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 칼럼] 낙동강 경승지 임경대(臨鏡臺)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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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칼럼] 낙동강 경승지 임경대(臨鏡臺)가 운다
  • 논설주간 박창희
  • 승인 2021.06.13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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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교량으로 경관 무참히 훼손
최치원의 '천년 인문정신' 머문 곳
이 지경 되도록 지식사회 뭘 했나
임경대 앞에서 무릎 꿇고 성찰해야

1300리 낙동강에는 유명한 경승지가 몇 곳 있다. 상류로부터 봉화의 삼동치, 청량산 자락, 안동 하회마을 부용대, 상주 경천대, 대구의 사문진(화원), 그리고 하류의 양산 임경대가 우선 꼽힌다. 저마다 이야기와 사연을 품고 낙동강의 문화적·경관적 가치를 창출하는 곳이다.

이 가운데 양산 임경대(臨鏡臺)는 신라말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의 발자취와 정신세계가 머문 명소다. 신라 조정에 올린 ‘시무십조’가 외면당하자, 최치원은 나이 사십에 관직을 버리고 소요자방(逍遙自放), 유랑의 길을 택한다. 세속의 탐욕을 벗어던지고 나니 홀가분했다. 그러다 문득 양산의 낙동강변을 지나다 절경에 반해 시 한수를 남긴다.

안개 낀 봉우리 뾰족뾰족 물은 늠실늠실/거울 속 인가가 푸른 봉우리 마주했네

외로운 배 바람 가득 안고 어디 가나/날던 새 별안간 자취 없이 사라지네.

烟巒簇簇水溶溶(연만족족수용용) 鏡裏人家對碧峰(경리인가대벽봉)

何處孤帆飽風去(하처고범포풍거) 瞥然飛鳥杳無終(별연비조묘무종)

최치원이 지은 한시 '황산강 임경대'(사진: 박창희 기자).
최치원의 시 '황산강 임경대'(사진: 박창희 기자).

그 유명한 '황산강 임경대'라는 한시다. 황산강(낙동강)에 비친 인가와 산 그림자가 거울처럼 투명하다. 최치원은 시를 지은 뒤 석공을 불러 바위에 ‘臨鏡臺’라는 세 글자를 새겼다. (바위글씨는 기록만 있고 확인되지는 않음.)

임경(臨鏡)! ‘거울에 임한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맑은 낙동강은 세상을 되비추는 거울이요, 자기를 들여다보는 심경(心鏡)이다. 심경은 성찰의 다른 표현. 시에 등장하는 ‘외로운 배’는 고운(孤雲), 즉 최치원 자신일 터. 바람 부는 대로, 구름 가는 대로 걷고 안개처럼 사라져도 여한이 없다. 유랑을 통해 깨달은 자의 탈속의 경지다.

‘황산강 임경대’라는 한시는 최치원의 문집인 ‘고운집 권1’과 우리나라 역대 시문 선집인 ‘동문선 권19’에 실려 있다. 그후 고려시대 김극기는 최치원의 시에 차운했고, 조선시대에는 김순룡, 안효필, 홍성민, 정사룡, 남경의, 허적 등 내로라는 문사들이 제2, 제3의 임경대를 앞다투어 노래했다. 훌륭한 원작이 시대를 초월해 리바이벌되는 모습이다. 한마디로 고려-조선조에 걸쳐 임경대는 낙동강 최고의 문화콘텐츠였던 것이다.

양산시는 임경대를 양산8경의 하나로 지정하고, 임경대 일대 공원화 사업을 통해 인근 용화사를 연결하는 탐방로까지 열었다. 임경대의 문화관광적 가치를 높이 평가한 결과다. 임경대 정자에서 원동 화제쪽을 바라보면, 도도한 낙동강 물줄기가 마치 한반도 지형 같다. 최근에는 젊은이들이 인생샷을 찍기 위해 임경대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랬다. 임경대에 서면 1100년 전 대문호의 호흡과 고뇌, 감수성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람이 드문 평일, 임경대 너럭바위에 앉으면 세상잡사가 가벼운 새처럼, 구름처럼 훨훨 날아갔고, 머리가 씻기고 새로운 상상력이 샘솟기도 했다.

그런데….

임경대 눈앞에 시방 거대한 교량이 건설되고 있다. 임경대의 절대 경관이 무참히 망가지고 있다. 김해 상동과 양산 화제를 잇는 국가지원지방도로(국지도) 60호선 낙동강 횡단 교량인데, 이미 콘크리트 골조가 완성됐다. 공사개요 안내판에는 ‘길이 975m, 폭 20.7m, 왕복 4차로, 시행자 경상남도’라고 돼 있다. 

낙동강의 경승지인 양산 임경대 앞에 건설되고 있는 낙동강 횡단교량. 절대 경관이 무참하게 훼손되고 있다(사진: 박창희 기자).
낙동강의 경승지인 양산 임경대 앞에 건설되고 있는 낙동강 횡단교량. 절대 경관이 무참하게 훼손된 모습이다(사진: 박창희 기자).

"이럴수가!" 현장을 같이 본 김상화 낙동강공동체 대표는 “최치원 선생이 통탄할 일이다. 한마디로 경관파괴요 문화훼손”이라며 혀를 찼다. 그러면서 탄식하듯 말했다. “우리 시대의 문화수준, 경관 감수성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 거죠.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짓이에요." 

이전에 봐왔던 임경대 경치는 온데간데 없었다. 눈앞엔 덩그런 낙동강 횡단교량이 눈엣가시처럼 시야를 압도했다. 사진을 찍으니 한반도 지형의 하단부에 거대한 콘크리트 수갑이 채워진 모습이다. 교량을 피해 찍자니 구도가 잡히지 않는다.

교통 편리를 빌미로 임경대 경관을 이처럼 무너뜨려도 되는 걸까? 몇가지 강한 의문이 솟구쳤다. 왜 꼭 이 자리여야 하는가? 노선변경 등 대안은 없었는가? 고민이나 했던가? 경남도·양산시는 어떻게 이 사업을 허가했는가? 이 지경이 되도록 지역의 시민환경단체와 지식인 사회는 무엇을 했나?

임경대 앞에 세워진 안내판. 교량 건설전의 낙동강 경관은 한반도 지도와 흡사했다(사진: 박창희 기자).
임경대 앞에 세워진 안내판. 교량 건설전의 낙동강 경관은 한반도 지도와 흡사했다(사진: 박창희 기자).

이 총체적 문화빈곤, 감수성 부재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건설 문외한의 눈으로 봐도 노선을 약간 아래로 돌렸다면 임경대 경관은 보존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임경대 경관을 지키지 못한 자괴감이 크다. 이같은 사태를 뒤늦게 고발하는 기자도 책임이 있다.

임경대가 있는 물금-화제 지역은 조선시대 국가 관로인 영남대로(황산도)가 지나는 길의 요충지다. 요산 김정한의 소설 ‘수라도’에는 용화사를 낀 이곳을 ‘황산베리끝’이라 이름했다. 험하기 짝이 없는 ‘황산잔도’를 경상도 식으로 표현한 말이다. 부산시 물금취수장의 물문화관도 있어 낙동강 취수 역사도 살펴볼 수 있다. 말하자면 임경대 일대는 물과 길의 역사가 온축된 곳이다. 

우리가 빼앗긴 것은 임경대 경관만이 아니다. 진짜 손실은 천년 이상 낙동강과 함께 흘러온 최치원의 유랑철학과 인문정신이 훼손됐다는 점이다. 인문정신이 뭔가? 보존해야 할 것, 살려야 할 것, 말해야 할 것을 지키고 향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시대만이 아닌 미래세대에 그 유산을 온전히 물려주는 것이다. 절대 경관이 파괴되어도, 무너져도 그만이라고 여기는 인문정신은 허구요 가짜다. 이 시대 인문정신은 진짜와 가짜조차 분간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임경대를 사랑하는 자, 지금에라도 임경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이같은 무참한 경관파괴가 반복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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