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돈·문진우 작가와 함께했던 그 ‘좋았던 신문기자 시절’의 기억
상태바
김탁돈·문진우 작가와 함께했던 그 ‘좋았던 신문기자 시절’의 기억
  • CIVIC뉴스 칼럼니스트 차용범
  • 승인 2021.05.14 10: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전 ‘두 사진기자의 사진이야기’에 붙여-
5월 25일까지, 부산 범일동 PD아트갤러리
80~90년대 격동의 시대, 희귀 기록 사진 등 전시

‘김탁돈·문진우 사진전-두 사진기자의 사진이야기.’ 1980~90년대 격동기의 부산 현대사를 현장사진으로 기록했던 두 걸출한 사진기자의 조인트 사진전이다. 김탁돈·문진우는 당대 신문에 게재할 보도사진을 촬영하는 직분에서, 특히 뚜렷한 목적의식 아래 직업적 열정을 쏟은 ‘현장형 기자’이다.

‘김탁돈·문진우 사진전-두 사진기자의 사진이야기’. 두 사진기자는 1980~90년대 격동기의 부산 현대사를, 뚜렷한 목적과 냉철한 시선으로 기록했다(사진; 사진전 소개자료).
‘김탁돈·문진우 사진전-두 사진기자의 사진이야기.’ 두 사진기자는 1980~90년대 격동기의 부산 현대사를, 뚜렷한 목적과 냉철한 시선으로 기록했다(사진: 사진전 소개자료).

이번 사진전의 주제들을 보라. 김탁돈, ‘민주화의 몸부림, 부산민주항쟁’, 부마민주항쟁(1979)을 거쳐 6·10 부산민주항쟁(1987) 과정을 기록한 사진이다. 부산시청 앞 간선도로를 점거하고 있는 계엄군의 장갑차, 독재에 저항하는 부산시민의 투쟁 현장, 최루탄이 난무하는 부산 주요거리, 시국 대자보가 줄지어 붙어 대학가 게시판···.그는 그 시절, '부산민주항쟁의 기록자'였다.

김탁돈 기자의 6·10 부산민주항쟁(1987) 당시 부산 서면거리 현장(사진; 김탁돈).
김탁돈 기자의 6·10 부산민주항쟁(1987) 당시 부산 서면거리 현장(사진: 김탁돈).

문진우의 키워드는 ‘상실의 시대’다. 암울했던 1980년대의 사회적 풍경과 초상들을 촬영했다. 이후 1990년대 민주화 운동의 현장 기록들도 보여준다. 그가 기록한 지친 현대인의 모습은 그 시대의 암울함을 대변하는 상징어라 할 만하다. 5·3 동의대 사태의 여러 표정 역시 부산 현대사의 뚜렷한 현장임이 분명하다.

문진우 작가의 5·3 동의대 사태 당시. 김우현 치안본부장이 희생 경찰관 유가족을 조문하고 있다(사진; 문진우).
문진우 작가의 5·3 동의대 사태 당시. 김우현 치안본부장이 희생 경찰관 유가족을 조문하고 있다(사진: 문진우).

두 사람은 한때 나의 신문사 동료였다. 김탁돈 작가는 나의 '부산일보' 시절 10여 년을, 문진우 작가는 '부산매일' 시절 10여 년을 함께 했다. 그 시절, 여러 사진부 동료들을 겪었으나, 김탁돈·문진우와의 관계는 유독, 도저히 잊지 못할 많은 스토리를 공유한 사이다. 1980~90년대를 공유한 현장동료들의 공동전, 그 감흥은 남다를 수밖에.

김탁돈-문진우 사진전을 맞아, 모처럼 옛 동료 두 분과 함께. 왼쪽 문진우, 오른쪽 김탁돈 작가다.
김탁돈-문진우 사진전을 맞아, 모처럼 옛 동료 두 분과 함께. 왼쪽 문진우, 오른쪽 김탁돈 작가다.

김탁돈 작가를 만난 것은 참 오랜만이다. 1980년대 말, 그는 복간하는 국제신문으로, 나는 창간하는 부산매일로 옮기며, 더는 매일같이 어울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는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좀, 특별한 사진기자였다. 그는 취재현장에서 ‘사건’을 취재하며, 틈틈이 ‘취재기자’ 취재에도 열정을 쏟곤 한 것이다.

사진으로 기록해야 할 ‘순간’이 교차하고, 분과 초를 다투어야 할 사건현장에서 취재기자에게 앵글을 맞춘다? 그건 그 특유의 넉넉한 심성과 따뜻한 동료애 없이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그는 현장에는 차갑되 동료에겐 따뜻한 그런 여유와 품성으로, 자주, 동료들을 격려하며 격무에 지친 동료들의 가슴을 후끈 데워주곤 했다.

내가 연전 졸저 ‘기자답게 선비처럼’을 출간하며 끼워 넣은 ‘그때 그 시절-사진기자에게 취재 당한 사건기자’편은 오직, 그의 열정이 남긴 산물이다. 그는 나의 사건기자 ‘뻗치기’ 현장, 1987년 6월 항쟁 당시 부산시청 앞 교차로에서 방독면을 쓴 채 시위현장을 취재하는 모습 등을 촬영, 편집국 복도에 게시하곤 했다. 그 사진, 당시의 나를 기억할 소중한 기록이다.

김탁돈 기자가 기록해 준 나의 사건기자 시절. 연전 졸저를 출간하며 게재했던 몇 컷이다.
김탁돈 기자가 기록해 준 나의 사건기자 시절. 연전 졸저를 출간하며 게재했던 몇 컷이다.

문진우 작가와는 시나브로 연락하고 지내는 각별한 사이다. 그의 사진에의 열정과 맹렬한 작품활동은 두루 소문난 바이지만, 그는 특히 나의 사건·현장 취재에 ‘단짝’처럼 동행하며 많은 추억을 공유한 최상의 파트너였다. 우선, 부산매일의 환경특집 ‘낙동강 살아나는가’ 취재 때 얘기.

1990년 말, 연중특집의 사전취재 차 강원도 태백시를 찾았을 때다. 취재차에 취재반 김형진 기자와 사진담당 문진우 기자가 동행, 낙동강의 실제 발원지를 탐사할 요량으로, 태백산 당골계곡을 거쳐 정상 부근 용정(龍井) 답사에 올랐다. 그러나, 우린, 그 겨울의 짧은 해에, 그 깊은 산의 어둠이 그렇게 빨리 올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당골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하산길 중간에서 어둠을 만난 것이다. 꽁꽁 얼어붙은 계곡이며 뼈를 뚫는 추위 속 우리는 별다른 장비도 없었다. 물론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다. 그 계곡에서의 사투 얘기는 접고, 우리 셋은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꽁꽁 언 몸으로, ‘사선을 넘어’ 생환한 동료였다. 그 연중 시리즈, 봉생문화상(언론 부문)을 수상하며, 문진우와 나는 그 수상자 모임의 동료로 얽혀 있다.

문진우가 이번 사진전에 내놓은 ‘5·3 동의대 사태’ 역시 부산매일이 대형특종을 기록한 역사적 사건이다. 문진우는 부산매일이 ‘한국기자상’·‘한국언론학회상(탐사보도 부문)을 수상한 ’부산 북부서 강주영 양 유괴살해사건 고문조작 수사‘ 역시 현장에서 취재했다. 이 사건들에서도, 나와 문진우,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정말 훌륭한 후배‘ 김형진은 함께 얽혀 있다.

난 김탁돈·문진우 사진전을 미리 찾아 그들을 만나고, 그 전시회 소식이며 두 작가와의 인연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옛 동료 두 분을 만나 함께 나눴던 ‘좋았던 시절’을 기억할 겸, 주변에 사진전 얘기도 좀 알릴 생각에서였다.

옛 동료 김형진은 그 글에 댓글로 반응했다. “대단한 전시회 첫날에 가셔서, 소중한 인연을 되짚어 보신 것, 감동(?)입니다. 투철한 기자정신으로 민완기자의 전형을 보여주셨고 후배들을 위한 조련에 열정 바쳤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갔으니 감회가 남다르셨겠습니다. 곧 두 분 계실 때 갤러리를 방문하겠습니다~~“

그렇다. 김탁돈·문진우와 함께했던 그 시절, 어찌 ‘좋았던 시절’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겠나. 덧붙여. 문진우·김형진과 함께했던 그 시절 역시, 어찌 “참 좋았다”고 기억하지 않을 수 있으리. 알고 보면, 김탁돈-문진우-김형진 역시 대학 강단에서 함께 어울린 ‘좋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의 ‘그 때 그 시절’은 ‘참 좋았던 시절’로 오래 남을 것이다.

나는 이 사진전 소식을 좀, 더, 전파하려 시빅뉴스 데스크를 맡은 김탁돈의 옛 신문사 후배, P교수에게 취재를 부탁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아, 그거, 누구 취재시켜 쓰는 것보단, 선배 페북 글 약간 가다듬으면 좋겠던데요.” 그런 사연 끝, 그 페북 글의 끝부분,

“사진전은 5월 25일까지, 부산 동구 범일동 PD아트갤러리에서 열린다. 시절은 범상치 못하다. 이번 전시,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둘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 시대를 기억하는, 또는 그 시대를 알고 싶은, 많은 부산사람들이 이 전시회를 찾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부산의 현대사를 공유하는 귀한 기회로 여겼으면 좋겠다. 두 사람의 사진 기록은 곧 부산의 산 역사일지니.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