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 칼럼] 전원주택 살이가 가르쳐 준 느림과 순응의 지혜...밀양강과 옥교산을 벗 삼아 보낸 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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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 전원주택 살이가 가르쳐 준 느림과 순응의 지혜...밀양강과 옥교산을 벗 삼아 보낸 6년
  • 편집국장 송문석
  • 승인 2021.04.19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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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마시고 책 읽고 낮잠 자는 전원생활 달콤한 꿈은 무성한 풀과 비바람과 벌레 앞에서 무너져
매주 벌어지는 풀과의 전쟁, 무너진 담장 보수하기 등 쏟아지는 일은 전원생활에서 겪는 일상들
자연의 흐름에 맞서기 보다 순응하면서 물처럼 바람처럼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 것이 최대의 교훈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결정이었다. 돌담은 헐려 경계도 어딘지 알 수 없고, 마당에는 풀만 우거진 시골 집을 덜컥 사겠다고 덤빈 일 말이다.

마을 앞으로 밀양강이 흐르고, 뒤에는 옥교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것을 빼고는 특별하달 게 없는 그저 그런 집이었다. 봄비에 파릇파릇 올라오는 대파와 상추에 현혹됐을 수도 있고, 동네 맨 뒤에 앉은 집이어서 앞이 툭 트인 광경에 눈이 삐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집을 딱 한 번 보고는 곧바로 사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텃밭
전원주택 마당 한 켠에 조성해놓은 텃밭에서 무와 고구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송문석).

주말용 전원주택을 갖는다는 로망을 현실로 만들었다는 기쁨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전원주택을 갖게 되면 대부분은 파라솔 아래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거나, 솔솔 불어오는 대숲 바람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잔다든가, 툇마루에 걸터 앉아 기타를 친다든가 하는 꿈을 야무지게 꾼다. 꿈 꾸는 것은 자유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했다. 로망은 꿈결처럼 사라지고 허리가 부러질 만큼의 일이 닥친 것은 바로 다음날부터였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마당엔 잔디가, 텃밭엔 온갖 풀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집 뒤 대나무 밭에선 죽순이 하룻밤만 지나면 사람 키 만큼 쑥 자랐다. 대밭 한켠에 똬리를 튼 칡넝쿨 부대는 일제히 지붕을 향해 쳐들어왔다. 마치 칡넝쿨 줄기 맨 앞에 눈이 달린 것처럼 요리조리 길을 찾으며 몽골 기마병처럼 돌격 앞으로 진격해왔다. 돌담 위의 신우대(시누대)와 담쟁이 넝쿨은 순식간에 푸른 벽을 치고 집을 포위했다.

주말이 돼 일주일 만에 가면 지난주 허리가 휘도록 정리했던 일들은 도루묵이 돼 있었다. 마당의 잔디는 제멋대로 자란 중학생 머리처럼 다시 덥수룩하고, 확실하게 물리쳤다며 낫을 쥐고 흐뭇하게 바라봤던 칡넝쿨은 다시 스멀스멀 지붕 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텃밭의 잡초는 주인을 비웃기라도 하듯 채소들 사이에서 기세좋게 머리를 내밀었다.

풍경
전원주택 처마 끝에 매달아놓은 풍경 너머로 새벽 해가 떠오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송문석).

밀양의 여름은 뜨겁다. 따갑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밀양(密陽)이라는 지명을 지은 선조들의 눈썰미가 대단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가 옥교산 너머로 지면 언제 그렇게 뜨거웠냐는 듯 밤공기가 선들선들했다. 까만 여름밤 하늘엔 별이 총총하고, 반딧불이가 그리는 그림은 황홀하다. 밀양의 뜨거운 낮시간과 선선한 밤을 오가며 얼음골 사과와 대추, 감이 달달하게 익어갔다. 전원주택 생활의 로망은 밤이 돼야 조금이나마 느껴졌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전쟁을 벌이듯 다시 풀과 넝쿨, 흙과 돌에 맞섰다. 태풍에 무너진 돌담을 쌓는 것도 처음 해보는 내게는 만리장성을 쌓는 것만큼이나 대역사다. 모든 게 도전이고 최초이고 시련이었다. 번잡한 도시와 일에서 벗어나 뒹굴며 책을 읽다가 스르르 낮잠에 빠지는 전원생활의 꿈은 그야말로 야무진 꿈에 불과했다. 허리가 쑤시고 손목이 시큰거려 물파스를 뿌리고 난 밤이 돼서야 잠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경남 밀양시 옥교산 아래에 가을이 찾아 오면 감나무의 감이 발갛게 익어 가면서 온 마을이 붉게 물든다(사진: 취재기자 송문석).
경남 밀양시 옥교산 아래에 가을이 찾아 오면 감나무의 감이 발갛게 익어 가면서 온 마을이 붉게 물든다(사진: 취재기자 송문석).

대문을 휘감은 능소화가 만발하고 감나무의 감이 빨갛게 익어가는 가을이 되면서 풀과의 전쟁은 휴전에 돌입했다. 나무들도 기세등등하던 이파리에서 물기가 빠지기 시작하고, 풀들도 기세가 꺾였다. 세월 앞에 자연은 그렇게 순응해갔다.

사계절을 한 해, 두 해 겪으면서 나도 자연의 흐름에 맞춰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면대결을 피하고 우회하는 길을 택했다. 자연을 이긴다는 것은 무모한 전략이었다. 이길 수도 없었다. 유전자를 번식하려는 생명의 치열함 앞에서 호미자루 하나를 쥐고 막아내려는 나의 저항은 초라하게 무너졌다. 이럴 때는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자존심을 꺾는 수밖에 없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전원생활 아니겠느냐며....

일찌감치 이곳에 터를 잡은 연못집 박 씨 형님네 부부는 전원생활 멘토나 다름 없었다. “쉬엄 쉬엄 해”라거나 “무리하면 안 돼”라는 말로 힘만 믿고 달려드는 나를 주저앉힌다. 개울 건너 어르신은 뒷짐을 진 채 집 앞을 지나다 슬그머니 들어와 어리숙한 연장질을 바로잡아 주신다. 애초에 무슨 일이 있어서 우리 집 앞을 지나가신 게 아니라 건너다보곤 일부러 도와주러 오신 게 틀림없다. 80이 내일 모레인데 힘이 장사인데다 농촌 생활에 만능박사이다. 주말이면 찾는 이웃 사장님은 맥가이버 저리가라다. 아들이 대학에 다니는 젊은 부부는 항상 살갑게 반겨주며 시골생활에 적응하도록 도와주었다. 따뜻한 이웃들이 있어 뜨거운 태양과 비바람 치는 여름, 매서운 바람이 살을 에는 겨울을 이길 수 있었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깨끗하고 정돈이 돼 있는 도시생활의 기준으로 자연 속의 삶의 방식을 맞추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인공의 구조물이 대부분인 도시에선 인간이 주인일 수 있어도, 자연 속 삶의 주인공은 어쩌면 나무와 풀, 개구리와 개미, 벌레들일지도 모른다.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쉬고 싶다며 전원생활을 하면서도 도시적 삶을 추구하는 것은 억지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6년의 밀양 전원생활을 최근 접었다. 많은 추억이 머리에 맴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따가운 햇빛과 비바람, 나무와 풀, 새들과 벌레, 뒷산의 고라니와 멧돼지 등 자연의 주인공들이 먼저 떠오른다. 이들이 내게 가르쳐준 삶의 지혜는 크다. 자연의 모습처럼 순리대로 살라고 한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그저 그렇게, 물처럼 바람처럼 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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