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칼럼] 평범한 냄비 속에 숨은 특별함, '쿨 테크놀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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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 칼럼] 평범한 냄비 속에 숨은 특별함, '쿨 테크놀로지'
  • 칼럼니스트 박기철
  • 승인 2021.04.1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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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美)~여(女)~문(文)/Amenity, Feminism and Lifeway ㊱ / 칼럼니스트 박기철
칼럼니스트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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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북부의 도시인 밀라노의 말펜사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열차를 타고 예약한 숙소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다 되었다. 비행기 3등석(economy) 좌석에서 앉아 12시간이나 잠도 편하게 못자고 오느라 몸이 피곤하다. 마침 숙소에 간단한 전기 곤로와 냄비, 식기 등 주방기구가 있었다. 고국에서 비상용으로 가져온 라면 2개가 있어 먹고 싶었다. 오자마자 비상용 음식을 먹으니 첫날부터 비상 아닌 비상(非常)인가 싶었다.

그런데 라면을 끓이는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아니 일어난 게 아니라 신기함을 느꼈다. 끓는 냄비의 손잡이는 늘 뜨겁기에 조심스럽게 잡으려고 하는데 손잡이가 하나도 뜨겁지 않았다. 도대체 이게 웬 일인가? 나의 짧지 않은 오랜 주방 체험으로 볼 때 끓는 냄비의 손잡이는 뜨겁다. 금속류 손잡이가 아니라 플라스틱류 손잡이라고 해도 조심해야 한다. 플라스틱류 손잡이라면 가끔 불에 타는 역한 냄새도 맡게 된다. 그래서 보통 냄비를 옮길 때는 두꺼운 헝겊이나 수건을 덧대고 옮긴다. 또는 뜨거운 냄비를 옮기는 도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도대체 이 냄비는 손잡이가 뜨겁지 않다. 뚜껑 손잡이도 역시 마찬가지로 뜨겁지가 않다. 금속성 냄비라 열 전도가 잘 되어 손잡이가 뜨거울 텐데 뜨겁지 않은 이유는 무얼까? 아무리 냄비를 이리저리 살펴도 그냥 평범한 일반 스테인레스 냄비다. 너무나 신기해서 네이버 검색창에 ‘뜨겁지 않은 냄비 손잡이’로 알아 보았다. 검색이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Star Class’라는 스테인레스 냄비의 손잡이도 뜨겁지 않다고 한다. 독일의 주방용품 회사인 WMF는 쿨 테크놀로지를 적용해 손잡이가 뜨겁지 않은 냄비를 만든다고 한다. 이 냄비도 과연 그런 기술로 만든 냄비인가? 냄비에 별다른 상표 표시도 없는 그저 그런 이태리 냄비다. 쿨 테크놀로지라는 특별한 기술로 만든 것같지도 않다. 그런데도 손잡이가 뜨겁지 않은 것은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끓는데도 손잡이가 뜨겁지 않은 이태리 냄비(사진: 박기철 제공).
끓는데도 손잡이가 뜨겁지 않은 이태리 냄비(사진: 박기철 제공).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가 틀림없이 없을 수 없다. 내 좁은 소견으로는 한 겹으로 된 스테인레스가 아니라 2겹이거나 3겹으로 이루어져 열의 전도를 차단하는 것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열전도성이 높은 스테인레스 금속에서 2겹 3겹으로 열의 전도가 차단될 수 있을까? 하지만 차단이 되었기에 손잡이가 뜨거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손잡이가 뜨거워지지 않는 냄비를 처음 만든 기술자는 어찌 그리 되는 이유를 터득하게 되었을까? 이태리 반도를 북에서부터 남쪽으로 종단하는 여정의 첫 날은 라면을 끓이는 중에 평범하면서도 신기한 냄비를 만나는 날이었다. 앞으로 20여 일간의 여정 중에 또 무슨 평범하면서도 신기한 것을 만나게 될 것인지 몸은 피곤해도 맘은 설렌다. 특히 어떤 대단하고 특별한 유적지 등을 가서 만나는 무엇이 아니라 평범한 저들의 일상 속에 내재된 아름다움을 만나는 일이 나에게는 의미있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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