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7년...무엇이라도 합시다"…세월호 7주기 공소시효도 올해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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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7년...무엇이라도 합시다"…세월호 7주기 공소시효도 올해 끝나
  • 서울시 노원구 석상윤
  • 승인 2021.04.1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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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이란 고통과 아픔의 시간이 어떤 무게인지 알 것 같아
사랑했던 아버지 떠나보낸 지 6년... 여전히 가슴이 미어져
304개의 가족, 세상과 싸우고 있는 분들 위해 뭐라도 해야

당신에게 7년이라는 시간은 어떤 시간인가요.

갓 태어난 아기가 7년 뒤면 유치원생이 되어 또박또박 말을 하고,

초등학교 6학년이 7년 뒤면 대학생이 됩니다.

군대를 3번 갔다 와도 7년이 채 안 되고,

7년 동안 알고 지내면 거의 가족만큼이나 서로를 잘 압니다.

7년은 너무나도 긴 시간입니다.

 

너무나도 긴 그 시간이, 누군가를 잊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특히 죽음에 있어서 더 그렇습니다.

저는 사랑했던 아버지를 떠나보낸 지 6년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그 시절 얘기가 나오면 여전히 가슴이 미어집니다. ‘우리 아빠’라는 단어가 들려오면 남모르게 흔들립니다. 실은 지금도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그냥 흔한 암이었습니다. 스트레스를 준 대상이 있을진 몰라도, 스트레스를 받는 모두가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 아버지의 죽음은 분명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시간이 지나면, 어떤 것들은 괜찮아지기도 합니다. 괜찮아졌다는 사실이 괜찮지는 않지만, 그래도 괜찮아지곤 합니다. 병으로 돌아가신 것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저는 요새 가끔, 어머니가 죽는 상상을 합니다. 혹은 누나가 죽는 상상을 합니다. 이제는 죽음이 그리 멀게 느껴지진 않아서, 그래서 자꾸만 대비하려고 마음이 애쓰나 봅니다. 저는 분명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믿으면서도, 그런 상상을 하면 견디기가 조금 힘듭니다. 이미 겪어 보았기에 더 힘들고, 또 겪는다고 익숙해질 그런 것이 아닌 것을 알기에 더 힘듭니다. 그럴 땐 그저 기도합니다. 주님 내게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달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상상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왜 재수 없게 그런 상상을 하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죄송하게도 죽음은 정말 우리에게서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당장 내일, 당신의 가족 중 누군가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불쾌하다면 죄송하지만, 그것이 삶의 몇 안되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더 절망적인 것은, 그 죽음이 ‘사고’가 아닌 ‘사건’일 경우 입니다. 누군가의 책임이 담긴, 분명한 가해자가 있는 사건일 경우입니다. 왜 죽어야 했는지 납득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그 순간, 한 사람이 죽었지만, 그것은 더 이상 한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한 가정이, 그 가족의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삶이, 파탄 나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부터 더 이상 그들에게 ‘삶’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숨 쉬는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것일 뿐입니다. 경찰서로, 법정으로, 또는 광장으로 피켓을 들고 끌려다닐 뿐입니다. 그러다 때로는 옥상에 끌려가기도 할 뿐입니다. 실은 진범이 잡히더라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진범이 끝내 잡히지 않는다면. 그 가족들은 그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7년 전 그렇게 된 304개의 가족을 알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분들도 계시지만, 여전히 싸우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저는 ‘국가가 구조하지 않은 사건’ 이 아니라 ‘단순 사고사’를 선택할 것입니다. 그게 덜 괴로울 테니까요. 만약 정말 그렇게 믿을 수 있다면, 그렇게 믿을 것입니다. 그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할 테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생각하려 해도 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에, 그러기엔 의심스러운 것이 너무나도 많기에. 유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진실을 파헤칩니다. 그 마음을 헤아릴 순 없지만, 설령 진실이 나온다 한들 편히 쉴 수 없다는 것을 그분들은 아실 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파헤칩니다. 진실을 찾는데 이유 따윈 없습니다. 그냥, 사랑했으니까. 내 아들, 내 딸, 내 가족이니까.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선택지조차 애초에 없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이 이익을 얻자고 7년 동안 광장에 서 있지는 않습니다. 그 누구도,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7년이나 외치지는 않습니다. 거짓말은 지칩니다. 거짓말은 나중 가면 사실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 세월이 되려, 그것이 진실이냐고 묻습니다.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진실입니다. 세월호 참사 초기에 언론과 정부와 해경이 했던 그 모든 거짓말, 말도 안 되는 거짓말, 왜 했는지 여전히 모르는 거짓말, 이제는 세월에 묻혀버린 거짓말,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르지만, 그 거짓말들이야말로, 진실이 어딘가에 묻혀있다는 증거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죽음은 우리에게서 멀지 않습니다. 바로 옆에서 숨쉬고 있습니다. 이건 문화적인 표현 따위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꼭 경험해보고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결코 죽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억울한 죽음은 막을 수 있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죽음은 막을 수 있습니다. 부당한 죽음은 막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막는 것은,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난 뒤엔 너무 늦습니다. 누군가는 세월호 유가족을 보며 불쌍하다고 합니다. 안쓰럽다고 합니다. 그 진심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디 연민은 그것을 남의 일이라고 여길 떼 느끼는 감정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전쟁터라면, 그분들은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앞이 뚫리면, 뒤도 결코 안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아직 내 옆의 동료가 죽지 않았을 때, 우리는 더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전방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굴복하는 것을 참 싫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시간에 굴복하고 감정에 굴복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그렇습니다. 시간이 지났으니까,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으니까 굴복합니다. 지금 안전한 것 같으니까 얌전히 있습니다. 귀찮으니까, 바쁘니까, 나 하나 살자고 오늘 하루 또 열심히 뛰어다닙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다른 일에는 관심을 못 가지지만 유튜브를 보면서 웃을 시간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 얘기입니다.

그러다가 오늘 갑자기 세월호 관련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올해 공소시효가 끝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7년이 된 오늘 저 세 글자는 더 이상 제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두려웠습니다. 세월이 그토록 무서운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급한 과제를 제쳐두고,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나고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CCTV를 조작한 의혹부터 수많은 거짓이 드러났지만, 진실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세월호를 이용한 사람들은 잠잠했고, 유가족들은 홀로 여전히 싸우고 있었습니다.

타자를 두들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써 내려갈수록 저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부끄러웠기에, 글을 써야 했습니다. 무언가는 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무력하게, 세월에 짓이겨질 수는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겐 가직이고 위선이고, 결국 다른 이의 문제가 내 문제가 될 수 없고, 그 누구의 마음도 헤아릴 수 없고 그 누구에게도 가 닿을 수 없는 글일지 모르지만, 7년 전 그 아이들처럼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걸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압니다. 이 긴 글을 끝까지 읽기도 쉽지 않지만, 다 읽고 나면 또 밥을 먹으러, 일을 하러, 잠을 자러 가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이라도 했으면 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되니까, 무의미한 일이라도 했으면 합니다. 게시물을 올리든, 프로필 사진을 바꾸든, 청원에 참여하든, 집회에 들리든, 관심을 가지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 검색해보든, 지금 있는 자리에서 기도를 하든, 기억을 하든, 기록을 하든, 무엇이든 했으면 합니다. 부끄럽지 않을 순 없습니다. 7년 동안 이 일이 해결되지 않은 데에, 스물 여섯의 저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돌아간 데도 무엇을 할 수는 없겠지만, 화장실에 붙어 있던 세월호 추모 모임 포스터를 지나친 제 모습에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책임감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스무 살이든 서른 살이든 마흔 살이든, 책임감을 느끼고, 무엇이든 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티끌만큼이라도 덜 부끄러운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조금이라도 유가족들께 힘이 되길 바랍니다. 결코 힘이 될 수 없지만, 시도하시길 바랍니다. 어쩌면 지금이,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 마지막으로 우리의 관심이 힘이 있을 수 있는 시기 일지도 모릅니다.

부끄러움으로 시작한 글을 부끄러움으로 끝맺습니다. 실은 저 자신에게 쓰는 글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 연민보다는 부끄러움이, 세월호 참사 7주년을 앞두고 우리가 가져 마땅한 감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죄송합니다. 그저 죄송합니다. 끝까지 싸우시는 그 길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너무 나약하고 부족하고 무력한 이 글을 올리는 것이 맞나 고민했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다시 세월호에 대해 떠올릴까 싶어 이 글을 올립니다. 인간은 나약합니다. 인간의 기억 또한 나약합니다. 하지만 그 기억과 기록을 이어온 것이 우리가 배우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세월호는 ‘단순 사고’가 아닙니다. 적어도 아직은 아닙니다. 한 명이, 두 명이, 열 명이 ‘사고’라고 얘기하다 보면 그것이 진실이 됩니다. 우리는 최소한 제대로 과거를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2014년 추모의 물결이 일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노란 리본을 달던 장면을 기억합니다. 그때 고등학교 선생님은 저희에게 ‘어른들이 미안하다’라고 사과하셨습니다. 그 의미를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7년은 남의 죽음을 기억하기엔 너무 긴 시간입니다. 하지만 자녀의 죽음을 잊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그러니 우리 그 짧은 찰나를 경험하는 이들에게, 부디 ‘지겹다’는 말은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지켜봅시다. 끝까지 언급합시다. 끝까지 기억합시다. 무엇이라도 합시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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