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A학점... 코로나19가 낳은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
상태바
너도나도 A학점... 코로나19가 낳은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
  • 취재기자 김태희
  • 승인 2021.06.14 06: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해 학점 B 이상 취득한 대학생 비율 87.5%
열심히 해도 비슷한 성적...학업 성취감 저하 우려
최근 기업들 “학점보다는 개인의 스토리에 집중”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강의·시험이 늘어나면서 공정성 논란과 등록금 문제가 불거지자, 대학들이 기존의 상대평가 방식에서 절대평가로 기준을 완화시키고 학생들에게 좋은 학점을 부여하고 있다. 그 결과 학점의 변별력이 흐릿해지고, 모두가 좋은 성적을 받는 이른바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났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전국 195개의 4년제 대학과 전국 133개의 전문대학을 대상으로 분석한 ‘2021년 4월 대학정보공시 분석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2020년에 학점을 B 이상으로 취득한 대학생의 비율이 87.5%로 집계됐다. 이는 2019년에 비해 15.8%나 상승한 수치이다. 2020년 대학생들의 과목별 학점 취득 비율은 A학점을 받은 학생들이 54.7%, B학점은 32.8%, C학점은 7.8%, D학점은 1.7%, F학점은 3.0%로 나타났다.

이러한 학점 인플레 현상에 대해 일부 학생들은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부산의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 모(22) 씨는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로 학교 측에서 학점을 좋게 주자 처음에는 마냥 좋았으나, 점점 문제점을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내가 이런 점수를 받아도 되는 건가?’ 싶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잘하든 못하든 모두가 비슷한 점수를 받으니 오히려 시험을 열심히 준비한 학생들 입장에서는 손해보는 느낌도 든다”며 학생들이 학업 성취감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확대되자, 각 대학에서 평가 기준을 완화하여 학생들에게 좋은 학점을 부여하고 있다(사진: pixabay).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확대되자, 각 대학에서 평가 기준을 완화하여 학생들에게 좋은 학점을 부여하고 있다(사진: pixabay무료 이미지).

장학금과 관련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대학생 최 모(22) 씨가 재학 중인 학교에서는 성적 평가 기준을 완화하자, 학점 4.5를 받는 학생들이 크게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최 씨는 충분히 좋은 성적을 받았음에도 성적 우수 장학금에서 밀리게 됐다. 최 씨는 “내 학점은 4.3이다. 나보다 더 잘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내가 못 받은 거겠지만, 기준이 너무 상향돼 이제는 4.5를 받지 못하면 성적 우수 장학금은 받을 수 없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수업에 대한 집중도 저하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학생 박 모(22) 씨는 “지난번에 시험을 엄청 망친 과목이 있었는데, 그 과목에서 A학점을 받아서 놀랐다. 솔직히 대충해도 잘 받으니 수업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학점 인플레 현상으로 인해 난감한 것은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새 직원을 채용할 때 학점을 보곤 한다. 학점을 통해 그들의 성실함과 실력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한 학점 인플레 현상으로 너도나도 성적을 잘 받게 되자,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학점을 기준으로 직원을 채용하는 것이 애매해졌다. 그 학점이 정말 지원자의 실력과 직결하는지, 아니면 그저 부풀려진 성적인지 모호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요즘은 지원자의 학점보다는 지원자만의 스토리에 집중하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지원자의 학점을 성실성의 척도로 보지 않고, 실제 업무와 관련된 수행 경험을 더 중시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학점의 중요도가 약화되자, 그만큼 스펙 경쟁이 심화될 것이란 의견도 대두됐다. 학생들이 학업에 집중하기보다 대외활동이나 토익 등에 더욱 신경 쓰게 되어, 결과적으로 중요한 대학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이다. 대학생 김 모(22) 씨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스펙 경쟁이 심했는데 이제는 성적으로 변별하기도 어려워졌으니 앞으로 스펙 경쟁이 더욱 심해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