 알고보니 교회였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예배를 보는 중이었다. 그런데 신도들이 모두 흑인들이다. 이태리에 흑인들이 많은 것을 더욱 실감했다. 그런데 예배 모습이 참으로 정말로 놀라웠다. 앉아서 설교 말씀을 듣는 조용한 예배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시끄럽기만한 요란한 예배도 아니었다.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 예배였다. 영화에서 흑인들이 신나게 예배보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내가 직접 오늘 목격한 것은 그 이상의 이상이었다. 마치 아프리카 토속마을에서 북을 치며 춤추고 노래부르듯이 교회신도들은 신나고 신명나며 신바람나는 몸짓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예배를 드리기보다 그냥 즐겁게 노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과연 이태리에 사는 흑인들은 아프리칸의 본성을 잃지 않고 살고 있었다. 물론 이들은 예배가 끝나면 자기들의 본성을 누르며 고되게 돈을 벌며 먹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주일예배 때만이라도 신나게 놀듯이 예배드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럽 땅을 다니면서 수많은 성당들과 교회들에 들어가 보고 예배하는 모습도 보았지만 오늘 이 흑인들의 교회처럼 인상깊고 감명깊지는 못하였다. 한참동안 저들의 율동과 음악을 보고 들으려니 나도 저들과 동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예배에 온통 빠져 있어선지 이방인인 내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예배시 나눠주는 주보를 보니 Chiesa Valdese di Verona라고 적혀 있다. 영어로 Waldensian Church of Verona인데 발데시안 교회는 12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된 기독교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이 교회에서 믿는 기독교 신앙이 이단異端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하기 힘들다. 다만 내가 느끼기에 나는 이들의 다이나믹하며 에너제틱한 예배를 통해 신나는 미감을 느꼈다. 비록 내부가 화려한 교회도 아니고 십자가 하나 걸린 게 교회 인테리어의 전부인 허름한 교회에서 원시 본연의 신나는 아름다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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