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청소년들, 고민 털어놓으면 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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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청소년들, 고민 털어놓으면 풀립니다"
  • 취재기자 이원영
  • 승인 2016.06.07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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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무료상담소' 운영하는 장윤진 씨, 조울증 학생 등 멘토 자임 심리치료도

가족, 연인, 친한 친구에게도 터놓지 못하는 남모를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매주 금요일 부산 부경대학교 앞 가로수길에서 길거리 무료 상담소를 여는 장윤진(51) 씨가 그 주인공이다.

장윤진 씨는 중학교 대안 교실 상담교사, ‘따뜻한 심리 상담연구소’ 소장, (사)한국중독전문상담학회 운영위원, 부산가정법원 소년위탁보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소년위탁위원으로 위촉된 건 2013년. 주로 자전거, 오토바이를 훔친 절도죄 등으로 집행 유예를 선고받은 청소년을 1년간 전담 지도한다. 그는 현재 조울증을 겪고 있는 18세 학생의 심리 치료를 맡고 있다.

▲ 장윤진 소장이 길거리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부경대 앞 길에서 포즈를 취했다(사진: 취재기자 이원영).

‘삶과 죽음’을 고민한 열한 살의 소년
그에게는 상담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는 유년시절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이미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왜 사람은 살고 죽는지, 그리고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를 고민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삶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자살에 실패한 이후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전형적으로 복잡한 사고를 가진 조숙한 학생이었던 것. 그 중 두드러진 것은 철학적 사고. 그는 베이컨의 ‘경험주의’를 기술한 책을 끼고 다닌 아이였다고 했다.

그는 정서적으로 힘든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이것은 가정 환경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설명했다.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그는 부모로부터 차별적 대우를 받았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식의 교육 방침 아래 자랐다. 형제간 연대 책임을 묻는 것은 기본, 군대 같은 가정환경이었다. 줄곧 동생과 비교를 당했고, 사랑 받지 못했다고 한다. 부모님의 뜻에 잘 따르는 동생과 달리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고집센 성격 탓에 그는 부모님과 부딪치는 일이 잦았다. 자존심이 강한 데다 갈등을 겪는 것을 그는 무척 힘들어 했다. 그는 “내 얘기를 들어주는, 인격적인 대우를 원했는데 당시 부모님은 그렇지 못하셨다. 내가 가진 논리적, 합리적 사고에 맞지 않는 부모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갈등에서 겪는 어려움 끝에 내가 가진 문제는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종교를 만났다. 동네의 한 교회 초등부 주일학교에서 빵과 사탕을 준다는 말에 현혹돼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접한 성경은 그에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심오해서 매력적”이었다고. 그는 곧 “사람에 대한 접근과 이해, 사람과 신 사이의 인격적 관계’에 매료됐다. "너는 잘못됐다"며 무조건 혼내기만 하는 부모님에게서 찾지 못한 위로와 격려가 신앙 안에 있었다. 그곳엔 다시 기회를 주고 회복할 수 있게 치유해 주는 사랑이 깊게 깔려 있었다. 신이 갖고 있는 배려, 사랑과 이해, 용서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나’에 대한 끊임 없는 연구
그는 대학에 가서도 자신에 대한 연구를 이어갔다. 고민 끝에 스스로의 문제를 찾았다. 그는 “오랜 연구 끝에 나의 문제를 알고, 내 감정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학생이 된 그는 심리학 책을 즐겨 보고, 사람의 내면에 관한 서적이나 강좌를 더 많이 접하게 됐다. 그는 “어느 순간 친구와 후배들이 나에게 와서 고민 상담을 하더라. 고민이 해결된 친구들이 다른 문제로 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 때 내가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데 소질이 있구나 생각했고, 상담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기독교상담학을 전공했다.

서울 출생인 그는 9년 전 결혼으로 부산에 정착하게 됐다. 당시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이웃들을 대상으로 무료 상담을 실시했다. 반응이 좋자, 동사무소와 유치원, 아동센터에서 연락이 왔고, 학교와 교육청에서 상담 교사로 일해 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전문 상담교사로 일을 하게 됐다.

‘매 맞는 교사’와 ‘무서울 게 없는 아이들’
그는 현재 중학교 두 곳에서 ‘대안 교실’ 상담교사로 일하고 있다. 대안 교실이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는 곳. 교내에서 문제를 일으킨 문제아이거나, 출석 점수가 많이 누락된 아이들 뿐만 아니라 대안 교육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부모의 동의 하에 수업을 받는다. 심리 치료, 미술 치료에다, 난타를 배우거나 악기를 다루는 등 음악 활동 수업도 병행되며, 영화 보기 같은 문화체험 활동도 이뤄진다. 그는 주 2~3회 1일 2시간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대안 교실은 개인이 아니라 9~10명 그룹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사람이란 어떤 존재이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인성 교육과 사람과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화해해야 하는지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의 목표는 “망가져 있는 아이들에게 한 명, 한 명 꿈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수업 막바지에 다다라 그는 “아이들이 자신의 문제와 지금까지의 행동들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모습을 볼 때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매 맞는 교사’라는 말까지 등장한 우리 사회. 학생이 교사를 폭행했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그는 “학생 인권 신장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교권이 붕괴된 것”이라며 “교권을 보호하기 위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아 발생한 제도적 문제인데, 학생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반드시 교사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어느 학교에서는 인권을 침해한다는 학부모들의 항의로 학생들 교복에 명찰도 못 달게 한다더군요. 그래서야 무슨 지도와 교육이 될까요? 최소한 학생들의 이름을 알아야 부를 텐데 말이죠. 아이들을 위한다는 교육 정책이 아이들을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도록 만들고 있어요. 지금 제도로는 아이들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무서울 게 없어요.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일주일 정도 봉사활동을 하고 교육을 받는 것쯤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지요. 어른들이 아이들을 통제에 따르지 않는 폭력 집단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죠.”

▲ 부경대학교 앞 가로수길에서 매주 금요일 '대학로 놀이터'가 열린다. 이곳에서 장윤진 소장이 길거리 무료 상담소를 열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원영).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거리 무료 상담소’
장윤진 소장은 매주 금요일 길거리 무료 상담소를 열고 있다. 부산 부경대 앞 가로수길에서 열리는 대학로 놀이터 한 켠에 그의 상담소가 자리해 있다. 대학로 놀이터는 매주 금요일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문화 공연과 함께 수공예 작품, 현장 조리 제품, 예술품 등을 전시 판매하는 행사다. 장윤진 소장은 2012년 우연히 대학로 놀이터를 알게 됐다. 그는 ‘건전한 거리 문화를 만들자’는 행사 취지에 공감해 행사를 주최·주관하는 한국대학문화연합회 측에 무료 상담소를 열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는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거리에서 누구나 찾아와 상담을 받고 심리적 문제를 치료하면서 건강한 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 이 일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 장윤진 소장의 길거리 무료 상담을 홍보하는 현수막(사진: 취재기자 이원영).
▲ 장윤진 소장이 길거리 무료 상담소를 열기 전, 사람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원영).

처음엔 “과연 사람들이 찾아올까” 반신반의했다고. 그러나 걱정도 잠시, 혼자서, 둘이서, 셋이서, 심지어 일곱 명씩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누구나 고민이 있지만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 직장인, 장년층 등 다양한 사람들이 그의 길거리 상담소를 찾는다. 탁자 앞에 놓인 의자에 사람이 앉으면 그는 옆에 걸린 현수막을 가리키며 원하는 상담을 고르라고 한다. 그의 상담 방식은 우울증, 스트레스, 불면증, 성격 장애, 진로 문제, 가정폭력, 인터넷 중독 등 많은 검사 중에서 상담받는 사람이 고른 검사지를 체크하고 함께 문제를 짚어 보는 식이다. 상담 시간은 짧게는 5분부터 10분, 30분까지 다양하다. 보통 하루에 20~30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그만큼 상담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지요. 고민이 있어도 그걸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건 참 슬픈 일이에요. 저는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저 또한 힘들 때 곁에서 도와준 사람이 없었어요. 힘들게 상대방에게 고민을 터놓으면 ‘니가 참아라,’ ‘이해해라’는 말만 되돌아 왔지요.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닌데 말이죠.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해결해 줄 수 있는 거겠지요.”

▲ 장윤진 소장이 상담자를 기다리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이원영).
▲ 장윤진 소장이 진행하는 상담에 활용되는 우울증 검사지(사진: 취재기자 이원영).

그를 찾은 이들의 고민은 연애, 학업, 교우 관계, 진로, 사회 생활 등 다양하다. 보통 우울증, 성격, 진로, 자존감, 스트레스에 대한 검사를 많이 진행한다고 한다. 그는 “고민 해결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해답도 있다”며 “문제의 핵심을 짚어주는 것만으로 고민이 해결될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답을 알면서도 갈팡질팡하거나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모른 채 고민을 안고 오는 사람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터놓는 것만으로 해결이 되기도 해요. 가족과 친구, 연인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걸 정작 모르는 사람에게 더 쉽게 꺼내 보일 수 있는 속사정들이 저마다 있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부담이 없으니까요.”

한 해 평균 이곳을 다녀가는 사람은 600여 명. 그에겐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특별한 재주라도 있는 걸까. 그는 “특별한 건 없다. 물론 처음 만난 상대다 보니 편안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중요한 건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사람을 품어 주려고 다가가는 것이다. 상담사는 이야기만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대목도 끌어내서 대신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대신 스케치를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담을 마치고도 고민이 해결되지 않아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가는 이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웃으며 일어나는 것. “일단 상담을 시작했으면 문제는 해결해 줘야 한다”는 그의 지론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공감 능력이 탁월한 듯했다. 그는 “대화를 해보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가 있는데 이건 나 자신을 연구하고 실험해 본 데다 많은 상담 경험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대학 시절, 소심하고 폐쇄적인데다 틀에 박힌 가부장적 사고와 편협한 사고에 갇혀 있던 나를 바꾸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기까지 5년이 걸렸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나에게 적용했던 방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등 상담에 활용할 수 있었다”는 게 장 소장의 설명.

▲ 장윤진 소장은 '소통의 부재'를 우리 사회의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사진: 취재기자 이원영).

소통의 부재...대화가 필요한 사회
장윤진 소장은 매년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유형과 고민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는 “요즘 사람들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대인관계에 필요한 자기 표현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하는 관계가 맺어져야 하는데 갈수록 SNS를 통해서만 소통이 이뤄지다 보니까 정작 사람을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방법에 서툴러졌다”고 말했다. 그는 “성인임에도 유아적 단어를 쓰는 등  미성숙한 자기 표현과 사고 방식은 요즘 젊은이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문제”라며 “<대화가 필요해>라는 노래처럼 정말 대화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고 지적했다.

“소통의 부재는 비단 젊은이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큰 문제에요.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소통의 부재로 겪는 갈등이 얼마나 많습니까.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며 갈등을 해결하는 길은 오로지 ‘폭력’ 밖에 없다고 믿는 극단적인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요즘 그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사람과 대화하는 법, 즉 소통 방법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친구와 싸우고 난 뒤 화해하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 이런 세대가 커갈수록 사회의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네가 죽든 내가 죽든 갈 데까지 가 보자’며 극단적으로 흘러가는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문제 해결을 도와 줄 수 있는 멘토,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병들어 있는 사회를 치료하려면 개인부터 치료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게 먼저”라고 그는 강조했다.

장윤진 소장은 앞으로도 계속 '따뜻한 심리 상담연구소'를 꾸려 나가겠다고 밝혔다. 상담 교사로서 그를 찾는 학교가 많아지고 있어 앞으로 직원들을 확충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부산뿐만 아니라 김해 등 경남권에서 상담 교육을 실시하며, 아동센터와 가정법원, 병원 등과 협약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돕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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